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검지애-287화 (287/472)

<천검지애 287화>

287화. 사건(3)

“문 군사님은 대단히 신중한 분이야. 심지어 주무실 때도 자신의 침소에 진을 펼쳐 외부의 침입을 막을 정도이신 분인데, 밤에 홀로 한적한 관제묘로 가셨어. 왜 그랬을까가 가장 의문이었는데 고 장로님의 얘기를 듣고 그 이유를 알았어. 문 군사님께서 믿는 사람의 연락을 받고 나간 거야.”

“하지만 문 군사님께서 천신문에 있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지 않습니까?”

문창현은 평생을 잠룡세가에서 지냈다. 그렇다면 그가 믿는 사람들 역시 잠룡세가 사람일 확률이 높았다.

그러나 잠룡세가가 무너지면서 문창현은 죽은 것으로 알려졌고, 그가 천신문에서 지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극소수였다.

“맞아. 우리 주위에 간세가 있어. 그것도 절대 간세가 아니라는 믿음을 줄 정도로 신뢰를 받는 사람이야.”

“그렇다면 문 군사님을 죽인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악불군의 반문에 담수련은 서찰 하나를 내밀었다.

“거기에 보면 ‘아가씨께서 기뻐하실 일이 있을 것 같습니다.’라는 문구가 있어. 그땐 천신문을 위해 뭔가 일을 벌이나 생각했어. 그런데 지금 보니까 의미가 있었던 것 같아.”

“아가씨께서 기뻐하실 일이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악불군도 뭔가 의미심장한 의미가 있다고 느꼈는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놀란 듯 반문했다.

“혹시 가주님일까요?”

“그래, 나도 소군과 같은 생각이야. 문 군사께서 아버지에 대해 뭔가를 알아낸 것 같아. 기뻐할 일이라는 것은 생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일 거고.”

“하지만 문 군사님의 죽음과 그게 연관이 있을까요?”

“이제부터 그게 어떤 연관이 있는지 알아봐야지. 다만 여기 보고서를 보면 좀 이상한 점이 있어.”

“어떤 점이 이상합니까?”

“누 장로와 당주들이 문 군사를 본 행적과 시점에 어긋나는 곳이 여러 곳 있어.”

“아가씨, 설마 누 장로와 당주들을 의심하십니까?”

“누구 하나를 의심한다기보다는, 모두를 의심해야 할 상황이야. 소군의 수련은 어떻게 됐어?”

“제가 원하는 것은 찾았습니다. 더 이상 집중수련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나 때문에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니지?”

“제가 아가씨께 거짓말을 안 한다는 거 아시잖아요?”

악불군은 답을 안 하거나 두루뭉술하게 그냥 넘길지언정 거짓말을 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담수련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럼 나랑 천신문에 가야 할 것 같아.”

“당연히 가야지요.”

* * *

천호방이 문창현의 죽음으로 어수선 와중에, 무림은 황실의 대형 포고에 들썩이고 있었다.

드디어 영웅대회를 개최하는 날이 발표된 것이었다.

무림인들은 이미 예고된 것임에도 무림 역사상 처음 있는 초대형 비무에 환호하기 시작했다.

다른 모든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무림인들은 그중에서도 명성에 관한 한 병적으로 집착하는 집단이었다.

하지만 명성을 얻는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다.

가장 좋은 방법이 악불군처럼 강호를 횡행하며 강자들을 이기는 것이었지만, 대부분은 오히려 자신의 목숨을 빼앗기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래서 무림 문파에서는 강호행을 나가는 제자들에게 강호의 시비에 휩쓸리지 않게 조심, 또 조심시켰다. 수년을 키워 온 제자가 아직 피지도 못하고 어이없이 죽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대부분의 시비는 사파와 생기기 마련이었는데, 그들은 절대로 정정당당한 결투를 하지 않았다. 독은 물론 암기 특히 떼로 몰려와 합공하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런 위험을 모두 헤쳐 나간 자만이 명성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명성을 얻기 위해서는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영웅대회는 단숨에 명성을 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거기다 십왕에 뽑힐 경우 왕야에 버금가는 특혜까지 황실에서 약속했으니, 그 대가까지도 너무 달콤했다.

모든 문파는 제자들에게 무림 활동을 잠시 멈추고 귀환하라고 명하기 시작했다.

무림에 뜻하지 않은 평화가 잠시 도래한 것이다.

“방주님, 지금 무림이 영웅대회로 난리입니다.”

천신문의 총단이 있는 남창으로 떠날 준비를 하는 악불군과 담수련을 보며, 동정어옹이 다가와 걱정스럽다는 듯 말했다.

그러자 담수련이 미소를 지며 말했다.

“방주님께서 이미 십왕에 봉해지셨는데, 우리가 영웅대회에 신경 쓸 이유가 있을까요?”

“영웅대회를 황상의 직접 지시하에 여니 막을 방법은 없지만, 아마 각 문파들은 영웅대회를 준비하면서 걱정이 태산일 겁니다.”

“자세히 말해 보세요.”

“지역적으로 작은 비무 대회는 이따금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 무림이 참가하는 비무 대회는 백오십여 년 전에 마지막으로 열리고 그 뒤로는 한 번도 열린 적이 없습니다. 그 이유가 바로 지금 말씀드린 부작용 때문이었지요. 당시 많은 기재들이 암습을 당해 죽었습니다. 당한 문파에서는 의심이 되는 문파를 공격했고, 그 바람에 온 무림이 아수라장이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방주님은 이미 십왕에 봉해졌는데 그런 일이 벌어질까요?”

“아가씨께서 무림인들의 본성을 아직 다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저는 방주님께서 이미 십왕에 봉해지셨기 때문에 더 많은 공격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정어옹의 말에 담수련은 반박하지 않았다. 사실 무림인들의 본성에 대해 완전히 파악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그녀도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방 장로님 생각으로는 어떤 자들이 공격할 것 같으신가요?”

“어떤 자라고 특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무림인들이 영웅대회에 열광하는 것은 단숨에 최고의 명성과 명예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미 십왕으로 봉해지신 방주님을 죽이면 대회에서 이기는 것과 맞먹는 명성을 떨칠 수 있겠지요. 뿐만 아니라, 그렇게 된다면 십왕의 자리가 한 자리 더 나올 것 아니겠습니까? 정파는 물론 모든 무림인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방주님을 죽일 정도면 대회에서도 이길 가능성이 있을 텐데 굳이 그런 무리한 일을 벌일까요?”

“그럴 자신이 없으니까 노리는 것이지요. 그들은 절대 혼자 덤비지 않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방주님만이 아니라 영웅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낼 것 같은 고수들은 모두 똑같은 위험에 처해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일대일로 자신이 없으니 대회가 열리기 전에 경쟁자를 먼저 제거한다는 말이군요?”

“이제부터 방주님께서 움직이실 때는 좀 더 많은 수하들이 호위해야 한다고 봅니다.”

담수련은 악불군을 쳐다보며 말했다.

“동방 장로님의 염려가 맞는 것 같네요. 괜히 적들에게 빌미를 주어 쓸데없는 살상을 하는 것보다는, 아예 덤빌 엄두를 못 내게 하는 것도 괜찮아 보여요. 그리고 어차피 남창에 가면 사람이 많이 필요할 수도 있고요.”

담수련의 말에 악불군은 고개를 끄덕이며 흑석영을 보며 명을 내렸다.

“흑 호법!”

“예!”

“천호방의 무력 집단을 이번에 한번 움직여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럼 일 대를 준비하겠습니다.”

천호방은, 추명혼의 지독한 수련으로 현재 네 개의 무력 집단이 조직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직 활동은커녕 이름조차 짓지 못하고 일 대, 이 대로 부르고 있었다.

* * *

“문창현을 죽일 필요가 있었느냐?”

쪽빛 구슬 주렴 안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무릎을 꿇고 있던 가면인이 바닥에 머리를 대더니 조심스럽게 답했다.

“그가 너무 가까이 왔습니다. 그냥 살려 두기에는 위험하다고 판단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걸리지를 않았어야지! 시신을 발견했으니 천호무적검이 직접 조사에 나설 것이 아니냐?”

“시신을 화골산으로 녹여 없앨 생각이었습니다. 하필 그때 개방에서 나타날 줄은 정말 예상 못 했습니다.”

“우연이란 말이구나?”

“예.”

“그렇다면 개방 놈들까지 전부 제거했어야지!”

“모두 제거하기에는 너무 많이 나타났습니다.”

“골고루 하는구나. 이번 일로 우리의 중요한 정보망이 노출된다면 어쩔 것이냐?”

“제가 죽음으로 책임을 지겠습니다.”

“네 실수는 죽음으로도 책임지기 어렵다. 천호무적검이 담수련과 함께 남창으로 향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그가 간다 해도 아무런 단서를 잡을 수 없도록 모든 꼬리를 잘라 내라.”

가면인은 다시 머리를 바닥에 대며 소리쳤다.

“존명!”

가면인이 사라지자 구슬 주렴 앞에 또 다른 가면인이 나타났다.

“아깝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저 아이도 제거하거라.”

“예!”

* * *

“관제묘에 간 이유를 알려 달라고 했다고?”

“예! 태상호법패를 가지고 와서 어쩔 수 없이 알려 주었다고 합니다.”

사해신개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가 알기로 악불군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 많았다. 그런데도 태상호법패를 사용하지 않았었다.

“그 관제묘에서 발견한 자가 누구인지는 알아냈느냐?”

“천신문의 사람인 것은 확실합니다. 하지만 누구인지는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사실 지금 천신문과 천호방의 방도들에 대한 정보가 너무 적습니다.”

“악불군이 태상호법패까지 사용했다는 것은 그곳에서 발견한 시신이 대단히 중요한 인물이라는 말인데, 모른다? 본 방의 정보력이 그렇게 떨어졌더냐?”

“저희가 방을 통일하느라 다른 곳에 신경을 쓸 틈이 없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좀 더 신경 써서 정보를 수집하겠습니다.”

“천호방은 아주 중요한 우리의 우군이 될 것이니 심기 상하지 않도록 조심해서 조사하도록 하거라.”

사해신개는 악불군이 드디어 태상호법패를 사용했다는 것은 개방을 우군으로 여긴다는 의미라고 판단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연환개가 그 관제묘를 간 이유는 뭐였느냐?”

“강서에서 쫓겨난 궁가방도들이 자주 출몰한다는 보고를 받고 이번 기회에 모조리 소탕한다고 전 분타의 제자를 이끌고 나갔다고 합니다.”

“거기에 있던 놈들은 아주 재수 없는 놈들이군. 우리가 그때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몰랐을 테니 말이다.”

“우연으로 보기에는 좀 절묘하긴 합니다.”

“궁가방이 거기에 나타난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알아보고, 시신을 발견할 당시의 상황과 시신의 상태 그리고 시신의 용모파기까지 다 보고하라고 전해라.”

“알겠습니다.”

다시 개방을 통합한 지금 사해신개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아마 악불군이 연관되어 있지 않았다면 신경도 쓰지 않았을 것이었다.

“최대한 악불군에게 도움을 줘야, 마음 놓고 도움을 청할 수 있지.”

사해신개는, 지난날 선실 벽에 서서 잠을 청할 정도로 한 여인을 보호하던 악불군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는 그날 그 모습에서, 한번 연을 맺으면 절대 배신하지 않을 악불군의 충후함을 보았다.

* * *

“정말 대단하네?”

안휘성 주루에 들른 담수련은 악불군을 보며 말했다.

가는 곳마다 온통 화제는 영웅대회에 대한 것이었다. 특히 주루는 호사가들이 모이는 곳으로 그 입담을 듣기 위한 손님들로 꽉 차 있었다.

이곳 주루에 있는 호사가도 역시 오랜만에 생긴 호재에 물 만난 물고기처럼 갖가지 얘기를 자신의 상상까지 덧붙여 풀어내고 있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악불군의 입가에도 재미있다는 듯 미소가 나타났다.

호사가의 목소리는 모두 들을 정도로 컸다. 그는 무림의 많은 고수들의 명호를 들먹이며 그들의 무공 특징까지 마치 본 듯이 말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허풍이라는 것을 악불군은 알고 있었다.

그가 얘기하는 도중 천호무적검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었는데, 검을 타고 하늘을 날아다닌다는 등 그도 할 수 없는 것들을 마치 자신이 본 것처럼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천호무적검이 진짜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런데 진짜 천호무적검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일이 벌어졌다.

주루의 계단으로 십여 명의 무인들이 올라온 것이다.

남궁세가의 사람들이었다.

악불군은 많은 수하들을 이끌고 출발했지만, 안휘에 들어서면서 마차에 붙은 천호방 깃발도 떼고 수하들도 원거리에서 따라오도록 했다.

안휘는 남궁세가의 세력권으로, 천호방 깃발을 달고 수하들을 이끌고 들어오려면 그들의 허락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남궁세가 역시 오대세가의 수장 소리를 듣는 문파였다.

악불군이 안휘성을 들어서자마자 남궁세가에는 천호무적검이 안휘에 들어왔다는 보고가 즉각 들어간 것이다.

이 층으로 올라온 무인들을 보자 호사가의 입이 닫혔다. 그의 얘기를 들으며 맞장구를 치던 사람들도 불안한 듯 고개를 살짝 숙였다.

지휘자로 보이는 중년인은 주위를 한 번 둘러보더니 곧장 악불군의 자리로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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