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검지애-263화 (263/472)

<천검지애 263화>

263화. 만남(2)

“저곳이 무당파의 본산인 상청각입니다.”

송죽 진인이 가리킨 곳에는 도대체 어떻게 건축했는지 신기할 정도로 높은 절벽에 세워진 거대한 전각이 보였다.

어찌나 높은지 절벽 아래로 구름이 깔릴 정도였다.

“햐아~ 정말 멋있고 아름답다.”

담수련은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터뜨렸다.

구파일방의 대부분의 본산을 파괴한 원나라도 상청각만은 감탄하여 파괴하지 말라고 했다는 소문이 거짓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앞에 보이긴 했지만 여전히 올라가는 길은 험했다.

좁은 절벽길과 작은 소로 그리고 바위 사이를 지나 도착한 곳은 끝없이 이어진 돌계단이었다.

여러 명의 도인들이 지키고 있는 계단의 옆에는 눈에 띄는 특이한 모양의 커다란 바위가 보였다.

해검지(解劍池).

바위에는 해검지라는 글자가 또렷하게 보였다.

무당파를 점령하고 있던 사이비 도사들을 모두 쫓아낸 무당파에서 가장 먼저 손을 본 곳이, 잡초로 덮여 버린 해검지를 다시 예전처럼 돌려놓는 일이었다.

“여기가 유명한 해검지로군요. 이곳을 오르려면 무기를 이곳에 풀어 놓고 가야 한다고 하던데, 그냥 옆에 놓으면 되는 겁니까?”

“보통은 무기를 풀어야 하지만, 관이나 군의 고위직이 방문했을 시와 장문인의 초청을 받은 무인들은 예외적으로 무기를 그대로 가지고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하분들은 무기를 풀어 놓고 가야 합니다.”

악불군은 흑석영을 보며 말했다.

“호법들은 이곳에서 기다리십시오. 저와 담 군사님만 들어갔다 오겠습니다.”

“예.”

대답한 흑석영이 스르르 사라지자 송죽 진인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오면서 계속 느꼈지만, 지금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그의 무공이 자신을 능가한다는 사실을 확신한 것이다.

‘저런 고수를 호법으로 데리고 다닌다……. 도대체 이 도우는 어떤 사람일까?’

송죽 진인은 무상 진인이 반드시 악불군을 데리고 오라고 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 * *

“천호무적검이 태웅천을 죽였다고?”

만통광심의 보고를 들은 구천마황은 고개를 갸웃했다. 태웅천의 무공은 그도 인정할 정도로 강했다. 그런 그를 이립도 안 된 젊은 악불군이 죽였다는 것에 경탄과 함께 의구심이 든 것이다.

“그 장면을 본 자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한밤중도 아니고 아직 해가 있는 술시에 공격한 것은, 자신을 내세우기 위해 한 것 같습니다.”

“이길 자신이 있으니까 그럴 수 있는 것이 아니냐?”

“심지어 당시 본 자들의 전언에 의하면, 태웅천 혼자만 상대한 것이 아니라 태룡원의 늙은이들 십여 명이 같이 합공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본 성의 장로와 호법들이 그 어린놈에게 판판히 당한 이유가 있었군.”

장로인 단대경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성주님, 주원장이 그놈을 무림십왕에 봉했다고 합니다. 감히 수십 년을 무황으로 불리며 절대자로 군림해 오신 성주님과 그 어린놈을 같은 급에 올려놓았다는 것은, 주원장이 무림을 물 먹이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꼭 그렇게만 생각할 일은 아닙니다.”

만통광심이 반박하자 단대경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군사는 지금 성주님과 그놈을 같은 반열에 올려놓은 것이 당연하다는 거요?”

“황상이 천호무적검을 십왕에 봉한 것은 대놓고 무림 일에 관여하겠다는 신호탄으로 보입니다. 현 무림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세 분 무황을, 천호무적검을 통해 견제하려는 속셈이지요. 솔직히 저도 처음에는 터무니없는 계획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번 사천에서의 상황을 보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통광심.”

“예. 성주님.”

“그럼 본 성이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느냐?”

“천호무적검을 이용해 무림맹의 남진을 막으면서 기회를 엿보는 것이 제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용해 먹는다는 생각은 하기 어렵게 됐습니다. 저희야 성주님과 감히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시중의 호사가들은 벌써 천호무적검을 무황과 동급으로 놓고 떠들고 있다 합니다.”

“감히 어떤 놈들이 그따위 헛소문을 퍼뜨린단 말이오!”

단대경이 다시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구천마황의 손짓에 급히 입을 닫았다.

“계속 말해 봐라.”

“예! 우선 가장 먼저 생각해 볼 일은, 본 성의 주적이 누구냐입니다. 전 본 성의 가장 큰 위협은 무림맹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정파가 아니라 무림맹입니다.”

“무림맹이 정파인데 무엇이 다른 것이냐?”

“정파는 저희들과 적대적인 상황을 유지하지 못합니다. 그들 하나하나는 본 성과 대적을 할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정파의 모임인 무림맹은 다릅니다. 그런데 천호무적검이 정파를 표방하며 무림맹에 가입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파가 분열할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호법인 광상오가 끼어들었다.

“군사, 같은 정파인데 오히려 힘을 합친다면 더 문제가 아니겠소?”

“무림맹과 천호방은 절대 힘을 합치지 못합니다. 물론 천호무적검이 스스로 무림맹의 밑으로 들어간다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무림십왕에 봉해지기까지 했는데 무림맹 밑으로 들어갈 사람이 있겠습니까?”

“무림맹에서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 준다면 가능하지 않겠소?”

“사문도 알려지지 않은, 이립도 안 된 젊은 천호무적검을 정파놈들이 대우해 줄 리 없습니다. 오히려 어떻게든 깔아뭉개려 들 것입니다.”

듣고 있던 구천마황이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물었다.

“정파 놈들의 특성상 네 말이 맞을 확률이 높긴 하지만, 그래도 너무 요행만 바라는 것은 아니냐?”

“저희가 그냥 구경만 한다면 그렇겠지만, 저희가 천호방과 우호적인 관계를 만든다면 요행이 아니라 확실한 무림맹을 견제할 세력이 될 것입니다.”

“정파를 표방했는데 마도인 우리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는다? 그게 가능하겠느냐?”

“천호무적검을 누가 보좌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가능하다는 것을 저희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저희의 요구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까? 정파이긴 하지만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느낀다면 본 성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이제이(以夷制夷)라……. 좋다. 복수는 십 년 후에도 갚을 수 있는 법, 잠시 그놈을 우대해 주도록 하지.”

구천마황들은 자신에게 방해되는 자들을 절대 그냥 놔두는 자가 아니었다. 잠시 악불군과 서로 건드리지 않기로 약속하긴 했지만 그건 말 그대로 잠시일 뿐, 기회가 나는 대로 제거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가 생각을 바꾼 것은 정말 드문 일이었다.

“천호무적검이 돌아왔다는 보고가 들어오면 제가 직접 만나 본 성의 뜻을 전달할 생각입니다.”

천하에서 가장 배타적이라 할 수 있는 구천마성조차 인정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그 영향력이 커져 가는 악불군이었다.

* * *

송죽 진인이 악불군과 담수련을 안내한 곳은 상청각 내에 있는 무릉원이었다.

그들이 들어가자 기다리고 있던 젊은 도인이 공손히 합장을 하며 말했다.

“원시천존! 어서 오십시오. 장문인께서 곧 오신다고 하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예.”

악불군과 담수련이 포권을 하자, 젊은 도인은 송죽 진인에게도 합장을 하더니 밖으로 사라졌다.

“이곳은 대단히 고풍스럽네요?”

담수련은 벽 사방에 그려진 아름다운 그림을 보며 신기하다는 듯 물었다.

“무릉원은 무당파의 전신인 무당선원 때 수많은 도인분들이 도를 익히던 장소였습니다. 저 그림은 무릉도원이라 불리는 신선거를 그린 것인데, 이곳에서 도를 닦으신 분들이 그림 속에 자신들의 심득을 숨겨 놓았다는 전설이 있는 곳입니다. 다행히 무당파를 점거하고 있던 사이비 도인들도 이곳만은 손을 대지 않았더군요.”

“그들도 이곳의 소중함을 알았던 때문이겠지요. 진인, 잠시 그림들 구경을 해도 되겠습니까?”

“당연합니다. 장문인께서 오실 때까지 마음 편히 구경하십시오.”

송죽 진인은 흔쾌히 승낙했다.

수많은 도인들이 심득을 그림 속에 숨겨 놓았다는 전설이 있기는 하지만 그들은 무림인이 아닌 보통 도인들이었고, 실제로 이곳에서 심득을 발견했다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무당파에서는 굳이 비밀로 하지는 않았다.

“방주님, 진짜 아름답지 않아요?”

천천히 그림을 감상해 나가던 담수련은 황홀하다는 듯 악불군을 보며 물었다.

“정말 아름답습니다.”

“세상에 정말 이런 곳이 있을까? 아니면 상상으로 그리신 걸까? 이런 곳이 정말 있다면 여기 가서 살고 싶다.”

네 개의 벽면은 사계절을 따로 묘사했고, 그 안에서 신선들이 말 그대로 신선놀음을 하는 모습을 세밀하게 그려져 있었다.

“송죽 진인.”

“예.”

“이 그림을 그린 분이 한 분이 아닌 것 같네요?”

“무릉도원의 전체적인 그림은 당나라의 이사훈이 그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신선들은 후대에 이곳에서 도를 닦던 분들이 자신이 염원하는 것을 담아 따로 그려 넣었다고 하더군요.”

“여기 그려진 신선분들이 전부 따로 그렸다는 말인데, 전혀 어색함이 없네요? 전부 재주들이 대단하셨던 것 같습니다.”

송죽 진인과 대화를 나누던 담수련은 악불군이 아무 말도 없이 그림만 뚫어지듯 쳐다보자 의아한 듯 툭 치며 물었다.

“뭘 그렇게 보세요?”

“여기 거문고를 타고 있는 신선 말입니다.”

“왜요?”

악불군이 가리킨 곳을 자세히 본 담수련은 특별한 점을 느끼지 못하겠는지 고개를 갸웃하며 반문했다.

“평호에서 소리를 내는 절벽 말입니다. 신선이 거문고를 타는 곳이 그곳 같지 않습니까?”

악불군의 말에 담수련의 눈이 반짝했다.

음율에도 상당한 조예가 있었던 그녀는, 분명 절벽 사이를 지나는 강한 돌풍에 의해 만들어진 소리였음에도 신기한 음율을 만들어 냈던 평호의 신비음(神秘音)을 계속 잊지 못하고 있었다.

“정말 그러네?”

거문고를 타고 있는 신선의 양옆에 서 있는 두 개의 봉우리는 분명 평호의 절벽과 비슷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뒤에 그려져 있는 높이가 들쑥날쑥한 봉우리들이 같이 그려져 있었다는 것이었다.

“세상에?”

봉우리를 살피던 그녀가 깜짝 놀라자 악불군이 의아한 듯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이 봉우리들이 평호에서 들었던 그 소리의 음율하고 똑같아.”

“원시천존! 사계무릉도에 관심이 이렇게 많으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때 도호와 함께 두 명의 노도인이 안으로 들어섰다.

“장문인이십니다.”

들어온 도인들을 본 악불군과 담수련은 송죽 진인의 말에 급히 포권을 했다.

“천호방의 악불군입니다.”

“담 군사입니다.”

“아주 잘 어울리는 두 분이구려.”

장문인인 청송 진인과 같이 들어온 노도인의 말에 악불군과 담수련이 쳐다보자, 송죽 진인이 급히 노도인을 소개했다.

“본 파의 최고 어른이신 무상 진인이십니다.”

순간 악불군과 담수련은 급히 허리를 살짝 숙이며 다시 포권을 했다.

무상 진인은 무림인을 떠나 많은 양민들에게 살아 있는 신선이라 불리고 있는 대단히 유명한 도인이기도 했다.

“노신선 어르신을 이렇게 뵙게 되다니, 정말 영광입니다.”

악불군이 공손하게 인사를 하자 무상 진인은 인자한 미소를 지며 말했다.

“내가 신선이 아니라 두 분 도우야말로 선남선녀 같습니다. 우선 앉으십시다.”

모두가 앉자 송죽 진인이 장문인에게 합장을 하더니 물러났다. 그의 임무는 여기까지였던 것이다.

천하의 무당파의 장문인과 최고 어른과의 만남.

이것은 실로 대단한 파격이었다.

“어르신들께서 나이도 어린 제게 존대를 하시니 제가 너무 불편합니다. 편하게 내려서 말씀해 주십시오.”

“그래도 한 문파를 책임지고 있는 장이신데 어찌 말을 놓겠습니까?”

“오늘 이곳에 온 것은 천호방의 방주가 아닌 악불군이라는 개인 자격으로 온 것입니다. 두 분 어르신께 도에 대한 가르침을 받으러 온 중생의 한 명이라 생각하시고 말씀하십시오. 그래야 저희도 어르신들께 편하게 마음속에 있는 말까지 다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마음속에 있는 말까지 다한다는 말에 무상 진인은 청송 진인을 보며 말했다.

“악 방주가 이렇게 말하니 그렇게 하도록 하시지요.”

“원시천존! 빈도가 사숙님의 말을 따르기를 아주 잘한 것 같습니다.”

뭔가 흡족한 듯 무상 진인에게 먼저 말을 한 청송 진인은 악불군을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악 방주.”

“예.”

“빈도가 악 방주를 초청한 이유를 아시겠소?”

순간 담수련의 눈에 이채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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