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검지애-242화 (242/472)

<천검지애 242화>

242화. 동정어옹(3)

“정말이야?”

자신의 방에 돌아온 담수련은, 동정어옹이 악불군에게 한 말을 듣자 놀란 표정으로 반문했다.

“예, 동정어옹 어르신 말이 맞다면 천륭검가는 완전히 멸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점점 상황이 재미있어지네? 소군, 동정어옹 어르신의 말이 맞다면 이건 소군에게는 악재가 아니라 아주 좋은 호재야.”

“그렇게 보십니까?”

“사실 여러 계획을 수립했지만 여전히 나와 오라버니의 정체가 밝혀진 후의 어떤 일이 벌어질지 확신할 수가 없었어. 천호방이 상당히 빠르게 입지를 굳혔지만, 여전히 무림맹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만큼 전력이 부족했으니까. 하지만 이제 온전한 준비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럼 동정어옹 어르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겠군요?”

“무림맹은 부역자들을 절대 그냥 두지 않을 거야. 무림맹을 창설한 명분 중 하나가 바로 부역자 척결이니까. 그리고 나와 오라버니의 정체가 밝혀지는 것도 시간문제일 뿐, 결국 알려지겠지.”

“지금 이대로만 가면 밝혀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나만 있다면 가능할지도 모르지. 그러나 오라버니가 있기 때문에 그건 불가능해. 소군도 오라버니 만났을 때 종산은자라는 사람 봤잖아?”

“예.”

“그자는 영웅회 사람이라고 했어. 당연히 지금은 무림맹 사람이겠지. 잠룡세가의 소가주가 살아 있고 또한 그 소가주를 천호방에서 보호해 주고 있다는 엄청난 비밀을, 그가 언제까지 지켜 줄 것 같아?”

담수련의 말에 악불군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 역시 문제가 생긴다면 종산은자에서 시작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종산은자를 살려 준 것은 담수련이 막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살인을 싫어하는 악불군이 자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살인하는 것을 보며, 그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 주기 위해 그들을 죽이려고 하는 자들과 양민을 괴롭히는 자들을 죽여도 된다는 원칙을 만들었다.

그리고 남무림을 돌면서, 죽여도 될 만큼 큰 죄를 지은 자는 죽여도 된다는 원칙이 하나 더 더해졌다.

그런데 종산은자는 그들을 죽이려 들지 않았고, 죽을 만한 죄도 짓지 않았다. 그녀가 그를 죽이는 것을 막은 이유였다.

물론 그를 그냥 보내는 것이 큰 위험을 동반한다는 것을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한 번 예외를 만들면 계속 예외가 생길 것이고, 그러다 보면 원칙이 사라진 살인을 하는 것을 우려했다.

대신 거기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기는 했지만, 종산은자가 문제가 될 자라는 것은 분명했다.

“누설할 자라면 이미 누설하지 않았을까요?”

“미련한 자가 아니니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재 보고 있을 거야. 그러나 결국은 발설할 거야.”

“그래서 아가씨께서 대룡상단을 완전히 바꿔 버리셨잖습니까? 증거 없이 무작정 몰아가지는 못할 것입니다.”

“소군이 이미 황상께서 인정한 거물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다른 문파들 대하듯 하지는 못할 거야. 하나, 그들이 정밀 조사에 들어간다면 결국 밝혀질 수밖에 없어.”

“그렇게 된다 해도, 제가 있는 이상 누구도 아가씨는 건드리지 못합니다.”

악불군의 말에 담수련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그녀는 자신의 정체가 밝혀지는 것을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았다. 어차피 오래 살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이 죽기 전에 정체가 밝혀져 악불군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천하를 상대로 싸우게 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녀가 지금 세운 계획은 모든 것이 악불군을 살리기 위한 것이지, 그녀가 안전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소군이 나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야. 병법에도 확실히 이기지 못하는 전쟁은 하지 말라고 했어. 무림맹에서 우리를 확실하게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 주면, 나나 오라버니의 정체가 알려진다 해도 우릴 건드리지 못해.”

“무림맹이 우리를 두려워하겠습니까?”

“지금은 아니지. 천호방은 어중이떠중이를 다 방도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들은 소군만 경계할 뿐, 천호방은 아주 우습게보고 있을 거야. 우린 계속 그들에게 우습게 보이면서 전력을 키워야 해. 다행히 황상께서 영웅대회를 열어 주시기로 한 덕에, 일 년 동안은 그들이 우리를 건드리지 않을 거야. 황상께서 우리에게 정말 천금 같은 시간을 벌어 준 거지.”

“태상 호법께서 진짜 열심히 방도들을 수련시키고는 있지만, 일 년 안에 무림맹이 경계할 정도로 무력 집단을 양성하기에는 어려울 텐데요?”

“어려운 게 아니라 불가능했지. 그런데 동정어옹 어르신께서 숨어 있는 사십 명이 넘는 고수와 함께 천호방에 입방한다면 달라져. 그 정도면 일 년 안에 무림맹이 우리를 압박하는 것이 꺼려질 정도의 힘을 갖출 수 있어.”

“무림맹에서 일 년을 기다려 주지 않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그래서 무림맹에 가서 만진선생을 만나야 하는 거야. 그분을 어떻게 설득하느냐가 관건이긴 하지만, 소군이 재건하려는 정파들을 돕겠다고 나선다면 필히 좋아할 거야. 더불어 움직이는 곳마다 양민들을 괴롭히는 사파와 마도들을 계속 제거해 나가면서 천호무적검의 명성을 높여 간다면, 나와 오라버니에 대해 안다 해도 바로 움직이진 않을 거야.”

담수련이 이렇게 호언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무림맹은 결성할 당시 부역자들을 제거하겠다고 대놓고 천하에 공포했다. 그런데 창맹한 지 두 달이 다 되어 감에도 아직까지 가시적인 움직임이 없는 이유가 부역자들의 전력이 여전히 강력하기 때문이라고 그녀는 판단했다.

더구나 주원장은 대놓고 막지는 않고 있지만 내심 부역자를 처단한다고 무림맹이 천하를 들쑤시는 것을 원치 않음을 공공연히 보여 주고 있었다.

만약 제갈우명이 지금 담수련의 말을 들었다면 아마 경악했을지도 몰랐다. 그녀는 천하제일지자로 불리는 제갈우명까지 계획 안에 넣고 주무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계획을 망치려고 하는 자들이 한두 명이 아니라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을까…….

* * *

“금령사자, 군주님께 인사드립니다.”

“일어나, 여기서는 철저히 자신을 숨겨야 한다. 그런 군례는 하지 마라.”

금잔화는 부복하는 금령사자를 향해 손을 살짝 흔들었다.

“군주님의 무공이 더욱 강해지신 것 같습니다.”

금령사자는 그녀의 손짓 하나에 자신의 몸이 저절로 펴지자 놀란 눈으로 말했다.

“알아온 것들이나 보고해라.”

“황실의 사정이 안 좋습니다. 어사대가 황상의 명으로…….”

보고를 들은 금잔화는 매우 화난 표정으로 소리쳤다.

“주원장이 황제를 칭하며 바로 턱밑까지 올라갔는데 아직도 권력 다툼이란 말이야?”

원나라는 황제가 너무 짧은 시기에 여러 번 바뀌었다. 반란과 시해가 끊임없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그 싸움이 중대 부족들 간의 단결까지 저해하면서 태양천의 구대전왕께서 반목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태양천의 고수들이 적재적소에 파견이 안 되는 이유가, 구대전왕들께서 자신들 부족의 태양천 고수들을 위험 지역으로 보내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완전히 미쳤군! 정말 다 죽어야 그제야 정신을 차리려나…….”

그녀가 아는 태양천의 힘은 여전히 천하제일이었다. 그녀가 아는 한 무적의 고수인 대공이 있었고, 구대전왕들 역시 무림 십대고수와 맞먹는 실력자들이었다.

더욱 대단한 것은, 그런 고수인 구대전왕과 맞먹는 원로들이 오십 명 가까이 건재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힘을 제대로 사용을 못 하고 있었다. 심지어 부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태양천 고수들끼리 서로를 죽이기까지 한다는 말을 들은 그녀였다.

“그리고 소천주께서 정파 고수들을 특정해 암살하고 있는데, 그 때문에 굉장히 곤란한 상황에 직면했다고 합니다.”

“왜?”

“대공 전하의 계획은 정파의 중견 무인들을 제거하여 허리를 부러뜨리면서, 무림맹에서 추격하도록 유인하여 몰살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약속한 태양천 고수들이 나타나지 않아, 소천주님과 지휘하던 태양척살단이 오히려 몰리고 있다고 합니다.”

“갈수록 가관이군. 그런데 그렇게 중요한 정보를 네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혹시 나 보고 소천주를 도와주라고 누가 지시했어?”

금잔화는 자신도 모르고 있던 정보를 금령사자가 알았다는 것에 당장 의구심을 표했다.

“소천주님을 도와주라는 지시는 받지 않았습니다.”

“받지는 않았는데, 내게 그 말을 전해 주라는 지시는 받았다 그 말이네?”

“대공 전하께서 철무정은 위대한 칭기즈 칸의 자손이자 태양천의 소천주로서, 그분의 신변에 이상이 생긴다면 계획에 큰 차질을 가져올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이 도와주라는 말하고 다른 게 뭐가 있어?”

“대공 전하께서는 모든 판단은 군주님께 맡긴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소천주는 어디에 있지?”

“호남 북부에 있는 태양천 비밀 안가에 계십니다.”

잠시 생각하던 금잔화는 손으로 턱을 괴며 다시 물었다.

“그게 다야? 내가 시킨 것은 어떻게 됐어?”

“그게 아직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뭐? 담수련의 얼굴을 본 자 한 명 찾는 것이 뭐가 그렇게 힘들어?”

“담수련의 얼굴을 본 사람은 꽤 됩니다. 저나 군주님도 얼굴은 보았으니까요. 문제는 무림맹에서 믿게 할 수 있을 정도로 신뢰 있는 증인을 찾아야 한다는 건데, 그만한 사람은 없습니다.”

“다짜고짜 천상신녀가 담수련이고 악불군은 잠룡세가의 호위 무사 출신이다라고 말해 봐야, 증거나 증인이 없으면 정파를 이간질하려는 흑색선전으로 치부될 뿐이다. 분명 정파인들 중에서 그 둘은 본 자가 있을 것이다. 반드시 찾아내라.”

“알겠습니다. 그런데 소천주는…….”

“금령사자.”

금잔화의 목소리가 차갑게 변하자 금령사자는 기합 든 목소리로 크게 답했다.

“예!”

“언제부터 네가 나에게 되물을 수 있는 자격이 된다고 생각한 것이냐?”

“저, 절대 그런 적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나가 봐.”

“예!”

금령사자가 등골에 흐르는 식은땀을 느끼며 급히 나가자, 그녀는 두 다리를 쭉 펴며 편한 자세를 취했다.

‘대공 전하께서 내가 알아서 하라고 했단 말이야……. 무슨 의미일까?’

금잔화는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 * *

만통광심과 독대한 구천마황은, 그가 건넨 이십 장에 가까운 보고서를 보더니 재미있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이놈 도대체 누가 키웠을까? 내 제자 놈들은 나이만 먹고 어떻게 이 어린놈보다 다 못한지 몰라.”

만통광심이 올린 보고서는 전부가 악불군에 대한 것뿐이었다.

“전력의 피해가 너무 심해서 잠깐 피한다는 의미로 조약을 맺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 조약이 정말 잘한 것 같습니다.”

“잘해? 만통광심 너는 정말 잘한 것 같다고 생각하느냐? 이놈이 젊은 나이에 대단한 것은 인정하겠지만, 정파를 표방하고 있다. 그 말은 결국에는 우리의 적이 될 놈이란 말이다.”

“성주님, 본 성이 그동안 전력을 키워 왔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많이 모자랍니다.”

천륭검가가 무너진 후, 지하로 숨은 구천마성은 나름 전력을 키우는 데 최선을 다했었다.

하지만 정파와 달리 배신을 밥 먹듯 하고 자신들이 가진 욕망을 제대로 분출을 못 하면 견디지 못하는 마도인의 본성은 지하에 숨어 세력을 키우는 데 근본적인 제약이 되었다. 어느 정도 키워 놓으면 돌발 행동을 하여 어찰단과 태양천에 걸리는 일이 빈번했기 때문이었다.

세상에 알려진다면 극도의 비난을 받거나 공적으로 몰릴 수도 있는 인체 실험을 하고 독물들을 연구한 것도 그 한계를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의 하나였다.

거기다 원나라에 부역을 한 자들의 대부분이 마도인과 사파들이었다.

“정파 놈들은 원나라 초기에 정말 궤멸적인 피해를 입고도 다시 저렇게 세력을 키웠는데, 우리 마도는 왜 그게 안 되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구천마황은 수십 년 동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파보다 힘이 약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정파 놈들에게는 큰 단점이 있습니다. 바로 명문 정파 출신이 아니면 인정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보고서에도 적었지만 천호무적검은 무림맹에 들어갈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그 말은, 무림맹과 천호방은 같은 정파를 표방하지만 절대 같은 편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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