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검지애-271화 (271/472)

<천검지애 271화>

271화. 변화(2)

종산은자는 급히 말했다.

“황보 대협이나 제가 간세일 리는 없지요.”

“그렇다면 담수운이 없었던 것은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노부가 담수운을 관리해 왔고, 대룡상단의 총수인 것도 직접 본 사안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황보 대협께서는 설마 노부를 의심하십니까?”

“수십 년을 죽음을 무릅쓰고 적의 본거지에 들어가 수많은 정보를 얻어 영웅회에 전한 선배님의 공을 어찌 모르겠습니까? 문제는 그냥 선배님이 봤다는 것으로만 몰아붙이기에는 천호무적검의 위상이 너무 높아졌다는 것입니다. 무황과 동격인 무림십왕에 봉해진 사실을 모르십니까?”

백룡신권의 말에 종산은자의 표정이 곤혹스럽게 변했다. 그의 말대로 시시한 자라면 굳이 이런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직접 죽이는 것이 가장 쉬웠다.

아니, 어쩌면 신경도 안 썼을지도 몰랐다.

“황보 대협의 말은 십분 이해합니다. 하지만 수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그냥 모른 척한다면 직무 유기가 되지 않겠습니까?”

“선배님이야 제게 정보를 준 것으로 끝이었지만, 저는 정식 보고까지 한 사람입니다. 지금 제가 얼마나 곤란한 상황인지 아십니까? 그 보고를 한 경위서까지 제출하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선배님의 이름을 거론하면 저도 설명하기가 쉽지만, 선배님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으려니 보통 힘든 것이 아닙니다.”

“황보 대협께는 죄송하지만 제 정보는 분명합니다. 지금은 곤란하시겠지만, 결국 사실로 밝혀진다면 대협의 공이 크게 치하받을 것입니다.”

백룡신권은 도저히 말이 안 통한다고 느끼자 몸을 일으켰다.

“제가 너무 바빠서 이제 더 이상 선배님을 돕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분명하다는 말만이 아니라 확실한 증거가 필요합니다. 증거 없이는 더 이상 저를 찾아오지 마십시오.”

“황보 대협!”

종산은자가 급히 불렀지만, 이미 상당히 기분이 상한 백룡신권은 포권을 하고는 그대로 밑으로 내려가 버렸다.

“갈수록 태산이군……. 백룡신권까지 몸을 사릴 정도면 너무 거물이 되어 버렸어. 이거 나도 줄을 바꿔야 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군…….”

종산은자는 무림맹의 군사전이 대룡상단에서 담수운을 찾아내지 못한 이유가 자세한 조사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그것은 제갈우명조차 악불군을 건드리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는 의미였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렇다고 줄은 바꿀 생각은 전혀 없었다. 지금 그가 잡은 줄은 천하에서 가장 견고한 줄이기 때문이었다.

* * *

“이것이 십왕패입니까?”

“예, 황궁에서 이곳으로 보냈습니다.”

최고 간부들과 함께 원탁에 앉은 악불군은 고철황이 조심스럽게 건넨 작은 상자를 열었다.

그곳에는 손바닥 크기의 네모난 금패가 들어 있었다.

악불군은 패를 꺼냈다.

앞면에는 두 마리의 용이 승천하는 그림 사이에 무림왕이라는 글씨가 양각되어 있었고, 뒷면에는 봉(封)이란 글자와 함께 황제의 옥쇄가 찍혀 있었다.

악불군이 패를 들어 올려 모두에게 보이자, 모두는 고개를 숙이며 소리쳤다.

“무림왕에 봉해지신 것을 경하드립니다!”

“무림왕이 됐다고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오히려 저를 시기하는 적은 더 많아질 것입니다. 하지만 도약의 기회가 될 수는 있다고 봅니다.”

“저희들이 방주님을 견마지로(犬馬之勞)하여 천호방을 천하제일방이 되도록 할 것입니다.”

“세상일이라는 것이 생각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가짐이라도 그렇게 잡는 것이 좋겠지요. 그럼 제가 없는 동안 있었던 일들을 보고해 보십시오.”

“어제부로 수련관을 통관한 자들이 백 명이 넘었습니다. 그들을 천호일단과 천호이단에 배치했습니다. 석 달 안에 백오십 명을 더 배출할 계획입니다.”

천호방은 잠룡세가가 있던 터를 천호방 수련관으로 정하고 추명혼을 책임자로 앉혔다. 악불군도 수련했던 육관의 시설이 수련하는 데 아주 최적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백오십 명이면 무력 집단을 세 개는 더 만들겠군요?”

“예, 무력 집단 다섯이면 어떤 문파와도 한번 붙어 볼 만한 전력입니다.”

“붙어 볼 만한 전력보다는, 어떤 문파도 천호방과는 붙어 볼 생각도 못할 전력을 구축해 주십시오. 그래야 전쟁이 없어지니까요.”

“지금도 계속 방도들이 들어오고 있으니, 재정상의 문제만 없다면 세를 불리는 것은 큰 문제가 없습니다.”

“고 호법, 방의 재정은 어떻습니까?”

“절강성의 상권이 활발해지면서 본 방에 기부금과 보호비가 끊임없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대로만 간다면 재정에는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천신문의 문 군사님과 연계해서 절강과 강서를 잇는 상권을 형성해 보십시오.”

“알겠습니다.”

“또 다른 것은 없습니까?”

“구천마성에서 배첩을 보내왔습니다.”

“그래요? 어디 있습니까?”

“세 번째 서류가 그것입니다.”

악불군은 자신의 앞에 놓인 서류를 들춰 배첩을 꺼냈다. 배첩은 여전히 봉인되어 있었다.

“아가씨께서 보시고 분석을 좀 해 주십시오.”

“네~”

“흐음!”

악불군은 담수련의 목소리에서 애교를 느끼자 괜히 어색한 듯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배첩을 건넸다. 그런데 처음 듣는 애교 섞인 그 대답이 무척이나 듣기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통광심은 어떤 분인가요?”

배첩을 읽은 담수련은 간부들을 보며 물었다.

“구천마성의 군사로서 만진선생과 쌍벽을 이루는 자입니다. 제가 듣기로는 구천마황의 신임이 두터워 거의 모든 계획을 그가 짜고 조언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대단한 사람이네요?”

“구천마성에서는 누구도 그를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런 분이 직접 본 방의 총단을 찾아 방주님과 대화를 하고 싶다는데, 여러분 생각은 어떠세요?”

만통광심이 직접 온다는 말에 모두의 눈이 커졌다. 어느 세력을 막론하고 군사가 다른 문파를 방문하는 경우는 대단히 희귀한 일이었다.

군사란 그 파의 모든 정보를 관장하는 자로, 만약 다른 세력에게 군사가 넘어간다면 모든 정보가 유출되기 때문이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보편적으로 군사가 방문한다는 것은 본 방을 우호적인 세력으로 간주하겠다는 의미입니다.”

내당 당주 상경호의 말에 담수련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또 다른 분 의견은 없나요?”

“방주님을 직접 만나 뵙고 어떤 분인지 알아보려는 것이 아닐까요?”

“만통광심은 명호에도 들어 있듯이 미친 계획을 자주 짜는 자입니다. 대단히 위험한 자이지요. 그런 자가 온다면 뭔가 꿍꿍이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한번 물꼬가 터지자 사방에서 의견을 개진하기 시작했다. 다른 문파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간부들의 여러 의견을 들은 담수련은 악불군을 보며 물었다.

“그럼 방주님 생각은 어떠세요?”

“다들 맞는 말씀을 하신 것 같습니다.”

너무도 태연하게 말하는 악불군의 대답에 모두의 얼굴에 미소가 그려졌다. 몇몇은 웃음을 참기 위해 인상까지 쓸 정도였다.

“그런 대답 말고요. 그의 배첩을 허락하는 것이 좋을지, 거절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한 방주님 의견을 말해 보시라고요.”

“……만통광심을 총단으로 불러 대화를 한다면 분명 무림맹에서 촉각을 곤두세울 것입니다. 여전히 천호방에 대해 안 좋은 생각을 가진 분들이 있는 상황에서, 대표적인 마도의 군사와 만나는 것은 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악불군의 말에 모두의 얼굴에 탄복의 기색이 나타났다. 올바른 분석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거절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시나요?”

“만통광심이 직접 온다는 말은 무림맹과 천호방 사이를 이간하겠다는 계략도 숨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배첩까지 보냈는데 거절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부정적인 의견으로 미루어 거절을 당연시하던 수하들은, 막상 결론은 허락으로 나타나자 의아한 표정으로 악불군을 쳐다보았다.

“방주님, 무림맹에서 사시(斜視)로 볼 것을 아시면서 굳이 허락하는 이유가 있으십니까?”

동정어옹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며 물었다.

“지금 본 방은 말 그대로 신생 문파입니다. 솔직히 충성하는 분들이 여기 있는 분들을 제외하면 얼마나 되겠습니까? 더구나 방도의 반 이상이 낭인 출신으로 무공도 이, 삼류 수준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구천마성과 싸운다는 소문이 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거절한다 해도 무림맹이 있는 이상 함부로 저희를 공격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바로 거기! ‘무림맹이 있는 이상’이라는 말 때문에 만나는 것이 좋겠다 사료됩니다. 무림맹과 상관없이 구천마성과는 친하게 지내야 합니다. 물론 무림맹에서 본 방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겠지만 그냥 생각뿐이지요. 오히려 우리가 구천마성과 친하게 지내면 더 함부로 하지 못할 겁니다.”

악불군의 말에 모두의 표정이 복잡하게 변했다. 분명 병법상으로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으니 악불군의 방법도 틀렸다고 할 수는 없었다.

고철황을 비롯한 백인막 출신들은 악불군의 생각에 찬성한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동정어옹을 비롯한 정파 출신들의 표정은 좀 달랐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온갖 패악질을 일삼는 마도와 친하게 지낸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담수련이 나섰다.

“방주님의 생각은 아주 탁월합니다. 우선 지금 황상은 무림인들 간의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질색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무림십왕을 먼저 받은 방주님과 구천마황간에 전쟁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심기가 많이 불편해지시겠지요.”

“저희가 걱정하는 것은, 본 방이 정파를 표방했는데 마도와 우호적인 관계를 갖는다면 오해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무림맹은 이미 저희를 의심의 눈초리로 보고 있습니다. 더욱이 절강을 차지한 것에 대해 불만도 아주 많다고 들었습니다. 더구나 그들은 공식적으로 저희에게 맹에 가입하겠느냐는 의향도 묻지를 않았습니다. 지금 현재까지는 무림맹은 적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친구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저희도 그들에게 뭔가를 보여 줘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방주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담수련이 동의한 이상 또 다른 결론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간부들은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저희가 봐도 방주님 생각이 옳은 것 같습니다. 저희도 찬성하겠습니다.”

수석장로인 고철황이 발 빠르게 나서자 더 이상 뭐라 할 사람은 없었다.

“또 다른 것은 없습니까?”

“주산군도의 보타검각에 천호방이 절강성의 패자가 되었음을 알려야 하는데, 누구를 보낼지 결정을 하지 못했습니다.”

남해성모궁과 더불어 여인만의 문파로 천하에 명성이 높은 보타검각은 보타산 밖으로 사람이 나오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무공에 관한 한 천하가 인정하는 검의 명문이고 그 역사가 길어, 절강의 패자가 바뀌면 그들에게 사신을 보내 상황 설명을 해 주는 것이 불문율처럼 되어 있었다.

“보타검각은 어떤 곳이지요?”

“알려진 것이 전혀 없습니다. 저도 그곳만은 들어가 보지를 않았습니다.”

악불군은 고철황의 말에 동정어옹을 보며 물었다.

“동방 장로님께서도 아는 바가 없습니까?”

“보타검각은 굉장히 신비한 문파입니다. 거의 제자들이 밖으로 나오지 않지만 어쩌다 한 번 나오면 무림에 큰 파란을 일으키곤 했습니다. 보타검각의 각주의 무공은 거의 무황에 버금간다고 알려져 있을 정도입니다.”

“그렇게 대단한 문파가 절강에 있는데 태양천이나 어찰단에서 왜 건드리지 않았을까요?”

“보타검각은 여인만의 문파로, 오로지 검에 대한 연구만을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정치는 물론 아예 바깥일에 전혀 관여하지 않으니 굳이 건드릴 필요가 없었겠지요.”

“그럼 알려진 것이 전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네요?”

“그런 셈입니다.”

가장 강호 경험이 많은 고철황과 동정어옹까지 모른다면 이곳에서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맞았다.

“재미있는 문파네요? 거긴 방주님과 제가 갈게요.”

듣고 있던 담수련이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두 분께서 직접 가신다는 말입니까?”

“주산군도가 아름답다는 말은 너무 많이 들었는데, 가까운 곳에서 자라면서도 한 번을 가 보지 못했어요. 이번 기회에 한번 가 보고 싶네요. 방주님, 허락해 주실 거지요?”

담수련이 좀 쉬기를 바란 악불군은 그녀의 말에 살짝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그녀가 원한다는데 반대는 있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그 역시 보타검각이란 이름을 듣는 순간 이상하게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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