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검지애 299화>
299화. 천무공자(2)
혈마전 절강 책임자인 오익선은 전서구의 쪽지를 읽자 인상을 찌푸렸다.
전서에는 악불군이 주루에서 이혼대마를 단 일 초에 죽인 상황을 자세히 묘사해 놓았다.
심지어 마지막에는, 천호무적검의 무공이 너무 높아 감시는커녕 근처에 가기도 어렵다고 적혀 있었다.
악불군을 감시하도록 보낸 형패와 전기수는 미행과 감시를 십 년 넘게 수행한 경험자들로, 특별히 선정해 보낸 자들이었다.
한데 도착한 지 며칠도 되지 않아 이런 전서를 보냈다는 사실에, 오익선은 대단히 놀라는 한편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천호무적검의 무공이 정말 그렇게 대단한가? 이런 전서를 보내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 텐데…….”
그는 몸을 일으키더니 밖으로 나갔다.
“주위를 살펴보았느냐?”
그러자 흑영이 한 명 나타나더니 답했다.
“사방 백 마장 밖까지 샅샅이 살폈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추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오익선은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작게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숲속에서 날렵하게 생긴 매 한 마리가 빠르게 날아오더니 그의 어깨에 앉았다.
“수고 좀 해야겠다.”
고기 한 점을 매의 입에 갖다 대자 매는 기다렸다는 듯한 입에 꿀꺽 삼켜 버렸다.
형패가 보낸 쪽지를 매의 다리에 붙은 통에 넣은 오익선은, 매를 강하게 하늘로 던지며 말했다.
“최대한 빨리 가거라.”
공중으로 던져진 매는 강하게 날갯짓을 하더니 어디론가 쏜살같이 날아갔다.
혈마전에서는 전서구가 추격당하는 상황에 대비해 중간에 한 곳을 거치게 만들어 놓았다. 심지어 전서구가 도착한 후 주위를 샅샅이 뒤져 쫓아온 자나 새가 없나까지 살피곤 했다.
하지만 그들은, 교주가 키운 적설이 오히려 보이지도 않는 하늘 위에서 주시하고 있을 것은 짐작도 하지 못했다.
* * *
천호방 정청.
예전에는 태사의에 담무룡이 앉고 그 앞에 수하들이 양쪽으로 도열해 선 채로 회의를 하던 곳이었다.
하지만 천호방의 회의는 사뭇 달랐다.
긴 탁자에 양옆으로 간부는 물론 악불군과 담수련도 같은 높이로 앉아 눈을 마주 보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회의를 하고 있었다.
담무룡의 눈치를 보고 그가 한마디 하면 경직되어 명령을 따르던 그때와는 달리, 모두가 활발하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중이었다.
“지금 절강성은 완벽하게 천호방이 장악했습니다. 그동안 발호하던 사파들도 모두 제거했고, 각 현에 자생하며 양민들을 괴롭히던 흑도 왈패들 역시 딴 성으로 도망을 치면서, 모든 양민들이 아무 걱정 없이 일상을 평온하게 보낼 수 있는 토대는 마련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보당 당주 나여송의 보고에 악불군은 고철황을 보며 물었다.
“지금 보호비는 얼마나 받고 있습니까?”
“오 푼을 받고 있습니다. 예전 일 할 이상을 내던 때와 비교하면 거의 극락 수준이지요.”
“본 방의 재정 상황은 어떻습니까?”
“보호비도 대부분 자발적으로 내고 있고, 천호상단도 대룡상단과 연계를 하며 큰 수익을 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생각 외로 천호표국의 수익이 아주 좋습니다. 표왕이라는 말을 듣던 평위광이 국주로 있고, 천호방이 뒤를 봐준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표행 수주가 끊임없을 정도로 미어터지고 있다고 합니다.”
“재정 상황은 아무 문제가 없다는 말씀이군요?”
“오히려 재화가 상당히 쌓이고 있습니다.”
“염상은 여전히 상납을 하고 있나요?”
담수련의 질문에 내당 당주인 상경호가 답했다.
“예, 상납금은 보름마다 정확하게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상납금으로 소금을 사서 창고에 쌓아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염상들이 뭔가 눈치를 챘는지, 소금을 매입할 때마다 어디서 왔냐고 계속 묻는다고 합니다.”
“염전은 알아냈습니까?”
이은 질문에 다시 나여송이 답했다.
“정보당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들은 관에서 관할하는 염전에서 몰래 소금을 빼돌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양의 소금을 사설 염전에서 사 오는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그럼 우리 예상보다 더 많은 소금을 비축하고 있겠군요?”
“아무래도 저희가 파악한 그들의 창고 외에도 비처에 소금을 쟁여 두고 있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사설 염전은 어디에 있지요?”
“그들이 은밀하게 소금을 실어 오는 곳이 주산군도 쪽의 바다였습니다. 주산군도 주위에 널려 있는 수천 개의 무인도들 중 어딘가에 염전을 만들어 놓은 것이 분명합니다.”
“정확한 위치는 알아내지 못한 모양이군요?”
“바다란 곳이 숨을 곳이 없다 보니 추격을 한다는 것이 쉽지가 않았습니다. 어설프게 추격했다가 괜히 그들에게 경각심만 불어넣을 것 같아서 지금 추격할 방법을 연구 중에 있습니다.”
“그들이 소금을 실어 나르는 배만 알아 놓으세요. 그럼 염전의 위치는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아가씨께서 직접 말이십니까?”
고철황이 놀란 듯 반문했다.
“제가 직접 할 수는 없지요. 하지만 그들에게 걸리지 않고 알아낼 방법은 있습니다. 그건 그렇고, 그렇게 소금을 많이 생산하는데 시중에 소금이 언제나 부족한 것은 왜입니까? 역시 염상들이 가격을 조작하기 위해 수작을 부린 겁니까?”
“소금을 쌓아 놓고 조금씩 풀면서 가격을 조절하는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옮기는 소금의 양과 절강성에 뿌려지는 소금의 양을 계산하다면 그 차이가 너무 큽니다. 소금이 분명 어디론가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그 차이라면 어느 정도인가요? 대략 금자로 따져서 말해 보세요.”
그러자 다시 고철황이 나섰다.
수 계산은 그가 가장 해박하기 때문이었다.
“저도 정확하게 계산해 보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일 년에 금자 삼만 냥 정도의 가격은 넘을 것으로 보입니다.”
“일 년에 금자 삼만 냥이라……. 거기다 그런 염상이 절강만 있는 것이 아니니, 다른 곳까지 합한다면 실로 엄청난 액수가 되겠군요?”
“염상들도 지역이 다를 경우는 거의 원수처럼 싸운다고 합니다. 굳이 합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자기들에게 할당된 소금을 가지고는 싸울 수도 있겠지만, 할당되기 전이라면 또 다르지요.”
“염상들이 소금을 생산하자마자 따로 상납하는 곳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입니까?”
“아직은 몰라요. 그런데 돈이 무척이나 많이 필요한 세력이 있는데 그들이 어디서 재정을 충당하는지 궁금했거든요. 지금 말을 들으니 염상들의 소금이 그들의 재정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최근 소금의 가치는 거의 돈이나 마찬가지여서, 주루에 들어가 술을 먹고 소금으로 지불해도 받아 줄 정도였다.
잠시 침묵이 흐르자 악불군이 물었다.
“또 다른 것은 없습니까?”
그러자 동정어옹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방주님, 제가 돈이 좀 필요합니다.”
“돈이요? 얼마나 필요하십니까?”
“금자 오천 냥입니다.”
순간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한창 장사가 잘된다고 하는 표국도 일 년 수입이 금자 천 냥이 채 안 될 정도였다. 그런데 오천 냥이면 대단히 큰 액수였기 때문이었다.
악불군은 동정어옹의 눈을 잠시 주시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고 장로님, 동방 장로님께 금자 오천 냥을 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돈에 관한 한 금자 한 냥도 쓰임새를 가지고 세세히 따지는 고철황이었지만, 악불군의 명령에는 순순히 답했다.
“사용처는 묻지 않으십니까?”
동정어옹은 오히려 당황한 듯 물었다.
“쓰실 이유가 있으니까 말씀하신 것이겠지요. 자, 또 다른 것은 없습니까?”
“…….”
모두 조용하자 악불군은 손바닥을 한 번 치며 말했다.
“지루한 회의를 하느라 수고하셨습니다. 그런 나가서 각자 일을 하도록 하지요.”
“예!”
모두는 크게 답하고는 몸을 일으켜 나갔다.
“소군, 동방 장로님께서 무엇에 쓰려고 그런 거액을 청구했을까?”
“저도 모르지요.”
“모르는데 묻지도 않고 승낙했어?”
“만약 저희를 배신할 분이라면 그런 식으로 튀는 행동은 하지 않았겠지요. 그리고 천륭검가의 노복을 자처하며 스스로 천호방에 들어오신 분입니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본 방의 가장 큰 힘이 이번에 그분들이 끌고 오신 분들이고요.”
“의심할 곳이 수두룩한데 조금도 의심을 하지 않는 모양이네?”
“수두룩할 정도로 많습니까?”
“우선 천륭검가의 노복이라는 말도 그분들 말이지, 그것을 증명할 사람이 한 명도 없어. 거기다 가장 높은 배분을 지닌 정파인임에도 추 태상호법이나 고 수석호법께 굉장히 공손해. 보통 정파인들은 그러지 않거든.”
“아가씨 말씀을 듣고 보니 의심할 곳이 여러 군데 있군요. 그런데 아가씨께서는 제가 돈을 주라고 했을 때 왜 가만히 계셨습니까?”
“소군이 믿는 것 같아서. 난 소군이 믿는다면 그걸로 됐어.”
“제 판단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럴 수도 있지. 그래도 소군의 판단이면 난 그냥 믿을래.”
무조건적인 믿음이 형성되어 있는 둘의 관계는 누구도 떼어 놓을 수 없을 만큼 단단했다.
“아가씨께서는 염상에 대해 관심이 많던데, 이유가 있으십니까?”
“우선 그자들이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소금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이 마음에 안 들어. 그리고 그들의 막강한 자금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도 궁금하고.”
“염전은 어떻게 찾으실 생각이십니까?”
“아까도 말했듯이 바다에서 누구를 추격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한 번 고개만 돌리면 사방이 다 보이니까. 그렇다고 그 큰 바다를 수영을 치면서 추격한다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어려울 것 같고. 그래서 적설을 이용하려고. 적설 돌아왔지?”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생각보다 먼 곳에 있는 것 같습니다.”
“별일은 없겠지?”
“적설은 제가 마음먹고 공격해도 죽이기 어렵습니다. 특히 공중 높이 떠올라 있으면 화살도 닿지 않는데, 누가 있어 적설을 해치겠습니까?”
“염상은 여러 가지로 마음에도 안 들고 수상한 점도 많기는 하지만 급할 필요는 없어. 내가 보기에 지금 가장 큰 문제는 혈교와 태양천이야.”
“태양천은 이미 북쪽으로 물러나지 않았을까요? 천무공자에게 태양천의 마지막 세력이 전멸했다는 소문이 떠돌고 있지 않습니까?”
“아버지께 대공이라는 자에 대해 들은 것이 있어. 그는 정말 무서운 자라고 하셨어.”
“대공 전하라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원나라 황족 출신이라서 전하라고 하는데, 사실은 그가 태양천의 천주야. 아버지께서 그가 무서운 점이 그 집요함이라고 했어. 그는 절대로 물러서지 않을 거야.”
“하지만 이미 몰락 단계인 것 같은데, 예전 같은 위세야 많이 꺾였지 않겠습니까?”
“태양천주가 홀로 무림에 출사표를 던져 무황들을 모두 제압한 얘기는 들었지?”
“육관에서 수련을 할 때 태양천에 대해 우상화하는 교육을 받았습니다. 당연히 그 얘기도 들었지요.”
“아버지 말씀이 대공은 당시의 태양천주보다 더 강할 것이라고 했어. 전력은 반 이하로 쪼그라들었을지 몰라도 무림에 위협을 주기에는 충분하다고 생각해.”
“혈교만도 만만치 않은 세력인데 정파를 분열시키려는 신비 조직이 있고 거기에 태양천까지 다시 들어온다면 무림은 또다시 혈겁의 장이 되겠군요.”
“거기에 구천마성과 혈해사계는 호시탐탐 중원을 노리고 있으니 제갈 대협께서는 아마 머리가 깨질 거야. 하지만 그래서 결국 우리와 타협할 수밖에 없는 거지.”
담수련은 이미 어떤 결론이 날지를 예측하고 있는 듯했다.
“그럼 지금 상황이 우리에게는 더 나은 것일 수도 있겠군요?”
“우리가 아니고 나지.”
“저와 아가씨 사이에는, 무조건 우리입니다.”
악불군의 말을 들은 담수련은 또 마음이 아려 왔다. 갈수록 자신이 오음절맥이라는 것이 원망스러워지고 있었다.
“어쨌든 우리가 살기 위해 이런 상황을 만들었다면 우리도 악당 축에 들겠지만, 이건 저절로 만들어진 상황이니까 잘 이용하면 무림맹과 거래가 될 수 있을 거야. 참! 그런데 천무공자가 누군지는 알아?”
“무림맹의 총순찰이라고 하는데, 아직 이름이나 문파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동방 장로 말로는 천무성궁 사람일 확률이 높다고 하더군요.”
담수련은 잠시 생각하더니 신중한 표정으로 물었다.
“소군, 그때 악양에서 만났던 백천학이라는 공자 기억나?”
“기억합니다. 제가 당시 지금보다 약하기는 했지만, 단지 본 것만으로 그렇게 긴장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천무공자가 그 사람일 것 같아.”
담수련 역시 그녀에게 가장 강렬한 느낌을 주었던 백천학을 계속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