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검지애 266화>
266화. 암중 세력(1)
담수련은 잠시 생각하더니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남이 잘되면 견디지 못하는 질시와 남들보다 더 위로 올라가기 위해 하는 모함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욕망 중 하나야. 다만, 무상 진인 어르신이 말씀한 조직은 뭐가 목적인지 모르겠어.”
담수련이 계속 고민한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어떤 일을 벌일 때 이유가 없을 수도 있었다. 그저 재미로 살인을 하는 살인마들이 같은 경우였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단발성으로 일어난다. 무상 진인이 말한 자들처럼 긴 시간에 걸쳐 천하를 상대로 그런 일을 꾸민다면 분명 이유가 있어야 했다.
“만약 사실이라면 그들은 무림맹을 능가하는 방대한 조직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또한 그런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도 필요할 것입니다.”
“그렇지? 어르신 말이 맞다면 이들은 그 뿌리가 굉장히 길어. 그런데 이간과 분열로 천하를 어지럽히기는 하지만 막상 그들이 무엇을 얻었는지는 나타난 것이 없어. 그럼에도 제갈 군사 같은 분이 그들의 실체를 인정했단 말이야. 이상하지 않아?”
“그럴 만한 정황이 발견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럼 소군은 그 조직이 있다고 보는 거야?”
“전 언제나 아가씨 생각을 믿습니다.”
뜬금없는 말에 담수련은 피식! 웃으며 반문했다.
“내 생각이 뭔데?”
“있을 것 같지 않은 조직, 그러나 믿을 만한 분들이 있다고 하는 조직. 아가씨라면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는 상관없이 두 경우를 다 상정해 계획을 짜시겠지요.”
악불군의 말에 담수련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곧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만들어졌다.
‘내가 오래 살 수만 있다면 소군하고 같이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 수 있었을 텐데……. 너무 아깝다.’
악불군이 너무 정확하게 그녀의 생각을 맞추자 처음에는 놀랐지만, 곧 그와 자신이 정말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생각을 그가 읽고, 그의 생각을 그녀가 읽으며 의견이 다른 적이 한 번도 없으니, 진정한 천생연분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너무 정확하게 맞추네. 내가 소군의 군사가 된 이상 모든 상황에 대비하는 것이 필요해.”
“그래도 잠은 주무셔야지요. 밤이 꽤 깊습니다.”
악불군의 말에 슬쩍 하늘에 뜬 달을 본 담수련은 시름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달도 밝으니까 초저녁 같아. 그리고 마음도 불편해서 그런지 잠도 안 오네.”
“무슨 계획을 세우셨기에 잠이 안 올 정도로 마음이 불편하신 겁니까?”
“계획이라기보다는 대비라는 것이 맞을 거야. 그자들의 행태가 사실이라는 가정하에 대비책을 생각해 보았더니, 갑자기 소군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을 의심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잖아. 그러니까 마음이 좀 불편하네.”
“제가 그자들과 한편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녀의 마음을 풀어 주기 위해 악불군은 슬쩍 농담을 던졌다.
“소군 말대로라면 내가 그자들과 한편일 수도 있겠네? 그런데 이거 알아? 내가 소군을 의심할 이유가 없는 것은, 소군이 그런 자들과 한편이 될 기회도 없었고 그럴 사람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서가 아니야. 진짜 소군이 그자들 편이라면 난 자동적으로 그자들 편이 될 거니까 의심할 필요가 없는 거야.”
어떤 상황이 되더라도 무조건 자신은 소군을 따를 거라는 우회적인 표현이었다.
“저야, 제 운명이 무조건 아가씨를 보호하고 따르는 것이니 저 역시 아가씨께서 누구의 편인지는 상관이 없습니다.”
또다시 중요한 얘기가 달달한 대화로 빠지는 둘이었다.
그리고 그런 둘을 커다란 보름달이 사랑스럽다는 듯 비춰 주고 있었다.
* * *
커다란 군막에 마련된 태양천 총단.
“몇 명이나 남았느냐?”
태사의에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던 대공은 그의 심복인 철재평이 들어서자 물었다.
“태 전왕과 야 전왕 그리고 율 전왕만 남으셨습니다.”
순간 대공의 표정이 참담하게 변했다.
천하에서 가장 강한 자로 불리고, 그 스스로 책사가 필요 없을 정도로 똑똑해 세상을 손아귀에 넣고 주무르던 그였다.
그런 그조차도 당황할 정도로 작금에 벌어지는 상황은 도대체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징기스칸을 보좌한 열 개의 부족은 피로 묶인 단결된 힘으로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다. 그들은 황실과 군부 그리고 태양천까지 모든 것을 장악하고 천하를 다스렸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균열은 너무 은밀하고 천천히 일어나,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던 대공조차도 눈치를 채지 못했다.
그리고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다시 조직 다지기에 나섰지만, 이미 감정의 골이 깊어져 어떤 미사여구도 그들의 마음을 돌리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대공은 강력한 무공을 바탕으로 강압적인 수단을 발휘하여 그들을 일시적으로 잡아 두었지만, 태양천의 모든 전력은 오합지졸이 되다시피 했다.
그 이후 대공의 명령이 제대로 시행되는 경우가 없었다. 모두가 자신의 전력을 보호하려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대공은 다시 강력한 경고를 구대전왕에게 보냈다. 더 이상 명령을 듣지 않는다면 전왕일지라도 용서치 않겠다는 경고를 보낸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예 그들이 짐을 싸고 떠나 버렸다.
평상시 같으면 당장 수하들을 동원해 모두를 제압했겠지만 이번은 그럴 수가 없었다. 한두 명이 아니라 반 이상이 거역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대공이 그들을 막는다면 원나라는 완전히 분열되어 내전이 벌어지게 되는데, 급박한 지금 상황에서 그것은 최악의 결과가 될 것이 분명했다.
“겨우 삼 전왕만 남았다는 것이냐?”
“죄송합니다.”
철재평은 고개를 숙였다.
“네가 죄송할 것은 없지. 우선 삼 전왕만이라도 들어오라 하고, 선 장로들을 소집해서 장로원에서 기다리게 해라.”
대공은 지금 철무정도 구해야 하는 등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선 장로는 전대 천주 때부터 활동했던 전대 장로를 일컫는 말이었다.
떠난 전왕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그들보다 윗대인 선 장로만 한 적임자가 없었다.
그런데 대공의 명을 받은 철재평이 갑자기 부복을 하며 머리를 바닥에 댔다.
“천주님. 저를 죽여 주십시오.”
대공은 뜻밖의 행동을 하는 철재평을 보자 뭔가 있다는 것을 직감하고는 딱딱해진 목소리로 반문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오 년 전 태양천 학사들과 술자리를 갖던 중, 한 학사로부터 이상한 말을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용이 너무 터무니없고 그도 지나가듯이 말한 것이어서 천주님께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한데, 지금 상황을 보니 그때 천주님께 보고를 해야 했습니다. 죽여 주십시오.”
“무슨 말을 들은 것이냐?”
“그 학사의 말이, 천하에서 올라오는 정보를 분석하던 중 이상한 점이 발견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도저히 실체를 찾을 수가 없어. 진짜 이상한 것인지 자신도 가늠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자세히 말해 봐라.”
“황실과 태양천 심지어 군부까지 음해성 투서가 빈번하게 들어오고 있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투서는 익명이었기에 위까지 보고되지 않고 중간에 폐기되는 것이 정상이었지만, 이상하게 그 투서들은 위까지 보고되었다고 합니다. 더욱이 그 투서들은 대부분이 사실로 밝혀졌지만 솔직히 벌을 주기도 어려울 정도로 사소한 일이었다고 합니다.”
대공의 눈에 이채가 나타났다. 뭔가 직감적으로 느껴진 것이 있어서였다.
“사소한 일들이 누적되면서 모두에게 불신이 생겼겠구나?”
“그 학사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더구나 누군가 그 투서 내용을 확대 재생산하면서 분열을 더욱 가속화한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천주의 자리까지 노리는 자들이 있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 학사는 어디에 있느냐?”
“그게, 저도 갑자기 그 말이 생각나 그 학사를 찾았는데, 자살한 것으로 보고되어 있었습니다.”
“태양천의 학사가 자살을 했단 말이냐? 시신은 확인했느냐?”
“자살한 지가 꽤 되어, 시신이 있었는지 왜 자살로 판명했는지 등은 알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대공의 머리가 빠르게 철재평의 말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별거 아닌 일로 치부해 지나간 일을 오 년이나 지나서 갑자기 머리에 떠올린 이유가 무엇이었느냐?”
“황실이 계속되는 황상 시해와 반역에 조용할 날이 없고, 그것을 수호해야 할 태양천까지 이상해지는 것을 보며 생각하던 중 그 일이 떠오른 것입니다.”
“철재평!”
“예, 정신을 집중해라. 그래서 떠오른 것이 아니라, 누군가 네게 떠오르도록 자극을 준 자가 있을 것이다.”
대공의 말에 철재평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그런 생각을 한 상황이 생각이 났다. 하나,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자는 없었습니다. 그냥 갑자기 생각이 난 것입니다.”
‘이것 봐라? 아주 교묘하네…….’
철재평은 그와 같은 칭기즈 칸의 후예로, 같은 철 씨인 그가 가장 신임하는 수하였다. 그런데 지금의 대화로 인하여 그에 대한 의심이 머리에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아니라고 말하는 철재평의 표정에서 누군가를 떠올렸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이었다면 그냥 의심한 것으로 끝내거나 철재평을 심문하여 더욱 정확한 것을 알아내려 했겠지만, 대공은 자신이 그를 의심하게 만든 상황에 의구심이 생겼다.
철재평은 나름 자신에게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보고한 것인데 모든 정황이 수상했다.
학사가 철재평에게 그런 말을 건넨 것도 이상했고, 투서니 확대 재생산이니 하는 그 내용도 이상했다. 거기다 오 년이나 지난 일을 갑자기 지금 꺼낸 것과, 그가 티가 나게 아니라고 한 행동도 이상했다.
한마디로, 의심하는 순간 모든 것이 이상해진 것이다.
“우선 내가 말한 대로 삼 전왕을 부르고 선 장로들을 소집해 놓아라. 그리고 그 학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서 다시 보고하고.”
“존명!”
철재평이 몸을 일으켜 나가자 대공은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우리에게 분열을 야기하는 이간질하고 있다는 그의 말이 사실이란 말인가?’
예전 그는 정파의 원로 한 명을 생포한 적이 있었다. 그는 무상 진인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던 원로였는데, 대공을 오히려 설득하려고 했다.
지금 천하를 분열시키는 세력이 있는데 분명 원나라와 태양천에도 그들의 마수가 뻗칠 거라면서, 더 이상 중원 무림을 적대시하지 말고 그들부터 합심해서 잡자고 한 것이다.
하지만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생각한 대공은 그 말을 흘려들으며 그를 죽였다.
그런데 사방에서 내분이 일어나면서 대공은 그자의 말을 떠올렸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가 좋은 그였지만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는데, 철재평의 말을 듣고는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럼 내게도 이간질을 하는 자가 측근에 있었을 수도 있다는 말인데…… 설마?’
한참을 생각하던 대공의 눈이 커졌다. 절대적으로 믿고 있는 한 사람이 머리에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 * *
“멈추시오!”
동정호를 지나 군산에 진입한 천호방의 배를 십여 척의 쾌속선이 막아섰다. 배에는 삼사 명의 무인들이 타고 있었으니 적어도 삼십 명은 넘는 수였다.
사효조가 선두로 다가가더니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보아하니 무림맹 분들 같으신데, 어찌 그냥 지나가는 배를 막으시는 겁니까?”
사효조의 말에 쾌속선 중 가장 앞에 나선 배에서 누군가가 말을 받았다.
“저는 무림맹 산하 수상 경비대장 하연목이라고 하오. 천호방의 방주님을 태운 배가 아니시오?”
“맞습니다. 이 배는 천호방 소속의 배이고, 이 안에는 방주님이 타고 계십니다.”
하연목은 포권을 하며 다시 말했다.
“천호방주님을 뵙고자 하는 분이 계십니다. 저희를 따라오셔야겠습니다.”
[어찌 할까요?]
사효조는 정자에 앉아 담수련과 차를 마시고 있는 악불군에게 전음을 날렸다.
악불군은 이런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듯, 담수련을 보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