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검지애-258화 (258/472)

<천검지애 258화>

258화. 본격적(1)

“아가씨! 전 정말 악 방주님이 사람이 맞나 싶어요.”

악불군이 싸우는 태룡세가의 정문 앞이 훤히 보이는 관도 쪽에 백설을 타고서 사화의 호위를 받고 있던 담수련은, 추국의 말에 싱긋 웃으며 물었다.

“왜? 소군이 사람 같지 않으면 뭐 같은데?”

그녀가 웃은 것은 사화가 놀라는 이유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천인이 아닌가 싶을 정도예요. 안 그러면 어떻게 무공이 저렇게 빠르게 강해질 수가 있겠어요?”

연화도 동감한다는 듯 말을 받았다.

“맞아요! 매번 느끼는 거지만, 싸울 때마다 더 강해져 있으신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악 방주님의 얼굴을 쳐다보는 것조차 어려워요.”

“무서워서?”

“저희들에게 얼마나 잘해 주시는데 무섭겠어요? 하지만 이미 우리와는 다른 분이 되신 것 같아요. 경외하는 마음이라고 할까?”

연화의 말에 담수련도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녀도 근래에는 악불군이 자신에게 과분한 남자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녀가 마차를 타지 않고 이렇게 나와 백설을 타고 있는 이유는, 급한 일이 벌어졌을 때 악불군이 달려오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인간보다 수십 배는 예민하게 위험 신호를 감지할 수 있는 백설은 그녀에 대한 어떤 기습에도 도망을 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머리 위에서는 적설이 공중을 선회하며 언제라도 그녀를 보호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머 세상에……!”

그때 사화의 입에서 경탄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사화의 시선이 향한 곳에선, 태룡세가의 진정한 힘이라는 태룡원 원로 이십여 명과 태진성이 이끄는 태룡무단과 태룡검단의 단원 오십여 명의 공격을 악불군 홀로 상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몰리는 쪽은 오히려 협공을 하고 있는 태룡세가 쪽이었다.

악불군의 검이 스치는 곳은 모조리 잘리고 뚫렸다. 태룡원 원로가 도로 막으면 도를 자르고 그의 몸까지 잘라 냈고, 태룡무단이 방패로 그의 검을 막으면 그대로 뚫고 들어가 그의 몸까지 구멍을 냈다.

결국 악불군의 검을 누구도 부딪치려 하지 못했고, 막지도 못했다. 하지만 악불군은 마음껏 방어를 하며 공격까지 병행하고 있으니, 그들이 아무리 수가 많다고 해도 밀릴 수밖에 없었다.

* * *

악불군이 싸우는 모습을 보고 있던 태웅천의 얼굴이 점점 굳어졌다.

처음 보는 보법에, 검식 역시 너무 생소한 초식을 구사하고 있었다. 거기다 너무 빨라 자세히는 보지 못했지만 언뜻언뜻 보이는 자세는 해괴하기까지 했다.

‘천하의 모든 무공은 대부분 안다고 자부했건만, 도대체 저놈의 무공은 하나같이 듣도 보도 못한 수법들이니…….’

태웅천은 처음에는 악불군이 혼자 왔을 리 없다는 생각에 수하들에게 총공격을 명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악불군 같은 고수와 싸움을 시작하면 빠져나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갈수록 혼자 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다른 쪽을 지키는 수하들을 정문 쪽으로 이동시킨 것도 그 때문이었다.

“아버님, 이제 보니 금령군주가 현상금 금자 만 냥을 걸면서 수배했던 자가 분명합니다.”

태웅천의 옆에서 같이 보고 있던 태진성이, 갑자기 잊었던 생각 하나가 머리를 스치자 급히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아버님도 보셨을 겁니다. 금령군주가 갑자기 수십 장의 수배 용모파기를 만들어 저희와 협력 세력들에게 뿌린 적이 있지 않습니까? 제가 악양까지 갔지만 결국 직접 얼굴을 못 보고 왔는데, 키와 덩치 그리고 얼굴 윤곽이 현상 수배 용모파기에서 본 것과 아주 비슷합니다.”

“그래, 기억난다. 철룡세가와 마룡세가에서도 잡겠다고 악양으로 갔었지?”

“예, 사도비류가 중상을 입으면서 퇴각하고, 철무정 역시 장사성과 시비가 붙으면서 물러나면서 저도 어쩔 수 없이 돌아왔었습니다.”

“하지만 용모파기만으로 같은 자라는 것을 어찌 확신하느냐?”

“당시 용모파기에 대단히 아름다운 여인이 같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천호무적검도 천상신녀와 같이 다닌다는 소문이 있지 않습니까? 거기다 저자에 대한 소문이 나기 시작한 것도 용모파기가 돌 때쯤이었습니다.”

태진성의 말에 잠시 생각하던 태웅천은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며 말했다.

“지금 상황에서 금령군주가 수배를 했다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예전이었다면 금령군주가 왜 천호무적검을 추적했는지 그리고 무공은 왜 이렇게 강한지 등 의문점이 많을 사안이었지만, 지금은 그것을 궁금해할 상황이 전혀 아니었다.

“그렇게 중요한 자라면 은밀하게 쫓아도 될 텐데 금령군주가 굳이 현상 수배까지 했다는 것은, 그만큼 급하게 잡아야 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전 지금 저자가 사용하는 무공과 연관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자의 무공 때문일 수도 있다면……?”

말하던 태웅천이 갑자기 입을 닫으며 악불군이 싸우는 장면을 다시 자세히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그의 머리에 한 가지 무공이 떠올랐다.

“서, 설마 그 무공이란 말인가……?”

천륭검가가 멸문할 때 그 역시 대공의 명으로 공격에 가담했었다. 기습은 아주 성공적이었고 천륭검가를 완전히 지워 버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대공은 당시 대단히 격노했었다.

그는 그 이유를 바로 옆에서 보았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다.

“아버님, 그 무공이라니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태진성이 의아한 듯 물었다.

“어쩌면 우리에게 절호의 기회가 온 건지도 모르겠다. 진성아.”

“예!”

“다른 구역을 지키는 간부들과 무력대들에게 소수만 남기고 전부 이쪽으로 모이라고 연락해라.”

태룡세가는 비상 타종이 울리면 각 간부별로 자신들이 지켜야 할 구역이 정해져 있었다. 그들은 가주의 명이 있기 전까지는 그곳을 떠나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아버님, 모두를 이쪽으로 부르면 방어에 구멍이 생길 수 있습니다.”

“나도 안다. 하지만 저놈이 저렇게 강한데 우리가 분산되어 있으면 더욱 위험하다. 그리고 저놈을 반드시 잡아야 할 이유가 생겼다.”

“알겠습니다. 이쪽으로 이동하라고 전하겠습니다.”

태진성이 수하들 몇 명과 함께 뒤쪽으로 몸을 날리자, 태웅천은 다시 악불군에게 시선을 돌렸다.

악불군이 유리하다고는 하나, 초절정 고수 이십 명과 일류급의 정예 무인 오십 명의 합공은 생각보다 강력해서 단번에 제압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나, 단 한 명을 상대하면서 태룡원의 원로 최고 정예 무력 집단의 단원들이 계속 죽어 나가고 있는 것을 보고 있는 수하들의 표정은 점점 일그러지고 있었다.

도망가면 보호해 주겠다고 악불군이 경고를 했을 때 도망치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이들도 있었다.

은명신군은 수하들의 사기가 너무 저하되는 것을 느끼자 급히 태웅천에게 말했다.

“가주님, 이대로 계속 두고만 보다가는 수하들이 동요할 것 같습니다.”

“안다. 겨우 한 명에게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한다면 어떤 수하들이 나를 믿겠느냐? 내가 직접 나설 것이다.”

“지금 저자 혼자만 왔는지 아니면 다른 적들이 있는지 확인이 안 된 상태에서 저자의 공격에 모두가 가담하면, 세가는 누가 지키겠습니까? 저희가 가담할 것이니 가주님께서 보고만 계십시오.”

“지금 제일 급선무는 저놈을 제압하는 것이다. 다른 놈들이 있다 해도 저놈만 잡으면 된다. 지금 다른 쪽을 지키던 태룡원 원로들과 태룡무단의 일부를 이쪽으로 오도록 했으니, 잠시만 기다려라.”

그리고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방에서 수하들이 달려왔다.

“가주님, 무슨 일입니까?”

가장 먼저 도착한 태룡원 수석 원로인 홍철규는 태웅천의 앞에 서자 급히 물었다.

“저놈 보이느냐?”

태웅천이 가리키는 곳을 본 홍철규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 지금 저놈이 혼자 싸우고 있는 겁니까?”

“그래, 대단한 고수다. 오늘 저놈을 반드시 제압한다. 사지를 잘라도 상관없다. 하지만 죽이지는 말아라.”

“으억!”

“아아악!”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 또다시 두 명의 원로와 태룡무단 무사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죽어 나갔다.

“총공격한다.”

‘이제, 드디어 몰려 나오는군.’

악불군은 태룡세가의 무인들이 쏟아져 나오자 싱긋 웃었다.

이번 계획의 종점에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 * *

멀리서 악불군과 태룡세가의 결투를 보고 있던 당치웅은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조차 잠깐 잊을 정도로 경악하고 있었다.

물론 수십 명에 둘러싸여 공격을 받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들 전부가 동시에 공격할 수는 없었다. 무기를 든 장정이 가운데 있는 사람을 공격할 수 있는 공간은 세 명이 최대한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일이었다.

‘소문이 과장된 것이 아니라 부족한 것이었어……. 그런데 도대체 사문이 어디지? 저런 무공은 들은 적이 없는데…….’

당가가 망하고 간신히 살아남은 당가의 자손들은 영웅회에 일찌감치 가입했다. 당시 영웅회는 각 문파의 젊은이들을 골라 정파의 무공을 익히게 했다.

자파의 무공에 대해서만은 극단적으로 폐쇄적이었던 정파에서 절기를 하나씩 내놓은 것은, 그만큼 상황이 위기였기 때문이었다.

젊은 나이였던 당치웅은 당가의 적통으로서 선택받았고, 그 덕에 천하의 무공들을 수박 겉핥기식으로나마 익힐 수 있었다.

하지만 악불군의 무공은 분명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와는 완연히 다른 무공이었다.

경탄인지 탄식인지 모를 한숨을 살짝 내쉰 당치웅은 당치성을 보며 물었다.

“치성아, 악 방주의 무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거 놀랍다는 말 밖에는 할 것이 없습니다. 저 정도면 거의 무황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난 무황의 무공을 본 적이 있다. 악 방주가 강하기는 하지만 무황과 비교하기는 아직 모자라다. 하나, 무황의 나이는 이미 백 살을 넘었고 저 아이는 이제 겨우 이십이 넘은 것 같으니, 부족하다고 단정하기도 좀 애매하기는 하구나.”

“형님, 본 가의 중요 세력에 순위를 바꿔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당가는 자신들이 적으로 삼을 세력과 척을 지면 안 되는 세력, 그리고 반드시 친하게 지내야 할 세력으로 자세하게 분류해 놓고 있었다. 그것은 무림세가로서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작업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명단에 천호방은 들어 있지 않았다. 적아를 구분해 놓지 않았다는 것은,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친하게 지내야 할 세력에 두 번째로 올리도록 해라.”

“두 번째입니까?”

첫째는 당연히 천무성궁이었다. 그리고 소림사와 무당파 등 구파일방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신생 문파인 천호방을 천무성궁의 바로 뒷자리에 올리라는 것은 당치웅이 얼마나 감탄했는지를 방증하는 것이었다.

[가주님! 천호방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때 그의 귀에 당용의 전음이 들려왔다.

[뭐라고 왔느냐?]

[태룡세가의 방어 세력이 소수의 무사만 남겨 둔 채 정문 쪽으로 이동했다고 합니다. 일각 안에 공격하라고 했습니다.]

태룡세가는 거대한 크기를 자랑했지만 그만큼 많은 수의 경계 무사를 필요로 했다. 그런데 그들의 상당수를 정문 쪽으로 불렀으니, 지금 태룡세가의 경계망은 완전히 무너졌다고 봐도 될 정도였다.

[이 계획을 짠 자의 이름이 뭐라고 했지?]

[이름은 모르고 그냥 담 군사로 불러 달라고 했습니다.]

[너무 계획과 똑같이 흘러가니까 두려울 정도구나!]

[저도 명색이 책사라고 하지만, 이렇게 시간까지 거의 정확하게 맞추다니 소름이 끼칠 정도입니다.]

[엄청난 무공을 지닌 자를 그렇게 똑똑한 자가 보필한다면, 이것을 신생 문파라고 치부할 수 있겠느냐?]

[그녀는 우리가 배첩을 받은 이후 무엇을 가지고 고민했는지까지 다 짐작을 하는 듯했습니다.]

[용아.]

[예, 가주님.]

[천호방을 친하게 지내야 할 문파 두 번째 자리에 올리기로 했다.]

[……솔직히 저도 그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두 번째라니 놀랍기는 합니다.]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오늘 승리를 한다면 넌 즉시 천호방과 당가와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연구하도록 해라. 어쩌면 이번 일이 당가에게는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알겠습니다. 천호무적검과 담 군사 그리고 천호방에 대해 수집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모아 빠른 시일 안에 보고를 드리겠습니다.]

[그럼 공격 시작을 명해라.]

[예!]

당문만이 아니라 아미파와 청성파도 거의 비슷한 시각에 태룡세가의 담을 넘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