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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검지애-232화 (232/472)

<천검지애 232화>

232화. 수면 아래에서(1)

[저거 너무 강한 거 아니야? 어떻게 이기어검을 마치 손에 쥔 것처럼 조종할 수가 있는 거지? 혈기, 너와 나는 혈성을 돕자. 저러다 죽겠다.]

혈성이 당할 것 같자, 담수련을 납치할 준비를 하고 있던 혈국은 당황한 듯 전음을 보냈다.

[혈루와 혈채, 둘이 할 수 있겠냐?]

혈기도 상황이 예상과 다르게 흐르자 급히 나머지 둘에게 전음을 보냈다.

[걱정 마라. 호위 무사 따위는 백 명이 와도 우리를 못 막는다.]

[그럼 납치한 후 약속 장소에서 만나자.]

전음을 마친 혈기와 혈국은 몸을 날렸다. 혈국이 향한 곳은 혈성이 있는 곳으로, 도착한 그녀는 먼저 혈성을 공격하는 악불군의 검을 후려쳤다.

혈기는 악불군에게 직접적인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이기어검은 내공의 소모가 너무 심해, 고수들 사이에서는 전시용 검술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더구나 상대의 수가 많을 때 사용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했는데, 검을 조종하느라 시전자를 향한 직접적인 공격에 취약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실력 차이가 많이 나지 않을 경우의 얘기였다. 그들은 악불군의 진실한 무공 수위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천호무적검은 분명 검사였다. 이기어검을 사용한다는 것은 검에 대해 깨달음이 없이는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의 목을 뚫은 것은 악불군의 손가락에서 튀어나온 황금색의 금기(金氣)이었다.

배교라고 하면 무림인들은 사술만을 펼치는 사악한 자들의 집단으로 알고 있지만, 아무리 그들이라 할지라도 사술만으로 천하의 반을 장악할 수는 없었다.

당연하게도 배교비전에는 천고의 절기라고 할 수 있는 무공들이 꽤 있었다. 지금 악불군이 펼친 것은 배교 최고 지법인 만겁사령지였다.

원래 만겁사령지는 검은색의 묵기가 튀어나와야 했다. 하나 악불군은 소림내경일지선의 무공 원리를 이용해, 운용하는 내공을 소림의 것으로 바꾸었다.

누가 보아도 만겁사령지와는 완전히 다른 무공으로 재탄생한 것이었다.

최악의 사기(邪氣)를 사용하는 사파의 무공을 정파의 내공을 사용하는 정파의 무공으로 바꾼다는 것은, 악불군이 진정으로 무공 종사의 능력을 가지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일초지적, 그것도 지법에 당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듯 부들부들 몸을 떨던 혈기는 피를 꾸역꾸역 토해 내더니 앞으로 고꾸라졌다.

혈기의 공격으로 당연히 검의 움직임이 달라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던 혈성과 혈국은, 오히려 더욱 빨라지고 강력해진 천륭검의 공격에 방어는커녕 피하기도 힘들어하고 있었다.

혈기를 제거한 악불군의 자세가 몇 번 변하는가 싶더니, 결국 혈성과 혈국은 천륭검에 의해 가슴이 뚫리며 죽고 말았다.

악불군이 갑자기 그들을 빨리 제거한 것은 담수련을 향한 걱정 때문이었다. 검을 회수한 악불군의 몸이 사라지는가 싶더니 담수련의 마차 지붕에 나타났다.

혈루와 혈채는 우습게 보았던 흑석영을 비롯한 호위 무사들에게 고전하고 있었다. 일대일로 싸운다면 유리했을지도 몰랐지만, 이대일로 상대하기에 특급 살수는 너무 강했던 것이다.

악불군은 싸움의 양상이 유리하자 끼어들지 않고 팔짱을 낀 채 구경을 하기 시작했다.

‘무, 무서운 자다……. 황상께서 태사령 나으리까지 보내 저자를 모셔 오라고 한 이유가 있었어.’

오선두는 일개 무림인이라고 얕보던 악불군의 진정한 무공을 보자, 그제야 자신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행동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그제야 악불군이 그에게 했던 말들이 그를 진짜 걱정해서 해 준 말이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 * *

악불군이 있다는 강서의 남창으로 향하던 금잔화는, 호남과 강서의 경계에 있는 야산의 관묘에서 태양금령단 단주 누상치의 보고를 받고 있었다.

그녀는 너무 눈에 띄는 금발을 가발로 가렸고, 눈의 색깔도 검은색으로 바꾼 상태였다.

“벌써, 명성이 그 정도로 높아졌다고?”

“예, 이미 십대고수의 명성을 넘어섰다고 판단됩니다.”

“몸값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군. 이러다가 나까지 줘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예?”

“아니야. 그럼 지금 악불군과 담수련은 어디 있어? 남창? 도창?”

“그게, 둘 다 아닙니다. 지금 절강에 있습니다.”

“절강? 거긴 왜?”

“천호방이라는 방파를 세웠는데…….”

“그건 이미 알고 있는 얘기잖아?”

“죄송합니다. 악불군이 천호방의 총단을 절강에 세웠습니다.”

“호호호~ 아주 재미있네? 아예 자기의 집으로 모른 척 돌아간다? 등하불명이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잠룡세가가 버티고 있는 이상 쉽지는 않을 텐데?”

“잠룡세가를 멸문시켰습니다.”

순간 금잔화의 눈이 커졌다. 그녀가 놀라는 경우는 전혀 짐작도 못 한 일이 벌어졌음을 의미했다.

물론 천호방의 총단을 절강에 세운 것도 그녀의 예상 밖이긴 했다. 그러나 듣는 순간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놀라지 않았다. 하지만 잠룡세가의 멸문은 그녀로서는 절대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진짜 멸문이야, 아니면 멸문시킨 척한 거야?”

“잠룡세가에 있던 저희 쪽 사람들이 모두 죽었습니다. 대충 사백여 구의 시신을 버렸다고 하니, 거의 다 죽인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악불군의 무공이 아무리 강해졌다 해도, 혼자 그 많은 사람들을 상대할 수는 없을 텐데?”

“천호방의 방도 수가 이미 천 명을 넘었다고 합니다.”

“호랑이 정도로 생각했는데, 용이었네…….”

금잔화는 자신이 악불군을 상당히 높게 쳐주고 있지는 않은가 하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들은 것이 모두 진실이라면, 오히려 너무 낮게 생각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문창현의 시신은 발견했다더냐?”

“거기까지는 저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영웅회에서 시신들을 전부 확인하는 것을 보았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문창현은 영웅회에서 담무룡 다음으로 증오해 마지않는 자이니 분명 그의 시신도 확인했을 것입니다.”

금잔화는 손을 머리에 대고는 심각하게 고민에 빠졌다.

‘도대체 누구지? 지금 악불군에게 일어난 사건들이 모두 누군가의 계획에 의한 것이라면, 나를 능가하는 책사가 옆에 있다는 말인데…….’

금잔화는 악불군을 만나 자신의 수하로 끌어들이는 일이 예상보다 훨씬 어려울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들자 곤혹스러워졌다.

“군주님, 그런데 또 다른 소식이 있었습니다.”

“뭐야?”

“악불군이 주원장의 초청을 받아 남경으로 가고 있다고 합니다.”

“언제?”

“방금 이곳에 오기 전에 받았으니 이미 출발했을 것입니다.”

“확실한 거지?”

“남경에서 금의위가 천호방에 온 것을 많은 사람들이 보았다고 하니, 사실일 것입니다.”

잠시 생각을 하던 금잔화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나타났다.

“뜻밖에 주원장이 나를 도울 줄은 몰랐군.”

“그것이 무슨 말이십니까?”

“주원장이 영웅회주를 남경으로 불렀다는 말이 있었어?”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지금 무림의 실세는 영우회주와 구천마성이야. 그런데 그 둘을 제치고 악불군을 먼저 불렀다는 것은, 악불군을 이용해 무림을 조종해 보겠다는 심사일 게다.”

“그럼 악불군을 회유하는 것이 더 어려워지지 않겠습니까?”

“우선 계획을 변경한다. 강서 도창에 우리의 근거지를 준비해라.”

“어쩌시려고요.”

“악불군이 최고의 위치로 올라갈 때쯤, 악불군과 중원 무림 간에 이간계를 펼칠 거다. 중원 무림인들은 잠룡세가를 굉장히 미워하지. 악불군이 잠룡세가의 일원이었다는 사실만 알려도 정파인들은 대로할 거다. 천하가 적이 되면 악불군이라도 갈 곳이 없어지겠지. 그때 내가 손을 내민다면 잡을 수밖에 없을 거다.”

“정말 좋은 계책이군요?”

“그 전에 약간의 준비가 더 필요하다.”

“어떤 준비를 할까요?”

“영웅회가 무림맹으로 탈바꿈했다고 했지?”

“예.”

“천호방과 무림맹 간에 불화를 먼저 일으켜야겠다.”

그녀의 계책이 그대로 통한다면 악불군을 천하의 영웅으로 우뚝 서게 하겠다는 담수련의 계획은 완전히 무너질 수도 있었다. 더구나 금잔화는 보통 사람이 아닌, 대공까지 인정한 비상한 머리를 가지고 있는 여인이었다.

담수련은 과연 금잔화의 계책을 방어해 낼 수 있을까…….

* * *

‘역시 황상께서 호형호제한다고 무림맹 사람들에게 과시한 이유가 있었군…….’

가마에 타고 있던 유백온은 악불군과 혈공자, 혈낭자들과의 싸움을 보지 못했다. 상황이 급박해지자 금의위들이 그가 탄 가마를 두세 겹으로 에워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악불군에게 무례하 다할 정도로 적의를 보이던 오선두가 갑자기 과하다 할 정도로 깍듯이 대하는 것을 보며, 엄청난 일이 있었다는 것은 능히 짐작하고도 남았다.

그가 아는 오선두는 무척이나 자존심이 강하고 성격조차 거칠어, 여간한 충격을 받지 않고는 마음을 바꾸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방주님. 시신들은 다 묻어 줬고, 그들 몸에서 나온 물건들은 모두 아가씨께 전했습니다.]

혈공자들과의 싸움이 있었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너무 태연하게 말을 몰던 악불군은, 사효조의 전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피는 다 깨끗이 닦아서 드렸습니까? 아가씨께서는 피를 안 좋아하십니다.]

[예, 냄새까지 안 나게 처리해서 드렸습니다.]

담수련은 혈공자와 혈낭자들이 모두 죽자 그들의 소지품을 하나도 빼놓지 말고 빼내 자신에게 가져 달라고 했었다.

그들의 정체나 혹 그들의 근거지를 찾을 수 있는 단서가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앞장서 가던 악불군의 말이 멈췄다.

전면에서 수십 기는 됨직한 기마군이 먼지를 휘날리며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십기군입니다. 황상께서 마중을 보낸 것 같군요.”

오선두는 기마군의 중간에서 펄럭이는 깃발을 보자 반가운 얼굴로 설명했다.

“거의 다 온 모양이군요?”

“남경은 처음이십니까?”

“예.”

“이제 반나절이면 도착할 것입니다.”

말투까지 확실히 공손해진 오선두였다.

이런 일들이 쌓이고 쌓여 명성에 더해지며 영웅의 전설이 탄생된다는 것을 악불군은 아직 몰랐다.

* * *

혈교의 교주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부제 최학의가 쪽지 하나를 들고 급히 들어왔다.

“교주님, 혈성에게서 전서가 왔습니다.”

“벌써?”

일월신마가 만났던 노인은 의아한 듯 반문했다.

외유 시 가져가는 전서는 두 마리뿐이었다. 그래서 최대한 많은 정보를 담아 보내는 것이 원칙이었는데, 이렇게 빨리 보냈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사안이라는 방증이었다.

최학의는 공손히 쪽지를 노인에게 바쳤다.

“허허허! 이놈 봐라. 나 혈우대마종을 감탄시킬 아이는 구문황 그 아이뿐일 줄 알았는데, 이런 놈이 또 나타나다니. 확실히 천하는 크군.”

무림 사대무황 중 한 명이었던 검황 구문황이 아직 살아 있다면 이미 백 세를 훌쩍 넘겼을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를 노인은 아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하지만 혈우대마종이 누구인지 안다면 이해할 수도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이 갑자 전, 무림에는 전설의 사대마황을 능가하는 무시무시한 마종의 등장으로 무림 전체가 발칵 뒤집혔었다.

천년마교의 적통을 주장하며 나타난 그는 단신으로 중원을 십자종횡하며 무려 이백 명이 넘는 초절정 고수들을 죽였다.

또한 중원 무림의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는 소림사의 백팔나한진을 홀로 파훼한 첫 번째 인물이기도 했다.

그렇게 십 년 넘게 무림을 초토화시키며 독행하는 그를 결국 그대로 둘 수 없다고 판단한 무림은, 처음으로 정파와 마도가 연합해 그의 제거에 나섰다.

하지만 제거는커녕 피해만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었다.

그때 무림에 혜성같이 나타난 천고의 기재 네 명이 있었다. 당시 삼십 대였던 그들은 이미 무림 백대고수의 수좌에 올라 있었다.

그들은 각각 백 명의 정예 수하들을 이끌고 혈우대마종의 앞을 막아섰고, 지금까지도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공전절후의 대혈투를 벌였다.

무려 일주일 가까이 걸린 혈투의 승자는 다행히 네 명의 천고기재였다.

특히 혈우대마종의 심장에 검을 찔러 넣은 한 인물이 최고의 영웅으로 추앙을 받게 되었는데, 그가 바로 검황으로 불린 천륭검가의 구문황이었다.

구문황에 의해 조금 가려지긴 했지만 다른 세 명의 기재들도 무림인들은 무황이라고 떠받들어졌는데, 바로 그들이 현 무림의 절대자인 무림맹주 천제무황과 구천마성의 구천마황 그리고 혈해사계의 혈해사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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