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검지애 214화>
214화. 움직이는 사람들(1)
아무 말 없이 염주만 굴리던 소림의 무애대사가 불호를 외며 나섰다.
“아미타불! 제갈 시주, 지금 말한 마교란 명교를 말하는 것이오? 아니면 천년마교를 말하는 것이오?”
세상에는 마교라 불리는 조직이 여럿 있었다. 명교는 불을 숭상하는 파샤의 종교로, 중원에 들어온 후 급격히 교세를 확장하면서 곳곳에서 문제를 일으켰다.
원나라에서는 명교를 마교로 낙인찍고 탄압하기 시작했고, 결국 이들은 지하로 숨고 말았다. 주원장을 키운 백련교 역시 명교의 아류라고 알려져 있었다.
대단한 세력을 구축하고 수많은 고수들을 거느린 명교는 백련교의 난 이후 직접적으로 나서지는 않고 있지만, 여전히 중원 무림인들에게는 마교로 불리며 배척받고 있었다.
“제가 마교라고 부르는 곳은 하나뿐입니다. 천년마교입니다.”
제갈우명의 단호한 대답에 중인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천 년도 전에 세워진 마교는 천하의 모든 혼란을 조성하는 마인들의 집단이었다. 모든 마도의 종주로 자처하던 마교는 수많은 마공을 만들었고, 이는 현 무림의 마도들이 익히는 마공의 효시가 되었다.
그들은 수백 년에 한 번씩 나타나 극악한 혈겁을 벌이고는 사라지곤 했다.
결국 황군과 중원의 모든 무림인들이 합심해 마교를 멸망시킨 것이 약 삼백 년 전이었다.
그런데 마교라니……
“아미타불! 아미타불!”
무애대사가 연달아 불호를 외자 이번에는 화산의 현천 진인이 물었다.
“무량수불! 제갈 시주. 조금 전 천호무적검 때문에 단서를 찾았다고 했는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말해 주실 수 있겠소?”
“그들이 싸운 것까지는 확인됐지만 왜 싸웠는지는 아직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그것도 알아내는 즉시 보고하겠습니다. 그리고 마교의 무공의 흔적을 찾았다는 것뿐, 진짜 마교라는 증거는 없습니다. 예전 마교가 행한 행동들과 비교한다면 아닐 확률이 더 높다는 원로님들의 의견도 있었음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직 확인이 안 된 사안이니 그런 정보가 있다 정도로 이번은 넘어가고, 우선 현안에 대해 의논을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남궁세민의 말에 잠시 침묵이 이어지더니 점창파의 점창일검이 물었다.
“제갈 대협, 화룡세가는 어찌 됐습니까?”
운남에 위치한 점창파로서는 가장 가까운 화룡세가의 소식이 가장 궁금했다.
“몇 달 전까지 화룡세가는 주위 군소 문파들을 모두 복속시키면서 세력을 확장했습니다. 그런데 근래에는 이상할 정도로 조용합니다. 현 상황을 주시하면서 다음 행보를 결정할 생각인 듯합니다.”
“화룡세가는 오룡세가의 일원으로, 반드시 없애야 할 부역자들의 핵심입니다. 그들부터 빨리 없애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구천마성의 기세가 너무 등등해서 조심하고 있지만, 주원장이 장사성까지 물리치고 확실하게 권력을 잡으면 당연히 없앨 것입니다.”
“그럼 남는 것은 철룡세가와 잠룡세가인데, 철룡세가는 여전히 원나라 영역에 있으니 그렇다 치고 잠룡세가는 어찌하고 있습니까?”
“담무룡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소문이 돌아서 확인해 보려 했지만, 아직 진위는 밝히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잠룡세가는 완전히 포위된 것이나 마찬가지인지라, 걱정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빨리 없애야 중원 무림인들의 사기도 오르지 않겠습니까?”
“잠룡세가를 직접적으로 공격한다면 우리도 상당한 피해도 감수해야 합니다. 하여 지금 영웅밀단에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물밑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곳도 가만 둘 수 없지만 특히 잠룡세가는 완전히 폐허를 만들어, 모든 사람들에게 배신자의 말로가 어떤 것인지 보여 주어야 한다고 봅니다.”
“단순 변절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돕는 부역까지 했습니다.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봅니다.”
다른 세가 얘기를 할 때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지만, 잠룡세가가 화제에 오르자 모두는 분노한 표정을 지었다. 그만큼 오룡세가 중에서 잠룡세가가 유난히 미움을 받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지금 중원의 정세에 대해 이해되실 것입니다. 예전의 성세를 찾을 때까지 여러 가지 어려운 점도 있고 희생도 따르겠지만, 거의 예상한 범주에 있기에 대처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 사료됩니다. 다만, 저희 계획에 없던 변수가 생겼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제갈우명에게 향했다. 공포의 마교까지 거론된 마당에 또 다른 변수라니……
제갈우명은 목봉으로 강서의 포양호를 가리켰다.
“이곳 포양호에 천호방과 천신문이라는 신생 문파가 개파를 했습니다.”
천호방과 천신문이라는 말을 듣자 여럿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을 들어 본 사람들이었다.
“노부가 듣기로 그 두 문파는 정파를 표방하고 있다고 하던데, 맞소이까?”
“현재까지 그들의 활동을 보면 정파가 맞습니다. 더욱이 천호방은 절강성에 총단을 열었습니다.”
천호방이 절강성에 총단을 열었다는 말은 처음 듣는지 잠시 웅성거렸다.
“제갈 대협, 방금 천호방이 강서성에서 개파했다고 하지 않았소?”
“처음 활동을 했다는 것이지, 개파식을 열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절강성이라는 것은 무슨 소리요?”
“천호방은 총단은 절강성에 세우고 도창은 분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일개 신생 문파가 총단과 분타를 동시에 열었다는 말이오?”
“그렇습니다.”
“좀 수상하기는 해도 신생 문파이고 정파를 표방한다면 우리 영웅회의 행보에 변수가 될 이유는 없지 않겠소?”
“문제는 그들이 영웅회의 권고를 정면으로 거역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정파를 표방하면서 영웅회의 말을 거역하다니! 혹시 사파나 마도의 위장 세력인 것은 아니오?”
“아직 확실치는 않습니다. 그런데 방주가 협객으로 유명한 천호무적검입니다. 거기다 신생 방파라고 얕볼 수 없는 것이, 이미 방도가 천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천호무적검에 대해서는 원체 시끄러워서 나도 알아봤는데 그자의 신분이 상당히 의아하더이다. 사문이나 출신이 어딘지는 알아보았소이까?”
산동 장가의 장우삼이 크게 물었다.
“그에 대해서 알려진 것은 이름밖에 없습니다.”
“소문대로 진짜 고수입니까, 아니면 과장된 소문입니까?”
“다각도로 들어온 정보를 분석한 결과, 소문대로 대단한 고수인 것은 확실합니다.”
“방도 천 명을 거느리려면 자금이 엄청나게 들어갈 텐데, 그 돈의 출처는 어디인지 알아보셨습니까?”
“모릅니다.”
“천호무적검이 진짜 정파인인지 아닌지를 떠나 영웅회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은 정파 전체를 능멸하는 행동이 아니겠소이까? 난 그를 불러들여 그의 정체를 알아봐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 그는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거물이 되어 있습니다. 우선 방의 크기가 만만치 않게 커졌고, 양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를 건드릴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주원장이 그를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문제란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주원장이 왜 그를 찾는단 말이오?”
모두는 놀란 듯 그를 주시했다.
“그와 호형호제하는 사이라고 했다는군요.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천호무적검을 핍박하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닙니다. 지금 상황이면 새로운 황조의 황제는 주원장이 될 것이 분명한데, 시작부터 황제와 척을 진다면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 버립니다. 저희들의 모든 계획은 새 황조와의 우의를 전제로 세운 것이니까요.”
모두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잠시 말을 잊었다.
정체도 모르는 청년이 갑자기 나타나 십대고수를 능가하는 명성을 얻더니, 순식간에 천 명이 넘는 방도를 지닌 방파의 방주가 되었다.
심지어 그의 뒤에 호형호제하는 황제가 있다면, 이미 그의 영향력은 영웅회의 회주인 천제무황과 비견할 수 있었다.
모두가 침묵하자 제갈우명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천호무적검으로 인해 저희들의 계획에 불확실성이 더 커졌습니다. 하여, 저는 여기 모인 분들께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무림맹을 창설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강한 힘을 가져야만 새롭게 재건할 무림에서 주도권을 갖고 모두를 압도할 수 있습니다.”
꽤 오랜 시간을 들인 설명과 보고였지만, 결국 그 결론은 빨리 무림맹을 창설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악불군의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키는 회합이기도 했다.
광동에서 시작된 작은 바람이 어느덧 장강 이남을 덮는 강풍이 되더니, 이제 중원 전체를 아우르는 돌풍으로 변해 버린 것이었다.
* * *
천신문의 정청.
백인막의 막주와 부막주가 차를 마시고 있었다.
잠시 후, 문이 열리며 악불군과 담수련이 귀도신영과 함께 안으로 들어섰다.
막주와 부막주는 악불군의 모습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백인막의 막주 방주님께 인사드립니다.”
“부막주 기정경, 방주님께 인사드립니다.”
일견하기에도 연배가 꽤 돼 보이는 그들이 너무 예를 차리자, 악불군은 다급히 포권을 하며 말했다.
“악불군입니다. 앉으십시오.”
“방주님께서 앉으셔야 저희들이 앉을 수 있습니다.”
“두 분께서는 백인막의 막주님과 부막주님이십니다. 지위나 연륜이 높고, 나이 역시 저보다 많으신데 어찌 제가 먼저 앉겠습니까?”
“모든 조직에는 지위에 따른 권위란 것이 있는 법입니다. 방주님께서 저희를 필요로 하신다면 방주님의 위엄을 보이시는 것이 맞습니다.”
“그래요. 자꾸 사양하는 것은 오히려 두 어르신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방주님께서 먼저 앉으세요.”
담수련이 슬쩍 찌르면서 말하자 악불군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나머지 셋도 따라 앉았다. 지금 이 자리는 천호방에 아주 중요한 자리였다.
그 탓에 외부인인 담수련은 최대한 악불군에게 예의를 갖추고 있었다.
“막주님께서 이렇게 제 초대를 받아 주시니 정말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미 퇴물이나 마찬가지인 저를 불러 주셨으니 감사는 제가 해야지요.”
“막주님과 부막주님께서는 금분세수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살수 집단은 이십 년 이상 버틴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무림인을 죽이는 순간 그들의 추격을 피할 길이 없으니까요. 결국 조직을 해체하고 숨거나, 버티다 그들에게 전멸을 당하거나 했습니다.”
“무림인을 건드리지 않으면 되지 않습니까?”
“개인적으로 자객질을 하는 경우에는 무림인을 건드리지 않아도 먹고 살 만합니다. 하지만 살수 조직은 그 정도로는 운영이 안 됩니다. 어찌 됐건 무림인 청부의 액수가 크니까요.”
“그래도 백인막은 중원 최고의 살수 집단으로 알려져 있고, 막주님은 살수의 제왕으로 불린다고 들었습니다.”
“원나라의 청부를 받아들이면서 재정적으로 아주 풍부했습니다. 그 덕에 무재가 있는 아이들을 구할 수 있었고, 먹는 음식도 충분히 먹여 신체도 강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살수 수련도 많은 교두들을 두고 체계적으로 시킬 수 있었기에 강한 살수들을 육성할 수 있었지요.”
“부역자로 낙인이 찍힐 만했군요?”
다른 사람이 이 말을 했다면 오해의 소지도 있었지만, 이미 담수련이 잠룡세가의 딸이라는 것을 아는 백인막주는 자신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듯 미소를 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저는 부역한 것이 아니라 살수 집단의 특성상 청부를 받았을 뿐이었지만, 변명할 여지는 없었습니다.”
“들어서 아시겠지만, 천호방에 들어온 이상 다시 백인막의 살수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런 결심을 하신 이유가 있으셨습니까?”
“백인막은 예전부터 지하로 숨거나 뿔뿔이 흩어져 위기를 벗어난 후 다시 조직을 구축하곤 했습니다. 하나, 그러기 위해서는 숨을 곳이 있거나 도와주는 세력이 있어야 가능한 법인데, 정세가 완전 바뀌면서 우리가 기댈 세력은 전무해졌습니다. 남은 방법은 깊은 산속에 숨는 것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지요. 저희야 이미 늙었지만 다른 아이들은 아직 젊은데 산속에서 땅이나 파면서 숨어 있으라고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오늘 오신 것은 제 제안을 받아들이시겠다는 의미이신가요?”
악불군은 어느 정도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지자 본론을 꺼냈다.
흑석영은 백인막주의 교련(敎鍊)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했다.
현 강호에는 소속을 찾지 못해 세상을 떠도는 낭인들이 수두룩했다. 낭인들은 대부분 기초적인 무공은 다 익힌 자들이었다. 즉, 수련만 잘 시키면 얼마든지 전력화가 가능하다는 의미였다.
천호방을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세력으로 키우고자 하는 담수련의 계획에 백인막주는 실로 필요한 인물이었다.
“받아 주신다면 견마지로를 다 하겠습니다.”
백인막주와 부막주가 머리를 숙이자, 악불군보다 담수련이 먼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용인지도 모르던 악불군이 봉황의 도움으로 용트림을 시작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