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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검지애-290화 (290/472)

<천검지애 290화>

290화. 흑막(1)

“아가씨, 설마 종리 단주님까지 의심하시는 겁니까?”

악불군은 그녀가 종리화까지 의심하는 듯하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나 담수련이나, 절대 의심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바로 종리화이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악불군이 처음 잠룡세가에 들어왔을 때, 담수련을 제외하면 처음부터 자신에게 호의적으로 대해 준 사람은 종리화뿐이었다.

문제는 그런 말을 하는 악불군조차, 지금까지의 모든 정황을 짚어 보았을 때 종리화 역시 의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

“나도 그러고 싶지 않아. 하지만 유모가 왜 문 군사의 요청에 답조차 주지 않았는지는 해명해야 할 거야.”

“아가씨, 우선 이곳에서의 조사가 끝나면 가장 먼저 종리 단주님을 만나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때까지는 어떤 생각이든 먼저 예단은 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알았어. 나도 유모가 배신에 가담했다는 것은 믿고 싶지도 않아. 아버지를 얼마나 좋아하셨는데 아버지를 배신하겠어.”

담수련의 말 속에는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했다.

* * *

“악 방주가 남창으로 갔다고?”

우문상일의 보고를 받은 제갈우명은 의아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예, 방금 들어온 소식입니다.”

“영웅대회로 전 중원이 들썩이는 판국에, 굳이 남창으로 갈 이유가 있나?”

“제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남창 인근 관제묘에서 피살된 시신이 발견되었는데 그것 때문에 간 것 같습니다.”

“남창 근처에 천호방 분타가 있지 않나?”

“예, 도창에 분타가 있습니다.”

“피살된 자가 누구이기에, 분타가 있는데 방주가 직접 간 거지?”

“개방에서 시신을 발견한 모양인데, 개방에서도 죽은 자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알아내지 못했다고 합니다. 더욱이 죽은 자는 천호방도가 아니라 천신문의 문도라고 합니다.”

물론 천신문과 천호방은 협력 세력을 넘어 거의 같은 세력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공식적으로는 엄연히 다른 문파였다.

“천신문의 문도가 죽었는데 악 방주가 직접 움직였다면, 특별한 자가 죽은 것이 분명한데…….”

“그것도 그것이지만, 지금 악 방주를 쫓는 자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왜?”

“제 짐작으로는 악 방주를 죽여 자신들의 명성을 높이려는 자들로 보입니다.”

“악 방주가 그동안 보인 위용을 보고도 그런 생각을 하다니, 참 우둔한 자들이군.”

“명성을 올릴 수 있다면 무슨 방법이든 쓰는 자들이니까요.”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은 자신에게 있는 법이네. 상대를 죽이려 했다면 자신이 죽는 것도 감수해야겠지. 우문 총책.”

“예!”

“지금 악 방주의 행동은 전 무림의 주시를 받고 있네.”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나서면 불에 뛰어드는 불나방 같은 자들이 나타날 것을 모를 리 없음에도 직접 움직였다는 것은, 이번 사건이 천호방에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는 방증이라고 보네. 군사전의 정보망을 가동해서 무슨 상황인지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게.”

“그렇게 하겠습니다.”

우문 상일이 나가자 제갈우명은 의자 등받이에 등을 대며 눈을 감았다.

그는 얼마 전 천호방에서 개방을 통해 비밀리에 그에게 보낸 서찰의 내용을 생각했다.

거기에는 천호방과 구천마성 간에 오간 대화들이 자세히 적혀 있었다. 물론 전부 다 적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보낸 내용만으로도 그는 상당히 놀라고 말았다.

‘혈교…… 천년마교의 후예…… 계속해서 무림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는 신비의 조직…… 지금 무림은 정파가 우세한 상황이 절대 아니야. 불안해…….’

제갈우명은 생각보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무림의 상황에 대해 점점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불안은 그에게 악불군의 중요성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었다.

* * *

“천호무적검이 남창에 왔다고?”

혈마전주 혈마종은 군사인 악심사뇌의 보고에 인상을 찌푸렸다.

“예, 방금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그냥 절강에나 있지, 왜 남창으로 와서 귀찮게 하는 거야?”

절강은 천마전의 구역이지만, 남창이 있는 강서는 혈마전 구역이었다.

“내부적인 문제로 온 것 같습니다. 교주님께서 특별 감시를 하라고 명하셨는데, 어찌할까요?”

“죽이라고 하셨다가 갑자기 마음을 바꾸신 이유가 뭘 것 같으냐?”

“감히 교주님의 심중을 저 따위가 어찌 가늠하겠습니까?”

“나한테는 말해도 되니까 해 봐.”

악심사뇌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천호무적검에게서 이용할 가치를 발견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맞았어. 교주님께서 그놈에게서 뭔가 이용할 만한 것을 찾아내신 모양인데, 솔직히 난 좀 불만이야.”

“전주님, 누가 들을까 걱정됩니다.”

“듣긴 누가 들어! 어차피 죽일 놈은 그냥 죽이는 것이 후환도 없고 가장 깨끗한 거다. 네 생각은 안 그러냐?”

“그래도, 교주님의 명령이신데…….”

“됐다. 네가 알아서 감시를 붙여라.”

“알겠습니다.”

혈교는 자신들이 악불군을 은밀하게 감시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악불군이 오히려 그들을 잡기 위해 여러 가지 덫을 설치하고 있는 줄은 상상도 못 하고 있었다.

* * *

모두를 다시 소집한 담수련은 피곤함을 느꼈다.

악불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밤새도록 문창현의 집무실에서 발견한 쪽지를 가지고 고심하고 또 고심했기 때문이었다.

“유 당주님.”

“예!”

“제가 부탁한 문서들은 다 가지고 오셨지요?”

“예, 여기 가지고 왔습니다.”

유징이 내민 장부는 방명록이었다. 총단에 방문자가 있을 경우 방문자의 신분과 이름 그리고 방문 목적을 적어 보관하는 것은 모든 문파에서 반드시 하는 업무였다.

“언제부터 언제까지지요?”

“문 군사께서 오신 후부터 어제까지입니다.”

“한 당주님도 가지고 오셨지요?”

“예, 여기 있습니다.”

외당당주인 그가 가져온 것은 외부에서 일어난 모든 사건들을 정리한 장부였다.

담수련은 문창현이 자신만의 정보망을 가동했다는 것을 쪽지에서 알아냈다. 그렇다면 누군가 그것을 전해야 하는데, 은밀하게 만나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니 분명 방문자로 분해 만났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가 천신문에 들어온 후에 모두를 의심하기 시작한 데에는, 정보망을 통해 얻은 정보만으로는 이유가 부족했다.

외부에서 그것을 눈치챘다면 천호방 분타에서도 눈치챘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담수련은, 그 의심은 분명 남창에 와서 생겼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방문자들은 대부분이 상인들이었다. 천신문이 무림 방파를 표방하기는 했지만, 상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대룡상단과 연계된 상행위에 주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원래 목적이 잠룡밀과 잠봉밀을 위장하기 위한 조직이었기 때문에 무림 세력들에게 주목받지 않기 위해서였다.

보고서를 읽어 가던 담수련의 눈에 수상한 대목이 포착됐다.

“용연상회의 주인은 누구지요?”

“용연상회요?”

“한 달 전쯤 용연상회의 주인이 문 군사님과 독대를 했다는 대목이 있어요.”

“아! 용연상회라고 남창 시장거리에 새로 상회를 열었다며 인사차 왔었습니다.”

“인사차 왔는데 문 군사님과 독대를 했다는 건가요?”

그러자 총관이 답을 했다.

“우연히 문 군사님께서 나오셨다가 그분을 보셨습니다. 그런데 아는 사이였는지 인사를 하더니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셨습니다.”

“문 군사님께서 방문소에 자주 나오셨나요?”

“그……게, 그때가 아마 처음이셨던 것 같습니다.”

“그럼 우연이라고 보기는 힘들 것 같네요. 한 당주님.”

“예!”

“용연상회 주인이란 분을 모셔 오세요. 만약 거절하면 강제로 데려와도 됩니다.”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왜죠?”

“제가 남창 시장 순찰을 나갔는데 용연상회가 문을 닫았더군요. 물어보니까 장사가 안 돼서 물건값도 지불하지 않고 야반도주를 했다고 했습니다.”

“언제요?”

“삼 일 전이었습니다.”

담수련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며 물었다.

“문 군사님께서 피살을 당한 것을 아셨으면서, 이런 것을 조사해 볼 생각도 안 한 겁니까?”

“죄송합니다.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 했습니다.”

“그 주인의 이름도 모르겠군요?”

방명록에는 용연상회 주인이라는 글자만 적혀 있었다.

“그게 한 달 전이고, 당시는 중요하다는 생각을 못 했습니다.”

“얼굴을 본 사람은 몇 명이나 되지요?”

“총관하고 방명록 작성하는 학사 그리고 경계 무사들이 보았을 것입니다.”

“당장 용모파기를 그리게 하세요.”

“알겠습니다.”

방명록에서 더 이상의 특이점을 발견 못 한 담수련은 사건 보고서를 펼쳤다. 그리고 첫 장부터 그녀의 눈에 띈 것이 있었다.

“이틀 전, 화재가 있었네요?”

“예, 송화루라는 기루가 불에 탔습니다.”

기루라는 말에 담수련의 눈에 이채가 나타났다.

“피해가 있었나요?”

“안에 있던 기녀들이 다 죽었습니다.”

“아무리 불이 났다고 해도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다는 것이 말이 되나요? 기루에는 창문도 많잖아요?”

“그게, 가루가 끝난 인시 말에 불이 나는 바람에 대부분의 기녀가 술에 취해 자고 있었다고 합니다. 조사는 관에서 했기 때문에 자세한 상황까지는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지금 관은 대단히 허술하다는 거 아시죠?”

원나라가 무너지고 명이 새로운 관리를 파견하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관의 일 처리는 여러모로 부실한 상황이었다.

“예.”

“당장 불이 난 이유부터 죽은 사람들의 사인까지 다 알아보세요.”

“그게 중요한 일일까요?”

유징은 문창현의 죽음과 기루의 화재 간에 어떤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다는 듯 반문했다.

“그건 조사를 해 봐야 알겠지요. 분명한 것은 문 군사님께서 이곳에 온 후 일어난 사건들은 모두 살펴보아야 한다는 거예요.”

“알겠습니다.”

담수련은 좀 더 서류들을 살피더니 더 이상 특이한 것이 없다고 판단한 듯 덮으며 다시 말했다.

“우선 용연상회 주인을 찾고, 화재의 원인과 사인을 밝히는 데 주력하세요. 이만 나가 보세요.”

모두가 나가자 악불군이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가씨, 송화루라면 천화궁하고 연결이 있을까요?”

“나도 몰라. 하지만 너무 절묘하잖아? 만약 송화루가 천화궁 소속이라면…… 소군, 유모부터 만나러 가자.”

“종리 단주님을 만나러 가려면 은밀하게 움직여야 합니다. 따라다니는 자들이 한두 명이 아니니까요.”

“은밀하게 움직일 필요 없어. 지금 따라다니는 자들을 모두 쫓아내.”

말은 쫓아내라는 것이지만, 잘못하면 상당한 피를 흘려야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누구의 말인가…….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때, 악불군의 귀에 전음이 들렸다.

[방주님, 흑석영입니다.]

[들어와요.]

악불군의 허락이 떨어지자 그들의 앞에 흑석영이 스르르 나타났다.

“어떻게 됐어요?”

흑석영을 본 담수련이 급히 물었다.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했다.

“사 호법 말이, 관제묘의 현장 훼손이 너무 심해서 범인을 추적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합니다.”

“나도 그럴 것 같았어요. 그럼 시신 부검에서는 발견한 것이 있나요?”

살수들은 죽이는 것만이 아닌, 시신 부검이나 추적술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시신이 이미 부패가 시작되어 부검하는 데 조금 어려움은 있었지만, 사인은 대충 파악이 됐습니다.”

“파악한 것을 최대한 세밀하게 묘사해 봐요.”

담수련의 말에 흑석영은 고개를 살짝 숙이더니, 마치 문창현이 죽을 때 옆에 있기라도 한 듯 자세까지 잡아 가며 설명을 시작했다.

“시신의 상처로 미루어 보아 문 군사님은 뒤에서 급습을 받은 듯했습니다.”

담수련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문창현의 성격상 그런 외진 곳에서 누군가를 만나면서 등을 보일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문 군사님께서 상대에게 등을 보인 건가요, 아니면 대화 중에 누군가가 뒤에서 공격했다는 건가요?”

“그것까지는 저도 유추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보통 공격을 받으면 자신도 모르게 방어 태세를 갖추게 되는데, 시신에서는 그런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를 감안하면 상대의 무공이 문 군사님보다 크게 강하거나, 상대가 절대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거나 둘 중의 하나로 보입니다.”

“강했거나…… 믿었거나란 말이죠?”

담수련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니기를 바라는 사람을 가리키는 정황이 자꾸 나오는 것이 불안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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