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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검지애-215화 (215/472)

<천검지애 215화>

215화. 움직이는 사람들(2)

백인막주와 부막주가 너무 쉽게 충성 맹세를 하자 악불군은 상당히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막주님과 부막주님이 계신다면 큰 힘이 되겠다는 생각에 제안했지만, 정말 이리 빨리 승낙해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셨습니까?

“막주님께서는 천하제일이라는 말까지 듣는 조직의 수장 아니십니까? 거기다 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배분도 높으시고 연배도 훨씬 많으신데, 저 같은 말학 후배의 밑으로 들어오라는 말에 화를 내면 어쩌나 걱정을 했으니까요.”

“살수 집단이 천하제일이라는 말을 듣는 것은 자랑이 아닙니다. 그리고 살수들에게는 배분 같은 것도 없습니다. 살행을 얼마나 많이 했고 어떤 사람을 죽였느냐가 고하를 가릴 뿐이지요. 뿐만 아니라 나이는 먼저 태어나면 많은 것일 뿐, 그것이 그릇의 크기라고 할 수는 없지요.”

“그렇다 해도 쉬운 결정은 아니셨을 텐데요?”

“흑석영이 누군가를 그렇게 칭찬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그 아이들을 진심으로 승복하게 만든 방주님을 믿기로 했습니다. 다만 제가 필요성이 없어지면 방을 떠나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안전이 확보되면 저는 다시 백인막을 살려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막주님께서 필요성이 없을 때가 아니라, 제가 막주님 마음에 안 들면 언제든지 떠나셔도 막지 않겠습니다. 다만 배신은 안 됩니다.”

“당연하지요. 저희가 신용 하나만은 아주 좋습니다.”

“드디어 천호방의 최고 간부진이 만들어진 것 같네요.”

“아가씨께서 반갑게 받아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보고 있던 담수련이 밝은 목소리로 말하자, 막주와 부막주는 담수련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비록 천호방 소속은 아니지만 악불군에게 그녀가 어떤 존재인지는 흑석영에게 이미 들은 그들이었다.

“그럼 오늘부터 막주님은 태상 호법으로 봉해지실 겁니다. 그래도 성함은 알아야 호칭이 될 것 같은데요.”

“추명혼이라고 합니다.”

“전 기정경입니다.”

“그럼 추 태상 호법님과 기 호법님이라고 하면 되겠네요. 그리고 여기 계신 분은 본 방의 수석 장로님이세요.”

“고철황이라고 합니다.”

귀도신영은 공손히 인사를 했다.

사실 귀도신영과 백인막주는 같은 자리에 있는 자체가 말이 안 될 정도로 차이가 컸다.

처음 그는 백인막주를 태상 호법으로 삼으면서 자신을 같은 반열인 수석 장로에 봉할 것이라는 악불군의 말을 듣고 펄쩍 뛰었다.

천호십영을 지휘하도록 그에게 권한을 준 것만으로도 그는 너무 감사했다. 도둑으로 도망만 다니던 그가 백인막의 특급 살수들을 수하로 부린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수석 장로라니…… 그는 너무 높다며 고사했다.

하지만 담수련은 그가 가진 능력과 대인 관계 그리고 천호방에 가장 필요한 정보 수집까지 누구보다도 중요하다며 그를 설득했다.

물론 거기에는 그의 진정어린 충성심도 한몫을 했다.

“본 방에 들어온 이상 무림에서의 지위나 명성은 다 잊으십시오. 태상 호법님과 수석 장로님은 본 방의 양대 축이 되어 천호방이 무림 제일방이 될 수 있도록 방도들을 이끌어 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본 방의 규율과 상벌 그리고 조직 체계를 집약한 방규 책입니다. 아직 호법과 장로단이 세 분뿐이니, 잘 의논하셔서 확실하게 방의 중심을 잡아 주십시오.”

그들은 악불군이 내려놓은 책을 보며 살짝 놀란 듯했다. 방을 조직해 본 경험이 전혀 없는 악불군이 이런 세세한 것까지 다 준비를 했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짝!

담수련이 박수를 치자 문이 열리며 추국이 나타났다.

“부르셨습니까?”

“세 어르신들의 집무실과 침실을 안내해 드려라.”

“예!”

“태상 호법님과 호법님 그리고 수석 장로님도 이곳까지 오시느라 피곤하실 테니 오늘은 이만 가서 쉬세요.”

귀도신영 고철황 역시 절강성에 호출을 받고는 쉬지 않고 달려온 터였다.

모두가 추국을 따라 방을 나가자 담수련은 악불군을 보며 약간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소군, 백인막주하고 대화가 너무 잘됐는데 별로 기쁜 것 같지가 않네?”

“백인막주의 무공이 살수로 보기에는 너무 강합니다. 만약 천호방에 들어온다면 대단히 큰 힘이 될 것 같더군요.”

“그가 한창 현역일 때 명호가 뭔지 알아? 백색악마래. 노린 자는 반드시 죽였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영입하자고 한 거고.”

“모든 것이 술술 풀려서 다행입니다.”

“소군, 내 말에 아직 답을 안 줬어.”

“가주님께서 제게 당부하신 계획과 너무 달라지고 있어서, 그게 좀 걱정입니다.”

“소군이 뭘 걱정하는지는 알겠는데, 계획은 상황에 따라 변하는 거야. 현 상황과 아버님의 계획이 맞지 않다고 생각하니까 바꾼 거고.”

“하지만 너무 일을 크게 벌이시는 것 같아서, 아가씨를 보호하는 데 문제가 생길까 걱정이 많이 됩니다.”

“혼자서 나를 언제까지 보호할 수 있을 것 같아? 이렇게 세력을 규합해야 나 스스로도 보호를 더 잘할 수 있는 거라고.”

“그건 저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천신문이나 소가주님의 세력을 키운다면 이해가 가는데, 천호방의 세력을 키우는 데 집중을 하시니까요. 전 아가씨나 소가주님께서 천호방주를 하시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안 돼. 오라버니나 나는 잠룡세가의 직계야. 우리가 천호방의 방주가 되면 그냥 잠룡세가의 잔당이 되기 때문에 정파의 집중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어.”

“예전 할아버지께서 제게 말씀하시기를, 인간을 변하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이 바로 욕심이라고 하셨습니다. 권력욕이니 물욕이니 하는 것도 다 욕심이지요.”

“그런데?”

“자꾸 저한테 힘이 생기면 저도 욕심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솔직히 난 소군이 욕심 좀 생겼으면 좋겠어.”

“욕심에는 좀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조금이라도 욕심이 생기는 순간 무한으로 커진다고요. 그리고 커진 욕심은 사람의 인성마저 집어삼키게 된다고도 하셨습니다.”

“소군, 변할 사람은 어떻게든 변해. 그리고 변하지 않는 사람은 어떤 극한 상황에서도 안 변하고. 난 어떤 일이 있어도 소군을 향한 내 마음 안 변할 자신 있어.”

“예?”

악불군은 눈이 크게 떴다. ‘소군을 향한 내 마음’이란 문장이 그를 두근거리게 한 때문이었다.

“으응? 내가 지금 뭐라고 했어?”

악불군의 반응이 크자 당황한 그녀는 놀라 반문했다.

“아가씨를 향한 제 마음은 절대 안 변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악불군은 슬쩍 그녀의 말을 바꿔버렸다.

“그건 소군 말이고, 내가 한…….”

말하던 담수련은 ‘아가씨를 향한 제 마음은 절대 안 변할 것’이라는 말의 의미를 느낀 듯 얼굴이 새빨개지며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보며 악불군은 그녀가 정말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창밖의 달빛이 살포시 들어와 그들을 비춰 주었다.

* * *

“너희들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냐? 아수라마종이 처리를 못 하고 본 전의 구역으로 들어와, 이번 기회에 아수라마종 놈의 기를 팍 꺾어 놓겠다고 했는데 아직도 이리 지지부진하면 다를 것이 뭐가 있다는 말이냐! 이러다가는 나까지 다른 전주들에게 조롱을 당하게 생겼다.”

혈마전의 전주인 혈마종은 상당히 심기가 불편했다.

“죄송합니다.”

“지금 죄송이라는 말밖에 할 것이 없느냐? 석혈뇌는 왜 안 나타나!”

그때 눈이 확 찢어진 노임 한 명이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전주님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 죄송! 그런 말 말고 성과를 가져오란 말이다!”

“방금 중요한 정보가 몇 개 들어왔습니다.”

“말해 봐라.”

군사인 석혈뇌의 정보라는 말에, 혈마종은 화를 억지로 삼키며 의자에 등을 댔다.

“지금 혈응을 찾기 위해 교단에서 나온 열 명의 혈응사자가 사방을 돌아다니며 호각을 불고 있지만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선 혈응에 대한 책임은 우리가 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확실하냐?”

“혈응사자가 찾아내야 우리가 잡아 교단으로 보내든지 할 수 있는데, 나타나는 것조차 안 하니 우리로서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교주님도 인정하실 것입니다.”

혈교의 교주는 혈응이 사라졌다는 말에 대단히 격노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그게 중요한 정보냐?”

“장보주의 단서를 찾는 데 성공했습니다.”

“어디 있는지 알아냈다는 말이냐?”

“훔친 놈은 신투로 불리는 귀도신영이라는 도둑놈입니다. 그런데 그놈을 도운 자가 있습니다.”

“누구냐?”

“천호무적검으로 불리는 악불군이란 자입니다.”

석혈뇌의 말에 혈마종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이유는?”

“강서로 넘어올 때 혈마사자가 그들의 추적에 나섰습니다. 그런데 전부 행방이 묘연해졌는데, 얼마 전 그들의 시신을 발견했습니다. 검시한 수하들 말에 의하면 살수 수법에 의해 피살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렇다면 천호무적검이 아니지 않느냐?”

“천호무적검이 천호방을 세웠는데, 방도들 중에 살수로 보이는 자들이 상당수 있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광동의 홍항에서 사라진 천호무적검의 동선을 파악했는데, 사자들이 죽은 지역을 그때 지나간 것으로 나왔습니다. 그런 우연이 연달아 일어나는 것은 흔치 않습니다.”

“결국 추정이라는 말이 아니냐?”

“아수라마전의 사자를 비롯해 상당한 고수들이 죽었습니다. 그들을 죽일 수 있는 고수 중 그곳을 지난 자는 천호무적검밖에 없었습니다. 확실하다고 판단됩니다.”

“그렇다면 장보주도 천호무적검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냐?”

“거기까지는 아직 알아내지 못했지만 정황상 그럴 확률은 다분합니다.”

“그럼 그놈을 제거하고 장보주를 찾아와야 하지 않겠느냐?”

“그게 좀…….”

“뜸 들이지 말고 빨리 얘기해라.”

“구천마성의 호법 셋을 혼자 제거했다는 소문이 사실이라면, 본 전의 최고수 다섯 명은 나가야 상대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지금 방을 만들어서 방도가 천 명에 달한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본 전의 모든 전력이 나가야 한다는 분석입니다.”

“아수마종 그 바보 같은 놈이 일을 아주 복잡하게 만들었군.”

애초에 도둑에게 장보주를 탈취당하지 않았다면 혈응이 나설 필요도 없었다. 천려일실의 실수로 인해 상황이 아주 어렵게 된 것이다.

심각한 표정으로 뭔가 생각하던 혈마종은 석혈귀에게 물었다.

“지금 천호무적검은 어디에 있느냐?”

“남창이나 도창 둘 중의 한 곳에 있을 것입니다. 거리가 그다지 멀지 않습니다.”

“구지혈선.”

“예!”

“광혈귀!”

“예!”

“너희 둘이 혈마대 이십 명을 이끌고 각기 남창과 도창으로 가라. 그놈 주위를 감시하면서 장보주의 행방을 찾아라. 우리의 정체가 들키면 안 되니 괜한 공격은 하지 마라.”

“존명!”

둘이 사라지자 혈마종은 다시 석혈귀를 보며 물었다.

“천호무적검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봐라. 분명 약점이 있을 게다. 그리고 교주님께 자세히 상황을 적어 올리도록 한다.”

“알겠습니다.”

악불군은 최대한 시비를 만들지 않으려 했지만, 본의 아니게 현 무림의 모든 최강의 세력들과 전부 엮이고 있었다.

* * *

백인막주를 태상 호법으로 들이면서 천호방은 생각지도 못했던 큰 선물을 받게 되었다.

타 세력을 압도하는 강한 무림 문파가 되기 위해서는 필요한 조건이 여럿 있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강력한 수장이었다.

구천마성이나 혈해사계 그리고 영웅회를 이끄는 천무성궁이 무림에서 가장 영향력이 크고 강한 문파가 된 것은 무황으로 불리는 수장들 덕분이었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충성스러우면서 강한 무공을 가진 수하들이었다.

하지만 정보망이 없는 문파는 아무리 강한 수장과 뛰어난 수하가 있다 해도 결국은 도태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한마디로 정보망은 문파의 눈과 귀였다.

그런데 백인막주가 들어오면서 천호방은 귀도신영의 정보망에 더해 전서구라는 가장 빠른 정보 전달 체계를 갖추게 된 것이었다.

전서구에 사용할 수 있는 비둘기는 어려서부터 특별 훈련을 시켜야 하기 때문에, 전서구를 확보하는 것은 상당히 오랜 시간과 자금이 필요했다.

더욱이 전달하는 와중에 매 같은 맹조들에게 잡아먹히거나 악천후에 떨어져 죽는 경우도 상당히 많아서, 지속적으로 전서구를 조달하는 것은 여간한 큰 문파도 힘들어 했다.

그래서 정파는 자체적으로 전서구를 훈련시킬 수 있는 개방에 막대한 기부를 하고 전서구를 조달 받아왔다.

상단들의 조달 창구는 하오문이었는데 가격이 엄청 비싸서 사대 상단 정도만이 가지고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백인막은 자체적으로 비둘기를 훈련시킬 뿐만 아니라, 살행의 성격상 빠른 전달이 필수인지라 상당히 많은 전서구를 보유하고 있었다.

천호방으로서는 진짜 날개를 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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