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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검지애-225화 (225/472)

<천검지애 225화>

225화. 시작(2)

이제 무림맹 절강 책임자가 된 백룡신권 황보준백은 초조한 듯 탁자를 주먹을 톡톡 치고 있었다.

“황보 대협, 소명섭입니다.”

소명섭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황보준백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어서 들어오세요.”

소명섭은 안으로 들어서자 포권을 하며 말했다.

“다녀왔습니다.”

“조사는 어떻게 됐습니까?”

“북망산에 올라 시신들을 태운 곳을 살폈는데, 제가 얼굴을 아는 방조위와 국대광은 확실히 죽은 것이 분명합니다.”

“문창현은 발견했습니까?”

“문창현의 얼굴을 아는 자들이 없었지만, 그의 신물이라고 알려진 청학선을 든 자의 시신은 보았습니다. 하지만 불길에 너무 타서 얼굴을 알아보기는 어려웠습니다.”

“시신의 총수는 어느 정도 됩니까?”

“대략 사백 구 정도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파악했던 잠룡세가 총단에 있던 자들의 수와는 얼추 비슷하군요?”

“예, 지금 조사된 것만을 따지면 잠룡세가가 천호방에 멸문한 것은 분명합니다. 다만…….”

“다만 뭡니까?”

“담무룡으로 추정되는 시신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이미 행방불명되었다고 알려져 있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시신을 찾지 못한 이상, 맹에서는 그에 대한 추적을 멈추지는 않을 것입니다.”

“부역자들의 상징 같은 자이니, 그가 확실하게 죽었다는 증거는 찾아야겠지요.”

“천호방에서 이렇게 전격적으로 일을 벌일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이렇게 되면 무림맹에서 절강성에 대한 기득권을 주장하기는 어려워진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로서는 이제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맹에 상황을 자세히 보고하는 수밖에요.”

황보준백과 소명섭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져 갔다. 그들의 잘못이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절강을 책임지고 있던 그들로서는 마치 자신들 때문에 일이 어긋난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 * *

무림맹이 위치한 군산의 승룡도.

거대한 전각들이 아직도 공사 중인 가운데, 가장 먼저 건축이 끝난 유난히 우뚝 솟은 전각이 있었다.

무림맹을 다스리는 중추인 정천각이었다.

원로원부터 시작하여 장로원, 각 당 그리고 군사부까지 모두 이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제갈 군사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뭐가 말입니까?”

“천호방 말입니다.”

무림맹의 군사인 만진선생 제갈우명은 부군사로 임명된 천무성궁의 현기수사의 말에 의아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부군사께서는 천호방을 경계하시는 것 같습니다.”

중원 제일의 지자라는 말을 듣는 그답게, 질문 한마디에 그의 심중을 그대로 눈치채고 있었다.

“지금 절강을 그대로 천호방에 빼앗겼습니다. 이게 우연한 일일까요?”

“부군사께서는 천호방이 계획적으로 그런 행동을 했다고 보십니까?”

“여러 정황상 의심스러운 점이 꽤 있습니다.”

“저도 천호무적검의 등장에 여러 의문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행적 자체는 생각 외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숨어서 행동한 적이 없으니까요. 우선 그는 어찰단과 오룡세가의 추적을 받았습니다. 여러 번의 습격을 받았고, 심지어 그들이 금자 만 냥이나 되는 현상금까지 걸었던 것도 사실이라고 판명이 됐습니다.”

“그건 저도 압니다. 하지만 혈혈단신으로 천상신녀의 보호만 하던 자가 갑자기 방을 세우고, 단숨에 그 방이 잠룡세가를 멸문시킬 정도로 커졌습니다. 이게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만약 이 모든 일이 계획에 따른 것이라면, 그는 우리보다 더 뛰어난 책사라는 얘기가 됩니다. 전 아무리 궁리를 해도 그 짧은 시간에 명성을 높이고 방을 세우고 한 성의 패자로 등극하는 계획이 떠오르지 않더군요.”

제갈우명의 말에 현기수사는 할 말이 없는지 잠시 입을 닫았다.

“부군사, 그는 어찌 됐건 정파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실지로 그의 세력권에 든 지역을 찾아 양민들이 이사를 갈 정도로 안정을 찾고 있습니다. 절강이 그렇게 된 것은 저도 뜻밖이긴 하지만, 이를 문제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잠룡세가를 공격하지 못한 것은 아직 사방에 많은 적들을 상대하기 위해 전력손실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대신 해 줬으니, 오히려 우리가 고마워해야 할 일이라고 봅니다.”

제갈우명의 생각은 사실 올바른 것이었다. 현기수사 역시 악불군에 대한 편견이 없었다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다른 생각이 있었다.

“군사님께서 이미 아시고 계실지도 모르지만, 제게 좀 의아한 제보가 들어왔었습니다.”

“뭐지요?”

“천상신녀가 담무룡의 여식일지도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그 보고는 들었습니다. 그러나 증거가 없더군요. 낭설 수준이었지요. 우선 담무룡의 여식을 실제로 본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잠룡세가를 멸문시킨 세력의 방주를 잠룡세가와 연결시킨다면, 무림맹이 같은 정파를 모함하여 제거하려고 한다는 음모론까지 퍼질 수 있습니다.”

잠시 말을 멈춘 제갈우명은 조심스럽게 한마디 더했다.

“황상이 그와 호형호제했다는 말까지 하며 그를 찾고 있습니다. 만약 그가 위험한 자라 해도, 황상까지 납득할 만한 증좌를 찾지 못한다면 그와 척을 지지 않는 것이 현명한 생각일 것입니다.”

‘어설픈 모함으로는 그를 꺾기는 틀렸군. 다른 방법을 생각해 봐야겠어.’

현기수사는 악불군이 이미 함부로 건드리기 힘들 정도로 거물이 되어 버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말을 들어 보니 군사님 생각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의문점이 너무 많아 좀 조심하자는 생각으로 말한 것뿐입니다.”

“한 산에 두 마리의 호랑이가 같이 있는 경우는 없지요. 그러나 산에 있는 곰이나 늑대 같은 다른 적부터 모조리 없앤 후에 싸워야지, 그렇지 않을 경우 양패구상한 두 마리의 호랑이는 늑대에게 잡아먹힐 수도 있습니다.”

의미심장한 말에 현기수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 * *

근래 천호방은 간부회의를 거의 매일 열고 있었다. 더욱이 오늘은 문창현까지 합세하면서 그 열기는 더욱 뜨거웠다.

“절강의 돈줄은 주산군도를 끼고 있는 봉화와 바다까지 강이 연결된 이곳 항주 두 곳입니다. 항주는 이미 우리가 장악했으니 예전처럼 그들의 장사를 원활하게 해 주면서 보호비를 받으면 됩니다만, 봉화 쪽은 조금 복잡합니다.”

그렇게 아끼던 수염까지 다 깎고 옷도 학창의를 벗고 상인 복식을 한 문창현은, 아는 사람이 와도 몰라볼 정도로 외모가 달라져 있었다.

“전 최대한 피를 보지 않고 평화롭게 일을 처리하고 싶습니다. 그러니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가장 좋은 방법을 말해 주십시오.”

악불군의 말에 문창현은 고개를 살짝 숙이더니 다시 말을 이어 갔다.

“아시고 계시겠지만 주산군도에는 유명한 것이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해적들이고 또 하나는 보타검각입니다. 보타검각은 어찰단의 공격으로 지금은 거의 봉문하다시피 했지만, 제가 알기로는 여전히 주산군도에서는 영향력이 강합니다. 문제는 보타검각은 힘으로는 절대 굴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문 군사, 보타검각이면 여인 문파 아닌가요?”

“예, 남해성모궁과 더불어 가장 유명한 여인 문파입니다.”

“거긴 저와 방주님이 직접 갈게요. 무엇을 해야 할지만 상세히 가르쳐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남는 것은 해적들입니다.”

“해적들은 아주 잔인하다고 들었는데, 소탕할 수 있는 방법은 없나요?”

“예전부터 해적들 소탕은 수시로 했습니다. 하지만 소탕을 하러 가면 멀리 도망을 쳤다가 소탕군이 돌아가면 다시 나타나기 때문에 근절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잠룡세가에서는 해적들에게 돈을 수시로 주면서 달래는 정책을 썼습니다.”

해적에게 돈을 주고 육지로 필요한 물품을 사러 왔을 때 모른 척 봐주는 방식은 산동항이나 홍항도 마찬가지였다. 그 잔인하고 돈에 관한 한 절대 타협이 없다고 소문난 구천마성조차 해적들을 없애지 못하고 달랬을 정도이니, 그들의 근절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었다.

“안 됩니다.”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 단호하게 말하는 악불군에게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가주님께서도 해적들과는 타협이 없다며 없애려고 십 년 가까이 노력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결국 포기하시고 그들을 달래는 방법을 취하셨습니다.”

“그럼 저도 십 년 정도 노력을 해 본 후에, 그래도 안 되면 그때 포기하겠습니다.”

“그들에게 돈을 준다 해도 상선의 안전만 확보가 된다면 이익이 더 큽니다.”

“이건 이익의 문제가 아닙니다. 해적들의 패악은 저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다른 지역은 몰라도 이곳은 천호방이 장악했습니다. 그렇다면 절강에는 해적을 용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요. 방주님의 뜻이니까 해적은 없애자고요.”

악불군이 결정한 이상, 그것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담수련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녀까지 동조해 버리자, 이미 적응이 끝난 고철황이 즉시 찬성하며 말했다.

“도둑은 물건이나 훔치지만 해적 놈들은 너무 나쁜 짓을 많이 하지요. 그럼 해적을 제거할 방법을 찾아봐야겠습니다.”

“문 군사님.”

“예, 문주님.”

“그동안 해적 소탕이 계속 실패한 이유와, 어떻게 해야 소탕을 할 수 있을지를 분석해서 가져오세요.”

“알겠습니다.”

“방주님, 항주 주변을 감시하는 자들은 어떻게 할까요?”

문창현의 보고가 끝나자 기정경이 물었다.

“우선은 그냥 모른 척하십시오. 천호방의 실체를 무림맹에 알려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통로가 그들이니까요. 그리고 절강 내에서는 무공을 알건 모르건 양민들에게 행패를 부리는 자들은 가차 없이 징치하세요.”

“예.”

“추 호법님.”

“예!”

“쓸 만한 자들이 있습니까?”

“지금 수준에 맞춰서 수련을 시키고 있습니다. 한두 달 안에 무력 집단 두 개 정도는 조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받아 준 이상 그들의 생명도 우리의 책임입니다. 어딜 가든 쉽게 죽지 않을 정도로 강하게 수련을 시켜 주십시오. 만약 견디지 못하는 자들이 있으면 억지로 잡지 말고, 한 달 봉급을 줘서 내보내시고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상 당주님.”

“예!”

“아직도 방도가 되겠다고 사람들이 오고 있다고요?”

“예, 하루에 오십 명이 넘는 자들이 계속 오고 있습니다.”

“시험에 통과해서 방도가 되는 사람들은 몇 명이나 됩니까?”

“무공 시험을 통과하는 자들은 매일 열 명은 넘습니다. 하지만 사파나 마도인 출신들과 분란을 조장할 것 같은 자들을 솎아내면, 정식으로 방도가 되는 자들은 많을 때는 다섯, 적을 때는 한 명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럼 내일부터 시험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하십시오.”

“어떤 시험을 할까요?”

악불군은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아가씨께서 만드신 것입니다. 거기에 적혀 있는 질문을 던져서 답을 반 이상 맞추지 못하면 떨어뜨리십시오. 그리고 이미 방도로 받아들인 사람들도 다시 한 번 그 시험을 보게 하십시오.”

“이건 무엇을 시험하는 것입니까?”

종이를 한 번 읽은 고철황은 이해가 안 가는 듯 조심스럽게 물었다.

“인성을 조사하는 것입니다. 반 이상 맞추는 자들은 현재 정의감이 없다 해도 수련을 시키고 교육을 하면 개선의 여지가 있지만, 반도 못 맞추는 자들은 개선의 여지가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자들은 방도로 들여 봐야 방의 명예만 실추시킬 것입니다.”

“질문만으로 인성을 알아볼 수 있다니, 아가씨의 능력이 정말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완전한 것은 아니에요. 우선은 사람들을 동정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는 자들을 찾을 수는 있을 거예요. 아무리 정파를 표방한다 해도 한두 명의 방도가 나쁜 짓을 하면 이름에 먹칠을 하는 것은 순식간이니까요.”

담수련의 말은 모두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정파에서도 인성까지 확인한 후에 제자를 뽑는 경우는 들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모두는 담수련이 무림맹을 속이기 위해 정파를 자처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정파로서 정의로운 행동을 보이려고 한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사람이 사람 같지 않다면 짐승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무림인이라고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싸움이 나면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본의 아니게 죄를 지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본 방의 방도들은 사람으로서 취해야 할 최소한의 양심과 성품은 갖추었으면 합니다.”

악불군까지 나서서 부언하자, 모두는 진정한 협객의 표상을 본 듯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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