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검지애-286화 (286/472)

<천검지애 286화>

286화. 사건(2)

“그게 무슨 소리예요? 저와 며칠 전에도 전서를 주고받았는데?”

담수련의 질문에 고철황도 상기된 표정으로 답했다.

“문 군사님께서 피살당하신 장소가 장한산의 관제묘로 굉장히 외진 곳이었다고 합니다. 개방의 제자들이 아니었다면 피살당하신 사실도 모를 뻔했습니다.”

담수련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녀에게 악불군을 제외한다면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 바로 문창현이었다.

그녀는 그에게 글을 배웠고 진법을 배웠다. 무림의 여러 고사와 야사들도 그에게서 들었다.

사실 그녀의 모든 지식 중 책을 제외한다면 대부분 문창현에게서 얻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만큼 문창현에 대해 매우 잘 알았기에, 그가 담무룡을 배신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받아주었다.

절대 자발적으로 담무룡의 배신할 사람이 아니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머리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무공도 대단히 높았다. 함정 같은 곳에 쉽게 빠질 사람도 아니었지만, 빠진다 한들 쉽게 죽음을 당할 사람이 아니었다.

더욱이 조심성이 많은 편이라 섬의 외딴 관제묘에 홀로 갈 사람이 아니었다.

“문 군사의 시신을 개방에서 발견했다고요?”

“예, 개방의 제자가 천신문패를 발견하고 총단으로 연락한 모양입니다. 누 장로와 유징 당주가 직접 확인하고 시신을 인도받았다고 합니다.”

“누 장로님이나 유 당주는 무엇을 하고 있었다는 겁니까?”

“아직 거기까지는 보고를 받지 못했습니다.”

담수련은 그 얘기에 현 상황이 너무나 이해가 안 됐다.

“추국!”

“예!”

“정보당주를 찾아가서, 문 군사에게서 온 것이 있으면 어떤 것이든 다 가지고 오라고 해. 그리고 개방에 사람을 보내, 문 군사의 시신을 발견한 곳에서 단서가 있는지도 알아오라고 하고.”

“예!”

추국은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직감하고 즉시 뛰어나갔다.

“연화는 내가 서찰을 보관하는 서랍에서 문 군사의 서찰을 모두 추려라.”

“예!”

“고 장로님은 누 장로님께 연락해서, 그동안 문 군사님의 움직임을 하나도 빼지 말고 다 보고하라고 하세요. 특히 사건 당일의 행적은 최대한 세세하게 적어서 보내 달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고철황이 나가자 흑란이 물었다.

“아가씨, 방주님께 알릴까요?”

“지금 아주 중요한 고비일 수도 있어. 우선 상황을 먼저 알아보고 알려도 늦지 않다.”

“예.”

“아가씨, 문 군사님께서 보내신 서찰은 총 여덟 통입니다.”

연화가 그녀 앞에 서찰을 올려놓았다.

담수련은 혹시라도 자신이 빼 먹은 것이 없나 서찰들을 다시 한 번 자세히 읽기 시작했다.

* * *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양호철은 대룡상단의 총행수직과 천신문의 외부 장로역을 겸직하고 있었다.

그는 문창현의 피살 소식을 듣자 곧장 천신문 총단으로 달려왔다.

침통한 표정으로 앉아 있던 누진봉과 유징 등 천신문의 간부들은 양호철의 질문에 즉답하지 못했다.

“누 장로님! 말씀 좀 하세요!”

“양 장로, 우선 앉게.”

누진봉의 말에 양호철은 고개를 살레 흔들며 자리에 앉았다.

“양 장로님, 저희도 지금 어떻게 된 일인지 다방면으로 알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천신문 외당 당주인 한태성이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답했다.

“한 당주, 아가씨께서 천신문을 책임지라며 문 군사를 보냈어. 그런데 이렇게 피살을 당했다는 사실을 안다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시겠나? 더구나 시신을 개방에서 발견해서 우리가 알았다는 것이 말이 되나?”

“그렇지 않아도 아가씨께서 문 군사의 행적에 대해 하나도 빠짐없이 보고하라는 명이 내려와서 지금 작성 중이네.”

누진봉의 말마따나 한쪽에 학사 한 명이 앉아 그들의 말을 적고 있었다. 이미 상당한 분량을 적은 것으로 보아 꽤 많은 대화가 오간 듯했다.

“누 장로님,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문 군사께서 언제 총단을 나섰느냐는 것입니다. 제가 외부 장로로서 시신이 발견된 관제묘까지 가는 길에서 문 군사님을 본 자가 있는지 조사했는데,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 말은 밤에 은밀히 나가셨다는 뜻 아닙니까?”

“밤에 나가신 것은 확실합니다. 당시 야간 경계를 담당하던 무사가 문 군사님께서 나가시는 것을 보았다는 진술이 있었습니다.”

내당 당주 유징의 말에 양호철은 급히 반문했다.

“확실한 건가?”

“지금 심문실에서 계속 조사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거짓을 말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그때 양호철은 누진봉의 표정에서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는 물었다.

“누 장로님께서 문 군사님과 가장 가까웠는데, 정말 아시는 것이 없으십니까?”

“내가 아는 것이 있다면 벌써 조사를 명했지, 여기서 보고서나 작성하고 있겠나?”

누진봉의 단호한 말에 양호철은 더 이상 물을 수 없었다.

“그런데 양 장로가 우리를 심문하듯 이러는 이유가 뭔가?”

누진봉의 반문에 양호철은 잠시 생각하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문 군사님께서 제게 은밀히 알아보라고 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게 무엇인가?”

“지금은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아가씨께서 오신다고 하시니 그때 말씀드릴 생각입니다.”

“아가씨께서 오신다고 했나?”

“천호방 도창 분타주가 제게 그러더군요. 아가씨께서 근일 내로 오신다고요.”

“아가씨께서 온다면 방주님도 오신다는 말이 아닌가?”

“당연히 그러겠지요.”

누진봉은 모두를 보며 말했다.

“보고서를 좀 더 빨리 작성해야 할 것 같구나. 계속하자.”

그리고 곧 한 명씩 일각 단위로 천신문의 상황과 문 군사의 행적에 대해 아는 대로 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은 분위기가 묘함을 느끼고 있었다. 서로의 한마디 한마디에서, 숨기는 것이 있다는 느낌을 감추기 어려웠다.

* * *

“마음이 많이 안 좋으시지요?”

악불군이 문창현의 죽음에 대해 들은 것은 이미 보고가 있은 후 사흘이 지나서였다. 담수련이 악불군이 연무장에서 스스로 나오기 전까지는 절대 알리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담수련의 표정이 어둡자 악불군은 마음이 무거운 듯 조심스럽게 물었다.

잠룡세가에서 그에게 가장 호의적으로 대해 준 사람 중 한 명이 문창현이었다. 하지만 담수련이 그를 받아들인 후에도 악불군은 그에게 다정한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가 담무룡을 배신한 것은 어쨌든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막상 죽었다는 말을 들으니 그의 마음도 착잡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어찌 됐건 나한테는 사부와 같은 분이셨어.”

답하는 담수련의 목소리에는 슬픔이 곁들어 있었다. 사실 문창현은 그녀에게 사부 이상의 존재였다.

그랬기에 그의 배신에 대해 알고 큰 충격을 받았었다. 그를 용서하고 천신문의 책임자 겸 군사로 보낸 것도 여전히 그를 믿는 마음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제게 빨리 말씀하시지 그러셨습니까?”

악불군이 비밀 연무장에서 연무를 하고 있었지만 담수련이 줄만 당기면 당장 그녀에게 달려오기로 되어 있었다.

“지금 소군이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지 아는데 이런 일로 집중력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어.”

보타검각에서 깨달음을 얻었지만, 그것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만한 수련이 뒷받침되어야 했다.

더욱이 악불군은 자신이 전력을 소진할 정도로 내공을 사용해야 단전에 공력이 축척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본격적인 수련을 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는 보타검각에서 돌아온 후 한 달간 거의 폐관에 준하는 수련을 해 오고 있는 중이었다.

“수련은 언제라도 할 수 있습니다.”

악불군의 말에 담수련은 그의 품에 안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악불군은 그녀가 자신을 주시하자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뭘 그렇게 보십니까?”

“소군이 수련하는 동안 정말 많이 보고 싶었어. 그런데 내 앞에 지금 있는데도 이상하게 보고 싶네.”

“저도 아가씨 정말 많이 보고 싶었습니다.”

둘 사이에 미묘한 분위기가 형성되려는 순간.

“아가씨, 천신문에서 보고서가 도착했습니다.”

고철황의 목소리에 정신이 든 둘은 급히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들어오세요.”

말하는 악불군이나 잠시 고개를 숙였던 담수련이나 뭔가 아쉬운 느낌이 들었지만, 무엇이 아쉬운지는 알 수 없었다.

안으로 들어온 고철황은 둘의 얼굴을 보자 당황한 기색으로 물었다.

“제가 안 좋은 때에 온 것 같습니다. 다시 나갔다. 한 시진쯤 후에 다시 올까요?”

역시 연륜은 무시할 수 없었다.

“아닙니다. 보고서부터 주세요.”

악불군은 급히 손을 저으며 말했다.

보고서를 받은 악불군은 담수련에게 건네며 말했다.

“제가 방주면서 방의 모든 일을 연세도 많으신 고 장로님께 다 맡기다시피 해서 여러모로 죄송합니다.”

“그런 말씀하시지 마십시오. 요새 제가 태어나서 가장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중입니다.”

사실 그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고아로 자라 도문에 들어가 도둑질과 소매치기를 배운 순간부터 도망만 다니는 인생을 살던 그였다.

잡히지 않기 위해 배운 역용술 덕에 역용의 대가로도 불리고, 최고의 양상군자로 귀도신영이라는 명호까지 얻었다.

거기다 소매치기의 전설인 신투라는 이름까지 받으면서 도문에서는 모든 영역에서 최고로 불리는 전설이 되었지만, 실상은 여전히 도망만 다니는 인생이었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무림 세력의 수석장로가 되어 자신을 그렇게 쫓아다니던 무림인들을 수족으로 부리고 있으니 얼마나 좋겠는가.

“그렇게 말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감사하다니요! 전 주군의 충성스러운 수하일 뿐입니다. 그런 말 하시면 제가 몸 둘 바를 모르게 됩니다.”

고철황의 진심 어린 말에 악불군은 미소를 짓더니 다시 물었다.

“그런데 고 장로님께서는 이번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어떤 사건을 분석하고 하는 그런 머리는 없습니다.”

“분석하라는 말이 아니라, 어떤 상황이 되어야 이런 일이 벌어질까 경험에 입각해 그냥 의견을 좀 제시해 달라는 것입니다.”

고철황은 잠시 생각하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절대 갈 이유가 없는 곳에서 시신이 발견되는 경우를 제가 보거나 들은 경험이 몇 번 있었습니다. 그때 잡힌 범인은, 자는 사람을 납치해서 다른 장소로 데려가 죽였더군요.”

“그것은 아닌 것 같네요. 보고서를 보니 문 군사께서 나가는 것을 본 목격자가 있다고 되어 있어요.”

보고서를 읽던 담수련이 고개를 들고는 말했다.

“또 다른 경우가 하나 있었습니다. 한 남자가 뜻밖의 장소에서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남자의 가족들은 집에 있는 것으로 알았던 사람이 집안사람들이 모르게 숨어서 나갔고, 갈 이유도 없는 곳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으니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라며 상당히 시끄러웠습니다.”

“범인은 잡혔나요?”

고철황의 말에 흥미를 느낀 듯 다시 담수련이 보고서에서 눈을 떼며 물었다.

“한참 후에 잡혔는데, 내연 관계에 있던 여인이 불러냈다고 하더군요. 내연 관계다 보니 당연히 서로 비밀로 했겠지요. 그러니 그 남자가 그 장소로 간 이유를 알아낼 수 없었던 것이지요.”

“역시 그거군요.”

고철황의 말에 담수련은 의문이 확 풀렸다는 듯 말했다.

“제 말이 도움이 된 것입니까?”

“정말 크게 도움이 됐습니다. 보고서에서 보이는 의문점도 그렇게 생각하니 풀리는 것 같고요. 다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이상한 점이 몇 가지 있네요. 또 다른 경우는 없나요?”

“노부가 경험한 경우는 그게 다입니다.”

“개방에서 연락은 아직 안 왔나요?”

“상 당주가 방주님께서 주신 패를 가지고 직접 갔으니 곧 답을 가지고 올 것입니다.”

개방은 시신을 찾은 것까지는 천신문에 알렸지만 그 외 다른 것은 말해 주지 않았다. 개방의 내부적인 문제라는 이유에서였다.

개방의 진술은 대단히 중요해서, 악불군은 내당 당주에게 사해신개의 태상호법패를 들려 다시 방문을 하도록 명을 내렸었다.

“그럼 개방에서 돌아오면 즉시 이쪽으로 보내 주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고철황이 나가자 악불군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혹시나 해서 물어본 건데 진짜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소군 말대로 머리만으로는 풀리지 않는 것이 있어. 그래서 경험이 중요한 거겠지.”

“어떤 것이 풀린 것입니까?”

악불군의 질문에 담수련은 신중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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