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검지애-272화 (272/472)

<천검지애 272화>

272화. 보타검각(1)

“그렇게 하지요. 보타검각이 그렇게 대단하고 본 방의 세력권 안에 있다는데, 저와 아가씨가 직접 가서 인사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 보입니다.”

악불군의 말에 월하옹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희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보타검각은 그 실체가 매우 모호합니다. 혹시 모르니 우선 수하들 중 한 명을 보내 배첩을 올린 후에 가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방금 알아낸 것이 없다고 하지 않으셨던가요? 거기다 분명 존재하는데 모호하다는 것은 무슨 의미신지 모르겠군요.”

“저희가 나름 많은 무림 세력을 조사했습니다. 보타검각은 상당히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고, 그 무공 역시 일절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누가 검각주인지 문도는 몇 명이나 되는지, 실지로 총단이 보타산에 있기는 한 것인지 알 수 있는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실존은 하는 것 같은데 실체가 보이지를 않아 모호하다고 한 것입니다.”

“그래요?”

역시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은 악불군은 담수련을 보며 물었다.

“아가씨께서도 들은 바가 전혀 없으십니까?”

그녀는 담무룡이나 문창현과 그리고 종리화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 속에는 무림 세력에 대한 얘기도 꽤 많았기에 어쩌면 알 수도 있다 본 것이었다.

“보타검각이라는 말은 들은 적이 있어요. 하지만 누구도 자세한 얘기를 해 준 적은 없었어요. 그러고 보니 이상하긴 하네요. 그런 문파가 절강에 있다면 분명 내게 약간이라도 언질을 줬을 텐데?”

담수련의 말에 악불군은 결정을 한 듯 말했다.

“저와 아가씨가 직접 가 보겠습니다. 다른 보고는 없습니까?”

그러자 마진우가 나섰다.

“외당 당주 마진우입니다. 절강의 여러 군소 문파에서 천호방의 협력 세력이 되고 싶다고 연락해 오고 있습니다. 수석장로님과 함께 지금 분류 중인데, 끝나면 다시 보고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그리고 기 장로님.”

“예!”

“집법당주와 함께 방도들의 교육에 더욱 박차를 가하십시오. 천호방의 위세가 커질수록 방도들이 민폐를 끼치는 일이 많아진다고 들었습니다. 양민들에게 공짜로 식사를 제공받거나 금품을 수수하는 행위는 엄벌에 처하십시오. 특히 여인들에게 허튼짓을 하는 자들은 사안의 경중을 따지지 말고 사형을 시키십시오.”

“계속 주지시키고 있습니다. 다만, 낭인 출신들이 많아 제약을 견디지 못하고 일탈하는 자들이 종종 나타나고는 있습니다.”

“만약 불만을 가진 자들이 있으면 방에서 내치십시오. 둑을 무너뜨리는 건 작은 구멍입니다. 천호방은 처음부터 그런 짓이 절대 불가한 문파라는 것을 확실하게 주지시켜야 합니다.”

“존명!”

“그럼 이만 돌아가셔도 됩니다. 며칠간 쉴 생각이니, 특별한 일이 없다면 얼마간 방문은 금지합니다.”

“긴 여행을 하셨으니 푹 쉬십시오.”

일어난 간부들은 공손히 인사를 하고는 모두 밖으로 나갔다.

“며칠간 쉬면서 뭐할 거야?”

담수련은 악불군이 쉰다는 말을 하자 신기한 듯 물었다. 그는 쉰 적이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외유에서 깨달은 것이 좀 있습니다. 그래서 정리를 할 생각입니다.”

“그랬구나?”

담수련은 실망한 듯 입술을 살짝 내밀었다.

“하고 싶은 것이 있으십니까?”

“아니야. 깨달은 것이 있으면 그게 제일 중요하지. 난 걱정 말고 정리해.”

“정리는 언제라도 할 수 있습니다. 아가씨께서 뭘 하고 싶은지 말씀하십시오.”

“정말 내가 원하면 뭐든 다 해 줄 수 있어?”

“당연하지요. 제겐 그 어떤 것보다 아가씨의 일이 최우선입니다.”

“그럼…….”

손으로 턱을 만지며 잠시 생각하던 담수련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깨달은 것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정리해서 내게 말해 줘.”

결국 악불군이 원하는 대로 수련을 하라는 소리였다.

담수련은 지금 악불군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이 방해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원하시는 것이 있으시면 말씀하셔도 됩니다.”

“며칠 후에 주산군도에도 갈 건데, 할 게 뭐가 있겠어. 제 걱정은 하지 마시고 더 강해지시기만 하세요.”

뜬금없는 존댓말이 악불군은 뭐가 그리 예쁜지 함박미소를 지었다.

* * *

“언제까지 이곳에 숨어 있어야 하는 것이냐?”

철무정은 금령사자를 보며 짜증스럽게 물었다.

“소천주님의 상처가 나을 때까지는 움직이기 어렵습니다.”

그의 말대로 철무정은 가슴 전체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문제는 아직도 피가 배어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정도 상처는 문제도 아니다. 당장 떠나겠다.”

“적의 추적이 상당합니다. 지금 나가신다면 그들의 눈에 당장 띌 것입니다.”

“천주님께는 연락했느냐?”

“천주님께 연락은 군주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나랑 싸운 놈이 누구인지는 알아냈느냐?”

“무림맹 총순찰이라고 했습니다.”

“이름은 모르느냐?”

“그자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굉장히 신비한 자입니다. 저희의 모든 정보망을 가동했지만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가동할 정보망이 남아 있기는 한 거냐?”

“어찰단과 태양천의 정보망은 무너졌지만 군주님의 정보망은 아직 건재하십니다.”

순간, 철무정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마치 금령군주가 다른 조직을 가지고 있다는 듯 들려서였다.

“군주의 정보망이라니? 금령군주가 태양천 소속이 아니었더냐?”

“군주님께서는 태양천 소속이긴 하지만 황실의 일원 이십니다.”

“난 태양천의 소천주다. 아무리 황실의 일원이라 해도 내 명을 따라야 한다!”

“천주님께서도 군주님께 부탁을 할 뿐, 명령을 내리시지는 않습니다. 하물며 소천주님께서 어찌 군주님께 명을 따르라 하십니까?”

철무정의 표정이 더욱 일그러졌다. 태양천주만 되면 금령군주를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여전히 그녀는 그가 함부로 할 수 없는 지위라는 것을 깨달았기 있었기 때문이었다.

“황실의 군주가 그렇게 대단한 지위인 줄은 몰랐구나.”

“다른 군주님과 같이 생각하시면 안 되십니다. 우선 빨리 몸부터 추스르십시오. 그래야 복귀하실 수 있습니다.”

“금령군주는 어디에 있느냐? 내가 직접 얘기하겠다.”

“금령사자, 넌 물러가거라.”

마치 기다렸다는 듯, 청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금령군주 금잔화였다.

금령사자가 물러나고 흑발로 염색을 한 금잔화가 안으로 들어섰다. 그녀 특유의 눈동자 색까지 까맣게 변해 있어, 언뜻 보면 다른 사람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몸은 좀 나으셨습니까?”

금잔화는 철무정이 앉아 있는 침상 앞으로 다가가며 물었다.

“금령군주, 우선 지금 상황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소?”

백천학에게 큰 부상을 입고 피신하던 철무정의 앞에 나타난 것은 금령사자를 비롯한 금령무의 무인들이었다.

그들은 도망치는 데는 일가견이 있는 듯, 집요하게 추적하는 백천학과 영웅검단을 피해 이곳으로 데려왔다.

“아시는 그대로 소천주님께서 무림맹 총순찰에게 패하시고 간신히 목숨만 붙은 채로 이곳으로 피신해 오셨어요.”

“그건 약속된 태양천의 원로들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소!”

“압니다. 하지만 적의 전력이 우세한 가운데 오기로 한 태양천의 고수들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빨리 후퇴하는 임기응변이라도 보이셨어야 했는데, 공격을 명했더군요.”

“그건…….”

“용감하지만 미련한 지휘자는 수하들을 죽음에 몰아넣을 뿐이지요. 철룡세가의 소가주 시절부터 전 소천주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충성심 강하고, 총명하고, 거기다 무재까지 있으니 대공 전하께서 관심을 두고 계셨거든요. 그런데 소가주 시절 너무 안하무인으로 자라신 것이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지금 나를 비난하는 것이오, 아니면 조롱하는 것이오!”

“비난도 조롱도 아닙니다. 위기에 빠진 원나라를 구할 다음 대 태양천 천주께서 좀 더 유연한 판단을 했으면 하는 조언일 뿐입니다.”

“군주께서 적지인 이곳에 들어오신 이유가 천륭검보 때문이라고 들었소. 천륭검보에 대한 단서는 찾으셨소이까?”

“그 문제는 대공 전하께서 전적으로 제게 맡긴 일입니다. 소천주께서는 관심을 가지실 필요 없습니다.”

철무정의 검미가 꿈틀했다.

‘건방진 계집! 내가 실권을 잡기만 한다면 네년을 내 첩으로 삼아 발바닥을 핥게 만들어 주마.’

예전 소가주 때는 군주의 지위가 높으니 그렇다 치지만, 이제 그는 명실공히 태양천의 이인자였다. 그런데도 금령군주는 말만 존대를 할 뿐 여전히 자신을 무시하는 듯 대하자, 철무정의 악심(惡心)이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둘의 대화에서 특이한 점이 있었다.

태양천의 천주가 대공이라는 것은 둘 다 알고 있었다. 그런데 철무정이 꼬박꼬박 천주라고 칭했지만 금잔화는 대공 전하라고 칭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건 그녀가 태양천 소속이 아닌 황실의 군주로서 대하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좋소, 관심을 갖지 말라니 신경 끄겠소. 대신 내게 마차 한 대와 호위 무사 열 명만 붙여 주시오. 당장 천주님께 돌아가야겠소.”

철무정은 비록 치료라는 명목으로 이곳에 있긴 했지만 감옥 같은 생활을 하고 있었다. 금령군주는 그에게 바깥일에 대해 전혀 알려 주지 않았고, 심지어 방에서 나오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그로서는 이런 상태로 지내는 것이 심히 불쾌하면서도 불안했다.

“어디로 가시게요?”

“당연히 천주님이 계신 하북으로 가야 하지 않겠소?”

“하북도 모두 철수했어요. 서달이 이끄는 반란군에 대패한 후 황도까지 포기하고 더 북으로 물러났습니다. 아직 하북의 북쪽 끝에서 버티고는 있지만, 그것도 얼마 못 갈 거예요.”

“그, 그럼 태양천은 어떻게 됐소?”

“태양천을 이루는 열 개의 부족 간에 불화가 심화되어 내분까지 일어날 정도입니다. 대공 전하께서 아직 버티고 계시어 직접적인 충돌은 없지만, 그것도 오래 장담하기는 어렵습니다.”

철무정이 무공을 익히면서 느낀 것은 태양천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안도였다. 하지만 아무리 강한 집단이라 해도 열 개로 찢어진다면, 더구나 그들끼리 내분마저 일어난다면 중원 무림과 전쟁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지금 이곳은 어디요?”

“중원에 몇 안 남은 본 천의 안가입니다.”

“본 천의 안가라면 내 지휘 안에 있어야 하는데, 어찌 나를 이곳에서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오?”

“소천주님은 곧 이곳을 떠나실 분입니다. 그런데 이곳에 대해 아셔 봐야 저희에게 좋을 것이 없겠지요.”

철무정의 얼굴이 또 구겨졌다. 공손하게 대답하면서 무시하면 더 약이 오르는 법이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그럼 철룡세가에 대한 소식은 아는 것이 있소?”

아까부터 묻고 싶었지만, 소천주로서 본가를 생각한다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꺼려 참던 질문이었다.

“철룡세가 역시 전쟁을 돕다가 두 개 무력 집단이 전멸하는 큰 피해를 입고 황실과 함께 몽고로 후퇴했습니다. 다행이라고 한다면 가주님 이하 세가의 핵심 간부들은 모두 무사히 피했다는 거지요.”

여전히 건재하다는 말에 철무정은 안심은 됐지만 전혀 기쁘지 않았다. 무력 집단 두 개가 전멸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피해인지 알기 때문이었다.

“그럼 태양천은 어디로 후퇴하였는지 아시오?”

“그건 저도 모릅니다. 이제 태양천은 대공 전하께서 있는 곳이 총단이 됩니다. 어딘가 자리를 잡으시면 연락을 주실 겁니다. 제 생각에는 오 일 안에 연락이 올 것입니다.”

“그럼 연락이 올 때까지는 난 움직이면 안 되겠구려?”

“대공 전하께서 반전을 모색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으니 소천주님을 곧 찾으실 겁니다.”

금잔화는 여전히 대공을 믿고 있었다.

“하북까지 빼앗긴 마당에 반전할 희망이 있긴 한 거요?”

“주원장이 세운 명나라의 군세가 최고조에 달한 지금, 내분으로 지리멸렬한 원나라가 빠른 시일 내에 중원을 수복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요원해 보입니다. 하지만 무림은 다릅니다. 우선 무림부터 무너뜨리고 나면 명나라 역시 무너뜨릴 수 있을 것입니다.”

“태양천의 전왕들이 천주님의 명을 따르지 않는다면서 무슨 수로 무림을 무너뜨린다는 말이요?”

“우선 대공 전하께서 여전히 건재하십니다. 그리고 제게 무림을 약화시킬 방법이 있습니다.”

금잔화의 말에 철무정이 급히 물었다.

“그 방법이 무엇인지 나도 알 수 있겠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