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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검지애-216화 (216/472)

<천검지애 216화>

216화. 변화(1)

장로가 된 기정경이 천호방에 들어와 가장 먼저 한 일이 전서 체계의 구축이었다. 이미 많은 경험이 있는 그는 백인막의 수하들을 이용하여 고작 보름 만에 체계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남창과 도창은 반 시진 안에 전달이 가능했고, 절절강조차 하루 정도면 상황을 알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소군.”

절강에서 날아온 전서를 흐뭇한 얼굴로 읽던 담수련이 뭔가 마음에 안 드는 듯 코끝을 찡그리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악불군을 불렀다.

“예.”

“아무래도 절강에 한번 다녀와야 할 것 같아.”

“무슨 일이 있습니까?”

“흑야신이 모은 잠룡세가 사람들이 말을 안 듣는 모양이야. 본가가 해체되기 전에 전력을 온전히 끌어들이려면 아무래도 그들을 단결하게 할 구심점이 필요해 보여.”

“지가 사람들도 아니고 본가 사람들까지 끌어들이는 데 아가씨께서 직접 나서는 것은 위험이 너무 크지 않을까요?”

“왜?”

“수석 장로 말이 정파로 보이는 자들이 본가를 엄중 감시하고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아가씨께서 직접 나선다면 정체가 발각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소가주님의 정체를 그들이 알고 있는데, 아가씨까지 밝혀지면 잠룡세가를 다시 세우려고 한다는 의심을 받을 것입니다.”

“아버님께서 중원 무림인들에게 미움을 많이 받고 있더라고. 오라버니한테 한 약속도 그들의 감시하에 조용히 지낸다는 유폐 형식을 원하는 것 같던데, 세력을 규합한다면 의심하기도 전에 우리를 모두 죽이려고 공격부터 할 거야.”

“그걸 아시면서 직접 나서신다는 것입니까?”

담수련은 걱정 어린 표정을 짓는 악불군을 똑바로 쳐다보며 반문했다.

“내가 왜 나서?”

“잠룡세가 사람들의 구심점이 될 수 있는 분은 아가씨와 소가주님밖에 없지 않을까……요?”

악불군은 담수련에게 또 다른 복안이 있다는 것을 직감하고는 의아한 듯 물었다.

“잠룡세가 사람들을 천호방에 끌어들이려는 거지, 잠룡세가를 규합하는 것이 아니잖아? 모든 일은 내가 아니라 소군이 할 거야.”

“제가요?”

“천호방도를 끌어들이는데 천호방주인 소군이 해야지, 천신문의 문주인 내가 어떻게 해?”

너무 당당히 말하는 담수련을 멍하니 보던 악불군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왜 웃어?”

“제가 웃었습니까?”

“지금 미소 짓고 있잖아?”

악불군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하는 담수련의 모습이 너무 귀여워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은 것이었다.

“웃으려고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 예뻐서 웃은 거 맞지?”

“그렇게 직설적으로 물으시면 제가 대답하기가 좀 곤란합니다.”

“그럼 우회적으로 물을게, 나를 보다 보니까 너무 예뻐서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나온 거지?”

“곤란한 질문으로는 별로 다를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웃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가 잠룡세가의 본가 사람들을 만나면 저보다 지위가 높았던 분들이 말을 듣겠습니까?”

“아버지를 배신한 자들은 분명 말을 안 들을 거야. 하지만 아직 아버지를 따르는 사람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따르게 되어 있어.”

“그럼 말을 안 듣는 사람들이 제가 누구인지 떠벌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그러겠지. 그래서 하는 말인데, 잠룡세가에 들어가서 대화를 나눠. 그럼 내가 죽일 자들을 알려 줄게.”

“……세가원들을 죽이라는 것입니까?”

“중원 무림을 배신하고 아버지 밑에 있으면서 호강을 하며 많은 죄를 저지른 자들이야. 그런데 아버지까지 배신했어. 그들은 소군이 안 죽여도 무림인들이 그냥 두지 않을 거야. 어차피 죽을 자들이라면 소군이 죽이는 것이 그들에게도 더 나을 거야. 그리고 소군은 부역자들을 없앤 중원의 협객이 되는 거지.”

“아가씨, 그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나도 마음이 아파. 어쨌든 어려서부터 내게 잘해 준 사람들도 많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잠룡세가의 다른 사람들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악불군의 행위를 모든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잠룡세가를 직접 처단하는 극한 처방을 하지 않는다면 그를 의심하는 자들이 계속 그를 견제하리란 것을 알고 있었다.

악불군은 곤혹스러운 듯 잠시 답을 못했다.

사소취대(捨小取大).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취하는 방법은, 병법을 떠나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상당히 많이 겪는 일이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알면서도 소탐대실(小貪大失)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아가씨, 설마 저보고 방을 세우라고 할 때부터 잠룡세가 분들을 죽일 생각을 하셨습니까?”

이번에는 담수련이 즉답을 하지 못했다.

변했다고는 하지만 그녀 역시 한 공간에서 같이 생활했던 사람들을 죽이라고 하는 것이 편할 리 없었다.

심지어 그들 중에는 그녀가 사부처럼 따르던 문창현도 있었다.

“소군, 내가 좀 이상해진 것 같아?”

“그건 절대 아닙니다. 아가씨께서 어떻게 변하시건 제겐 변함없이 아가씨입니다.”

‘나도 그래. 그래서 소군을 위해 최선의 방법을 택한 거야.’

그러나 담수련은 그 말을 입으로 낼 수는 없었다. 악불군의 성격상, 자신을 위해 만든 계획이라고 한다면 분명 반대를 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이상하지 않으면 그냥 따라줘.”

악불군은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흔들림과 표정에서 그녀 역시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는 것을 느끼자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아가씨 뜻대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절강에 간 김에 처리해야 할 세력들이 몇 개 있어.”

“말만 하시면 처리하겠습니다.”

이제 조직은 정비가 되었고 방도 역시 제법 모인 상태였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천하에 보여 주는 일만 남았다.

그동안 담수련을 보호하기 위해 수동적으로 싸워 왔다면, 이젠 적극적으로 무림의 일에 뛰어들게 된 것이었다.

* * *

화석산은 호북에서 호남의 경계에 있는 산이었다.

산을 넘을 수만 있다면 상당한 지름길이 될 수 있었지만, 사람의 발길을 용인하지 않으려는 듯 험한 기암괴석이 너무 많아 흔한 약초꾼조차 찾기 힘든 산이었다.

그 험준한 바위 사이를 가마까지 멘 두 명의 남자가 마치 새가 날 듯이 훌쩍훌쩍 뛰며 산을 넘고 있었다.

“멈춰라!”

그때 십여 명의 무인들이 가마를 막아섰다.

잠시 후, 싸울 준비를 한 듯 무기를 손에 든 무인들은 가마를 포위했다.

멈춰 선 가마꾼들은 포위를 하는데도 전혀 미동이 없었다.

“금령군주, 이미 너는 천라지망에 갇혀 있다. 죽기 싫다면 순순히 나와서 점혈을 받아라.”

지휘자인 듯한 중년무인은 가마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천라지망이라는 말로 지금 가마를 노리는 자들이 그들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완전 썩었군. 조금 무너졌다고 이렇게까지 믿을 만한 놈들이 없나?”

목소리만으로도 가슴을 뛰게 만드는 감미로운 목소리였다.

그녀는 아주 은밀하게 장강을 넘었다. 심지어 태양천에서도 극소수만이 알고 있었다.

그러나 넘어오자마자 이들이 길을 막아섰다는 것은 누군가 기밀을 흘렸다는 뜻이었다.

특별 제조된 가마인 듯 뚜껑이 열리듯 위가 열리며 한 여인의 모습이 나타났다. 진짜 금으로 만든 듯 반짝이는 금발과 새하얀 피부, 그리고 비췻빛 눈동자를 지닌 금잔화의 모습은 아름답다는 표현을 넘어 그 자체로 신비였다.

“내가 누군지 알면서 겨우 이 수로 내 앞을 막았더냐?”

“요사스러운 계집! 네가 그동안 끼친 해악에 피눈물을 흘린 사람들이 수만 명이다. 오늘 너를 잡아 그 원한을 갚을 것이다!”

“호호호호호~ 정말 나를 죽일 자신이 있느냐? 그렇다면 나를 한번 똑바로 주시해 봐라.”

“네년이 아직 상황 판단이 안 되는 모양이구나…….”

금잔화를 노려보며 소리치던 중년 무인의 말이 흐려졌다. 심지어 원한에 찬 듯 분노가 이글거리던 그의 눈동자까지 흐릿해지고 있었다.

“진 대협! 정신 차리십시오.”

뭔가 이상함을 느낀 한 무인이 크게 외쳤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저들을 죽여!”

금잔화의 명을 들은 중년 무인은 멍한 표정으로 몸을 돌리더니 같이 온 무인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자기편을 공격하는 무인이 그만이 아니었다. 금잔화와 눈이 마주친 자들은 모두 이지를 잃은 것이다.

그녀에게 마녀 중의 마녀라는 말을 듣게 만든 섭혼금령제혼술이었다.

섭혼금령제혼술은 사술이 아니었다. 내공이 최소한 이 갑자가 넘어야 펼칠 수 있는 극강의 심공이었다.

서로 싸우는 것을 본 금잔화는 다시 가마의 뚜껑을 닫더니 말했다.

“저따위 놈들로 나를 잡으려하다니 가소롭군. 가자!”

* * *

모두의 예상대로 장사성을 완전 몰락시킨 뒤, 주원장은 국호를 명이라 칭하는 새로운 황조를 강소성에 있는 남경에 세웠다.

이제 그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올리면 죽을 수도 있는 최고의 권력자가 된 것이다. 친화력이 좋았던 그는 상당히 많은 무림인들을 수하로 끌어들여 자신의 신변 보호와 정권을 수호하는 친위대인 금의위를 창설했다.

그런 그의 빠른 행보는 영웅회에게는 경각심을 주기에 충분했다. 정파는 물론 사파나 마도라도 그에게 충성을 하면 수하로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궁주님, 아무래도 주원장이 다른 마음을 먹은 것 같습니다.”

현기수사의 말에 천제무황은 슬쩍 그를 보며 물었다.

“주어작청야언서령(晝言雀聽夜言鼠聆)이라 했다. 말 조심하거라. 이젠 황상이라 칭해라.”

“죄송합니다.”

“그렇게 의심하는 이유가 있느냐?”

“황상이 창설한 금의위에는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인물들이 많이 참여했습니다. 우리가 모르게 그들을 포섭해 왔다는 것이지요. 더욱이 그 안에는 사파와 마도인까지 있습니다. 성분을 가리지 않고 고수란 고수는 충성만 맹세하면 모두 규합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무림을 견제하기 위해서라고 전 생각합니다.”

“어느 황실을 막론하고 모든 황실은 무림을 견제해 왔다. 황상이 권력을 잡았으니 자신의 권력을 위협할 세력을 경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금의위가 새로운 어찰단으로 변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원나라는 중원 무림을 완전히 배제한 상황에서 어찰단을 만들었다. 하지만 현 황상의 금의위는 대부분이 중원 무림인들이다. 특히 지금 금의위의 조직도를 보면 상부에 정파 무림인들이 포진해 있다. 네가 걱정하는 그런 일은 없을 게다.”

“전 주군의 책사로서, 조금이라도 위험 요인이 보인다면 의심을 해야 합니다. 황상께서 자꾸 악불군을 찾는 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으셨습니까?”

“천호무적검 말이냐?”

“예, 그동안은 전쟁과 개국으로 바빴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악불군을 찾을 것이 분명합니다. 지금 이 중요한 시기에 세력도 없는 무림인을 찾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천호무적검이라?”

천제무황의 표정에 변화가 생기는 것을 본 현기수사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는 다시 이어 나갔다.

“황상이 호형호제한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예전 반군의 수장일 때와 지금은 그 무게가 다릅니다. 이젠 악불군에 대적하면 황제의 아우와 싸우는 것이 됩니다. 하나, 천호무적검은 무림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이 이제 겨우 일 년이 되어 갑니다. 황상께서는 그동안 계속 전쟁 중이었고 영웅회에서 호위를 해 왔습니다. 그와 호형호제할 시간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럼 황상이 일부러 그 아이와 친한 척한다는 것이냐?”

“그는 정파로 알려졌지만 그의 출신 신분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주군이나 다른 무림 세력과는 달리 황상이 조종하기 쉬운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욱이 그의 명성은 십대고수를 뛰어넘고 있습니다. 약관의 나이에 그런 명성을 가진 경우는 무림 역사상 찾기 힘들 정도입니다.”

잠시 생각하던 천제무황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게 의심쩍다면 한번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새로운 황조가 시작되었다고는 하지만 하북 위로 원나라가 여전히 건재하고 태양천과 어사대도 마지막 발악을 할 것이니, 시끄럽지 않게 알아보아라.”

“알겠습니다.”

“무림맹이 곧 결성될 텐데, 천학이는 왜 환궁을 하지 않는 것이냐?”

“소궁주님께서는 금령군주가 나타났다는 말에 그녀를 쫓고 있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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