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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검지애-255화 (255/472)

<천검지애 255화>

255화. 사천 삼파(2)

순간 대청 안의 인물들은, 담수련이 주도적으로 대화를 이끌어 나가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지금 보이는 행동은 평범한 군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악불군이 아무 말 없이 용인하고 있으니 그녀가 대단한 신임을 받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직감할 수 있었다.

“담 군사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희도 솔직하게 대화해 나가겠습니다.”

담수련은 당용이 이들을 대표한다는 것을 직감하고는 목례를 한 번 하고는 말을 이어 갔다.

“천호방에서는 무림맹에 입맹할 동기(動機)를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물론 저희에 대해 의구심을 가진 정파인들도 많이 계실 것이라 판단되고요.”

“천호방이 정파를 표방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무림맹과 거리를 두려는 이유가 있습니까?”

“거리를 두려는 것이 아니라, 편견과 왜곡으로 무림이 잘못된 방향으로 흐를 수 있는 상황에 대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지금 그 말은 후에 천호방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잘못하면 무림맹이 편견과 왜곡으로 만들어진 조직이라 말하는 인상을 줄 수 있습니다.”

“물론 그럴 수 있겠죠. 하지만 제 의견은 타당하다고 여겨집니다. 무림맹은 중원을 수복하기 위해 조직된 영웅회가 전신입니다. 제가 알기로 회란 협의체를 통해 결정하지요. 하지만 무림맹은 맹주의 명에 의해 결정이 됩니다. 그래서 많은 문파들이 무림맹 결성을 주저한 것이 아니었나요?”

담수련은 무림맹 결성 당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무림인들 특히 정파의 특성상 많은 반대와 갈등 상황이 있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런 일이 있기는 했지만, 결국 많은 문파가 찬성했고 무림맹은 탄생했습니다. 그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혼란한 상황에서 일치단결된 힘을 보여야 사파와 마도로부터 정파를 지킬 수 있다. 또는 원나라에 부역한 반역자들을 제거하기 위해 일사불란한 명령 체계가 필요하다라는 명분을 말하시겠지만, 그 이면에 있는 가장 큰 목적은 새롭게 재건해야 할 자파들을 도와줄 뒷배가 필요하다는 것이 아닐까요?”

당용을 비롯한 삼파 장로들의 얼굴에 순간 불쾌한 표정이 나타났다. 그것은 그녀의 말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치부를 들킨 데에 대한 반감이었다.

“담 군사의 지금 말은 정파의 단결을 저해하고 또다시 혼란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이곳에 온 것입니다. 무림맹은 사천의 수복을 아직도 도와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천호방에서는 당장이라도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드릴 생각입니다.”

모두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녀의 말은 무림맹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도를 넘은 발언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천호방이 무림맹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으신 겁니까?”

“천호방과 무림맹을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지요. 다만 정파도 어느 정도 서로 견제하는 기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여러분도 저희 천호방처럼 무림맹을 멀리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무림맹에서 본 방을 적대시하려고 한다면 그때 반대 목소리 정도는 내주셨으면 합니다.”

“무림맹에서 천호방을 적대시할 이유가 있습니까?”

“지금은 없지만, 세상일이란 것이 알 수 있나요?”

“그렇다면 천호방에서 저희를 돕겠다고 찾아오신 이유는 뭡니까? 단순히 무림맹 내에서 천호방에 대해 적대적인 반응이 나오면 그때 옹호해 달라는 것 때문이라는 겁니까?”

“한 가지 더 있습니다. 거기에 더해 천호방에 대해 좋은 말을 좀 많이 해 주십사 하는 거지요. 제가 장로님들께 한 가지 확실하게 약속한다면, 저희 천호방은 사천의 정파에게 도움만이 될 뿐 절대로 척을 지는 행동은 하지 않을 겁니다.”

모두의 표정이 어리둥절해졌다.

마치 무림맹을 부정하는 듯했던 대화의 시작과는 달리 요구 조건이 너무 쉬웠기 때문이었다. 말로 반대하고 좋게 말하는 것 정도는 서로 웃으며 언급 한 번 하면 그만인 간단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정말 단지 그것을 원해서 저희를 돕겠다고 했다는 말입니까?”

“설마 저희가 거창한 요구라도 할 줄 아셨나 보네요? 신흥 문파로서 무림맹에 가입하라는 요구를 거절했으니 저희들을 변호해 줄 분들을 좀 구하고자 하는 것뿐입니다.”

“아미타불! 그럼 천호방에서는 어떻게 도와줄 생각입니까?”

“지금 저희가 도와줄 것은 한 가지밖에 없지 않나요? 태룡세가를 없애 주겠습니다.”

순간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삼파의 연합인 그들조차도 큰 피해를 우려해 함부로 공격하지 못하고 있는데, 너무 쉽게 없앤다 하니 놀라지 않는다면 그게 더 놀랄 일이었다.

“……태룡세가에 대해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원나라가 물러나면서 상당히 의기소침해 있긴 하지만 그들의 전력은 여전히 막강합니다.”

“그 정도 대비도 없이 여기까지 올 정도로 저희가 미련하지 않답니다. 물론 사천 삼파에서도 같이 싸워야지요. 태룡세가는 당연히 청성파와 아미파 그리고 당문이 힘을 합쳐 없앤 것이 되어야 하니까요. 하지만 선봉은 천호방에서 설 것입니다. 절대 삼파의 전력에 큰 피해는 없도록 할 것이니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천호방에서 몇 명이나 사천에 왔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몇 명이 왔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방주님께서 왔느냐가 관건이지요. 그런데 방주님께서 여기에 계시니 천호방이 전부 온 거나 마찬가지라고 보셔도 됩니다. 지금부터 제가 계획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아마 들어 보시면 괜찮다는 생각을 하실 겁니다.”

“…….”

잠시 침묵이 흘렀다.

“방금 계획을 말해 주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말씀드려야지요. 그런데 저흰 아직 장로님들의 답을 듣지 못했습니다. 제가 말한 조건에 대해 확실한 답을 주셔야 저도 말할 힘이 나지 않을까요?”

‘허허! 내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있구나…….’

미소를 지며 말하는 그녀는 본 당용은 작게 감탄을 했다. 나름 대화를 주도하고 있다 생각했는데, 어느새 그녀의 화술에 심취해 주도권이 완전히 그녀에게 넘어가 있었던 것이다.

“잠깐 시간을 좀 주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전음으로 대화하셔도 됩니다.”

상대를 앞에 두고 전음으로 대화하는 것은 분명 결례였다. 하지만 귓속말을 한다 해도 악불군 같은 고수는 다 들을 수 있었다.

“담 군사의 배려에 감사합니다.”

담수련의 말은 곤란할 수도 있는 그들에 대한 배려였다.

[어찌 생각하십니까?]

[저희가 나쁠 것은 없지 않습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실 태룡세가만 없앤다면 좋은 말을 해 주는 정도가 아니라 칭찬을 할 일이지요. 솔직히 저희에게는 은인이 되는 거나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그들의 대화는 생각 외로 짧았다. 쉽게 합의가 이루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 모르는 것이 있었다.

악불군이 전음까지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좋습니다. 만약 태룡세가만 없앨 수 있다면 조건이 아니라 저희가 앞장서서 천호방을 옹호해 드리겠습니다.”

당용의 말에 담수련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살짝 걸렸다. 이렇게 말한 이상, 이들이 천호방에 도움은 못 주더라도 적대시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그럼 제 계획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담수련은 품에서 성도의 지도를 꺼내더니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설명을 듣던 당용이 의아한 표정을 지며 물었다.

“지금 말한 방식은 구천마성에서 다른 문파를 압박할 때 사용하는 수법으로 아는데, 맞습니까?”

“예전에 광동에서 구천마성이 한 중소 문파에게 이런 방식으로 괴롭히는 것을 보고 두어 차례 저희도 사용해 보았는데 효과가 아주 좋더군요.”

“그래도 마도인의 방식을 저희가 사용하는 것은 좀…….”

“건 장로님, 이 방식은 천호방에서 사용하는 것입니다. 세 분 장로님의 문파와는 상관이 없으니 혹시 말이 나오면 몰랐다고 하셔도 됩니다.”

담수련의 당당한 답에 건류상은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죄송합니다. 노부가 너무 체면만 따지는 것 같지요?”

“아닙니다. 어쩌면 정파의 정체성이 바로 그 체면에서 나오는 것 아니겠어요. 체면을 중시하는 분들은 나쁜 짓도 못하시지요. 하지만 다행히 저희는 전통이 아직은 없는 신생 문파이기에 할 수가 있는 것이지요.”

말을 마친 그녀는 계속 설명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모든 설명이 끝나자 당용의 입에서는 탄성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정말 이 방법대로 한다면 큰 피해 없이 태룡세가를 없앴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당용이 말을 끌자 담수련이 미소를 지며 다시 받았다.

“이 상황을 주도할 고수가 염려되시지요?”

“사실 이 계획의 핵심은 태룡세가의 최고수들을 모두 묶어 둘 능력을 가진 초절정 고수/가 있어야 하는데(의 존재인데,)/ 그만한 고수가 저희에게는 없습니다.”

“제가 자랑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딱 한 번만 자랑을 하겠습니다. 사실 이번에 장로님들께서 본 방의 제안을 거절하셨다면 방주님 단신으로 태룡세가를 없애고 돌아가실 작정이셨습니다. 그러니 그 문제도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순간 모두의 눈이 악불군에게 향했다.

물론 그들은 담수련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지는 않았다. 진짜 악불군 혼자 태룡세가를 멸문시킨다면 그의 무공 수위가 사대무황과 버금간다는 말인데, 그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너무나도 태연한 표정의 악불군을 보자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모두의 머리를 스친 것은 우연이었을까…….

“방주님께서는 담 군사님께서 말씀하시는 동안 아무 말도 안 하시는데, 전권을 다 맡기신 것입니까?”

“담 군사께서는 천호방의 모든 계획을 전담하고 계십니다. 저 또한 신뢰하고 있고요. 그러니 같이 의논하셔서 결론을 내리신다면 이후의 일은 제가 다 알아서 처리할 것이니 걱정 마시고 결정을 보십시오.”

인사 이후 처음 내뱉은 말이었지만 모두에게 신뢰감을 추기 충분했다.

그 말 속에는 혼자서 태룡세가를 없애라고 한다면 그럴 수 있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 * *

태룡세가의 정청.

천호방의 등장 이후 거의 매일 간부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당문을 비롯한 삼파가 호시탐탐 그들을 노리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예전 같으면 사천성의 성주에게 수상한 움직임에 대해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들의 정보망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해야 했다.

당연히 정보의 부족으로 긴장의 끈을 놓지치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당당하게 소문을 내면서 등장한 천호방의 의도는 그들의 불안감을 증폭시킬 수밖에 없었다.

“제 군사.”

“예, 가주님.”

“악산에서의 행로를 통해 천호방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고 했는데 하필 거기서 딱 멈췄으니, 이게 우연이라 할 수 있겠나?”

“우연이라면 거기서 누구를 만나든지 아니면 특별한 행동을 해야 하는데,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고 하니 우연은 아닌 듯싶습니다.”

“그럼 절강에 있어야 할 놈들이 왜 사천에는 나타나 이렇게 신경을 쓰이게 한단 말이냐?”

“가주님, 지금이라도 산서로 세가를 옮기는 문제를 다시 생각해 봄이 어떨까 싶습니다.”

“그 얘기는 이니 끝나지 않았느냐?”

“천호방이 악산에서 멈춘 것이 영 불안합니다.”

“움직임이 없다지 않느냐?”

“그들에게 저의 머리를 능가하는 자가 있는 듯싶습니다. 악산에서 멈춘 것도 제 생각을 읽은 것이라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그렇다 해서 불안할 이유가 뭐냐?”

“만약 진짜 저를 혼란하게 만들기 위해 그런 것이라면 그들이 우리의 우군일 확률은 많이 떨어집니다. 천호무적검은 지금 십대고수를 능가한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그런 자가 본 가를 노리는 정파와 합세한다면 싸움의 승패는 정해져 있다 할 것입니다.”

제우환의 말에 모두의 표정이 굳어졌다.

“제 군사.”

“예.”

“정녕 우리가 이 위기를 벗어날 방법이 생각이 안 나느냐?”

“현재로써는 그렇습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산서로 옮긴다면 방법이 있을 수…….”

말하던 제우환의 목소리가 멈췄다.

툭!

잘린 제우환의 머리가 바닥을 구르는 것을 보고 모두의 안색이 사색으로 변했다.

제우환은 태웅천에게 대단한 신임을 받던 측근이었다. 그를 이렇게 단번에 죽일 줄은 누구도 예상을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태웅천의 눈길이 그들을 향하자 모두는 급히 고개를 조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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