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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검지애-208화 (208/472)

<천검지애 208화>

208화. 남매(2)

자리에 앉지도 않고 주위를 둘러보는 담수련을 보며 악불군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올 때의 걱정과는 달리 담수운을 만난다는 생각에 담수련의 마음이 들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군.”

“예.”

구경을 다했는지 담수련이 악불군을 불렀다.

“여기가 귀빈청이라고 했지?”

“그렇게 들었습니다.”

“너무 소박해.”

“소가주님의 성격에 맞는 것 같은데요?”

“오라버니 성격에 맞긴 해. 하지만 새로 문을 연 상단의 귀빈청이 이렇게 소박하면 고객들의 신뢰를 얻기가 힘들어. 오라버니께서 자금 압박을 받고 있는 것 같아.”

놀랍게도 담수련은 귀빈청의 모습만 보고도 대룡상단의 현 재정 상태를 정확히 맞추고 있었다.

“그것만으로 거기까지 느껴지십니까?”

“단지 이곳이 소박해서 나온 결론은 아니야. 들어올 때 봤지? 분명 세운 지 얼마 안 됐다고 들었어. 그럼 인부들이 계속 움직이고 고객들도 최소한 한두 명은 보여야 하는데, 전혀 활력이 느껴지지 않았어. 여러 가지를 종합해서 나온 결론이야.”

담수련의 말에 악불군도 느낀 것이 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밖을 지키던 사화의 전음이 들려왔다.

[소가주님, 오시고 계십니다.]

전음을 들은 담수련은 자리에 앉더니 얼굴을 가린 면사를 떼어냈다.

양호철과 나타난 담수운을 본 사화는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이미 그녀들은 담수운을 여러 차례 본 적이 있기에 보는 즉시 알아볼 수 있었다.

담수운 짐짓 모른 척 포권을 하며 말했다.

“대룡상단의 총수 수운이라고 합니다.”

담수운의 말을 들은 사화는 살짝 문을 열며 말했다.

“들어가십시오.”

담수운과 양호철이 안으로 들어가자 사화는 문을 다시 닫고는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사효조 역시 이미 지붕에 은신하고는 주위를 경계하고 있었다.

“오라버니!”

“수련아, 무사했구나.”

안에 들어선 담수운과 담수련은 두 손을 꼭 잡았다.

‘이상하다? 오라버니께 큰 고민이 있으신가?’

담수련은 그의 얼굴과 맞잡은 손에서 느낀 혈맥의 움직임을 느끼자 뭔가 의아한 표정으로 담수운을 보았다.

“왜 그러느냐?”

담수운이 이상하다는 듯 묻자 담수련은 급히 인사를 하며 말했다.

“저도 오라버니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이리 건강하시니 안심이 됩니다.”

담수운은 그녀의 머리를 손으로 쓰다듬으며 말했다.

“어린 아기로만 생각했는데, 벌써 나를 걱정할 정도로 컸구나. 걱정은 네가 아니라 내가 해야 마땅한 것이다. 우선 앉자.”

“예.”

자리에 앉은 담수운은 담수련의 뒤에 서는 악불군을 보며 말했다.

“소군, 자네 정말 수고했네. 사실 자네가 있어서 걱정을 좀 덜할 수 있었어.”

“소가주님을 이리 뵙게 되니 저도 좋습니다. 아가씨께서 소가주님 걱정을 너무 많이 하셨습니다.”

“양 총행수, 수련이를 본 적이 있지요?”

“예, 아가씨께서 아기 때 한 번 본 적이 있습니다.”

“소군 인사하게 본 상단의 총행수이시네. 예전에는 잠룡세가의 잠룡단 단주님이셨네. 여기는 수련이를 어렸을 때부터 호위해 온 호위 무사라네.”

“악불군이라고 합니다. 단주님께 인사드립니다.”

“양호철이…… 오.”

답을 하던 양호철은 잠시 머뭇했다. 갑자기 그의 머리에 요즘 가장 뜨거운 소문의 주인공 이름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곧 고개를 저었다.

십대고수의 명성을 넘는 고수가 담수련의 호위 무사라는 것은 말이 안 됐기 때문이었다.

‘동명이인이겠지? 거기다 느껴지는 기도 일류급 무인 정도밖에 안 돼. 아닐 거야.’

인사가 끝나자 담수운과 담수련은 그동안 미루었던 궁금한 얘기들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양호철은 계속 악불군만으로 주시하고 있었다. 아니라고 부인은 했지만 악불군에게서 풍겨 나오는 기도가 자꾸 그에게 이상한 압박감을 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근래 들어 점점 강해지고 있는 절대자의 기도였다.

“그럼 오라버니께서도 아버님에 대한 소식은 전혀 모르시는 거네요?”

“그래, 잠룡세가와는 전혀 연락이 안 된다.”

“문 군사님조차 연락이 안 되는 말씀이세요?”

“자세한 것은 나도 모르지만, 이번 아버님에 대한 반역의 중심에 문 군사가 있다는 말은 들었다.”

“오라버니께서는 그 말을 믿으세요?”

“그건 나도 모르지. 잠룡세가 외단에서 나온 말을 간신히 얻어 들은 거니까. 왜 너는 아니라고 생각하니?”

“문 군사는 아버님의 최측근 수하였어요. 그리고 어려서부터 제게 많은 지식을 전수해 주신 스승님 같은 분이기도 했고요. 제가 다른 것은 몰라도 사람만은 그래도 좀 보는데, 문 군사님은 아버님을 배신할 분이 아니셨어요.”

“절대 안 할 사람이 했을 때 가장 큰 타격을 받게 되는 법이다. 아버님께서 너무 쉽게 몰락하신 이유도 그렇게 믿는 사람이 배신한 때문이 아니겠느냐? 그리고 잠룡밀과 잠봉밀에 대해 문 군사에게 알리지 않았던 걸 보면, 어쩌면 어느 정도는 의심을 하고 계셨을지도 모르지.”

담수련은 착잡한 표정으로 잠시 있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대룡상단에 문제가 좀 있는 것 같은데, 제게 말해 주실 수 있겠어요?”

“문제? 무슨 문제?”

“뭐든지요.”

담수운은 그녀의 말에 잠시 멈칫했다. 하지만 종산은자와의 관계에 대해 그녀가 알 리 없다는 판단이 들자 고개를 저었다.

“특별한 문제는 없구나.”

“특별한 문제 말고 일반적인 문제를 물어보는 거예요.”

“일반적인 문제라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잘 이해가 안 가는구나?”

“유모께 듣기로 오라버니께서 엄청난 물품들을 구매했다고 들었어요.”

“그렇긴 했지.”

“하지만 지금 같은 시기에 판로를 찾기가 쉽지는 않았을 거예요.”

“네가 그것을 어찌 아느냐?”

“오라버니께서도 제가 책을 얼마나 많이 읽는지 아시잖아요? 실전은 좀 약하지만, 상권이 움직이는 방향에 대해 이론은 제법 해박한 편이에요.”

“그래, 물건을 산 후에 가격이 폭등해서 상당한 이익을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물건을 팔기가 쉽지 않더구나. 기존 상단들은 이미 상황을 아는지 가격을 너무 후려쳐서 포기했고, 도매상들은 물건을 자신들의 상회 앞까지 가져다주기를 원하는데 그러려면 표국비가 너무 많이 들어서 그것도 어려웠다.”

“중원의 상권은 상단과 도매상 그리고 소매상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 안에 들어가지 못하면 물건이 있어도 팔 수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더욱이 지금 같은 혼란의 시기에는 물건을 강탈당할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서 판로 개척도 어렵고요.”

“그래, 네 말이 맞다. 그러고 보니 문제가 많긴 하구나.”

“지금 어디나 물건들이 부족해서 난리예요. 남창에 대룡상단의 지단을 세우세요. 거긴 물류의 중심지인지라 판로 개척을 따로 할 필요도 없이 판매가 가능할 거예요.”

“남창으로 들어갈 수만 있다면 가능은 하겠지만, 그곳에는 백교방이라는 마도 문파가 있다. 그들에게 상납해야 할 보호세가 너무 많아서 다른 상단들도 빠져나오고 있다고 들었는데 어찌 거기로 들어가겠느냐? 그리고 우린 지금, 무림 문파가 있는 지역은 피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겠느냐?”

“그렇게 정보가 느려서야 어떻게 상단을 키우겠어요? 백교방과 사파들은 모두 이미 천신문이라는 문파에 의해 멸문당했어요. 남창은 천신문이 완전히 장악했다는 거지요.”

“천신문?”

담수운은 처음 듣는 이름에 양호철을 쳐다보았다.

“저도 처음 듣는 이름입니다.”

“수련아. 남창을 누가 장악했건, 요즘 무림 세력들은 너무 과한 보호세를 청구하고 있다. 천신문이라고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구나. 그래도 여기 도창은 무림 문파가 없어 그 문제만은 편한 편이다.”

“천신문이 대룡상단을 돕는다면 얘기는 다르지요.”

“천신문이 어떤 문파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를 도울 리도 없고, 설사 돕는다 해도 남창을 오래 장악하기는 어려울 게다.”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정파에서 구천마성의 북진을 막기 위해 강서성 북쪽에 새로운 문파를 세우려고 한다고 들었다. 아마 그 총단은 남창성이 될 게다.”

“정파건 마도건 남창성에 자리 잡는 것은 그리 만만치 않을 거예요. 천신문이 그리 약한 문파가 아니거든요.”

“네가 천신문에 대해 잘 아느냐?”

“제가 천신문의 문주니까요.”

순간 담수운과 양호철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게, 무슨 소리냐? 네가 천신문의 문주라고?”

“예.”

“방금 천신문이 백교방까지 없애고 남창성을 장악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양호철이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지 직접 묻고 말았다.

“그랬어요.”

“잠봉밀의 전력으로는 백교방과 정면 대결은 어려웠을 텐데요? 거기다 백교방주의 무공은 저도 능가할 정도의 고수인데, 어떻게?”

“그 정도 능력이 있으니까 유모가 말리는데도 여기에 온 것이겠지요?”

“수련아, 지금 영웅회에서 오룡세가는 물론 그 협조 세력까지 다 조사하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대놓고 남창을 장악하면 어떡하느냐?”

“그냥 신흥 문파로 생각하지 않겠어요?”

“신흥 문파가 백교방 같은 강력한 마도 문파를 제거했다면 무조건 그들에게는 조사 대상이 될 게다.”

“어차피 숨어 있어도 그들의 추적은 피하기 어려울 거예요.”

“아가씨, 가주님께서 저희 보고 오 년 이상 숨으라고 한 것은 새 황조가 자리 잡을 시간 동안 피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새롭게 황조가 세워지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치안 강화와 함께 혼란을 잠재우는 일이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무림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담무룡은 새로운 황제가 분명 중원에서 더 이상의 혈겁이 일어나는 일은 막을 것이라는 판단을 했던 것이다.

“아버님의 판단은 아주 정확해요. 하지만 시간은 틀렸어요. 저희는 숨어서 삼 년 이상 못 버텨요. 아버님의 계산은 원나라가 중원의 주인일 때를 상정한 거예요. 그때는 양민들도 반원의 기류가 강해 무림인들을 숨겨 주던 때니까요. 하지만 이번 황조는 중원인에 의해 세워질 거예요. 그리고 쫓는 자들은 중원의 정파고요. 이젠 모든 양민들까지 그들의 눈과 귀가 되어 줄 거예요. 우리가 살아가려면 밥을 먹어야 하는 이상, 그들을 피할 방법은 없어요.”

“그래서 지금 정면 돌파를 하겠다는 것이냐?”

“정면 돌파는 너무 위험이 크고요. 변모를 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는 것이 제 생각이에요.”

“변모?”

“천신문은 지금 정파로 알려지고 있어요. 오라버니는 이미 상단으로 변모했으니 됐고요. 이제부터 천신문과 대룡상단이 힘을 합쳐 영향력을 키워 나가는 거예요. 아무리 정파라 해도 양민들의 지지를 받는다면 함부로 못 건드릴 테니까요. 민심에 반하는 행동을 한다면 이미 그들은 정파라 불릴 자격이 없지 않겠어요?”

“아가씨, 무림인들의 행동은 책과는 다릅니다. 정파가 마도나 사파보다 더 잔인한 행동을 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원칙적으로 민심은 상관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무림에서의 평판만을 중요시할 뿐이지요. 더욱이 정파라면 더 샅샅이 조사할 확률이 큽니다.”

“그 정도도 예상을 못 하면 안 되지요. 하지만 무림에서의 평판도 그리 밀리지는 않을 거예요.”

‘얘가 많이 달라졌는데? 수련이 맞나?’

담수운은 너무 달라진 말투와 분위기에 의구심 어린 눈으로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하지만 어디에도 역용한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아가씨, 대단한 자가 근처에 숨어 있습니다.]

그때 악불군의 전음이 담수련에게 전해졌다.

[적이야?]

[적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살기 같은 것은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희 잠룡세가 사람도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잠시 생각하던 담수련은 갑자기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예전 언뜻 들었던 의문이지만 그녀는 도저히 물을 수도 그렇다고 의심할 수도 없어 그냥 잊기로 했던 일이었다.

“수운 오라버니.”

“말해라.”

“혹시 오라버니만의 비밀이 있으신가요?”

“비……밀? 내게 그런 것이 있을 리가 있겠느냐?”

“오라버니, 전 잠룡세가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 오라버니께서 생각하신 것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어요.”

“무슨 의미로 하는 얘기인지 난 잘 모르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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