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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검지애-244화 (244/472)

<천검지애 244화>

244화. 변화(2)

“군사님,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우문상일은 제갈우명이 계속 말이 없자 조심스럽게 물었다.

“총책, 혹시 이 서찰을 본 사람이 또 있나?”

“제가 처음 뜯어서 보자마자 곧장 군사님께 가져왔습니다.”

“그럼 이 서찰에 대해서 내가 말할 때까지 비밀로 하지.”

“그렇게 할 이유가 있을까요?”

“황보 대협이 보낸 보고서에 적힌 내용은, 만약 사실이라면 무림의 역학구도를 바꿔버릴 수도 있는 아주 심각한 것이야. 하지만 보고서의 어디에도 명확한 증거가 없어. 오로지 정황뿐이지. 자네도 알다시피 유언비어도 얼마든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 수 있네.”

“저도 그 생각은 했습니다. 하지만 숨겼다가 사실로 밝혀질 경우 군사님께서 곤란해지실 수도 있습니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하겠네.”

“그럼 천호무적검이 독대를 청한 것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허락할 생각이네. 어쩌면 보고서의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실하게 알아볼 기회가 될 수도 있지 않겠나?”

“그럼 윗분들께서 천호무적검을 보고자 할 텐데요?”

“그거야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않은가?”

“물론 천호무적검이 원치 않는다면 억지로 잡아 놓을 수는 없지만, 군사님만 독대하고 그냥 떠난다면 뒷말이 분명 생길 것입니다.”

“군사가 되어 가지고 뒷말을 걱정하면 무슨 계책을 세울 수 있겠나?”

“……알겠습니다. 천호방에서 배첩을 가지고 온 자가 아직 기다리고 있는데 어떻게 할까요?”

“내가 서찰을 하나 써 줄 테니, 총책이 직접 가서 전해 주게.”

“그렇게 하겠습니다.”

제갈우명은 결정을 한 김에 빨리 만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한 듯 즉시 종이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단숨에 서찰을 다 쓴 제갈우명은 봉투에 봉인을 한 후, 우문상일에게 봉투를 넘기며 물었다.

“그런데 배첩을 가지고 온 자는 직접 보았나?”

“직접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럼 그자가 누구인지? 무공 수위는 어떤지 들은 것은 없었나?”

“이름을 들었는데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무공은 최소한 일류급 이상의 무공 수위를 지닌 것으로 느껴졌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러십니까?”

“정파의 고수들은 대부분 무림맹에 속해 있고, 마도의 고수는 구천마성에 속해 있지 않나?”

“거의 그렇지요.”

“천호방은 낭인들 위주로 방도를 모았다고 하는데, 잠룡세가를 멸문시킬 정도로 많은 고수를 모았다는 것이 좀 이상하지 않나?”

“그러고 보니 이상하긴 하군요. 본 맹과 구천마성을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고수들은 부역 세력에 속해 있었지요.”

“천호방 방도들에 대해서도 조사를 해 보라 명하게.”

“알겠습니다.”

“그럼 가서 그 서찰을 전해 주게.”

“예!”

우문상일이 나가자 제갈우명은 황보준백이 보낸 보고서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래, 아직은 어떠한 판단도 하지 말자. 직접 본 후에 판단해도 늦지는 않아.”

제갈우명은 보고서를 내려놓으며 의미 모를 말을 중얼거렸다.

* * *

무림사기가 천호방에 들어온 후 보름이 지났다. 그동안 천호방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동정어옹의 말대로 거의 날마다 천륭검가의 노복을 자처하는 자들이 입방을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물론 무림사기의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미 무림에서 꽤 명성을 얻고 있는 자들도 있었지만, 전혀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하나 분명한 것은 하나같이 초절정의 무공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들의 입방식은 악불군의 외유가 끝난 후 한꺼번에 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동안 부족했던 장로와 당주들을 그들로 채우기 시작했다.

천호방은 그동안 당주급의 고수가 부족해 다섯 개의 당만 운용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아홉 개의 당으로 늘어났고, 아직 진용이 완벽하게 갖춰지지는 않았지만 무력 집단도 세 개나 조직이 되었다.

장로가 많아지면서 수석 장로도 다섯 명으로 늘어났는데, 고철황이 무림사기 정도 되는 명숙이 자신의 밑이면 오히려 위계질서가 안 잡힌다며 강력하게 원했기 때문이었다.

고철황의 주장을 담수련은 일리 있다며 받아들였다. 정보와 재정, 무력, 대외 정책, 감찰 그리고 집법 등 다섯 개로 세분화하여 고철황에게는 정보와 재정만을 맡기고 나머지는 네 명의 수석 장로들이 분담하기로 했다.

방주 집무실에 모인 다섯 명의 수석 장로와 태상호법들은 악불군의 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악불군과 담수련이 외유를 떠나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태상호법님.”

“예!”

“이제 방의 안위는 태상호법님께 달렸습니다. 물론 그런 일은 최악의 상황에서나 벌어지겠지만, 어쨌든 마지막 보루는 태상호법님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추명혼은 거의 자신의 의견을 내는 적이 없었다. 결국 방의 모든 운영은 다섯 명의 수석 장로가 맡게 되겠지만, 적의 공격이 가시화된다면 그때부터는 호법이 가장 중요한 자리가 되는 것이다.

“누구라도 본 방을 침입하는 자들을 그 즉시 지옥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동방 장로님과 나머지 세 분께서는 실질적인 방의 운영을 책임지셔야 합니다. 다만 아직은 대외적으로 네 분을 내세울 수가 없으니 그것을 염두에 두고 행동해 주십시오.”

“방의 운영을 해 본 적이 없어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지만, 고 수석 장로님과 추 태상호법님께 배워 가면서 방의 안정을 최우선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여러분을 믿으니 큰 걱정은 하지 않지만, 누구도 생각 못 한 돌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든다면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의 공격이 있을 수도 있겠지요. 그런 비상 상황이 되면 여기 계신 여섯 분이 협의를 하시되, 결정은 만장일치로 하셔야 하십시오. 만약 같은 안건이 세 번 이상 불합치된다면 그땐 고 장로님께서 결정을 하십시오.”

고철황은 악불군의 말에 놀란 눈으로 말했다.

“방주님, 강호의 명성이나 무공으로 보면 여기 네 분 수석 장로님이나 태상호법님과는 전 비교가 안 됩니다. 그런데 제가 어떻게 그렇게 중차대한 권한을 받겠습니까?”

“무림사기 장로님들께서는 강한 무공과 함께 강호 경험도 많으십니다. 태상호법께서는 어떤 어려움이라도 헤쳐나가실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도 압니다. 그럼에도 지휘를 고 장로님께 맡기는 이유는, 어떻게 행동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가장 잘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악불군은 고철황을 보며 다시 말했다.

“사람들에게는 모두 나름의 능력이 있습니다. 고 장로님께서는 다른 분들에게 없는 임기응변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런 결정을 한 것입니다.”

“……고철황, 절대 방주님을 실망시키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저희는 마음 편하게 외유를 나가도 되겠군요.”

악불군이 미소를 짓자 고철황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외유는 어느 정도 기간을 예상하고 계신지요?”

“우선 무림맹에 들른 후 사천으로 향할 것이니, 대충 보름의 시간이 걸리겠지요? 하지만 그것은 아무 일도 없을 때를 상정한 것이니, 무슨 일이 생긴다면 며칠 늦어질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게 따지면 두 달은 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갈우명이 독대를 허락하는 서찰이 도착한 것은 어제였다. 담수련은 제갈우명만 만나고 나올 수도 있지만 무림맹에서 악불군을 잡을 수 있는 상황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방주 호법들이 전서구 네 마리를 가져갈 것입니다. 급한 연락을 하실 일이 있으시면 그것을 이용하시면 될 것입니다.”

“저희에게 전서구보다 더 빠른 통신 수법이 있어서, 전서구를 사용할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군요.”

그러자 고철황을 제외한 모두의 표정이 의아하게 변했다. 천하에 전서구보다 빠른 통신 수단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모두에게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럼 이제 출발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악불군이 몸을 일으키자 모두 급히 따라 일어섰다.

무림을 종단했던 악불군이 이제 횡단을 위해 나서고 있었다.

* * *

“공자님, 지금 모든 상황이 문제없이 다 해결되어 가는데 무슨 걱정이라도 있으십니까?”

표정이 거의 없는 백천학이 검미를 찌푸린 채 창밖만 보고 있자, 태극검자는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백천학이 이럴 경우는 뭔가 풀리지 않는 일이 있을 때이기 때문이었다.

“암살단에 대해 생각을 좀 했습니다.”

“이미 공자님의 손에 의해 죽은 척살단의 수는 백 명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근래에는 암살도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중원 무림인들을 암살하고 있는 철무정과 태양척살단을 쫓고 있는 것은 백천학과 그가 이끄는 영웅검단이었다.

“제 손에 죽은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같이 노력해서 가능했던 것입니다.”

백천학의 겸손한 답에 태극검자는 미소를 지며 물었다.

“어쨌든 공자님 덕에 거의 진압이 된 것 같은데 표정이 밝지가 않으시니, 이유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이 왜 이런 무리한 일을 벌였는지 좀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에게 죽인 사람들이 대부분 정파의 중견 무인입니다. 비록 무림에 큰 영향력은 없지만, 그들이 없으면 정파는 상당히 곤란합니다.”

“원나라는 지금 명의 군사에게 계속 밀리고 있습니다. 이대로만 간다면 그들이 중원에서 완전히 퇴출되는 데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다급한 위기 상황에서 정예 무인들을 보내서 하는 짓이, 겨우 우리에게 곤란함을 느끼게 하는 게 끝이다? 너무 느슨하지 않습니까?”

“빈 도의 머리로는 공자님의 생각을 따르기가 어렵군요. 설명을 좀 해 주십시오.”

“우리를 유인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를 유인한다고요?”

태극검자는 깜짝놀라 반문했다.

“암살이 시작되면 무림맹의 추적이 시작될 거라는 정도는 삼척동자도 예상할 수 있는 일입니다. 거기다 추적을 하는 사람들은 쫓기는 자보다 더 강하거나 수가 많은 법이지요.”

“그렇다면 저희도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글쎄요…….”

백천학은 가타부타 아무 말 없이 다시 창밖을 보더니 갑자기 화제를 바꿨다.

“어르신, 금령군주가 사라진 곳으로 보이는 지역 말입니다.”

“말씀하십시오.”

“제갈군사께서 짚어 주신 곳이 모두 세 곳입니다. 강서 북부, 호남의 중부, 마지막은 안휘 방향인데 안휘로 간 것인지 절강으로 간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고 했지요.”

“그랬었지요. 그런데 왜 그러십니까?”

“태양천의 암살이 시작된 시기와 금령군주가 호남을 넘어온 시기가 비슷해서, 둘 간에 연관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행적이 겹치는 곳이 없어서 말입니다.”

“금령군주와 그들이 다른 임무를 갖고 들어온 것이 아닐까요?”

“지금은 저도 그럴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더 의아한 겁니다. 금령군주 같이 원나라에서 높은 지위를 가진 여인이, 왜 사방이 적이나 마찬가지인 남쪽으로 내려왔을까?”

“전부터 좀 의아했는데, 왜 그렇게 금령군주에 대해서 신경을 많이 쓰십니까?”

“뭐라고 분명하게 말씀은 못 드리겠습니다만, 몇 가지 일들이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말입니다.”

“혹시, 천호무적검과 천상신녀 때문에 그러십니까?”

태극검자는 악불군과 천상신녀를 쫓기 위해 용모파기를 그린 자를 찾아보라는 백천학의 명에 따라 상당히 세심하게 조사한 적이 있었다.

결국 용모파기를 그린 자에 대해서는 알아내지 못했지만 현상금을 주겠다고 한 자가 누구인지는 알아냈었다. 바로 금령군주였다.

“전 금령군주가 천호무적검과 천상신녀 때문에 장강을 넘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제갈 군사께 연락을 해서 좀 더 자세히 알아봐 달라고 부탁을 할까요?”

“아닙니다. 어떤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단지 제 짐작일 뿐인데 그런 수고를 부탁할 수는 없지요. 더구나 지금 인원 부족으로 부역자를 제거하는 일조차 지지부진합니다. 제가 직접 알아보겠습니다.”

다시 시선을 창밖으로 돌린 그는 갑자기 작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천학아, 사방에 도움의 손길을 원하는 사람들이 널려 있고, 아직도 적들은 건재한 채 여전히 혈겁을 일으키고 있거늘 넌 어찌 여인에 대한 생각을 떨치지 못하는 것이냐…….’

시도 때도 없이 그의 뇌리에 나타나는 한 여인.

그녀는 담수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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