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검지애-275화 (275/472)

<천검지애 275화>

275화. 단서(2)

“동방 장로님도 아시는 것을 보니, 그들의 그런 행태는 이미 유명한가 보군요.”

“돈에 미친 자들이지요. 산적부터 마적, 수적까지 그들과 연관이 안 된 곳이 없을 정도입니다.”

“제가 알기로 원래 소금은 황실에서 전매할 텐데, 아닌가요?”

“원래는 그렇습니다. 황실에서 염전을 직접 운영하며 생산한 소금을, 계약을 맺은 상단에 넘겨 판매하는 방식이지요. 그래서 사실 염상이란 것이 따로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한마디로 모든 것이 불법이군요?”

“예, 처음에는 염전에서 나온 소금을 조금씩 빼내 개인적인 착복을 하던 자들이, 그 규모가 커지면서 관과 황실 그리고 군부까지 뇌물을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아예 황실에서 전매하는 소금보다 더 많은 양을 좌지우지하면서, 누구도 건드리지 못할 정도의 세력을 구축한 것이지요.”

“그걸 황실에서 그냥 두고 보았다는 겁니까?”

“비호하는 자들이 너무 많아서 황실조차 손대기가 어려웠다고 들었습니다.”

“염상은 상인연합이라고 했는데 자체적인 무력도 있습니까?”

“대단한 고수들이 많지는 않지만, 풍부한 재력으로 살수 조직에 암살을 청부하거나 흑도 왈패 등을 이용해 자식을 납치하거나 집에 불을 질러 집안을 풍비박산 나게 하는 등 온갖 치졸한 수법으로 상대를 괴롭히기 때문에, 아예 상종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습니다.”

악불군이 염상에 대해 자세히 묻는 이유는, 예전에 할아버지에게 염상의 폐해와 그들의 악랄한 행태에 대해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가장 먼저 그들이 소금 판매를 독점하지 못하게 해야겠군요?”

“그게 간단치 않은 것이, 그들을 건드리기만 하면 갑자기 시중에 소금이 사라져 버립니다. 단 며칠만 사라져도 민심이 뒤숭숭해지니 건드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본질적으로 염상은 상인입니다. 상인 집단을 무림 세력이 힘으로 제압한다는 소문이 퍼지면 그리 좋을 것이 없습니다.”

“소문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염상들에게 돈을 상납받기에 문제점을 알면서도 그냥 놔두는 것이겠지요. 고 장로께서도 그냥 좋은 것이 좋다는 생각으로 상납을 받고 염상의 움직임은 그냥 눈 감아 주실 생각을 하신 것은 아닙니까?”

“좋은 게 좋다는 생각보다는, 지금 절강이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혀 가는 시기에 염상을 건드려 다시 상권이 혼란에 빠진다면 좋을 것이 없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유야 어쨌든 주는 돈을 받지 않는 것도 좀 그렇고요.”

대화를 아무 말 없이 듣고 있던 담수련이 끼어들었다.

“맞는 말이에요. 주는 돈은 다 받아서 좋은 데 사용하면 되니까요. 소금은 시중에서 돈과 마찬가지의 역할을 한다고 들었어요. 맞나요?”

“돈이 없어도 소금으로 지불하면 그만이니, 돈이나 마찬가지이지요.”

“대충 염상의 실체를 알 것 같아요. 그들을 직접적으로 건드리는 것은 그리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고,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염상들에게 회자되는 말이 있습니다. 소금을 지키기 위해서는 가족이 죽는 것도 불사한다는 것이지요. 그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것이 소금이니, 두려워하는 것도 소금이 아니겠습니까?”

고개를 끄덕인 담수련이 이번에는 악불군을 보며 물었다.

“염상은 우리가 모른 척하면 문제 될 것이 없어요. 그런데 방주님께서 이렇게 신경 쓰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소금은 양민들에게는 필수적인 생필품의 하나입니다. 비단 같은 사치품은 안 사면 됩니다. 하지만 소금은 비싸도 사야 하지요. 그런데 이런 필수품을 팔면서 이렇게 많은 상납금을 낸다고 하니, 대체 그 이익이 어디서 오겠습니까? 가난한 양민들의 고혈을 빠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그럼 방의 운영에 어려움이 생기더라도 손을 봐야겠군요?”

“진정한 양민들을 위한 무림 세력이 되겠다고 하면서, 어렵다고 피한다면 말이 안 되겠지요.”

“알았어요. 방주님께서 원하신다면 손을 봐야겠네요. 단 전국적인 염상들을 손보는 것은 힘들고, 우선 절강만이라도 정리하도록 하지요. 여러 간부님들도 불만 없으시지요?”

“방주님께서 원하시는데 누가 불만을 가지겠습니까?”

“좋아요. 그럼 우선 그들이 소금을 어디서 조달하는지 알 수 있을까요?”

“제가 알기로는 염상들이 매년 염전에 가서 그곳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전부 구매하는 계약을 한다고 합니다.”

“일 년치를 몽땅 사들인다면, 가격이 떨어지면 손해가 나겠군요?”

“그렇겠지요.”

“그러니까 어떻게든 가격을 올려야겠고요? 그리고 그 피해는 소근 한 줌씩 사서 하루하루 사용하는 양민들이 고스란히 보겠네요?”

“부자들이야 쌀 때 많이 사 놓는다고 하니까 지장이 없을 겁니다.”

“고 장로님, 혹시 염전은 어디에 있는지 아시나요?”

“몇 곳은 알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염상 외에는 어느 누구와도 거래하지 않는 것으로 들었습니다.”

“우선 염상이 염전과 거래하는 방식, 그리고 시중에 판매되는 방식 등 모든 것을 조사해 보세요. 그리고 염상의 상납금은 그대로 소금을 사는 데 모두 사용하세요.”

“전부 말입니까?”

“예, 전부요. 그리고 염상에게 본 방이 지금 한창 커 가는 중이라 돈이 많이 든다고 말하세요. 그럼 알아서 돈을 더 내놓을 거예요. 그것도 모두 소금을 사세요. 무작정 사면 소금 가격이 올라 양민들이 힘들어할 수도 있으니, 최대한 은밀하게 소량씩 사세요.”

담수련이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모두는 염상들이 이번에는 크게 당할 것 같다는 느낌을 확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럼 염상에 대한 것은 아가씨 말씀대로 하도록 하고, 총단을 옮길 생각입니다.”

악불군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총단을 옮기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사안이었다.

“어디로 옮기실 생각이십니까?”

고철황의 질문에 악불군은 간단히 답했다.

“잠룡세가로 옮길 것입니다.”

사실, 지금 총단보다는 잠룡세가가 장원의 크기나 장소 등 모든 면에서 훨씬 나았다. 그럼에도 계속 이곳을 총단으로 사용한 것은 무림맹 때문이었다.

부역자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잠룡세가를 총단으로 삼는 자체가 부정적인 생각을 심어 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잠룡세가의 소유 문제도 있었다. 멸문시키고 총단으로 삼는다면 강탈로 보일 수도 있었다.

“괜찮을까요?”

“언제까지나 무림맹의 눈치만 볼 수는 없지요. 전 이 정도면 무림맹에 예의는 지켰다고 봅니다. 이곳도 총단으로 큰 불만은 없지만, 저나 여러분들 모두 연공실이 필요한데 이곳은 그게 너무 부족한 것이 흠입니다. 잠룡세가에는 연공실로 사용할 수 있는 곳이 많습니다.”

악불군의 말에 모두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모두가 느끼던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그럼 잠룡세가에 대한 공사에 들어가야겠군요.”

잠룡세가는 저번 공격으로 불타고 부서진 전각이 좀 있었다.

“안채는 멀쩡하니 내일이라도 그쪽으로 저와 아가씨의 거처를 옮길 생각입니다. 그렇게 준비를 좀 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럼 또 다른 사안은 없지요?”

“만통광심이 다음 주에 방문하겠다고 연락을 보냈습니다.”

“그래요? 굉장히 빨리 왔군요?”

“아마도 허락할 줄 알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악불군은 담수련을 보며 물었다.

“보타검각에 가는 것을 만통광심을 만난 후로 할까요, 아니면 그 전에 다녀오시겠습니까?”

“만난 후에 가는 것이 좋겠어요. 우선 정리가 가능한 것부터 빨리 처리하는 게 좋으니까요.”

“그럼 만통광심이 오기 전에 새로운 총단에 대한 단장을 끝내 주십시오. 귀빈청도 손을 좀 보시고요.”

“예!”

회의가 끝나고 모두가 나가자 담수련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소군.”

“예.”

“지금 소군이 얼마나 멋있었는지 모르지?”

담수련의 눈에는 악불군의 모든 면이 다 멋있어 보이는 모양이었다.

“제가요? 그냥 평상시와 다른 것이 없었는데요?”

“아니야. 이제 완전히 방주 티가 나. 보고받는 모습이나 명을 내리는 모습이 아주 자연스러워졌어.”

사실 악불군은 언제나 명을 받는 처지였기 때문에 남들에게 명을 내리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방주가 되고 얼마 되지 않았지만 빠르게 적응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아가씨를 본 덕인 것 같습니다.”

사실 담수련은 고귀한 품격이 몸짓이나 말에서 저절로 묻어나는 품위를 지니고 있었다. 그 모습을 오랫동안 보아 온 악불군에게 도움이 됐을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 * *

철보다 더 단단하다는 철오석으로 사방이 둘러싸인 연무장.

한 여인이 검을 들고 서 있었다.

단지 검을 들고 있을 뿐이었건만 그녀의 주위로는 수십 줄기의 검기가 뿜어져 나오고, 마치 수십 명이 철오석을 향해 검을 내리친 듯 검의 흔적이 그려지며 먼지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도저히 인간의 능력으로는 펼칠 수 없는 검의 궁극의 경지를 보여 주던 여인은 숨을 한 번 들이쉬더니 검을 검집에 꽂았다.

“무슨 일이냐?”

“천호방에서 인사를 오겠다는 전갈을 보내 왔습니다.”

“드디어 잠룡세가의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새로운 절대자의 등장이군. 매번 바뀔 때마다 오는 인사인데 내게까지 보고할 필요가 있느냐?”

여인은 별 관심이 없는 듯 말하자, 보고하던 여인이 머리를 조아리며 다시 보고했다.

“천호무적검이 직접 오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천호무적검이 직접 온다고?”

여인은 그제야 흥미가 생긴 듯 고개를 돌렸다.

“예.”

“그가 직접 온다는 말은 뭔가 본 각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인데? 그가 궁금해할 일을 우리가 한 적이 있었나?”

“본 각은 근 이십 년간 보타산 자체를 떠난 제자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방주가 왜 직접 온다는 거지?”

여인이 천천히 연무장을 벗어나자 두 명의 하녀가 나타나더니 한 명은 그녀의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 주기 시작했고, 또 한 명은 그녀의 검을 받아 들었다.

일련의 상황으로 미루어 그녀의 지위가 대단히 높음을 알 수 있었다.

“어찌할까요?”

“오라고 해. 미혼각에서 받도록 한다.”

“알겠습니다.”

“천륭검보를 익힌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지……. 소문으로만 듣던 천륭검이 어디 얼마나 강한지 한번 두고 보지.”

놀랍게도 여인은 악불군이 천륭검보를 익힌 것을 알고 있었다.

* * *

원나라가 하북까지 못 지키고 몽고로 밀려나자, 명나라는 연이어 여러 법령을 발표함과 동시에 지방으로 관료들을 보내기 시작했다.

새로운 나라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치안을 확보하여 안전한 생활을 영위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림인들의 도움이 절실했다.

아직 전 중원을 아우를 군사력과 관이 정비가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황실을 도와야 할 무림이 안정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부역자들을 제거하고 원래 정파의 세력을 복원하려던 계획은, 무림십왕을 뽑기 위한 영웅 대회로 인해 순위가 밀려나고 말았다.

당장 무인들을 소집해 또다시 전쟁을 벌이는 것보다는 십왕에 뽑혀 자파의 명성을 높이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이었다.

마룡세가를 멸문시키고 감숙을 장악한 혈해사계 역시 상황이 좋지만은 않았다. 새외연합이 공공연하게 옥문관 주위에서 계속 말썽을 부리고 있어서였다.

가장 안정이 되어 있다고 알려진 구천마성 또한, 자신들의 등을 겨냥하고 있는 해남검문과 언제라도 목을 물어뜯을 수 있는 화룡세가 때문에 잠시도 경계를 늦출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런 곳 모두가 공통적으로 눈여겨보는 세력이 있었으니, 바로 천호방이었다.

절강성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그동안 무림인들이 가지고 있는 상식을 벗어난 파격 그 자체였다.

그동안 무림 세력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고 규칙을 정해 온 것과는 달리, 양민들을 위한 정책을 펼쳤기 때문이었다.

무림인들이 주시하는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어떤 성보다 가장 빠르게 치안이 회복됐고 상거래 역시 활발해지면서 오히려 천호방의 재정이 더욱 풍족해졌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물론 다른 문파도 따라 하게 유도하기 위해 담수련이 일부러 소문을 내게 한 것이었다.

천호방의 영향력을 높이기 위한 그녀의 계획이 한 걸음 한 걸음 효과를 보고 있을 즈음, 그녀는 또 다른 머리싸움을 준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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