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검지애-264화 (264/472)

<천검지애 264화>

264화. 무당(1)

무당파의 장문인이라는 지위는 절대 가볍지 않았다. 그런 그가 단도직입적으로 초청한 이유를 거론한다는 건, 분명 좋은 이유 때문이라는 의미였다.

“무당파의 도를 배울 수 있는 기회라는 마음으로 온 것인지라, 왜 초청하셨을지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악불군의 대답에 청송 진인의 얼굴에 의외라는 표정이 나타났다. 무당파의 장문인이 초청했는데 왜 그랬을지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 누구라도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악불군의 눈을 보니, 진짜일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원시천존! 허허허~ 빈도가 적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 봤지만, 악 방주처럼 보는 것만으로 신뢰를 주는 사람은 처음 보네.”

청송 진인의 말투가 존대에서 하오체로 변하더니 곧장 반말로 바뀌었다. 악불군을 무시하는 의미로 하는 반말이 아닌, 마치 손주를 대하는 듯한 친근감의 표현이었다.

악불군도 그가 자신에게 호감을 느꼈음을 보여 주자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르신 말씀을 듣고 보니 갑자기 초청하신 이유가 궁금해지고 있습니다. 가르침으로 생각하고 경청하겠습니다.”

잠시 생각을 하던 청송 진인은 무상 진인을 한 번 보더니 입을 열었다.

“원나라와 태양천에 밀려 중원의 주도권을 이민족에게 넘긴 세월이 일 갑자가 넘는다네. 이제 간신히 원나라를 북쪽으로 밀어내고 새로운 세상을 열기 시작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을 무당에서는 하고 있다네.”

“저도 강호행을 하다 보니 정의가 필요한 곳에 정의가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럼 악 방주는 지금 무림의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나?”

잠시 생각하던 악불군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솔직히 본 방의 모든 업무는 여기 계신 군사님의 지휘하에 처리되고 있습니다. 그 질문에 대해서는 담 군사께서 말하도록 해도 되겠습니까?”

“담 군사의 생각과 악 방주의 생각이 조금도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겠나?”

“다르다면 전 담 군사의 생각을 따릅니다.”

악불군의 답에 담수련을 쳐다본 청송 진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자신 스스로보다 더 믿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은 실로 홍복이라고 할 수 있지. 그래, 담 군사가 한 번 말해 보시게.”

“감사합니다, 진인. 제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무림맹은 대단한 전력을 갖추었습니다. 하지만 큰 불안 요소도 같이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청송 진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담수련은 말을 이어 갔다.

“우선 지금이 새로운 천하가 열린 시기라는 것입니다. 황상으로서는 황권에 위협이 될 세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눈엣가시처럼 느끼실 것입니다. 거기다 태양천도 아직 건재하고 구천마성과 혈해사계는 계속 세력을 불리고 있지만, 무림맹에서는 그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아직 결정하지 못한 상태이지요.”

“현 무림의 상황상 무림맹을 창설한 것은 불가피한 면도 있었다네. 그리고 마도와 사파에 대한 대비책도 지금 다 준비하고 있다네.”

“만약 그 대비책이 전쟁이라면, 어르신께서는 찬성하시겠습니까?”

청송 진인의 답이 잠시 멈췄다.

무림맹에서는 지금 강경파와 온건파 간에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전쟁 문제였다.

무당파를 비롯한 구파일방은 대부분은 온건파에 속했다. 무당파만 해도 이미 예전에 가지고 있던 세력과 지분을 대부분 복구한 상황이었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를 비롯한 대문파들은 영웅회의 주축이었고, 무림맹으로 변신한 지금도 큰 지분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예전 세력을 그대로 물려받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에 새로운 전쟁은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주축 세력일 뿐, 다수 세력은 중소 문파였다.

예전 중소문파의 세력은 사파와 마도에 의해 장악되어 있었다. 그들이 그것을 다시 되찾기 위해서는 마도와 사파 세력을 일소해야 했지만, 그들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했다.

결국 그들은 무림맹에서 그들을 제거해야 한다는 강경론을 펼쳤다. 하지만 무림맹에서 그들을 제거하려 한다는 소문이 퍼지면 즉각적으로 구천마성과 혈해마계을 자극하게 될 것이었다.

그래서 무림맹에서 일성으로 외친 것이 바로 부역 세력의 일소였다. 많은 부역 세력들이 마도와 사파이니, 그것을 명분으로 그들을 제거할 생각을 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조차 어느 선까지를 부역자로 특정하느냐는 문제로 아직까지 논쟁 중이었다.

“무당은 최대한 피를 보지 않고 천하가 안정되기를 바란다네.”

“어르신께서 방주님을 초청하신 이유가 바로 그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 말에 청송 진인은 담수련을 놀란 표정으로 보다니 무상 진인을 보며 말했다.

“사숙께서 직접 얘기하시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무상 진인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갑자기 화제를 바꾸었다.

“아까 물었지만 다시 한 번 묻겠네. 사계무릉도에서 무엇을 발견했기에 그리 놀랐느냐?”

“사실은 방주님께서…….”

담수련은 그림에서 악불군이 발견한 것에 대해 선선히 말해 주었다.

“허허허~ 수백 년 동안 이곳에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지만 아무도 여기서 무엇인가를 발견한 사람이 없었는데, 정말 대단하구먼!”

“그냥 장소가 같다는 것과 거기서 들은 소리와 봉우리의 높낮이의 음율이 비슷하다는 것 정도인데, 대단할 것까지야 있겠습니까? 그냥 우연이지요.”

“우연이 아니라 빈도는 인연이라 생각한다네.”

상대와 빨리 친해지는 방법 중 하나가 인연으로 엮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연히 길에서 만나면 ‘이것도 인연인데!’라는 말을 꺼내는 것도 그 이유였다.

“무당과 인연이 있다면 저희들로서는 정말 영광이지요.”

“무릉사계도는 선인들의 심득이 숨겨져 있다는 소문은 들었나?”

“송죽 진인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악 방주가 여기서 어떤 기연을 만난 것인지도 모르는데, 그걸 이렇게 말해 주는 이유가 뭔가?”

무림인들은 기연을 만나면 사제(師弟)지간에도 말하지 않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이곳이 무당파이고 그림 역시 무당파의 선인들이 남기신 것인데, 이곳에서 뭔가를 느꼈다면 말씀드리는 것이 당연한 도리 아니겠습니까?”

악불군의 말에 무상 진인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세상이 평화롭기 위해서는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풍토가 조성되어야 하지만, 생각 외로 그런 사람이 참 드물다네.”

악불군의 마음에 흡족한 미소를 지었던 무상 진인은 다시 얼굴을 진중하게 바꾸며 다시 말했다.

그의 인성까지 마음에 든 무상 진인은 본격적으로 본론을 시작할 생각이었다.

“원나라에 중원이 정복을 당하기 전, 천하는 혼란의 연속이었네. 특히 무림은 정말 아비규환이었지. 정파와 사파, 정파와 마도 심지어 정파와 정파끼리도 자신들의 욕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살인을 서슴지 않았다네.”

“저도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구파일방에서는 그 상황에 큰 의구심을 품었네. 그리고 암중에서 무림을 분열시키고 이간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네.”

“그런 세력이 존재했다는 말입니까?”

악불군과 담수련은 놀란 듯 물었다.

“아는 사람은 꽤 있지만 아무도 입 밖으로 내지는 않고 있다네. 이유가 뭔지 아나? 그들의 실체를 알 수가 없어서였네.”

“어르신, 근래 정체를 알 수 없는 조직이 무림에 있다는 것을 감지했는데 그자들이 아닐까요?”

담수련은 무언가 생각난 듯 반문했다.

“무림 전체에 퍼져 있는 암중 세력이 있다는 것은 무림맹에서도 알고 있다네. 제갈 군사는 그들이 천년마교와 연관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지만, 빈도가 말한 그들은 다른 세력이네. 그들은 인간의 욕망을 자극해 끊임없이 중원을 분열시켜 왔다네. 그나마 원나라가 중원을 정복한 후 얼마간 그들은 숨을 죽이고 숨어들었네. 하지만 곧 다시 마각을 드러내며 이번에는 원나라 황실과 태양천까지 반목하게 만들었다네. 무당은, 원나라가 망조가 든 것도 그들 때문이라고 믿네.”

“아니, 그렇게 오랫동안 천하를 무너뜨리려고 했다면 어느 정도 단서는 있지 않을까요?”

“그들은 너무 은밀하고 천하 곳곳에 퍼져 있다네. 지금 악 방주가 이렇게 명성을 얻으면서 승승장구를 하고 있지만, 그것은 그들이 아직 악 방주를 용인하고 있기 때문이라네. 만약 그들이 악 방주가 자신들에게 위험하다고 판단하면 그때부터 공격이 시작될 걸세.”

“어떤 자들이건 본 방을 건드린다면 후회할 것입니다.”

“그들이 직접적으로 공격한다면 가능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들의 공격에는 실체가 없다네. 아주 조금씩 사람들에게 의심을 심어 주어, 결국에는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서 등을 돌리게 하는 수법을 사용하기 때문이라네.”

듣고 있던 담수련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 자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면, 어찌 아직까지 그들을 그냥 놔두셨습니까?”

“그들을 잡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오히려 그들에게 역공을 당해 많은 무림 명숙들이 죽거나 매장을 당했지. 우린 우리들 안에 그들을 돕는 간세가 있다고 판단을 할 수밖에 없었다네.”

“우리란 누구를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탕마회라네.”

“탕마회요?”

“영웅회의 전신 같은 곳이지. 탕마회는 백 년 전에 전 무림을 공포에 몰아넣은 혈우대마종을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었네. 당시 혈우대마종에 의해 정파는 물론 마도와 사파까지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네. 그래서 그를 죽이기 위해 전 무림이 힘을 합친 세력이 바로 탕마회라네.”

혈우대마종이란 말에 악불군은 온몸에 전율이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전 무림이 단 한 사람을 상대하기 위해 뭉쳤다니, 정말 놀랍군요.”

“혈우대마종에 대해 듣지 못했나?”

“제가 강호 견문이 좀 짧습니다.”

“악 방주의 견문이 짧아서가 아니라네. 혈우대마종에 대해 말하는 것 자체가 오랫동안 금기시되었고, 이젠 그를 아는 사람들이 거의 죽었으니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들도 꽤 많긴 할 걸세.”

“그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당시 무림 최고의 고수 백여 명과 지금은 무황으로 불리던 네 명의 절대 고수의 합공에 결국 그도 죽었다네.”

“엄청난 싸움이 벌어졌겠군요?”

“대단했을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 싸움에 참가한 무당의 어른들도 이후 그 얘기를 하지 않아. 나도 자세한 것은 모른다네.”

“그렇군요……. 그럼 탕마회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탕마회는 정파만이 아니라 마도와 사파까지 통합된 거대 조직이었네. 하지만 혈우대마종이 죽은 후 탕마회는 급속도로 무너져 갔네. 아니, 오히려 무림은 더 극한의 갈등 상황으로 빠져 천하가 아비규환이 되다시피했지.”

“그것도 그들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믿으시는군요?”

“당시 정파의 어른들은 너무 나빠지는 상황을 보며 이상함을 느꼈네. 어제까지 친구였던 자들이 오늘은 적이 되는 형국이니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어. 그래서 남은 정파끼리 영웅회를 조직해서 그들을 쫓기 시작했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정파 안에서도 서로를 간세라고 힐난하며 의심하기 시작했네. 아마 원나라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정파까지 완전히 찢겨 무림이 멸망했을지도 모른다네.”

“많은 사람들이 원나라에 저항하기 위해 영웅회가 만들어진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군요?”

“원나라의 침공이 어쩌면 무림에게는 다행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어른들이 했었다네.”

악불군과 담수련은 생각지도 못했던 전대의 비화를 듣자 상당히 격동하고 있었다.

“그들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그런 짓을 벌이는지는 모르겠지만, 혈우대마종이나 칭기즈 칸의 출현은 생각 못 한 것 같네요.”

담수련의 말에 무상 진인은 의아한 듯 반문했다. 그들 역시 비밀 세력과 혈우대마종 그리고 원나라와의 연관관계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담 군사는 무엇을 보고 그런 생각을 했는가?”

“만약 혈우대마종과 그들이 한패라면, 탕마회가 만들어지도록 가만있을 자들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같은 맥락으로, 무너질 뻔한 영웅회가 다시 원나라의 저항 세력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 것도 마찬가지고요.”

담수련의 말에 무상 진인과 청송 진인은 감탄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악 방주가 담 군사를 왜 그렇게 믿나 했더니, 이유가 있었구먼.”

“그런데 몇 가지 의아한 점은 있습니다.”

“무엇인지 말해 보게.”

“그 전에, 이런 얘기를 방주님을 초청까지 하셔서 말씀하시는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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