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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검지애-227화 (227/472)

<천검지애 227화>

227화. 움직이는 세력들(2)

주원장의 이름을 실수인 척 입 밖으로 낸 것은 담수련의 의견을 따른 것이었다.

이후의 반응을 보고 주원장이 악불군에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였다.

“제가 무의식적으로 큰 실수를 한 것 같습니다. 제가 사과할 터이니, 장령께서는 화를 거두어 주십시오.”

“악 방주님께서 사과까지 하셨네. 오 장령! 당장 검을 집어넣게!”

악불군이 정중하게 사과하며 포권을 하자, 유백온이 오선두를 보며 크게 말했다.

“나으리, 이자의 무례가 하늘에 닿았습니다. 그런데 어찌……?”

“어허! 황상께서 황위에 오르시기 전 생명을 구해 주신 분이네. 오늘 행동에 대해 황상께서 들으시면 크게 진노하실 것이야!”

유백온의 질책을 받자 오선두는 감히 더 버티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더니 검을 집어넣었다.

악불군은 다시 포권을 하더니 유백온을 보며 말했다.

“제가 배운 것이 모자라 큰 실수를 한 것 같습니다. 나으리는 전에 황상을 제가 뵈었을 때 잠깐 본 것 같습니다.”

“맞소이다. 그때 너무 빨리 헤어졌다고 황상께서 계속 아쉬워하셨소이다.”

“일개 무림인에 불과한 저입니다. 그 정도 일로 이렇게 찾아오시다니, 저로서는 정말 감개무량할 뿐입니다.”

“황상께서 악 방주를 한번 보기를 원하시오.”

“저를요? 황상께서 일개 무부에 불과한 저를 왜 보려고 하시는 건지 모르겠군요.”

“악 방주께서 황상을 구해 주신 것에 깊은 고마움을 가지고 계신 것 같소이다.”

“무림의 협객으로 어려운 사람을 보면 돕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황상께 마음에 두시지 말라고 전해 주십시오.”

“지금 황명을 거부하는 것이오!”

오선덕이 또다시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장령께서는 굉장히 다혈질이신 것 같군요? 전쟁 중에는 그런 성격이 황상께 신임을 받는 데 도움이 됐을지 모르지만, 평화 시기에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습니다. 행동하시거나 말씀하기 전에 숨을 한 번 쉬십시오. 그러면 도움이 되실 겁니다.”

“뭐, 뭐!”

악불군의 말에 오선두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자, 유백온이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며 말렸다.

그는 지금의 상황에 상당히 놀라고 있었다. 그 역시 오선두가 지금은 주원장의 신임을 받고 있기에 무사히 지나가고 있지만, 언젠가 그런 성정이 필시 화를 부를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 장령, 악 방주께서 오 장령의 성격을 파악하시고 아주 중요한 조언을 해 주셨으니 고맙게 생각하고 언제나 염두에 두고 있게.”

“태사령 나으리!”

오선두는 유백온이 자신의 충심을 몰라주는 것이 억울한지 급히 불렀지만, 유백온은 못 들은 척 악불군에게 자신의 말을 이어 갔다.

“악 방주, 무림인으로서 황상의 신임을 받는다면 여러 가지로 도움이 많이 될 게요.”

악불군은 잠시 고심하는 척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새로운 시대가 개막했는데 황상의 뜻을 계속 거절하는 것은 나라의 신하로서 그다지 좋은 일은 아니지요. 그럼 언제 제가 가면 되겠습니까?”

“빠르면 빠를수록 좋겠다고 생각하오.”

“그럼 오늘 출발하시지요. 반 시진 정도면 준비를 끝낼 수 있을 것입니다.”

* * *

악불군은 빈청에서 일어난 일과 대화를 세세하게 설명했다. 심지어 유백온과 오선두가 말할 때의 표정과 말투까지 빠짐이 없었다.

한 번 보면 즉시 다 외워 버리는 악불군의 기상천외한 암기 능력이 한껏 발휘된 것이다.

악불군의 말을 들은 담수련은 회심의 미소를 지며 말했다.

“다행히 내 예상이 맞은 것 같네.”

“좋은 일일까요?”

“새로운 황조가 세워지면 가장 먼저 하는 것이 황실과 나라의 안정을 취하는 거야. 원래 새로운 황조의 탄생이 혼란에서 시작되는 것이거든.”

“…….”

“왜 답을 안 해?”

“아가씨 말씀이 워낙 지당해서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런 거야? 호호~”

악불군의 아부에 기분이 좋아진 듯 그녀는 다시 말을 이어 갔다.

“안정을 가장 저해하는 요인이 뭔지 알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역시 불안한 치안이 가장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맞아. 치안이 불안하면 민심을 절대 안정시킬 수 없어. 그러나 아직 나라의 기틀이 안 잡혔는데 어떻게 치안을 잡겠어. 그래서 모든 황조는 시작할 때 무림 세력과의 연계를 꾀한다고 들었어. 아마 이번 황상도 어느 세력과 손을 잡는 것이 가장 좋을까 생각했을 거야.”

“그럼 저보다는 영웅회나 구파일방 중에서 고르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그렇지. 그런데 영웅회에서 너무 욕심을 부렸어.”

“욕심이오?”

“응, 이런 시기에 무림맹을 창설한 것은 황제를 불안하게 할 수 있어. 자신을 죽일 수 있는 강력한 존재가 힘을 합치고 있다는 것은 황실로서는 절대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니까. 무림맹을 창설하지 않았다면 그중 몇몇 문파를 불러 도움을 요청했을 거야. 하지만 무림맹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가는 그 힘이 너무 비대해질 수 있거든.”

“한마디로 권력이 나눠지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군요?”

“황상은 소군에게 그들을 견제하는 역할을 맡기려고 할 거야.”

“방을 세운 지 이제 겨우 한 달 남짓밖에 안 됐는데, 뭘 보고 그럴까요?”

“소군을 보고 그러지. 황제가 될 정도면 보통 사람은 분명 아니야. 최소한 사람 보는 눈만은 누구보다도 탁월하다고 봐야지. 황상은 소군을 한 번 보고 믿을 수 있다고 판단했을 확률이 높아. 거기다 소군의 명성이 일 년도 안 되어 십대고수를 능가하게 된 것도 결심을 굳히는데 한몫했을 거야.”

“아가씨는 그런 생각을 어떻게 하신 겁니까?”

“왜? 틀린 것 같아?”

“제가 들어 보니까 충분히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아가씨는 그런 정치는 전혀 몰랐지 않습니까?”

“내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잠룡세가 돌아가는 것을 누구보다는 정확하게 꿰고 있었거든. 다만 너무 잔인하고 음모가 횡행해서 모른 척하고 있었을 뿐이야.”

“그럼 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담수련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는 악불군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렸다.

담수련은 생각할 때마다 눈동자를 위로 올리며 고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악불군에게는 너무 귀여웠던 것이다.

“소군.”

“예.”

“소군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저야…… 당연히 아가씨를 가장 확실하게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 좋습니다.”

“그런 거 말고.”

“그럼 어떤 걸 말씀하십니까?”

“나 없이 소군만 있다면 어떤 결정을 할 것 같으냐는 말이야?”

“아가씨 없는 결정은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

“아이, 참! 그러니까 만약이잖아, 만약! 만약에 내가 없다면 어떤 결정을 할 것 같아?”

“만약이건 뭐건 아가씨 없는 결정은 있을 수도 없고, 생각해 본 적도 없습니다.”

‘아이 씨! 이럴 때 보면 진짜 답답하다니까……. 만약이 무슨 뜻인지 모르나?’

“좋아. 그럼 내가 있다 치고, 어떤 결정을 할 거야?”

“방금 말씀드렸습니다. 아가씨께 가장 안전한 방법을 택할 겁니다.”

“그만두자. 가면 무조건 황상의 뜻을 따르겠다고 해.”

“알겠습니다.”

“그럼, 나도 출발 준비해야 하니까 소군도 가서 준비해.”

“예.”

악불군이 나가자 담수련은 어이가 없는지 의자에 등을 댔다. 하지만 곧 그녀의 얼굴에는 행복한 웃음이 번져 갔다.

“맞아, 나도 만약은 없어. 소군이 없는 나를 생각할 수가 없거든.”

답답하니 뭐니 말은 그렇게 해도, 오로지 자신만 생각해 주는 악불군의 존재가 그녀에게는 행복의 원천임은 분명했다.

* * *

담수련은 백설은 놔두고 가기로 했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고 했다.

권력자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누군가 백설을 탐낸다면…….

그녀가 아는 악불군의 성격은 황제라 해도 분명 거절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것은 뜻하지 않은 파국이 될 수도 있었다.

남들이라면 그냥 넘어갈 소소한 면이었지만, 그녀의 머리는 놓치지 않고 있었다.

담수련의 마차에는 사화가 같이 동승했고, 네 명의 호법들이 마차를 호위하기로 했다.

오선두는 마차를 모는 흑석영을 보자 검미를 찌푸렸다. 초절정 고수인 그조차 이긴다고 장담하기 어려울 정도로 흑석영의 무공이 보통이 아니라는 사실을 직감한 것이다.

‘방주는 소문과 달리 허약해 보이는데 수하는 대단한 고수라? 혹시 소문이 진짜인가?’

그는 고개를 갸웃하며 유백온과 같이 말을 몰고 있는 악불군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그가 악불군에게 큰소리친 것은, 악불군이 겉보기에 그리 강해 보이지 않았던 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마차에 탄 여협이 천신문 문주라고 소개하던데, 혹시 그 유명한 천상신녀 아니오?”

유백온은 뒤를 따라오는 마차를 슬쩍 보며 물었다.

“나으리 같으신 분께서 천상신녀는 어떻게 아십니까?”

“천호무적검이 보호하는 여협이라고 소문이 자자한데 어떻게 모르겠소? 황상께서도 아주 현명한 눈을 가지고 있다고 하셨는데, 그 말이 전혀 오히려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더구려.”

유백온은 마차에 타기 전 잠깐 인사를 나누었을 뿐이었고 면사까지 썼는데도 이미 볼 것은 다 본 것 같았다.

“제게는 생명의 은인 같은 분이시지요.”

유백온의 악불군의 말이 마음에 드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은혜를 아는 자들의 특징이 충성심도 뛰어나다는 거지요.”

“그렇게 보아 주시니 감사합니다.”

“황상께서 악 방주에 대해 조사를 해 보라고 명을 내리셨소.”

“그랬습니까?”

“노부가 조사한 바는 완벽할 정도로 협의를 중시하던데, 요즘 같은 시기에 무림인이 양민들을 그렇게 위하는 이유가 뭔지 알 수 있겠소?”

“무림인들은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 힘을 가진 자는 그 힘에 걸맞은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책임과 의무를 말하는지 말해 주시겠소?”

“제가 가진 힘을 잘못 사용하면 많은 사람들을 괴롭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잘만 사용한다면 그들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겠지요. 전 그 힘을 잘 사용하는 것이 책임이고, 또한 힘이 없는 자들을 보호해 주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유백온의 얼굴에 감탄의 표정이 나타났다. 악불군의 말은 학사인 그가 추구하는 이상과도 비슷했다. 물론 거짓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악불군의 말엔, 이상하게도 믿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노부가 많은 무림인들을 만났지만 대부분은 자신들의 힘과 자부심 등을 자랑하는데, 악 방주는 매우 특이한 것 같소이다.”

“전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았고, 지금도 평범합니다. 전 상식적인 행동이 평범해지는 세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악 방주.”

“예.”

“황상께서 악 방주께 아주 중요한 일을 맡기실 게요.”

“중요한 일이라면 어떤 일을 말씀하시는지요?”

“황상께서 하실 말을 노부가 먼저 말하는 것은 불충이니 자세히는 말하기가 어렵구려. 하지만 황상의 뜻을 따른다면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소. 그러면 권력도 따라오겠지만, 대신 많은 위험도 감수해야 할 거요.”

“무림인이 된 이상, 위험은 이미 함께하고 있습니다.”

“악 방주는 어느 정도의 무공을 지녔다고 스스로 자신에 대해 평가할 수 있겠소?”

“천하에는 수많은 기인이사가 있습니다. 그들을 모두 만나지 않은 이상 제가 어느 정도라고 말한다면 그 자체가 오만함이지요. 다만 어떤 적을 만나더라도 최선을 다해 싸울 것이라는 말은 할 수 있습니다.”

겸손한 대답이었지만 유백온은 악불군의 기백을 느낄 수 있었다.

“황상께서는 모든 면에서 영웅의 기질을 가지고 있소이다. 하지만 자신의 권위를 해치는 행위는 아주 질색을 하시니, 그것만 조심하면 아주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눌 수 있을게요.”

“조언 감사합니다.”

겨우 하루를 동행했을 뿐이었지만 유백온은 악불군이 아주 마음에 드는 듯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주운장이 그와 호형호제 소리를 꺼냈을 때 질색을 했었다. 그는 정파인들 중에서도 인성에 문제가 있는 위선자를 많이 봤기 때문이었다.

만약 악불군이 그런 위선자 중에 한 명이라면 무공까지 강한데 권력까지 쥐여 줄 경우 크나큰 폐해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가 본 악불군은 예의가 발랐고 겸손했다. 무엇보다 생각이 아주 바르고 곧았다.

‘어쩌면 황상의 생각대로 무림을 빨리 안정시키는 데 최적의 인물일지도 모르겠구나…….’

악불군과 주원장의 만남이 무림에 어떤 바람이 될지는 아직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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