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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검지애-229화 (229/472)

<천검지애 229화>

229화. 격동하는 천하(2)

“우리를 감시하는 자들이 있지?”

객잔의 방에 들어선 담수련은 기다렸다는 듯이 물었다.

“그걸 아가씨께서 어떻게 아셨습니까?”

“내 눈은 절대 못 속인다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니다. 건너편 주루에 감시하는 자들이 몇 명 있더군요.”

“어디 같았어? 무림맹?”

“풍기는 기가 마도인이었습니다.”

“이상하네?”

“뭐가 말입니까?”

“구천마성이 바보가 아닌 이상, 지금 우리를 감시할 이유가 없어서.”

“그들로서는 우리가 눈엣가시일 텐데요?”

“구천마성에는 굉장히 머리가 좋은 사람이 있거든. 문 군사님께서 내게 말해 주신 것이 사실이라면, 그는 지금 상황에서 절대로 우리를 감시하는 우매한 짓을 벌일 자가 아니야.”

“구천마성에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있습니까?”

“문 군사님께서 예전에 내게 말해 주신 적이 있어. 처음에 압도적인 무력을 가졌던 원나라의 군부와 태양천이 중원 무림의 정기를 말살시킨다는 목적을 가지고 정파를 완전 소멸시키려고 했대. 당시 정파는 거의 궤멸 직전까지 가며 지하로 숨었는데 만진선생이라는 걸출한 지자가 나타나면서 영웅회로 재탄생했다고 했어.”

“만진선생이면 지금 무림맹의 군사 아닙니까?”

“맞아. 문 군사 말로는, 자신이 반딧불이라면 만진선생은 보름달로 비유해야 맞을 정도로 뛰어난 책사라고 했어.”

“문 군사님도 대단하신 분인데 그렇게 비유를 하셨다니, 만진선생이란 분이 정말 굉장한 모양이군요?”

“그런데 그 만진선생과 맞먹는 두뇌를 가진 사람이 바로 구천마성에 있어. 바로 만통광심이야.”

고개를 끄덕이던 악불군은 뭔가 생각이 난 듯 물었다.

“그렇게 대단한 분들의 생각을 읽는 아가씨야말로 그들을 능가한다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놀라운 순발력으로 담수련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악불군이었다.

“뭐~ 호호!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호호~”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활짝 미소를 지은 담수련의 입에서 연달아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참! 지금 그 얘기가 아니잖아. 그럼 우리를 감시하는 자들은 누구일까?”

웃던 담수련은 스스로 너무 좋아했다고 생각했는지, 민망해하며 얼굴이 발개진 채 되물었다.

“황상의 친위대인 금의위가 객잔을 빙 둘러싼 채로 경계하고 있습니다. 감시는 하겠지만 감히 기습은 못할 겁니다.”

“내가 의아한 것이 바로 그거야. 어떤 세력이기에 이렇게 많은 금의위가 호위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감시할 정도로 배짱이 좋을까? 소군은 궁금하지 않아?”

“그래서 알아보려고 합니다.”

“되도록 죽이지는 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아가씨, 이거 목에 꼭 걸고 다니십시오.”

“호각?”

“예, 그것을 불면 적설이 곧장 아가씨께 날아올 것입니다.”

악불군은 그동안 쉬지 않고 백설과 적설을 훈련시켜 왔다.

“소군은?”

“저야 당연히 달려오지요.”

“그럼 됐고.”

담수련은 만족한 미소를 지며 호각을 목에 걸었다.

몸을 일으킨 악불군은 사화를 보며 말했다.

“금의위가 경계를 하고 있다 하여 아가씨의 경호를 허술히 하면 안 된다.”

“걱정 마세요. 저희들이 교대로 불침번을 설 것입니다.”

추국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악불군은 담수련에게 포권을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소군을 여기서 자게 하면 말들이 많겠지?’

담수련은 잠자는 시간에 떨어져 있는 것조차 그저 아쉬울 뿐이었다.

* * *

밖으로 나온 악불군은 주위를 한 번 둘러보더니 한 곳을 향해 전음을 보냈다.

[흑 호법, 아가씨 방 주위를 완벽하게 보호하세요.]

악불군이 백인막의 살수들에게 담수련의 호위를 맡긴다는 것은 그만큼 그들을 신뢰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예!]

[그리고, 사 호법은 저를 따라오십시오.]

그러자 사효조의 모습이 스르르 나타나더니 악불군의 뒤에 섰다.

악불군이 향한 곳은 객잔의 내방과 외방을 연결하는 정원이었다.

“어딜 가시는 겁니까?”

악불군과 사효조가 정원에 도착하자, 내방으로 향하는 길목을 지키고 있던 금의위 대장인 양은천이 앞을 막으며 물었다.

“뭐하는 거요? 이분이 천호방의 방주님이신 것을 모르는 거요?”

사효조는 악불군의 앞을 막아서더니 양은천에게 기분 나쁜 듯 따졌다.

“압니다. 하지만 오 장령님께서 내방의 출입을 아침 출발때까지 금하라는 명을 내리셨습니다.”

“장령의 명이 방주님께도 적용이 된다고 생각하시오?”

사효조가 계속 막는다면 무기라도 뽑을 기세로 말하자, 양은천은 곤란한 표정을 짓다가는 몸을 돌리며 말했다.

“태사령 나으리께서는 해시에는 잠자리에 드십니다. 그 전에 돌아오셔야 내방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악불군은 고맙다는 듯 인사를 하고는 외방 쪽으로 걸어갔다.

정원을 지난 악불군과 사효조가 객잔에 딸린 주루로 들어가자 양은천은 수하를 한 명 부르더니 말했다.

“장령 나으리께 악 방주가 주루로 갔다고 보고해라.”

“알겠습니다.”

수하가 안으로 뛰어 사라지자, 양은천은 악불군이 사라진 주루 쪽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흠을 찾아내라고 하셨는데, 도대체가 흠 잡을 곳이 없으니…….’

그는 정파 무림 출신으로 일찌감치 주원장에게 충성 맹세를 하고 금의위에 들어가 대장까지 된 인물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무림맹에게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그의 사부와 사형제들이 모두 무림맹 소속이었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그들이 한 부탁도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악불군에게서 조금이라도 흠이 있거나 위선적인 모습이 보이는지를 알아봐 달라는 것이었다.

일전에 주원장은 금의위가 완벽한 친위대가 되기 위해서는 최고한 이십 년 이상이 필요하다 말한 적이 있었다.

지금 그의 모습을 보니, 그런 얘기를 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 보였다.

* * *

주루 안은 생각 외로 한산했다. 금의위가 경계를 서는 장소에 평범한 사람들이 들어와 식사한다는 것은 사실 여간한 배짱없이는 불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방주님, 이곳에 왜 오신 겁니까?]

[우리를 감시하는 자들이 건너편 주루에 있습니다. 그런데 비슷한 기를 풍기는 자들이 이곳에 있더군요. 어떤 자들이기에 이렇게 배짱이 두둑한지 한번 알아보려고 합니다.]

[방주님, 제가 알아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사 호법이요?]

[이런 일에 황제의 부름으로 움직이고 계시는 방주님께서 직접 나서는 것은 모양새가 좀 그렇다고 봅니다.]

[그럼 싸우려고 하는 것은 아니니 출신만 물어보십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주루 이 층으로 올라온 악불군은 가까운 자리에 앉더니 창가에 앉아 있는 남녀를 보며 사효조에게 눈짓을 했다.

[혈성, 저자가 왜 이쪽으로 오지? 들켰나?]

계단의 입구를 향해 앉아 있던 혈국은, 뜻하지 않게 나타난 악불군과 사효조가 자신들을 향해 걸어오자 긴장한 표정으로 전음을 보냈다.

[들킬 리 없다.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니 표정 관리나 잘해라.]

혈성의 말에 혈국은 금방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혈성에게 물었다.

“여기 음식은 꽤 괜찮지 않아요?”

“경치도 좋군.”

그들은 여행을 다니고 있는 남녀처럼 대화를 시작했다. 하지만 사효조는 둘의 대화를 못 들은 것처럼 그들의 식탁 옆에 섰다.

“무슨 일이지요?”

사효조를 향해 시선을 돌린 혈성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전 천호방의 사효조라고 하오.”

사효조가 포권을 하며 자신의 소개를 하자, 혈성은 몸을 일으키며 포권으로 받았다.

“전 진성이라고 합니다. 천호방과 저희는 일면식도 없는데 무슨 일로 이 늦은 시간에 찾아오신 겁니까?”

“정말 모르겠소?”

“저희는 강호 유람을 하는 한가한 남매일 뿐입니다.”

“그럼 진 소협은 어느 문파 출신이시오?”

하오체를 사용하고 있었지만 그 안에 담긴 어조에선 강압이 느껴졌다.

혈성은 비릿한 살소를 그리며 반문했다.

“제가 그것을 말해 줄 이유가 있습니까?”

“건너편 주루에 있는 자들과 함께 우리를 계속 감시하더군요. 그 정도면 말해 줄 이유가 되지 않겠소?”

여유만만하던 혈성과 혈국의 표정이 처음으로 미묘하게 변했다. 건너편 주루에 있는 혈 공자와 혈낭자까지 안다는 것은, 이들의 능력이 자신의 예상을 넘어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었다.

“천호방과 우리는 아무런 연관도 없는데 왜 감시를 한다는 말입니까? 그리고 건너편 주루에 누가 있다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되는군요?”

“아무리 시치미를 떼도, 방주님께 걸린 이상 우릴 속일 생각은 마시오.”

“방주? 설마 천호무적검 악 대협을 말하시는 겁니까?”

“그렇소.”

“천하에 명성이 자자한 천호무적검께서 우리 같은 무명소졸을 모함할 리는 없을 텐데, 왜 그런 말을 하셨는지 모르겠군요?”

“딴 소리 말고 우선 내가 물은 말에나 답하시오.”

사효조의 말이 살짝 퉁명스러워지자 혈국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존경하는 분을 만나서 제 오라버니께서 감격하신 것 같은데, 좀 너무 하시는 것 같네요?”

“어디서 온 누군지만 밝히면 되는데 왜 자꾸 딴말만 하는 거요?”

“천호방은 정파라고 하던데 그냥 가만히 앉아 야경을 구경하는 우리를 이렇게 겁박을 하다니, 남들이 보면 사파로 알겠소이다.”

혈성은 지금 상황이 짜증이 나는지 자신도 모르게 기를 올리고 말았다.

그러자 악불군이 몸을 일으켰다. 그가 원했던 것을 알아냈기 때문이었다.

“누군지 알겠군. 사 호법은 뒤로 물러서시오.”

악불군의 말에 사효조는 즉시 악불군의 뒤로 물러섰다.

이미 악불군이 누구인지 알고 있던 혈성과 혈국이었지만 그다지 두려워하는 기색은 없었다. 그들 역시 악불군의 몸에서 느껴지는 내공의 수위에 상대를 만만하게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나름대로 피하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쉽게 피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계속 당신들이 누굴까 생각을 했습니다.”

“무슨 말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악불군은 품에서 작은 구슬 하나를 꺼냈다.

“여러분들이 노리는 것이 이거 아닙니까?”

[혈성, 저거 장보주 아니에요?]

혈국은 악불군이 꺼낸 구슬을 보자 눈빛이 변했다. 만약 장보주를 교주에게 가져갈 수 있다면 크게 칭찬을 받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혈성은 처음 본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저희가 보기보다는 상당한 부자입니다. 그런 값어치 없는 구슬 따위를 뭐하러 탐하겠습니까?”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이렇게 극구 부인을 하니 더 이상 말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내일 아침부터 또다시 내 눈에 띄면 다섯 분은 모두 죽습니다.”

“눈에 띄면 죽는다라……. 하하하! 너무 광오하신 말씀 같군요?”

“광오한지 아닌지는 내일 보시면 될 겁니다. 혹시 겁이 나서 돌아가시게 되면 이건 제가 가지고 있다고 전해 주십시오.”

“저희는 알…….”

혈성은 다시 한번 부인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악불군은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몸을 돌려 버렸다.

악불군의 그런 행동은 혈성과 혈국에게 대단히 치욕적인 행동이었다.

“저, 저놈이…….”

혈성의 눈에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무림인들은 지금처럼 일 장도 안 되는 거리에서는 절대로 자신의 등을 상대에게 보이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대응하기에 너무 짧은 거리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악불군은 마치 자신들이 누구인지 아는 것처럼 말을 하고는 그대로 몸을 돌린 것이다.

“혈성, 장보주가 분명한데 왜 그냥 둔 거야?”

“자신이 없이 저런 행동을 할 수 있다고 보는 거냐, 너는? 거기다 객잔 전체를 금의위가 둘러싸고 있어. 우선 저놈이 장보주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낸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다. 아직 죽일 기회는 있을 것이니 좀 참아.”

“그런데 내일부터 우리가 보인다면 죽이겠다고 엄포를 놨는데 어떡할 거야?”

“우리가 누구냐? 혈교를 창시한 분들의 직계인 진골들이다. 그따위 협박 따위에 포기한다면 말이 안 되지.”

“그럼 어떡할 건데?”

“이제 감시가 아니라 저놈을 죽이고 장보주를 가지고 돌아간다. 그리고 가는 길에 저놈이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계집도 끌고 간다.”

“교주님께서는 감시만 하면서 저놈에 대한 정보만 수집해 오라고 했는데, 그래도 될까?”

“우리가 이미 들켰어. 보이면 죽인다는 협박까지 들었는데, 수동적으로 감시만 하는 게 가능할 것 같냐?”

말을 마친 혈성은 창밖을 향해 입을 꼼지락댔다. 건너편에 있는 일행들에게 전음을 보낸 것이다.

“뭐라고 했어?”

“우선 모이라고 했다. 상황이 달라졌으니 계획도 바꿔야겠지.”

혈성은 지금 자신의 행동을 악불군이 일부러 유도했다는 사실을 전혀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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