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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검지애-239화 (239/472)

<천검지애 239화>

239화. 혈교(2)

“항주에서 뱃길을 이용하면 군산을 지나게 되어 있어.”

“하긴 육로보다는 뱃길이 빠르고 편할 것입니다.”

“그 얘기가 아니고 군산에 뭐가 있지?”

“군산에…… 아! 무림맹이 군산에 총단을 세웠다고 들었습니다.”

“사천으로 가기 전에 무림맹에 들러 만진선생을 만나 보는 거야.”

“문 군사님께서 자신이 반딧불이면 만진선생은 달이라고 해야 한다고 할 정도로 극찬한 분입니다. 그런 분을 직접 만나는 것은 별로 좋은 생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왜?”

“우리에 대한 정보를 상당히 많이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의구심도 가지고 있을 텐데, 굳이 가서 의구심을 더 키워 줄 필요가 있겠습니까?”

“문 군사께서는 만진선생에 대해 이런 말도 했어.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그리고 사해신개 어르신께서는 대단히 공정한 사람이라고도 했고. 그런 분이라면 우리를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볼 거야.”

“편견 없이 본다 해도, 아가씨께서 잠룡세가의 천금이라는 사실을 알면 문제가 될 것입니다.”

“내가 잠룡세가의 천금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겠어?”

“천하에서 가장 현명한 지자라고 소문이 난 분입니다. 혹시 모르니 피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진짜 천하제일 지자라면, 나에 대해 아는 것은 시간문제야. 그래서 만나려고 하는 거야.”

“어쩌시려고요?”

“내가 누구인지는 굳이 알려 줄 필요는 없겠지. 하지만 소군에 대해서는 알려 줘야 해.”

“……좀 이해가 안 갑니다.”

“그분이 내가 잠룡세가의 천금이라는 사실을 묻고 지나가는 것과 소군과 적이 되는 것, 둘 중에 어느 것이 정파 무림에 이익이 될 것인지를 판단할 기회를 주고 싶어. 그리고 확실하게 판단을 하려면 소군을 직접 보게 하는 것보다 완벽한 것은 없지. 그리고 나도 그분을 직접 보고 믿을 만한 사람인지 판단해 볼 생각이야.”

“만약 아가씨 생각대로 안 되면 어쩌시려고요?”

“안 되면 계획을 수정해야 하겠지?”

“…….”

무림맹은 잠룡세가에 대해 가장 안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세력이었다. 그런데 거기를 들어간다는 것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호위하는 입장에서는 무조건 피해야 할 위험한 생각이었다.

“소군이 절대 불가라고 한다면 나도 고집을 피우지는 않을 거야. 하지만 우리가 버티기 위해서는 만진선생에 대해 반드시 알아야 해. 그리고 가능할지 모르지만 우군으로 회유하면 더 좋고.”

“알겠습니다. 아가씨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악불군은 그녀가 원하는 일을 자신의 반대로 못 하게 하는 상황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받아들이자 담수련은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마워, 역시 나한테는 소군밖에 없어.”

* * *

수많은 짐꾼들이 끊임없이 물품들을 옮기고 싣는 커다란 장원.

한 청년이 나타났다.

일군들을 지휘하던 수석접주 허성표는 얼굴을 찌푸리며 청년에게 다가갔다.

“어쩐 일로 오셨는지 모르겠지만, 거래 때문에 오셨다면 정문으로 가십시오. 여기에서는 손님을 받지 않습니다.”

청년은 허성표의 말에 아무 대답 없이 품에서 패 하나를 꺼내 보였다.

그러자 허성표는 급 공손해지며 조그맣게 말했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허성표가 안내한 곳은 뜻밖에도 허름한 창고였다.

물건이 빽빽이 들어찬 창고 안으로 들어선 허성표는 재고 정리를 위해 물품 사이로 좁게 만들어진 통로를 지나더니 벽에 도착했다.

그가 벽에 대고 톡톡 신호를 보내자 벽이 열렸다.

“총단에서 오신 분이다. 조심해서 모시거라.”

허성표는 안에서 나타난 중년인에게 주의를 주고는 청년에게 공손히 포권을 하며 말했다.

“따라가십시오.”

청년은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중년인을 따라 통로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다시 벽이 닫혔다.

어찌나 감쪽같이 만들었는지, 아무리 자세히 봐도 그곳에 통로가 있다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할 것 같았다.

일각 가까이 통로를 따라 중년인과 청년이 도착한 곳은 뜻밖에도 상당히 아름답게 꾸며진 정원이었다.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였고 하늘은 빽빽한 나무와 넝쿨로 완벽히 가려진 그곳에는 제법 큰 전각이 세 개나 있었다.

청년의 앞에 상당히 험악한 인상의 노인이 나타났다.

“패를 보여 주시지요.”

청년은 다시 패를 보였다.

“저는 천마전 산하 천마사자 하후탄입니다. 혈공자님께서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천마사자가 인사를 하자 청년도 포권을 했다.

“혈수라 하오. 전주님께 교주님의 명을 전하러 왔소이다.”

천마사자는 교주라는 단어를 듣자 경배하듯 두 손을 하늘로 한 번 올리더니 중년인에게 말했다.

“넌 돌아가도 된다. 혈수 공자께서는 저를 따라오십시오.”

악불군에 대한 공격을 포기한 혈수가 찾아온 곳은 혈교 산하 사대마전 중 하나인 천마전이었다.

혈교는 그동안 중원을 사등분해 네 개의 마전을 세우고는 은밀하게 세력을 키워 왔다. 천마전은 북동 무림, 악마전은 북서, 혈마전 남서 그리고 아수라마전은 남동쪽을 책임지고 있었다.

천호방의 총단이 천마전 세력권인 절강에 있기에 천마전을 찾아온 것이었다.

“네가 혈공자냐?”

천마전주가 머무는 청 안에 들어선 혈수는, 온몸을 검은 천으로 감싸고 천마의 탈을 쓴 괴인이 태사의에 앉아 있는 것을 보자 공손히 포권을 했다.

“혈수라고 합니다.”

혈교의 이인자라고 할 수 있는 사제인 일월신마조차 높임말을 붙여 주던 혈공자였지만, 천마전주는 아무렇지 않게 반말을 했다.

혈수 역시 약간 긴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교주님의 명을 가지고 왔다고?”

“예.”

“원나라가 하북에 버티고 있어 거의 매일 전쟁이라, 천마전은 아직 활동하는 데 제약이 좀 있다. 교주님께서도 그것은 알고 계실 텐데, 무슨 명이지?”

“절강성에 천호방이라는 신생 문파가 총단을 차렸습니다.”

“주원장을 만나러 갔다는 그 악불군이라는 애송이가 세웠다는 방을 말하는 것이냐?”

천마전주 역시 이미 악불군에 대해 정보를 가지고 있는 듯했다.

“예, 교주님께서는 천호방을 없애라고 명을 내리셨습니다.”

“아직 대계를 시작도 안 했는데 본 전에게 직접 없애라고 명을 내리셨다는 것이냐?”

“가능하면 저희들에게 제거하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전주님께 제거하란 명을 전하라 하셨습니다.”

“여의치 않았다 이거냐?”

“그렇게 됐습니다.”

“혈공자 몇 명이 갔느냐?”

“그게…….”

혈수는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상황을 설명했다.

“먼저 온 혈공자 셋과 혈낭자 둘이 사라졌다는 말이지?”

“저희가 출발하기 전까지는 분명히 전서까지 보냈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접선을 하려고 했지만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죽었군. 흠~ 혈공자 세 명과 혈낭자 둘이면 본전의 호법 두 명 이상의 전력인데, 아무 흔적도 없이 제거했다면 소문이 엉터리는 아니군.”

잠시 생각하던 천마전주는 혈수를 노려보듯 주시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교주님의 명은 이해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움직이는 것은 본 전의 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다. 천호방의 분타가 있는 강서성이 혈마전의 구역이고 남무림은 이제 전쟁이 끝난 상황이니, 혈마전에서 천호방의 제거를 맡도록 했으면 한다고 교주님께 전해라. 만약 혈마전이 실패하면 그땐 내가 직접 나서겠다.”

교주의 명까지 거절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사대마전의 전주들이었다. 그만큼 혈우대마종의 신임이 크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혈수는 천마전주의 말에 얼굴이 굳어졌지만 감히 반박은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럼 교주님께 그대로 전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음부터는 오늘처럼 오지 말고, 먼저 연락을 취한 후 내가 사람을 보내면 그때 오도록 해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혈수는 상당히 기분이 나빴지만 그대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혈수가 나가자 한 중년인이 천마전주의 앞에 나타났다. 그는 천마전의 군사인 나채현이었다.

“네가 거절을 하라고 해서 그대로 따르기는 했는데, 교주님께서 심기가 불편하실 것 같다.”

천마전주가 거절을 한 이유는 나채현이 뒤에서 전음을 날렸기 때문이었다.

“광동에서 아수라마전의 최정예라 할 수 있는 선풍마강을 비롯한 십여 명의 호법급의 고수들이 천호무적검 악불군에게 죽었습니다. 이후 악불군이 호남으로 넘어오자 혈마전에 인계가 됐는데, 악불군을 감시하던 혈마전의 호법 세 명이 행방불명됐다는 보고를 들었습니다. 혼자일 때도 그렇게 많은 피해를 입었는데 지금은 천호방을 세워 방도가 천 명 가까이 된다고 합니다. 그들을 제거한다 해도 본 전은 치명적인 피해를 입을 확률이 높습니다. 교주님의 심기를 좀 불편하게 한 것은 곧 다른 공을 세우면 만회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주님의 전력에 피해가 오는 것은 만회가 안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다. 그런데 악불군이라는 놈, 하필 절강에 총단을 세웠으니 결국 우리와 부딪치는 것은 필연일 거야.”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준비 없이 당장 명을 쫓아 공격했다가 피해를 입는 것보다는, 좀 더 정보를 수집하여 준비를 잘하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교주님께서 대계를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그놈을 제거하라고 지시하신 걸 보면, 분명 방해가 될 놈이라고 보신 게 분명하다. 너는 이제부터 악불군이라는 놈을 어떻게 제거할지 계획을 짜도록 해라.”

“존명!”

천하를 노리며 은인자중 세력을 키워 오던 혈교가 하필 악불군을 최우선 제거 대상으로 지정한 것은, 그들에게는 뼈아픈 실책일지도 몰랐다.

* * *

악불군과 담수련이 총단에 도착하자 천호방은 완전 축제 분위기였다. 황제까지 인정한 무림인이 방주이니, 천호방도들의 자부심은 하늘을 찔렀고 어깨에도 힘이 잔뜩 들어간 터였다.

더욱이 다른 무림 세력들의 눈치를 보며 천호방과의 관계를 어떻게 할지를 저울질하던 절강의 상단들이 스스로 천호방을 찾기 시작한 것도 생각지 못했던 호재였다.

“고생하셨습니다.”

악불군과 담수련이 정청에 나타나자 천호방의 최고 간분들이 커다란 소리로 인사를 했다.

담수련과 함께 자리에 앉은 악불군이 모두에게 앉으라고 말하자 모두는 자리에 앉았다.

“겨우 며칠간의 외유인데 여러 일들이 있었군요?”

“예, 큰 사건만 몇 가지 추린다면 마룡세가의 멸문과 황상의 교지가 가장 큰 화제였습니다.”

“두 사건은 오는 동안 보고를 받았습니다. 제가 보고 받지 못한 사건은 없었습니까?”

“귀화단에서 어제 그때 지불 못 한 나머지 돈이라며 금자 이만 냥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래요? 주는 것이 낫다는 단순한 결론을 참 오래 걸려서 냈네요.”

“그리고 아가씨께서 찾아내라고 했던 색혼수사가 시체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색혼수사가요? 범인은 밝혀졌나요?”

“여인을 겁탈하다가 한 청년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합니다.”

“죽을 짓을 했네요. 그럼 다루가치가 숨겼다는 금괴는 이제 찾을 길이 없는 건가요?”

“하오문이 괜히 하오문이 아니지요. 금괴인지 뭔지는 모르지만 색혼수사가 찾아다닌 지역은 어딘지 알아냈습니다. 제가 샅샅이 뒤져 찾아내라고 했으니, 있기만 한다면 곧 찾아낼 것입니다. 다만 하오문에 이 할은 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린 가만히 있고 하오문에서 찾아주는 건데 이 할이면 싼 거네요. 주세요.”

“알겠습니다.”

“또 다른 것은 없나요?”

“절강에 본부를 둔 상단 대부분이 먼저 찾아와 보호비를 내기로 했습니다. 또한 표국을 이용할 경우 저희 표국을 이용하겠다는 약속도 받아 냈습니다.”

“보호비는 깎아 주셨지요?”

“예, 대폭 깎아 줬더니 전부 다 만족해서는 돌아갔습니다. 그래도 절강 전체를 아무와도 나누지 않고 본 방이 독식하는 거라, 운영비는 충분할 것 같습니다.”

“다행이네요.”

“그리고 본 방으로서는 대단히 환영할 만한 일이 있었습니다.”

“좋은 일인가 보군요?”

고철황은 아직도 기분이 좋은 듯 만면에 미소를 띠며 약간은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방주님, 혹시 동정어옹이라 불리는 동방 진 대협에 대해서 들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동정어옹이요?”

악불군은 모르겠다는 듯 의아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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