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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검지애-207화 (207/472)

<천검지애 207화>

207화. 남매(1)

악불군의 천륭검의 검 끝에서 시작해 검날까지 샅샅이 조사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살피던 악불군의 눈에 이채가 나타났다. 검 날에서 어떠한 상처도 찾아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싸울 때마다 검날에 상처가 나는 것은, 가장 단단하다는 만년한철로 만든다 해도 피할 수 없었다.

그래서 모든 검들은 한 번 싸울 때마다 날을 다시 갈며 꾸준한 관리를 해야 했다.

당연히 싸움이 잦을수록 상처는 커지고, 계속 갈아 날을 세우다 보면 검이 닳아 다른 검으로 바꾸게 된다.

그래서 활동이 많은 검사들은 일 년에 열 번 이상 새 검으로 바꾸곤 했다.

천고의 명검으로 불리는 검들은 모두 특징이 있었다. 쇠를 무처럼 자르는 강도와 예리함으로 이름이 높은 검도 있었고, 평범한 검에 비해 훨씬 가벼워 초식을 빠르고 정확하게 사용할 수 있는 이점을 지닌 명검도 있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절대적인 공통점이 있었다. 어떤 충격에도 부러지지 않는 강도와 탄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유리하게 생사결을 이끌던 와중에 검이 부러져 죽은 무림인들은 부지기수였다.

무림인들이 천고의 무기라면 사족을 못 쓰고 탐을 내는 이유이기도 했다.

악불군은 천륭검을 들고는 백교방주와 싸웠을 때 사용했던 초식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른 검들이 부러졌던 순간 확연하게 검이 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늘어났어……. 분명히 늘어났어.’

악불군은 눈이 커졌다.

그가 놀란 것은 검이 휘어서가 아니었다.

검이 늘어난 것이다. 악불군은 즉시 몸을 일으키더니 정원의 나무 앞에 섰다.

검을 쭉 뻗어도 두 자 이상의 거리를 둔 악불군은 다시 초식을 펼치기 시작했다. 상대는 나무였다.

그렇게 나무 주위를 두 번 돌며 초식을 끝낸 악불군은 나무를 살피기 시작했다.

검에 베이고 찔린 상처가 무려 열두 개나 생겨 있었다. 그가 의도치 않았음에도 검이 늘어나거나 휘면서 자신이 원하는 표적을 찌르고 벤 것이다.

‘내가 엄청난 보물을 가지고 있었구나…….’

악불군은 감탄 어린 표정으로 검을 바라보더니 조그맣게 말했다.

“천륭검, 내가 너를 몰라보고 그동안 홀대를 했구나. 미안하다.”

마치 검이 알아듣기라도 하는 듯 사과를 한 악불군은 검을 겁집에 넣고는 소중하게 품에 안았다.

* * *

아침이 되자 악불군은 남아 있는 천호십영을 불렀다.

다섯 명은 귀도신영을 따라갔고 남은 사람은 다섯이었다.

“흑 영주.”

“예.”

“도창을 천호방의 분타로 만들 생각이오.”

악불군의 말에 흑석영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지금 도창에는 거대 사파나 마도가 아직 없습니다. 하지만 자잘한 문파들이 도토리 키 재기식으로 엄청 싸우고 있습니다. 마 영주와 사 영주가 천호영 살수를 이십 명 정도 데리고 가면 금방 정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살수 집단 역시 정보는 필수였다.

백인막은 수십 년간 중원 제일의 살수 집단으로 군림했던 터라 가진 정보는 대단히 방대했다.

“그럼 마 영주와 사 영주를 데리고 가겠소. 흑 영주께서는 이곳 남창의 경계를 맡아 주셔야겠습니다. 다른 소소한 자들은 큰 문제가 없겠지만, 구천마성에서 온다면 천신문만으로는 상대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걱정 마십시오. 남창을 노리는 자들은 어떤 세력이든 좌시하지 않겠습니다.”

“구 영주.”

“예!”

“천신문과 천호방간의 소통은 구 영주에게 맡기기로 했습니다.”

구여풍은 천호십영 중 가장 신중하고 모든 면에서 판단력이 뛰어나, 소통하는 데 가장 적합하다는 담수련의 의견이 있었다.

“어떤 임무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아가씨께서 천신문의 누 장로에게 언질을 하셨다니, 이따 대면해서 의논하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악불군은 뭔가 조심스러운 듯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어 갔다.

“백인막에는 막주님이 계실 텐데, 그분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

의외의 질문인지 천호십영은 잠시 답을 못했다.

“말하기 어렵습니까?”

“아닙니다. 막주님께서는 은퇴를 염두에 두시고 백인막 총단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천호십영의 연배를 볼 때 막주님의 연세가 아주 많지는 않으실 것이고, 그 능력으로 미루어 볼 때 벌써 은퇴는 좀 빠른 것 아닙니까?”

“막주님은 저희들에게는 스승님과 마찬가지이십니다. 물론 청부를 맡으시면 누구보다도 냉정하고 무서운 분이셨지만, 다른 막주님들과는 달리 저희를 공포로 지휘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저희가 주군과 주종관계를 맺는 것도 막주님께서는 저희들이 판단해서 결정하라고 하셨습니다.”

악불군은 일전에 마진우와 구여풍에게 백인막주에 대한 얘기를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살수의 제왕이라는 명성과는 달리 인정이 있다는 것을 알았던 터였다.

“은퇴가 빠른 것이 아니냐고 물었는데 답은 좀 다른 것 같군요?”

“그분의 의중을 제가 짐작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분께 천호방의 태상호법 자리를 주겠으니 우리와 합류해 달라고 부탁해 보시겠소?”

뜻밖의 제의에 흑석영은 놀란 눈으로 악불군을 쳐다보았다.

“정말이십니까?”

“그분의 경험과 능력은 그냥 사장시키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백인막을 지킨다는 취지에도 부합된다고 생각하고요. 오신다면 수하가 아니라 존장으로 대우를 해 줄 생각입니다. 언제든지 떠나고 싶으시면 떠나도 된다는 말도 전해 주십시오.”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그럼 우리가 없는 동안 여러분들만 믿겠습니다.”

말을 마친 악불군이 나가자 모두는 이마를 땅에 대는 부복을 했다. 악불군이 자신의 앞에서 부복하는 것을 극히 싫어하기에 그가 떠난 후에 한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이제 악불군을 자신들의 방패막이 아닌 진정한 주군으로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방증이었다.

* * *

“아가씨, 소가주님을 만나러 가시는 데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시니 왜 그러세요?”

평상시의 담수련은 마차에 타면 우선 창밖의 경치에 몰두하곤 했다. 그런데 오늘은 바깥구경도 안 하고 말도 거의 없었다. 심지어 얼굴에는 뭔가 걱정이 있는 듯 침울해 보이기까지 했다.

추국의 질문에 담수련은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난 걱정 없어.”

“그래도 표정이 많이 굳어 계세요.”

“추국아.”

“예.”

“넌 오라버니를 본 적이 있지?”

“몇 번 본 적은 있습니다.”

“그때 오라버니에 대해 어떤 느낌을 받았어?”

“저는 특별한 생각을 못 해 봤습니다. 하지만 다른 제자들을 통해서, 소가주님이 유쾌하시고 수하들이나 하녀들에게도 매우 친절하신 분이시라는 말은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맞아! 언제나 겉으로는 웃기도 잘하고 농담도 잘하셨지. 하지만 그 안에 있는 깊은 슬픔은 아무도 모를 거야…….”

담수련의 중얼거림에 추국은 고개를 숙였다. 그녀 역시 담수운과 담무룡의 불화에 대해서는 들은 것이 있기 때문이었다.

“소가주님께서 여러 가지 이유로 힘든 시절을 보내신 것은 맞지만, 제가 보기에는 의지가 대단히 강하신 분이셨습니다.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될 것입니다.”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악불군은, 담수련이 슬퍼하는 기색을 보이자 급히 위로를 했다. 그리고 악불군의 위로는 효력을 발휘했다.

“소군은 정말 그렇게 봤어?”

“예. 많은 어려움을 겪으시긴 했지만 눈은 청명했고 몸가짐은 바르셨습니다. 그리고 아랫사람들에게 대하는 것도 진정으로 친절하셨지요. 전 소가주님께서 올곧게 자라셨다고 확신합니다.”

“오라버니께서 소군보다 네 살 많으신가 그렇지?”

“아마 그럴 겁니다.”

“소군과 오라버니하고는 친해질 기회가 없었지?”

“제가 육관에서 수련 중일 때는 거의 뵙지 못했습니다. 육관 수련이 끝난 후에는 소가주님께서 세가에 거의 안 계셨고요. 하지만 만날 때마다 제게 아가씨를 잘 부탁한다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혹시…….”

“말씀하십시오.”

“아니야, 됐어.”

담수련은 만약 자신이 죽더라도 담수운을 도와주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 얘기에 악불군이 펄쩍 뛸 것이 분명했기에 말을 멈추었다.

악불군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 바로 그녀가 죽는다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도창에 다 와 갑니다.]

그때 말을 몰고 있던 사효조가 전음을 보냈다.

전음을 들은 악불군은 창을 살짝 열고는 밖을 살폈다.

강서의 성도인 남창보다는 작았지만 도창 역시 포양호를 곁에 두고 발달한 포구 도시였다. 다만 환락가가 많이 발전했다는 것이 남창과는 달랐다.

치안이 무너진 환락가에는 반드시 따라붙는 여러 흑도 왈패들이 서로 많은 구역을 차지하기 위해 매일 싸워, 그 고통은 고스란히 양민들이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도창에 다 왔대?”

악불군이 창을 열고 밖을 살피자 담수련이 물었다.

“예.”

“마 영주께 우리가 대룡상단에 들어가는 즉시 일을 시작하라고 말씀은 드렸지?”

“예, 이미 도창에서 대기하고 있을 것입니다.”

“다치는 사람 없도록 조심하라고도 했지?”

“상대하기 버겁다 싶으면 우선 후퇴해서 제게 보고하라고 했습니다.”

악불군의 말에 담수련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끝없이 인원을 충당할 수 있는 다른 무림 문파와는 달리 천호방은 그 수가 많이 부족했다.

전력의 보충이 어려울 때는 보존을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 * *

천호방은 무력 집단으로 천호십영을 두었다. 십영은 당주와 지위가 같았고, 악불군의 명령만 따르도록 되어 있었다.

십영은 백인막의 특급 살수와 일급 살수 그리고 보통 살수를 각각 이십 명씩을 이끌었다.

원래 백인막 자체가 제법 큰 중견 문파 하나 정도는 하루 만에 멸문시킬 정도의 전력을 가지고 있었으니, 그들만으로도 천호방은 상당히 큰 방이라고 할 수 있었다.

거기에 귀도신영이 끌어들인 낭인들과 광한궁 그리고 영운산장까지 합치면 이미 한 지역을 호령할 수 있는 힘이었다.

그리고 오늘 정식으로 천호방의 이름으로 도창을 접수할 작정이었다.

“몇 개나 있더냐?”

“모두 열두 개나 되었습니다. 그런데 흑도 왈패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무림인들도 상당히 많이 끼어 있었습니다. 어딘지는 몰라도 뒤를 봐주는 사파가 있는 것 같습니다.”

“누가 뒤를 봐주건 이미 방주님의 명이 떨어진 이상 놈들을 모조리 쓸어버린다. 조용히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떠들썩하게 없앤다는 것을 잊지 마라.”

백인막은 모든 행사를 언제나 은밀하게 했다. 누군가 죽어도 누구에게 언제 죽었는지도 모르게 처리해 온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은 살수행이 아니라 천호방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는 일이었다.

“이미 준비는 끝났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새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마진우는 소리를 듣자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방주님께서 대룡상단 안으로 들어가셨다. 나오실 때까지 도창을 접수해야 한다. 방주님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우리의 힘을 보여 드리자.”

“옙!”

“가라!”

마진우의 명이 떨어지나 살수들은 열두 조로 나뉘어 파악된 흑도들의 근거지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도창 곳곳에서는 피가 난무하는 대 살육이 벌어졌다.

* * *

담수운은 고심에 찬 표정으로 뭔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종산은자와 약조한 날은 이제 삼 일밖에 남지 않았다.

그의 그동안 행적으로 미루어 분명 대룡상단 근처에서 그를 주시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수련이라는 것을 알면 분명 문제가 발생할 것인데, 이를 어떻게 해야 문제없이 돌려보낼 수 있을까?’

담수운은 어떻게든 담수련을 종산은자가 눈치채지 못하게 돌려보낼 방법을 강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아는 그는 너무 완벽한 자라 마음이 놓이지가 않았다.

그때였다. 양호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총수님, 도착하셨습니다.”

양호철이 들어오자 담수운은 벌떡 일어나며 급히 물었다.

“총행수님 보시기에 수련이는 건강해 보였습니까?”

고심한 것과는 달리, 왔다는 말을 듣자 그녀의 건강부터 챙기는 그였다. 그 역시 담수련의 오음절맥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저도 아직 뵙지 못했습니다. 제가 직접 움직이면 이상하게 볼 것 같아서 우선 진 행수에게 큰 거래를 위해 온 고객이니 귀빈청에 모시라고 했습니다.”

“잘했습니다. 가 보지요.”

담수련이 왔다고 하자 그동안 걱정은 사라지고 반가움이 먼저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듯, 담수운은 급히 귀빈청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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