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검지애-276화 (276/472)

<천검지애 276화>

276화. 만통광심(1)

“방주님, 구천마성에서 온 손님이 도착했다는 보고입니다.”

집무실에서 담수련과 향후 행보를 점검하던 악불군은 흑석영의 말에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어디쯤 오셨다고 하더냐?”

“방금 항주 남문을 통과했다고 했으니, 삼각 안에 총단 정문에 도착할 것입니다.”

“내가 직접 나가 맞을 것이니 준비해라.”

“예!”

흑석영이 사라지자 담수련이 악불군의 옷깃을 여며주며 말했다.

“무림맹의 제갈 대협과 만났고, 오늘 구천마성의 만통광심까지 만나면 이제 소군의 영향력을 무시할 사람은 천하에 없을 거야.”

“그것보다는 만통광심이 무엇을 들고 왔는지가 궁금하군요.”

“호호~ 그건 머리싸움이니깐 소군은 가만있어. 그건 내가 맡을게.”

* * *

삼십 명의 호위들을 대동하고 나타난 만통광심은 정문에 서 있는 무인을 보자 눈이 커졌다.

보기만 해도 절대자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강력한 기도를 보이는 청년의 모습에, 자신이 판단을 잘못했다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무공만 강한 젊은 애송이인 줄 알았는데, 저 나이에 저런 기도라니……?’

만통광심은 젊은 나이의 구천마황을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악불군의 모습은 젊을 적 구천마황보다 더 대단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로인 동방진입니다. 만통광심께서 직접 본 방을 방문하시니 정말 영광입니다.”

동정어옹이 먼저 인사를 하자 만통광심의 얼굴에 순간 놀람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구천마성의 호법들에 맞먹는 무공을 지닌 자를 이미 장로로 영입했다는 사실에 놀란 것이다.

“천호방에 방주님만 계신 줄 알았는데, 제가 생각을 잘못했군요. 만통광심입니다.”

드디어 악불군이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천호방 방주 악불군입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우선 빈청에 숙소를 준비해 두었으니 좀 쉬십시오. 정식 일정은 이따 저녁을 같이 먹은 후에 갖도록 시간을 짜 놓았습니다.”

“방주님께서 직접 반겨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빈청의 숙소가 부족해, 같이 오신 분들 중 다섯 명까지는 같이 지내실 수 있지만 다른 분들은 손님 숙소에서 지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생각 외로 만통광심은 흔쾌히 허락했다. 천호방이 정파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호위 무사들과 떨어지는 것은 위험할 수 있었다.

하나 그는 잠깐의 만남 만에 악불군의 모습에서 믿을 만하다고 판단했다.

“동방 장로님께서 안내해 주십시오. 그럼 이따 뵙겠습니다.”

다시 공손히 포권을 한 악불군은 다시 안채로 돌아갔다.

악불군의 뒷모습을 잠시 주시한 만통광심은 동정어옹을 보며 물었다.

“혹시 무림에서 동정어옹으로 불리는 동방 대협이 아니십니까?”

“제 이름을 아직 기억하는 분이 계실지 몰랐군요?”

“어떤 세력에도 끼지 않는다는 무림사기 중 대형이라는 동방 대협을 영입하다니, 악 방주의 능력이 실로 놀랍군요.”

“저만이 아니라 무림사기 전부가 천호방의 장로입니다. 만통광심께서 곧 아시게 되겠지만, 천호방은 평범한 신생 문파가 아닙니다.”

“무림사기 전부가 천호방에 들어갔단 말입니까? 아니, 왜?”

그가 아는 무림사기는 천무성궁의 영입 제의까지 거절할 정도로 어떤 세력에 구속되는 것을 싫어했다. 그런 그들이 젊디젊은 악불군을 윗사람으로 받든다는 사실이 그는 의아했던 것이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방주님과 대화를 나눠 보면 아시게 될 겁니다.”

동정어옹의 말에 만통광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무림사기는 어찰단조차 건드리지 않을 정도로 협의에 충실한 자들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세력이 없는 개인이지만 무림에 영향력이 상당하다는 의미였다.

‘아무래도 간단하게 이용해 먹을 자가 아닌 것 같군. 오늘 자세히 보고 계획을 수정해야 할지도 모르겠어…….’

겉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말수가 부쩍 줄어든 만통광심의 모습에서 그의 심정이 상당히 복잡함을 알 수 있었다.

“총단을 새로 바꾸면서 새롭게 공사하느라 아직 부산스럽습니다. 안에 다과가 준비되어 있으니 쉬고 계십시오.”

그들이 머물 처소에 도착하자 동정어옹은 공손히 말하고는 사라졌다.

“군사님, 무슨 걱정이 있으십니까?”

방 안에 들어서자 그를 수행하던 다섯 명 중 한 명이 물었다.

“그렇게 보이느냐?”

“뭔지 모르지만 약간 불안해 보이십니다.”

“네가 느낄 정도면 다른 사람들도 느꼈구나?”

“저야 군사님을 매일 옆에서 보필하니까 느꼈지만, 다른 사람들은 모를 것입니다.”

“방금 나를 안내한 자가 바로 무림사기 중 일인인 동정어옹이라는 것은 들었겠지?”

“예, 들었습니다. 이런 신생 문파에 있기에는 너무 고수라 좀 이상하긴 했습니다.”

“무림사기가 모두 천호방에 입방하여 장로직을 맡고 있다는 말을 듣고 무슨 생각이 들더냐?”

“만만치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맞다. 지금 구천마성의 간부들은 천호무적검만 사라지면 천호방은 그대로 무너질 허약한 문파로 생각하고 있는데, 내가 보니 생각 외로 아주 탄탄한 전력을 갖추고 있는 것 같구나. 어쨌든 천호방에 천호무적검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 것만으로도 이번 외유의 소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저도 오늘 정문에 나타난 자들의 면면을 보면서 솔직히 많이 놀랐습니다.”

“악 방주를 보고는 무슨 생각이 들더냐?”

“겉으로 보기에 무공이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는다는 소문이 맞는 것 같더군요.”

“그의 몸에서 풍기는 기도는 느끼지 못했느냐?”

“특별하게 느낀 것은 없었습니다.”

“그래……?”

만통광심 자신이 느낀 절대자의 기도를 수하는 느끼지 못했다는 말에, 그는 더욱 침중한 표정을 지었다.

내공도 아니고 그냥 저절로 풍겨 나오는 기도를 느끼는 사람도 있고 못 느끼는 사람도 있다는 것은, 마음만 먹으면 스스로를 얼마든지 감출 수 있단 뜻이었다.

그리고 그런 경지는 그가 알기로 구천마황도 일 갑자 넘은 나이에 달성한 것으로 알기 때문이었다.

잠시 생각하던 만통광심이 다시 물었다.

“우리를 감시하는 자들이 몇 명이나 되는지 알아보고 오너라.”

“예.”

대답한 수하는 자연스럽게 밖으로 나가더니 다른 수하들에게 몇 가지 당부를 하는 척하며 주위를 살피곤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제가 느끼기로는 저희를 감시하는 자들이 아무도 없습니다.”

“아무도 없다고?”

지금 보고하는 자는 한혈흑의존이라는 명호를 지닌 마왕급의 마두로, 구천마성에서도 최상급의 무공을 지닌 자였다.

“예, 무공을 모르는 하녀들 몇 명만 남아 주위에 서 있었습니다.”

“구천마성에서 왔는데 감시를 안 붙였다? 확실히 다른 정파와는 여러모로 다르군.”

“저희는 어떻게 할까요?”

“감시도 없다는데 괜한 고생을 할 필요가 있겠느냐? 각자 방에 들어가 푹 쉬도록 해라. 나도 좀 쉬다가 접견 시간이 되면 일어나겠다.”

“예!”

한혈흑의존이 나가자 만통광심은 침대에 몸을 누였다.

‘악불군……. 무림맹이 아니라 천호방 자체가 본 성의 위협이 되기에 충분할 것 같군. 확실하게 무림맹과 이간시키지 못하면 오히려 본 성에 골칫거리가 될 수도 있겠어.’

만통광심은 그가 가져온 미끼들을 처음부터 다시 정리하기 시작했다.

* * *

“만통광심을 본 소감이 어떠셨습니까?”

집무실에 돌아온 악불군의 질문에 담수련은 잠시 생각했다. 그녀의 능력 중 하나가 사람을 보는 눈이었다.

누구든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이나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등을 진짜 점쟁이처럼 잘 맞췄기 때문이었다.

“특이한 사람이었어. 제갈 대협께서는 대화 내내 표정의 변화가 거의 없고 목소리도 평온해서,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알아내기가 참 어려웠어. 그런데 제갈 대협과 맞먹는 책사라는 명성을 지닌 사람이 표정이나 대화할 때의 목소리에서 자신의 생각이 그대로 드러나더라고. 소군을 보고는 예상보다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는지 눈이 커지는 모습이, 누가 봐도 놀랐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

“솔직한 것일까요?”

“제갈 대협은 스스로의 생각을 감추고 상대의 생각을 읽는 힘이 강했다면, 만통광심은 상대의 심리를 파악하고 혼란스럽게 하는 재주가 있는 것 같아. 소군 생각은 어때?”

“전 자세한 것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가씨께서 너끈히 상대하실 수 있는 인물이라는 것은 분명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피! 무조건 나를 높여 주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니까.”

“아가씨를 높여 주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는 것입니다. 제가 강호에 나와 많은 사람들을 만나 보니까 아가씨께서 정말 총명하신 분이구나, 라는 것을 절감하게 되더군요.”

확실한 아부성 칭찬이었지만 예상은 적중했다. 담수련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나타난 것이다.

천하의 향방에 큰 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 대단한 손님을 맞았지만, 이 순간 악불군은 담수련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더욱 중요했다.

* * *

“경계가 만만치 않은데? 넌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

천마전의 천마친위대는 천마종이 직접 기른 최고의 무력 집단이었다.

보통 수백 명에 달하는 다른 무력 집단과는 달리 천마친위대는 삼십 명 정도의 소수였지만, 한 명 한 명의 무공은 혈교의 장로들과 맞먹을 정도였다.

청독수는 천호방의 경계가 생각보다 만만치 않자 탈혼살부를 보며 말했다.

작은 체구에 신경질적인 모습의 청독수와는 달리 탈혼살부는 누구라도 보면 주눅이 들 정도로 흉악하게 생긴 모습이었다.

“대충 보니까 우리를 상대할 만한 고수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은데, 그냥 밀고 들어가서 모조리 죽이는 방식이 어떻겠냐?”

“네게 물어본 내가 바보지! 천호무적검이란 놈에게 선풍마강과 염라마부 등이 당했다는 말 못 들었어? 그런 식으로 들어가면 우리도 죽어. 그리고 우리의 임무는 싸우는 것이 아니라 만통광심을 죽이는 거다.”

“만통광심을 죽이려면 지금보다는 구천마성으로 돌아갈 때 노리는 것이 더 낫지 않겠냐? 왜 굳이 천호방 총단에서 죽이라는 것인지 난 이해가 안 가네.”

“둘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도록 하기 위해서잖냐? 넌 그 정도도 머리가 안 돌아가냐?”

그때 그들의 옆에 온몸을 흑의로 감싼 한 괴영이 나타나며 타박하듯이 말했다.

혈교 제일의 잠입술을 지닌 천밀쾌영이었다.

“안은 어떻더냐?”

“무슨 놈의 방도들이 하나같이 살수 무공을 알고 있어.”

“살수 무공? 확실하냐?”

“경계 무사들 열 명 중 다섯은 틀림없는 살수 출신이야. 그래서 잠입하는 것이 다른 곳보다 훨씬 어렵다. 거기다 안에 고수들이 생각보다 많다. 만통광심을 당장 총단 안에서 죽이기는 좀 어려울 것 같다.”

“나 군사가 반드시 총단 안에서 죽이라고 했는데, 포기하고 갔다가는 우리 죽을 수도 있다.”

“누가 포기한다고 했냐? 당장이 어렵다고 했지. 행색을 보아하니 최소한 이삼 일은 묵을 것 같으니까, 그 안에 기회를 잡으면 된다.”

“지금 안 잡힌 기회가 이삼 일 후에는 잡히겠냐?”

“그냥 기다리면 안 되지. 청독수, 우선 네가 유시에 항주 시내에 있는 우물에 독을 풀어라. 그럼 그물로 저녁을 지은 사방에서 난리가 날 거야. 그때 탈혼살부 넌 항주포구로 달려가, 포구를 지키는 천호방도들을 모두 죽여라.”

“넌 뭘 할 건데?”

“난 항주 중심부에 불을 지를 거다. 동시다발적으로 일이 벌어지면 천호방의 무인들이 대거 사방으로 몰려갈 거야. 그때 우린 이곳으로 달려와 만통광심을 제거하는 거다.”

“그게 말처럼 쉽겠냐?”

“그러니까 정확하게 시간에 맞춰 일을 진행해야 한다.”

“아무래도 그 방법은 어렵다. 좀 그럴싸한 방법을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

마지막 말을 들은 천밀쾌영은 청독수와 탈혼살마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황급히 몸을 돌려 방어 자세를 잡으며 소리쳤다.

“누구냐!”

방금 들려온 목소리가 청독수나 탈혼살마가 한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검을 품에 안은 채 미소를 짓고 있는 청년을 보자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천호무적검! 네가 어떻게 여기에?”

분명 조금 전까지도 천호방 총단에 있는 것을 본 그였다.

“네놈들의 마기는 아주 독특해서, 사방 삼십 장 안에만 들어오면 즉시 느낄 수 있거든. 아무리 배짱이 좋아도 그렇지, 감히 본 방의 총단을 그렇게 헤집고 다니면서 안 걸리기를 바랐다면 바보들이라고 봐야겠지?”

자신의 능력에 큰 자부심이 있는 천밀쾌영이 안채까지 들어간 것은 최대의 실수였다.

그가 안채로 들어오는 순간 악불군의 기감에 그대로 걸린 것이다.

“내가 손님이 계셔서 좀 바쁘다. 식사를 준비 중이니, 그 전에 끝내도록 하자.”

말을 마친 순간 악불군의 검이 달빛을 토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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