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검지애 289화>
289화. 추적(2)
“방주님께서 문주님과 함께 남창에 도착하셨다고 합니다. 곧 총단에 도착하실 것 같습니다.”
모두 침통한 표정을 한 채 침묵으로 일관하던 천신문의 간부들은, 한태성의 보고에 서로를 한 번 쳐다보았다.
“나가 봤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유징의 말에 아무도 답을 하지 않았다.
악불군이 아무도 마중 나오지 말고 정청에 대기하고 있으라는 명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방의 수장이 마중을 나오지 말라는 말은 신임하지 못한다는 의미와 같았다.
그들은 모두 보고서에 적지 못한 비밀들이 한 가지씩 있었다. 그랬기에 지금 상황이 더욱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삼각쯤 지났을까…….
다시 밖에 나갔던 한태성이 뛰어 들어왔다.
“문주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모두는 긴장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문을 열고 공손한 자세로 도열했다.
그리고 그 순간, 사화의 호위를 받으며 악불군과 담수련이 나타났다.
“모두 앉으세요.”
청 안으로 들어선 담수련은 약간 경직된 목소리로 말했다.
언제나 부드럽던 그녀의 변화에, 자리에 앉는 모두의 표정은 더욱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앞에 사화가 종이 뭉치를 내려놓았다.
“뜻하지 않은 비보로 모두 마음이 안 좋으실 것으로 생각해요. 이 서류는 여기 계신 간부님들이 보내 주신 보고서입니다. 모두 아시겠지만 본 문의 군사님께서 의문의 피살을 당하셨어요. 사안이 너무 중하기에 어쩔 수 없이 여러분들을 일대일 심문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분도 나쁘고 여러모로 불편한 느낌을 받으실 수도 있지만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저희가 무능하여 군사님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했습니다. 문주님께서 어떤 벌을 내리신다 해도 달게 받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마음이 한결 가볍네요. 그럼 누 장로님만 남고 나머지 분들은 모두 잠시 나가 주세요.”
오랜만의 만남이었지만 인사나 차를 마시며 하는 담소조차 없이 당장 본론으로 들어가는 담수련의 모습에서, 그녀가 이 일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다.
모두가 나가자 누진봉은 긴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제가 문주님께 먼저 용서를 빌겠습니다. 하나도 빠짐없이 보고하라고 하셨는데 몇 가지 누락시킨 것이 있습니다.”
“말씀해 보세요.”
“사실은 문 군사께서 제게 유징 당주에 대해 조사를 진행해 달라고 밀명을 내리셨습니다.”
“유징 단주를요?”
“예.”
“어떤 조사를 부탁했지요?”
“좀 의아하기는 했는데, 천신문 밖에서의 행동을 조사해 달라고 했습니다. 총단 밖에 나가면 어디를 자주 가는지, 그리고 누구를 만나는지 등, 사생활 부분에 대한 조사를 부탁했습니다. 유징 당주가 알면 문의 분위기가 이상해질 것 같아 보고서에 넣을 수가 없었습니다.”
“보고서에 문 군사와 네 번의 독대를 했다고 적혀 있던데, 그것 때문이었나요?”
“그것도 있었지만 종리 단주님께 연락이 있었는지에 대해 물으셨습니다.”
“종리 단주님은 왜요?”
“이번 사건이 일어나기 약 한 달 전쯤, 제게 갑자기 종리 단주님과 연락이 가능하냐고 물으셨습니다.”
순간 담수련과 악불군의 표정이 동시에 굳어졌다. 그들이 가장 믿는 사람의 이름이 왜 여기서 나온단 말인가…….
담수련은 약간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 종리 단주님과 연락하려고 했는지는 아시나요?”
“말씀 안 해 주셨습니다. 그냥 급한 일이니 빨리 만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빨리를 강조했다는 건가요?”
“예, 최대한 빨리 만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두 분이 만나셨나요?”
“문주님도 아시다시피 저희가 만나고 싶다는 표식을 남기면 그쪽에서 연락이 와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연락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문 군사께서 어떻게 됐느냐며 계속 재촉하셨습니다.”
담수련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유징의 뒷조사를 부탁한 것도 이상했지만, 종리화와 급히 만나야 할 일이 있었다는 것은 더욱 의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문 군사님을 마지막으로 보신 것이 시신 발견 소식을 듣기 이틀 전 인시로 되어 있네요? 한밤중인데 어떻게 만나신 거지요?”
“만난 것은 아니고, 거기에 계신 것을 본 것뿐입니다.”
“그게 무슨 상황인지 자세히 말해 보세요.”
“그때 저는 외부 경계를 순찰 중이었습니다. 이따금 잠이 안 오면 자주 그럽니다. 그때 문 군사의 집무실에 불이 켜져 있고 둘이 대화를 나누는 듯한 그림자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전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구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요?”
“죄송합니다. 사실 가까운 거리에서 본 것이 아닌지라 목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문 군사께서 밤에도 간부들을 불러 대화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전 그러려니 하고 그냥 순찰을 계속 돌았습니다.”
담수련은 보고서를 몇 번 뒤적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그들이 쓴 보고서에는 그 시간에 문창현과 만났다는 간부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그 그림자가 진짜 문 군사님인지도 모르시겠네요?”
“문 군사 맞습니다.”
“보지도 못했고 목소리도 듣지 못했다면서 어떻게 확신하세요?”
“그림자만 있어도 문 군사인지 아닌지는 구별이 가능합니다.”
담수련은 누진봉의 대답에 확신이 차 있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수고하셨어요. 이만 나가셔서 양 장로님을 들어오시라고 전해 주세요.”
“예!”
“소군은 누 장로의 말이 어떻다고 생각해?”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담수련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일 때, 양호철이 안으로 들어왔다.
“앉으세요.”
“예!”
“양 장로님은 대부분의 시간을 도창에서 보내시지요?”
“예, 대룡상단 일이 주 업무라서 도창에 있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런데 왜 남창에 와서 문 군사님을 만난 거지요?”
“문 군사께서 제게 찾아오라는 서찰을 보내셨습니다.”
양호철은 품에서 서찰을 하나 꺼내 놓았다. 그러자 서찰은 둥실 떠올라 담수련 앞으로 날아갔다. 악불군이 허공섭물로 그녀에게 전한 것이다.
서찰에는 낯익은 글씨체로 양호철에게 들러 달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부르신 이유가 무엇이던가요?”
“잠룡밀 당시 가주님과 어떻게 연락을 주고받았는지를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뭐라고 하셨어요?”
“처음 잠룡밀을 조직했을 때는 가주님께서 외유를 핑계로 이따금 오시기도 했고, 전서와 인편을 같이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반군의 기세가 커지면서 잠룡세가와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것은 그만두고 전서로만 연락했습니다. 그러다 종리 단주님께서 나오신 이후에는 모든 연락을 종리 단주님을 통해서 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것뿐이었나요?”
“소가주님께서 오신 후 이상한 점은 없었냐고도 물었습니다.”
“오라버니에 대해서도 물었다고요?”
“예.”
“그래, 이상한 점은 있었나요?”
“특별히 이상한 점은 못 느꼈지만, 계속 불안해하시는 것은 좀 이상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종산은자에 의해 여러 가지 협박 비슷한 요구를 받았으니 불안할 수밖에 없었지만, 양호철은 거기까지는 알 수 없었다.
“그 외에는 또 없었나요?”
“잠룡밀 대원들의 사생활에 대해 조사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또 사생활?’
담수련은 핵심이 거기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다른 것은 없었나요?”
“예.”
“그럼 나가셔서 유징 당주에게 들어오라고 전해 주세요.”
“예!”
담수련의 심문은 유징 이후에도 두 시진이나 더 이어졌다.
그리고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문창현은 천신문 간부들에게 비밀이라며 서로를 감시하고 조사하도록 지시했던 것이었다.
그 말은 문창현이 이들을 의심했다는 의미였다. 문제는 천신문에 온 지 얼마 안 된 그가 왜 그런 의심을 하게 되었는가였다.
* * *
심문을 끝내고 모두에게 쉬도록 명한 담수련이 향한 곳은 문창현의 집무실이었다.
잠룡세가 때도 일벌레였던 문창현은,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책상 위에는 서류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휴우, 이곳에 오셔서도 일만 하신 모양이네.”
한숨을 내쉰 담수련은 서류들을 하나씩 살피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쓰레기통에 가득한 구겨진 종이들을 펼쳐 보던 악불군이 한 종이를 들고는 담수련에게 갔다.
“아가씨, 여기 적힌 낙서가 좀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악불군이 내민 종이에는 두서없이 적힌 여러 글자들이 산만하게 쓰여 있었다.
아마도 문창현이 고뇌하면서 무의식적으로 적은 듯했다.
“가주님? 배신자…….”
여러 글자 중 다른 것은 그 의미가 불분명했지만 두 단어만은 확실히 특이했다.
“이곳에 와서 금방 이런 생각을 했을 것 같지는 않고, 아무래도 잠룡세가에서부터 의문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왜 문 군사는 잠룡밀과 잠봉밀 사람들을 의심했을까? 그들은 아버지께서 진짜 믿는 사람들을 고른 것일 텐데?”
“그분들을 직접 조사하지 않고 사생활을 조사하도록 한 것에 단서가 있지 않을까요?”
“그래, 문 군사도 이들이 배신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은 거야. 하지만 어디선가 비밀이 새어 나갔다고 판단한 것이 분명해. 그런데 천신문에 온 지 얼마 안 된 분이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
그녀가 아는 문창현은 현명하기도 했지만, 대단히 신중한 사람이었다. 절대 아무 이유 없이 누군가를 의심할 사람이 아니었다.
“제가 생각해도 뭔가 동기가 있었을 것입니다.”
“분명 이 안에 단서가 있을 텐데…….”
“아가씨, 문 군사님의 성격상 중요 서류는 어딘가 숨겨 놓지 않았을까요?”
“맞아. 중요한 단서를 이런 서류 뭉치 속에 같이 둘 분은 아니지.”
담수련은 생각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지 다시 사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악불군 역시 벽과 천장 등 비밀 장소가 있을 만한 곳을 모두 손으로 만지며 찾았다.
그때, 그녀의 시선이 한곳으로 향했다. 벽에 걸려 있는 학사모였다. 조심스럽게 모자를 내린 그녀는 모자 주위의 천을 만져 나갔다. 그리고 곧 뭔가를 발견한 듯 모자의 단을 찢었다.
“예전에 문 군사께서 쪽지를 보다가 내가 방에 들어가니까 모자의 단에 넣었던 것이 생각났는데, 여전하시네.”
안에서 나온 것은 돌돌 말아 놓은 쪽지였다.
담수련은 드디어 단서를 찾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급히 쪽지를 폈다. 쪽지는 한 장이 아니라 여러 장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표정은 첫 번째 쪽지부터 심각하게 굳어졌다.
“뭐라고 적혀 있습니까?”
“문 군사께서 자신의 의문점을 적어 놓으신 거야. 여기 적힌 순서를 보면 문 군사께서 이미 오래전부터 여러 가지 의문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
“그래요? 그게 어떤 의미일까요?”
“요점만 간결하게 적혀 있고 여러 군데는 비문으로 적혀 있기도 해서, 나도 아직은 확실하게는 모르겠어. 다만 아버지께서 배신을 당하고 잠룡세가를 빠져나갈 때부터 이미 의문을 품고 있었던 것은 분명해. 그러면서 자신이 가동하는 정보망을 통해 계속 정보를 수집해 왔고.”
“문 군사께서 가주님을 배신한 것이 아니었다는 겁니까?”
“아니, 배신한 것은 맞는데,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것 같아. 문 군사는 아버지께서 이중 음모에 당하셨다고 판단하고 있어.”
“누구에게 말입니까?”
“여기도 자세한 전모는 적혀 있지 않아. 오늘 밤 자세히 읽어 보고 철저하게 분석해서, 문 군사께서 무엇을 조사하려고 한 건지 알아내야겠어. 분명한 것은 문 군사는 아버지께서 믿는 사람에게 배신을 당했다고 확신한 것 같다는 거야.”
담무룡이 믿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잠룡밀과 잠봉밀을 맡긴 수하들이었다. 문창현이 그들을 서로서로 은밀히 조사하게 한 것은 타당성이 있었지만, 진짜 배신자가 있었다면 정말 위험한 방법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피살을 당한 것일 수도 있었다.
“문 군사님께서 그런 의구심을 품고 있다면 왜 아가씨께 먼저 말을 하지 않았을까요?”
“아버지를 배신한 전과가 있어서, 확실한 증거를 찾은 후에 말하려고 했을 거야. 그런데 이상하네?”
“뭐가 말입니까?”
악불군의 반문에 담수련은 고심하는 표정을 지으며 잠시 답이 없다가 결심한 듯 말했다.
“소군, 유모는 왜 문 군사의 만나자는 연락에 답을 안 했을까?”
순간 악불군은 눈을 크게 뜨며 그녀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