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검지애 300화>
300화. 적동마수(1)
“천무공자가 떠났답니다.”
“곽 화주는?”
“공손히 배웅하고 이쪽으로 오고 계십니다.”
“곽 화주가 화술이 좋아서 다행히 잘 처리한 모양이구만.”
누진봉을 비롯한 천신문의 간부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천무공자와 태극검자, 단둘뿐이지만 그들이 상대하기 어려운 고수들이었다.
심지어 천무공자는 수십 명에 달하는 무력 집단을 이끌고 있었다. 보이지는 않아도 싸움이 나면 찬물 한잔 들이켤 시간이면 모두 몰려들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때 문이 열리며 곽부용이 안으로 들어섰다.
“곽 화주, 아주 잘했어!”
“그래, 수고했어.”
누진봉이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치하하자 다른 간부들도 칭찬했다. 죽을 수도 있는 사지에 다녀온 그녀에게 모두는 고마워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좀 이상했다.
“그런데 어떻게 돌려보낸 거야? 처음엔 문주님 오실 때까지 기다릴 태세였는데.”
유징의 질문에 곽부용은 고개를 살래 흔들며 말했다.
“제가 답을 잘못한 게 아닌지 걱정이 되네요.”
“뭔데 그래?”
곽부용의 말에 다시 안색이 굳어진 모두는 불안한 듯 물었다.
“제가 들어가니까 곧장 천신문 문주님이 천상신녀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그렇다고 했지요.”
모두의 얼굴에 다시 불안감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담무룡의 천금인 담수련은 무림맹이 찾는 부역자들 중 핵심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니라고 하지?”
“저도 그렇게 갑자기 물을 줄은 몰랐기 때문에 당황해서 생각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니라고 하기도 어려운 게, 이미 알고 있는 듯했어요.”
“문주님의 정체를 알고 온 거는 아니겠지요?”
한태성의 질문에 누진봉은 심각한 표정으로 잠시 생각하더니 유징을 보며 급히 말했다.
“우리가 생각해서 될 일이 아니다. 유 당주.”
“예!”
“천무공자가 총단에 찾아와 문주님이 천상신녀냐는 말만 묻고 갔다고, 문주님께 빨리 연락해라.”
“알겠습니다.”
백천학의 갑작스러운 방문도 의아한 판에, 용건이 단지 문주의 확인이란 사실이 오히려 그들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있었다.
* * *
“방주님, 배첩이 왔습니다.”
집무실에서 담수련과 향후 대책을 의논하고 있던 악불군은 총관 구여풍의 보고에 의아한 듯 물었다.
“지금 시기에 배첩이라? 누가 보낸 겁니까?”
“적동마수(赤銅魔手)라는 자입니다.”
“그가 누굽니까?”
“십 년 전에 갑자기 나타나 홀로 강호를 독보하는 자입니다.”
“독보한다면 어떤 조직에도 속하지 않은 자라는 말이겠군요?”
“그렇습니다.”
“구 총관.”
듣고 있던 담수련이 끼어들었다.
“예, 아가씨.”
“총관 선에서 처리하지 못하고 배첩을 가지고 왔다는 것은 뭔가 이유가 있겠지요?”
“대단히 중요한 정보가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방주님을 만나 봬야만 말할 수 있다고 해서…….”
“적동마수는 성향이 어디인가요?”
“무림에서는 정사지간의 인물로 치부하고 있지만, 마도인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는 자입니다.”
“원나라와의 관계는 어땠나요?”
“어찰단에 쫓겨 다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찰단에 쫓겼는데 아직 살아 있다니, 무공이 대단한 모양이군요?”
“백인막에서는 그의 무공을 백대고수 중 중상위급으로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담수련은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악불군을 보며 말했다.
“어떤 정보를 가지고 왔는지 한번 들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네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구 총관.”
“예!”
“빈청으로 모시세요. 제가 만나러 가겠습니다.”
“예!”
구여풍이 나가자 담수련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뭔가 있을 것 간지 않아?”
“백대고수의 중상위급이면 화경에 달한 초절정 고수인데, 빈말을 하려고 배첩까지 보내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 * *
빈청으로 안내된 적동마수 위지청은 뭔가 불안한 듯 자리에 앉지도 않고 주위부터 살폈다.
사방 곳곳을 자세히 살피던 그는,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자 이번에는 창밖을 살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얼굴을 내밀지 못하고 벽에 숨어서 은밀하게 밖을 살피고 있다는 점이었다.
도대체 누구의 추격을 받고 있길래 천호방 총단의 빈청에서조차 이렇게 긴장하고 있는 것일까…….
그때 문이 열리면 악불군과 담수련이 안으로 들어섰다.
“천호방 방주 악불군입니다.”
적동마수를 본 악불군은 그의 명호가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그의 피부가 진짜 적동색이었기 때문이었다.
“적동마수 위지청이라고 합니다.”
순간 담수련의 얼굴에 이채가 나타났다.
포권을 하는 적동마수의 얼굴에 확연한 실망의 표정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앉으시지요.”
악불군이 자리를 권하자 적동마수는 담수련을 보며 불안한 듯 물었다.
“이분은 누구십니까?”
“본 방의 군사님이십니다. 담 군사라고 호칭하시면 됩니다.”
“방주님과 단둘이 대화하고 싶습니다.”
“전 위지 대협보다는 담 군사님을 더 믿습니다. 굳이 저와 단둘만 대화를 원하신다면 이번 만남은 여기서 끝일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 오셨으니 차라도 들고 돌아가십시오.”
악불군이 단번에 거절하고 몸을 돌리려 하자 적동마수가 당황한 듯 말했다.
“이 일이 너무 중차대해서 최대한 비밀을 엄수하기 위해 한 말일 뿐, 담 군사를 믿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
“그럼 같이 대화를 해도 되겠습니까?”
또 담수련을 배척한다면 악불군이 나갈 것을 직감한 적동마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지요. 그 전에, 방주님께서는 자신의 무공 수위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게 중요합니까?”
“이들은 너무 무서운 자들입니다. 만약 방주님의 무공이 제 예상보다 낮다면 얘기를 안 듣는 편이 더 나을 것입니다.”
악불군은 뜻밖의 얘기에 흥미가 동한 듯 담수련을 한 번 본 후 반문했다.
“어느 정도 수위면 안심하시겠습니까?”
“저를 십 초 안에 제압할 정도의 수위는 되어야 견딜 수 있을 것입니다.”
악불군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무림 백대고수의 중상위에 거론되는 초절정 고수를 십 초 안에 제압한다는 것은, 십대고수로 따로 분류하기도 하는 백대고수의 최상위에 포진한 고수들만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견딘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군요?”
“제 말을 들으신다면 아시게 될 것입니다.”
악불군은 담수련을 다시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녀가 그렇게 하라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이자 적동마수를 보며 말했다.
“제가 원래 무공을 함부로 사용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특히 이런 식의 비무는 더욱 싫어하지요. 하지만 위지 대협께서 대단히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계신 듯하니 예외를 한번 만들어 보겠습니다. 방어 자세를 취하십시오.”
“여기서 말입니까?”
“여긴 안 됩니까?”
“새로 단장을 하신 정청 같은데 부서질까 봐 그럽니다.”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그게 무슨…….”
말하던 적동마수는 급히 몸을 뒤로 물렸다. 악불군의 검이 그의 목을 향해 날아왔기 때문이었다.
“위지 대협의 무공이 대단하시군요.”
악불군은 살짝 감탄한 듯 말했다.
그와 적동마수의 거리는 일장이 채 안 됐다. 그런 거리에서 위협용이라곤 하나 악불군이 급습한 것인데 그것을 피한 것이다.
“칭찬으로 들리지는 않는군요.”
적동마수는 검미를 잔뜩 찌푸리며 말을 받았다.
분명 피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악불군은 그대로 짓쳐 나와 그의 목에 검을 댔기 때문이었다.
“그 정도까지 피한 자들도 그리 많지는 않았습니다.”
악불군은 검을 다시 검집에 꽂으며 말했다.
순간 이번에는 적동마수가 급습을 시도했다. 그의 주 무공은 장법과 권법이었다.
무기보다 팔은 짧지만 가까운 거리에서 급습할 때는 어떤 무기보다도 빨랐다. 무기를 뽑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당했으니 갚아야 한다는 생각은 무림인이라면 당연한 것이지요.”
“이, 이럴 수가…….”
그는 악불군이 검을 검집에 꽂은 것을 분명히 보고 공격을 했다. 그런데 어느새 악불군의 검끝이 그의 심장에 닿아 있었다.
“자, 기습은 서로 한 번씩 했으니 이제 정식으로 시작해 보지요. 공격을 먼저 하시겠습니까?”
“내공을 사용해도 되겠습니까?”
“정확한 무공 수위를 알려면 당연히 내공을 사용해야지요. 검이 빠르기만 하다고 고수는 아니니까요.”
“그럼 제가 먼저 공격하겠습니다.”
나이가 많고 명성도 악불군에 비해 훨씬 빨리 얻은 적동마수는 원래대로라면 선공은 악불군에게 양보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체면보다는 악불군의 진정한 무공 수위를 알아보는 것이 더 중요한 듯했다.
적동마수의 공력은 이 갑자에 달했다. 그가 내공을 끌어올리자 그의 몸 주위로 강력한 기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이대로 간다면 그의 말대로 집기가 부서지는 정도가 아니라 청 자체가 무너져 내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당연히 무공이 약한 담수련까지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악불군이 손바닥을 그를 향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적동마수의 기의 회오리가 그의 몸 주위 반 치 이상은 뻗어 나오지 못하는 것이었다.
‘저 나이에 이런 내공을 가질 수 있는가…….’
적동마수는 자신의 몸을 엄청난 압력이 짓누르자 경악했다. 더구나 그 압력이 단지 손바닥을 자신에게 향한 악불군 때문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공격하시지요.”
적동마수가 창백한 얼굴로 쳐다보기만 할 뿐 공격을 하지 않자, 악불군은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재촉했다.
그의 그런 행동은 적동마수를 더욱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자그마치 이 갑자에 달하는 자신의 기를 강하게 압박하면서 말까지 한다는 것은 악불군의 내공이 최소 삼 갑자는 넘어섰다는 의미였기 때문이었다.
“이얍!”
적동마수는 젖 먹던 힘까지 뽑아 내며 공격을 시작했다. 그의 진신절기인 절영패력권이었다.
이름이 말하듯 강력한 위력을 가진 권이었지만 악불군에게는 너무 무력했다.
더욱이 검사로 알려진 악불군이 검이 아닌 장으로 그를 상대하였기에, 나름 무공에 대해 자부심이 있던 자신에 대해 회의감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칠 초가 흘렀다.
퍽!
악불군은 그의 권법에서 발견한 약점을 순식간에 파고들어 가 장으로 그의 팔을 치며 팔꿈치로 그의 겨드랑이를 가격했다.
‘재미있는 호신공인데?’
적동마수의 몸은 진짜 동으로 만들어진 듯 대단히 단단했다. 악불군이 익힌 철포삼과 비슷한 효력을 가진 듯했지만, 단순히 방어 기능만 보자면 오히려 더 뛰어난 듯했다.
“제가 졌습니다.”
악불군에게 겨드랑이를 맞은 적동마수는 두 손을 내리고 내공을 갈무리했다.
그들 같은 초절정 고수가 칠 초나 싸웠다면 당연히 정청안은 벽력탄이라도 터진 듯 완전 아수라장이 되어야 했지만, 악불군의 장담처럼 아무런 피해도 생기지 않았다.
“양보를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악불군이 포권을 하며 말하자 적동마수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양보는 제가 한 것이 아니라 방주님이 해 주셨지요. 방금 그 타격으로 제가 죽을 수도 있었음을 잘 압니다.”
그가 강한 피부를 가지고 있지만 악불군의 내공이라면 그의 장기를 부수는 것은 여반장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럼 앉아서 얘기를 들어볼까요?”
“예.”
처음 악불군을 보고 실망한 표정을 지었던 적동마수는 더할나위 없이 공손해져 있었다.
악불군은 자리에 앉자 적동마수와 담수련의 잔에 차를 따르고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잔에 차를 따랐다.
“드시지요.”
“예.”
차를 마시는 적동마수의 손은 악불군의 무공에 놀란 가슴을 아직 진정하지 못하는 듯 약간 떨고 있었다.
“그럼 말씀해 보시지요.”
“지금 무림인들은 저를 백대고수 중의 한 명으로 올려놓았습니다. 하지만 젊었을 때는 정말 별 볼 일 없는 낭인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요?”
“이십 년 전 산속을 지나다 한 무인과 시비가 붙었습니다. 정말 죽도록 맞고 몸을 움직이지도 못한 채 산속에서 짐승의 밥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때 지나가던 은인에게 구함을 받았습니다.”
담수련의 표정이 살짝 심각하게 변했다. 그의 얘기가 너무 인위적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적동마수는 말을 이어 갔다.
“그분께서는 저의 생명을 구해 주시고 무공까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렇게 십 년을 무공을 배운 후 무림에 나왔지요.”
“그분이라고 하셨는데 그분이 누군지는 아시나요?”
담수련은 자꾸 그분이라고만 칭하는 것이 의아한 듯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