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검지애-265화 (265/472)

<천검지애 265화>

265화. 무당(2)

“구파일방의 원로들은 계속되는 혈겁을 조장하는 그자들을 잡기 위해 따로 조직을 만들었다네. 물론 무림맹과는 다른 별개의 조직으로, 무림의 세력권이나 이권에는 절대 관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지.”

무상 진인이 말을 멈추고는 악불군과 담수련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담수련이 그 말의 의미를 짐짓 모른 척 물었다.

“설마 그 조직에 방주님께서 들어가기를 바라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우리에게는 그들을 추적할 능력이 없다네.”

“구파일방에서 능력이 없다고 말씀하시면 누가 믿겠습니까?”

“믿을 만한 후기지수들 중에는 악 방주만 한 무공을 지닌 아이가 없고, 제법 무공이 높은 원로들이나 중진 무인들은 믿을 수가 없으니, 능력이 없다고 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설마, 무림맹도 믿지 못하시는 겁니까?”

“딱 한 번 그들의 실체에 다가갔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네. 그때, 영웅회의 간부 중 한 명이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를 배후로 지목했다네. 그 간부는 어찰단의 일급 수배에 오를 정도로 중원 무림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은 자이기에, 모두들 그의 말을 사실이라 믿었지. 그 탓에 사방에서 비난이 쏟아지자, 지목당한 친구는 자신의 결백을 보여 주겠다며 태양천의 본거지를 뛰어들어 죽었다네.”

“그자가 비밀 세력의 사주를 받은 것이었습니까?”

“처음에는 우리도 드디어 단서를 잡았다고 생각했지만, 놀랍게도 그는 아무것도 몰랐어. 심지어 자신이 친구를 음해한 것조차 영웅회를 위한 읍참마속의 결단이라고 알고 있었지.”

“그런 생각을 심어 준 사람이 있었을 것 아니겠습니까?”

“그는 끝까지 누구에게 그런 말을 들었는지 말하지 않았고, 얼마 안 가 스스로 자결하고 말았다네.”

“제갈 군사님도 알고 계신가요?”

“정파인 중 제갈 군사에게 비밀로 한 채 무언가를 획책한다는 것은 아마 불가능할 걸세.”

“제갈 군사님께서 알았는데 그들을 못 잡는 이유는, 그들이 진짜로 실체가 없어서가 아닐까요?”

“제갈 군사가 처음 우리 말을 들었을 때, 담 군사가 말한 대로 반응을 보였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더니, 지금은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네. 다만 그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조직과는 상당히 다를 것이라고 말했지.”

“진짜 있다면 그럴 것 같네요.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은밀하다면 저희들은 어떻게 믿으시나요?”

“사해 도우께서는 악 방주가 처음 강호행을 할 때부터 눈여겨보았다고 하네. 그리고 악 방주만은 아직 그들과 어떤 접촉도 없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네.”

“그런 자들이라면 사해 어르신도 얼마든지 속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생각은 안 하시나요? 아니면 모르고 속으실 수도 있고요.”

담수련은 자신들도 믿을 수 없다는 점을 오히려 강조하고 있었다.

“그럴 수도 있겠지. 다만 아니기를 바랄 뿐이네.”

“만약 제가 그들을 추적하는 데 최선을 다해 돕는다면, 나중에 제가 무림맹과 척을 지는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구파일방에서 제 편이 되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무상 진인과 청송 진인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이미 무림맹에 가입한 그들로서는, 무림맹과 척을 질 수도 있다는 악불군의 물음은 답을 주기 매우 곤란한 것이었다.

“……정파를 표방한 천호방이 무림맹과 척질 이유가 있겠느냐?”

무상 진인은 조심스럽게 반문했다.

“방금 말씀하셨듯이 분열과 이간을 하는 조직이라면 저와 무림맹 사이를 이간질할 확률은 다분하다고 봅니다. 제가 먼저 무림맹과 척지는 행동을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무림맹도들 중 협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자들이 있다면 저로서는 징치할 것입니다. 그럼 그들에게는 아주 좋은 명분이 되겠지요.”

악불군의 말은 상당히 일리가 있었다.

“그럼 우리가 악 방주를 지지할 명분은 줄 것인가?”

“저는 오직 무림 정의에 부합된 행보를 걸을 것입니다. 또한 강호의 도리가 아닌 인간의 도리를 따를 것이며, 약한 자를 돕고 불의한 자를 징치할 것입니다. 그것이 명분이 안 된다면 저도 방법이 없겠지요.”

말을 듣고 있던 담수련이 끼어들었다.

“방주님의 말씀은 원론적입니다. 아무리 방주님께서 올바른 행동을 한다 해도, 그들이라면 얼마든지 왜곡이 가능할 것입니다. 특히 방주님의 과거나 방주님이 보호하는 사람들에 대한 공격도 있을 수 있습니다. 방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명분이 올바를 때만이 아니라, 오해할 소지가 다분하더라도 무당에서 옹호해 달라는 것입니다.”

심각한 표정을 짓던 무상 진인이 청송 진인을 보며 말했다.

“이 문제는 빈도보다는 장문인의 의중이 중요할 것 같네.”

문파의 명예와 존립까지 걸릴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무상 진인이 아무리 문파의 최고 어른이라 해도 결정은 결국 장문인의 몫이었다.

청송 진인 역시 즉답을 하지 못하자 무상 진인이 한마디 더 부언했다.

“하지만 무당파의 원로로서 의견을 피력한다면 빈도는 악 방주를 믿고 싶네.”

“장문인으로서 최고 원로이신 사숙님의 의견을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악 방주를 믿고 싶군요.”

청송 진인의 말에 담수련의 얼굴에 기쁨의 미소가 떠올랐다. 또 하나의 언덕을 넘은 것이다. 거기다 무당파의 영향력은 사천의 삼파와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보통 언덕이 아니라 대단히 높은 언덕을 넘은 순간이었다.

* * *

사도비류는 동굴 하나를 찾더니 갑자기 옷을 벗기 시작했다.

금지마공인 혈독불사마공은 그에게 거의 불사신에 가까운 신체를 부여하기는 했지만, 괴물 같은 모습으로 변하게 했다.

너무 눈에 띄는 모습에 그는 사람들의 발길이 없는 산길을, 그것도 밤에만 이동하여 간신히 감숙을 벗어났다.

배고픔은 산짐승을 잡아 채웠다. 하지만 한 달에 한 번 예외 없이 나타나 그를 괴롭히는 고통은 도대체 적응이 되지 않았다.

동굴 바닥에 누워 고통을 견뎌 내던 그의 피부가 뱀 허물 벗듯 벗겨지기 시작했다.

고통스러웠지만 피부가 벗겨지고 새로운 피부가 나오면 그의 신체는 더욱더 강해졌다.

혈독불사마공의 시술이 끝난 후 첫 번째 싸움에서는, 검에 맞거나 하면 몸에 상처가 생겼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 무기도 그의 몸에 생채기 하나 내지 못했다.

혈해사계와의 전투에서 극심한 내공을 입고 간신히 도망을 친 그는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내상을 입고 다 해어진 내장조차 혈독불사마공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보름간의 시간이 지나자 보통 사람이라면 죽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내상이 저절로 나았고, 내장이 피부처럼 강해진 것을 느꼈다.

이런 식이면 그는 싸우면 싸울수록 더욱 강해질 것이고, 어느 순간부터는 완전 불사의 괴물로 변할 것이 분명했다.

“악불군……. 내 반드시 네놈을 잘근잘근 씹어먹어 줄 것이다. 그리고 담수련 너는 내 노예가 되어 나를 평생 떠받들며 살아야 할 것이야!”

지금 그를 지탱해 주는 힘은, 자신을 이렇게 만든 악불군에 대한 원한과 담수련을 반드시 차지하고 말겠다는 어긋난 욕망이었다.

허물을 다 벗고 옷을 입던 그의 귀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도비류, 지금 네 몸의 상태로는 아무것도 못한다.”

“웬 놈이냐!”

이미 어떤 무기도 두려워하지 않는 그는 조금의 방비도 하지 않고 그대로 밖으로 뛰쳐나갔다.

순간 사도비류의 표정이 변했다.

그의 앞에는 두 명의 장한이 메고 있는 가마가 있었다. 그의 이름을 아는 것을 보면 오래전부터 그를 따라다닌 것이 분명한데, 가마까지 매고 한 번도 그에게 들키지 않고 따라왔단 사실에 놀란 것이다.

“혈독불사마공은 천 명을 시술해야 한 명이 간신히 살아남는다고 들었는데, 넌 살아난 정도가 아니라 매우 성공적이구나.”

가마 안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사도비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자신에게 혈독불사마공이 시술된 것을 아는 사람은 마룡세가에서도 극소수였다.

“흥! 웬 놈인지는 모르지만, 혈독불사마공에 대해 안다면 지금 내 앞에 나타난 것이 얼마나 실수인지도 알겠구나!”

마룡세가가 멸문한 이상, 사도비류는 상대가 어떻게 세가의 극비를 알고 있는지는 신경 쓰지 않았다. 죽이면 끝이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보니 심지는 꽤 강하구나. 하긴 네가 벌인 악행은 감숙에서는 아주 유명했지.”

“어디, 죽어 가면서도 입을 놀릴 수 있나 두고 보자.”

공격하기 위해 앞으로 다가가던 사도비류의 얼굴이 살짝 변했다. 가마가 그가 움직인 거리만큼 뒤로 물러난 것이다. 그런데 가마꾼들의 움직임이 전혀 없었다.

‘이것 봐라? 일개 가마꾼 놈들의 무공이 보통이 아닌데?’

사도비류는 놀라기는 했지만 그것뿐이었다. 혈해마계의 초절정 고수 다섯 명의 협공을 받았지만 내상을 입었을망정 그의 몸에는 상처 하나 나지 않았었다.

자신이 다치지 않는 이상 어떤 싸움도 두려울 이유가 없었다.

“사도비류, 난 지금 너와 싸우려고 온 것이 아니라 네게 좋은 조건을 제시하기 위해 온 거다. 지금 네 몰골을 봐라. 그런 식으로 언제까지 살 생각이냐? 사람들이 너를 보면 아마 괴물이 나타났다고 다 죽이려고 들 거다.”

“이, 이놈이!”

사도비류가 가장 분노하는 말이 바로 자신을 괴물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네가 우리의 조건을 따른다면 넌 예전과 같은 생활을 할 수 있다. 네게는 하인과 하녀가 따라붙을 것이고, 네 음욕과 살욕을 충족시킬 여자들도 제공해 주겠다.”

‘도, 도대체 이놈들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야?’

남자 구실을 못하게 된 그는 변태적인 행동과 살인으로 그 욕망을 채우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아는 사람들 역시 그를 호위하는 무사 몇 명만 아는 극비였다.

사도비류는 자신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가마 안의 인물에 대해 흥미가 생겼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그는 호화 생활만 하며 자라온 자였다. 마룡세가가 멸문한 후 한 달여간 짐승 같은 삶을 살면서 그는 몸과 마음이 피폐해짐을 느끼고 있었다.

“정말 그렇게 해 줄 수 있단 말이냐?”

“물론이다.”

“그럼 내게 바라는 것은 무엇이냐?”

“복종.”

“나 보고 너의 수하가 되라는 것이냐?”

“다른 일은 시킬 일이 없으니 굳이 수하라고 할 것까지는 없다. 그냥 우리가 누구를 죽이라고 하면 무조건 죽이기만 하면 된다.”

“죽이기만 하면 된다고?”

태어나면서부터 사람들과의 공감이 떨어진 그는 잔인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남자 구실을 못하게 된 이후 그의 유일한 취미는 살인이었다.

그런 그에게 죽이기만 하면 된다는 제안은 거절할 수 없는 유혹일 수밖에 없었다.

“좋다! 제안을 받아들이겠다.”

사도비류가 승낙하자 가마꾼 한 명이 크게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눈앞에 있는 가마와 똑같이 생긴 가마를 멘 두 명의 가마꾼이 나타났다.

“가마에 타라.”

“꼭 타야만 하는 거냐?”

“그 몰골로 그냥 따라오면 사람들이 가만있겠느냐?”

사도비류는 반박할 말을 못 찾고 그대로 가마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두 개의 가마는 남쪽으로 사라졌다.

도검이 불침할 정도로 점점 마물화되고 있는 사도비류에게 정체 모를 힘이 더해졌다.

그리고 그것이 악불군과 담수련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아직 누구도 몰랐다.

* * *

“아가씨,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계십니까? 혹시 걱정이라도 있으십니까?”

무당파까지 원하는 결과를 얻었으니 이번 외유는 대단한 성공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당연히 크게 기뻐해야 할 담수련이었지만, 그녀는 이틀째 계속 뭔가 생각에 잠겨 말도 별로 하지 않고 있었다.

“일이 잘 예상보다 훨씬 잘됐는데 걱정할 일이 뭐가 있겠어. 다만 무상 진인 어르신이 말한 그 이상한 세력 말이야.”

“예.”

“소군 생각에 진짜 존재할 것 같아?”

“아가씨 생각에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으십니까?”

악불군도 그들의 존재에 대해 계속 생각해 왔는지, 오히려 반문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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