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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검지애-230화 (230/472)

<천검지애 230화>

230화. 만남(1)

주루를 나오자 사효조는 의아한 듯 물었다.

“방주님, 저자들 몸에서 아주 기분 나쁜 기가 느껴졌습니다.”

“압니다.”

“그런데 그냥 놔두십니까? 명령만 내리시면 저희가 당장 제거하겠습니다.”

“우리의 희생 없이 제거하기 어려운 자들입니다.”

“저자들이 누군지 이미 알고 계십니까?”

사효조는 악불군이 뭔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한 듯 물었다.

“수석 장로를 추적했던 자들입니다. 광동 흥항에서 처음 만났는데, 나타나는 자들의 무공이 하나같이 초절정 이상의 무인들이었습니다. 마 당주님께서 말하기를, 백인막에서도 저자들을 추적한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사효조는 잠시 생각하더니 뭔가 생각난 듯 대답했다.

“살행을 하던 중에 의문의 조직이 있다는 보고가 들어온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자들인 것 같군요?”

“생각 외로 현 무림의 정세가 상당히 복잡한 것 같더군요.”

“하면 저자들에게 노린다는 구슬을 보여 주신 것은 너무 위험한 것이 아닐까요?”

“수석 장로님께서 구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노릴 수도 있어서, 저를 노리라고 일부러 보여 준 겁니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저들의 정체를 밝혀낼 생각입니다.”

“…….”

지금 사방이 다 적이라고 해도 될 상황에서 또 다른 적을 만드는 것은 너무 무리하는 게 아닌가 묻고 싶었지만, 사효조는 감히 입 밖으로 내지는 못했다.

방주가 이미 판단해 행한 일을 함부로 입 밖에 내는 것은 불충으로 비쳐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악불군의 사효조의 생각을 짐작한 듯 부언했다.

“적을 하나하나 각개격파하는 것이 위험부담도 줄이면서 확실하게 상대할 수 있는 장점도 있긴 하지요. 하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그에 따른 양민들의 피해도 커질 겁니다. 전 가능하다면 속전속결로 모든 일을 처리하고자 합니다.”

“알겠습니다.”

“내방으로는 저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사 호법께서는 총단에 연락해서, 천호십영 중 미행에 능하신 분 열 분만 제게 보내 달라고 하십시오.”

명이 떨어지자 사효조는 허리를 숙이더니 스르르 사라졌다.

‘이상할 정도로 저자들의 마기가 거슬린단 말이야…….’

악불군이 혈교에 자신을 미끼로 내놓을 정도로 신경을 쓰는 이유가 있었다.

구천마성을 비롯해 그는 여러 유형의 마기를 뿜어 내는 자들을 만나 왔다. 그런데 유독 혈교의 인물들이 풍기는 마기에 그의 기가 부정적으로 반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 *

항주에서 남경까지의 거리는 천천히 움직여도 오 일 이면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였다. 그런데 그사이 무림에는 대참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심각한 표정으로 보고서를 읽고 있는 제갈우명의 집무실로 부군사 현기수사가 다급하게 들어왔다.

“앉으세요.”

제갈우명의 말에 현기수사는 자리에 앉으며 의아한 듯 물었다.

“우문 총책까지 계신 것을 보니 확실히 큰일이 벌어진 모양이군요?”

영웅회 시절 정말 많은 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제갈우명은 이렇게 급히 그를 부른 적은 없었다.

더욱이 여간해서는 밖으로 나오지 않는 군사전의 책임자인 우문상일까지 와 있다는 사실은, 대단히 중대한 사건이 벌어졌음을 방증하는 것이었다.

제갈우명이 눈짓을 하자, 우문상일은 여러 장의 보고서를 현기수사에게 건냈다.

“오늘 새벽부터 계속 올라오고 있습니다. 제가 여기에 있는 동안 더 올라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문상일의 말을 들으며 보고서를 넘기던 현기수사의 얼굴이 급격하게 굳어졌다.

“부군사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갈우명의 질문에 현기수사는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 즉각 답했다.

“드디어 태양천의 역습이 시작된 것 같습니다.”

“역시 같은 생각이군요. 우문 총책도 예전 원나라가 중원을 공격하기 전 무림에서 벌어졌던 수많은 의문의 피살 사건과 그 전개 방식이 똑같다고 분석했더군요.”

“삼 일 동안 피살된 무림인이 삼십여 명, 거의 하루에 열 명씩 죽었습니다. 이대로 놔둔다면 간신히 재건을 시작한 군소 문파는 씨가 마를 겁니다. 거기다 이자들은 정파만 제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정파의 전력을 소진시켜 사파와의 전쟁에서 양패구상을 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현기수사의 말에 제갈우명은 ‘역시!’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부군사께서 맡아서 해결해 보시겠습니까?”

“제가 말입니까?”

“태양천의 역습이라고 소문이 난다면 천하는 다시 혼란에 빠집니다. 거기다 다시 문파를 재건하려던 정파인들은 포기할 수도 있고요. 그렇게 되면 그 자리는 자연스럽게 사파나 마도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비밀리에 그들의 흉계를 막아 내야 하는데, 그 적임자는 부군사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 제갈우명이 맡은 일은 너무 많았다. 구파일방과 팔대세가 중 재건이 가능한 문파들을 지원하고 그들이 최대한 빨리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돕는 일만 해도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었다.

무력 집단을 다시 정비하여 부역자들을 추적하고 북진하려는 구천마성과 동진하려는 혈해사계를 막는 임무도 중요했다. 더욱이 아직도 버티고 있는 오룡세가 중 세 곳을 빨리 없애는 것도 중요한 사안이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맡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지금 부군사께서 가용할 수 있는 전력은 정의단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정의단은 영웅회에서 키운 정예 무력 집단으로 지금은 무림맹 소속이 되어 있었다. 절대 약한 전력은 아니었지만, 상대가 태양천이라면 충분한 전력이라고 할 수 없었다.

“천무성궁의 무인들을 동원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다면 확실하게 처리할 수 있습니다.”

천제무황이 맹주가 되면서 일착으로 무림맹 소속이 된 천무성궁은 무림맹의 허락하에서만 무인들이 움직일 수 있었다. 아직 자신들의 입지가 완전하지 않은 구파일방을 비롯한 다른 정파들에게 천무성궁은 조금의 욕심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천제무황이 스스로 족쇄를 채운 것이었다.

물론 다른 정파들도 무림맹의 명에 따라 무인들을 움직여야 한다는 하나의 본보기이기도 했다.

“제가 그것은 장로회에 상정해 허락을 받아 내겠습니다.”

‘이것은 하늘이 준 기회야. 태양천 놈들이 기특해 보이기는 처음이군.’

순간 목례를 하는 현기수사의 얼굴에는 회심의 미소가 나타났다. 이번 일을 깔끔하게 처리한다면 천무성궁은 물론 그의 위상까지 올라갈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천무성궁의 고수들이 움직일 수 있는 명분을 얻었다는 것이었다.

* * *

[방주님, 그자들이 계속 따라오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방주 호법 중 한 명인 최욱걸의 보고에 악불군은 잠시 생각하더니 물었다.

[느껴지는 것이 없는데……. 어느 정도 거리에서 따라오고 있습니까?]

[오십 장 밖입니다.]

[오십 장 밖이면 내 눈에 띄는 것은 아니니, 쫓아가 죽일 필요는 없을 것 같군요.]

[명령만 내리시면 방주님께서 쫓아가실 필요 없이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최 호법.]

[예.]

[방도들 한 명의 희생도 없이 그들을 모두 죽일 자신 있으십니까?]

뜻밖의 질문에 최욱철은 잠시 뜸을 들이다 답을 보냈다.

[그들의 무공이 절대 저희들 보다 아래가 아니라는 느낌은 받았습니다. 아무런 피해 없이 제거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현재 본 방의 정예들을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일로 잃는다면 본 방에게는 엄청난 손해겠지요?]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할 일은 아니니, 사과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방의 간부로서 방도들 한 명 한 명의 목숨이 자신의 목숨 같다는 생각으로 최대한 피해가 없는 결정을 내리세요. 저는 임무 완수보다는 방도들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두 죽더라도 반드시 임무는 수행해야 했고 만약 실패하고 살아 돌아간다면 죽음에 준하는 벌을 받는 살수 생활이 모든 것이었던 그에게, 악불군의 말은 대단히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그런 악불군의 성정은 그들을 점점 진심으로 따르는 충성심을 갖도록 만들고 있었다.

[……명심하겠습니다.]

* * *

“은근히 복잡해지겠는데!”

흑석영에게서 전달받은 종이를 읽던 담수련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안 좋은 일이라도 생겼습니까?”

매향이 궁금한 듯 물었다.

“왜 흥미 있어?”

“아가씨 표정이 굳어지셨어요. 그럴 때면 언제나 심각한 사건이 일어나니까요.”

흑란이 살짝 끼어들었다.

“너희들 이런 얘기 싫어했잖아?”

“요새 자주 들으니까 그런 사건들도 흥미가 생기더라고요.”

“솔직히 아가씨 세가에 계실 때와는 너무 많이 달라지셨어요. 세가에 계실 때는 말도 없으셨지만, 무림 얘기는 잔인하다고 아예 들으시려고도 안 하셨는데……”

추국까지 대화에 끼자, 담수련은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물었다.

“너희들에게도 내가 많이 달라진 게 보여?”

“많이 정도가 아니라 천지개벽을 한 것만큼 달라지셨어요.”

“그래서 보기 추해?”

“세상에, 아가씨께서 추하시면 저희들은 괴물이겠네요? 솔직히 세가에 계실 때는 너무 조신하시고 혈색도 창백하셔서 너무 청초해 보이셨는데, 지금은 굉장히 건강미가 넘치세요. 같은 여자인 저희도 이따금 아가씨 보면 넋이 나갈 정도인걸요.”

“그럼 예쁘다는 얘기네?”

“당연하지요. 악 방주님께서야 원래 아가씨라면 무조건 떠받드시는 분이었지만, 요즘에는 그냥 떠받드는 것만이 아니라 예뻐하시는 것이 느껴질 정도예요.”

담수련은 뭔가 흐믓한 듯 배시시 웃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보이든 전혀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악불군에게 예뻐 보인다는 말은 기분이 좋았다.

“좋아! 얘기해 줄게. 지금 중원의 꽤 이름 난 정파인들이 수십 명이나 암살을 당했어.”

“그럼 무림맹에 비상이 걸리겠네요?”

사화는 모두 걱정스러운 눈으로 물었다.

지금 그녀들에게 가장 두려운 세력은 무림맹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그들의 정체가 알려지는 순간, 공적으로 몰려 죽을 때까지 쫓겨 다닐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무림맹에 비상이 걸리면 괜히 우리에게까지 불똥이 튀는 것은 아니겠지요?”

“지금 같은 시국에 무림맹은 비상을 걸 수가 없어.”

“왜요?”

“지금 새로운 황조가 세워진 지 이제 겨우 한 달 남짓 지났어. 그런데 무림에 비상이 걸리면 황실에서 좋아할까? 지금 황실의 눈치를 가장 많이 보고 있는 곳이 무림맹이야. 그리고 많이 죽기는 했지만 실질적으로 영향력이 큰 정파인은 거의 없어.”

“그렇다 해도 정파인이 수십 명이나 죽었으면 그냥 보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잖아요?”

“아마 은밀하게 암살자들을 추적할 거야. 그리고 그것은 우리에게는 나쁠 것이 없어. 그만큼 우리에게 신경을 쓸 여력이 없어지는 거니까.”

“암살자는 누구일까요?”

“그럴 수 있는 세력은 서너 군데 돼. 그중 가장 유력한 곳을 꼽는다면 구천마성과 태양천이라고 할 수 있지. 난 태양천의 짓이라고 생각해.”

“왜요?”

“원나라는 이미 힘을 잃었어. 하지만 그대로 물러날 그들도 아니지.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반전을 노려야 하는데, 요인 암살만큼 확실한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은 없으니까.”

“그럼 황실 사람들을 제거해야지, 왜 정파인들만 골라서 죽일까요?”

“황상을 암살하려면 이미 예전에 했어야 해. 이미 황조가 세워졌어. 황제의 주위에는 금의위에다 십기군 거기다 구문제독부까지 이미 조직이 정비되었기 때문에, 태양천에 아무리 고수가 많다 해도 황제의 암살은 불가능해졌다고 봐야 해. 그렇다면 무림맹의 핵심 인물들을 제거해야 하는데, 태양천도 이미 예전의 태양천이 아니거든. 그만한 고수들이 없어.”

사화는 멍한 표정으로 담수련을 보더니 감탄한 듯 물었다.

“아가씨는 그 보고서만 읽고도 그런게 보이세요?”

“그동안의 상황을 보면 대충 짐작이 가. 태양천에 무림맹의 최고수들을 죽일 정도로 강한 고수가 많았다면, 반란군의 수장들은 이미 죽었을 거야. 그런데 살아서 황제까지 되었으니, 그런 고수들이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이잖아.”

“듣고 보니 그러네요.”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태양천이 벌이는 일들이 소군에게는 오히려 득이 될 거라는 점이야.”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건을 주원장도 보고를 받았을 것이었다. 천하의 안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을 주원장으로서는 무림이 다시 시끄러워지는 것을 껄끄러워할 것이 뻔했다.

그렇다고 암살자들이 정말 태양천이라면 그냥 놔두라고 하기도 어려웠다. 그럼 태양천의 준동도 막고, 무림에 전쟁이 일어나는 것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담수련은 주원장이 악불군에게서 그 답을 찾으려 들도록 분위기를 조성할 계획을 머리에 그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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