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검지애-301화 (301/472)

<천검지애 301화>

301화. 적동마수(2)

“솔직히 모릅니다. 얼굴도 본 적이 없고, 심지어 목소리조차 제대로 들은 적이 없었으니까요.”

“그럼 무공은 누구에게 배운 것입니까?”

“무공 수련관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교두들에게 배웠습니다.”

“은인이라는 분에 대해서 의구심 같은 것도 갖지 않았나요?”

“목숨을 구해 주셨을 뿐 아니라 절정 무공까지 가르쳐 주셨는데, 의구심 같은 것을 품을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그럼 무림에 나온 후에는 무엇을 하셨나요?”

“은인께서 은혜를 갚고 싶다면 자신의 원수를 죽여 달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그분이 죽이라는 자들을 죽이며 다녔습니다.”

“오로지 무공 수련관에서 배운 무공만으로 지금과 같은 초절정 고수가 되셨다는 말인가요?”

담수련은 놀란 듯 물었다.

보통 무공 수련관에서 교두들이 가르치는 무공은 한계가 명확했다. 절정 고수 정도라면 모를까, 초절정 고수가 될 만한 무공을 가르치는 곳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예, 거기다 영약까지 수시로 먹은 덕에 공력까지 정말 빠르게 증가했습니다. 내공이 일 갑자 이상이 넘지 않으면 익힐 수 없는 동패공(銅棑功)을 익힐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적동마수가 아주 대단한 무재를 지니고 있어서 특별히 키울 목적이었다면 그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적동마수는 상당한 무재를 지니고 있긴 했지만, 영약으로 공력을 증진시키고 절정 무공까지 가르칠 정도는 아니었다.

담수련이 상당히 놀란 표정을 물었다.

“혹시 위지 대협만 특별히 그런 대접을 받은 것입니까?”

“아닙니다. 당시 저와 함께 무공을 배운 자들이 꽤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부 가면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럼 강호에 나온 후, 맡은 임무는 암살밖에 없었습니까?”

이번에는 악불군이 물었다.

“거의 그랬습니다. 하지만 암살은 아니었습니다. 모두 제 이름을 걸고 정정당당하게 정면 대결을 하여 죽였으니까요. 그 덕에 의도치 않은 적동마수라는 명호도 생기고 백대고수의 일인이 된 겁니다.”

“그럼 상대는 누군가 자신을 죽이라고 한 것도 모르고 죽었겠군요?”

“그랬을 겁니다.”

“그럼 명을 받아 죽인 자들은 보통 어떤 무인들이었습니까?”

“어떻고 자시고 할 것도 없습니다. 정파도 있고 사파도 있고 마도인들도 꽤 됐습니다. 심지어 어찰단의 영주도 한 명 있었습니다.”

“어찰단에 쫓겨 다니신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습니까?”

“맞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들의 추적을 뿌리칠 수 있었던 것은, 무공도 무공이지만 그분의 방대한 세력이 도움을 줬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어찰단 내에서도 정보를 주는 사람이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담수련은 물론 여간해서는 표정 변화가 없는 악불군조차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제 둘은 적동마수가 말하는 조직이라는 것이 무상진인이 말한 신비의 조직이 틀림없다는 확신을 하고 있었다.

“위지 대협께서는 그 조직이라는 곳에서 지위가 어느 정도 됐습니까?”

“그게…… 말하기도 창피할 정도입니다.”

적동마수는 정말 성심을 다해 명령을 완수해 나갔다. 그 결과 삼 년 전에 드디어 운영하는 조직에서 지위를 얻을 수 있었다.

무려 십 년 동안 충성을 바친 결과였다.

하지만 지위가 생겼음에도 그가 하는 일에 달라진 것은 거의 없었다. 변화라면 자신에게 명령을 하달하는 자들의 말투가 좀 공손해진 것 정도였다.

그 후 삼 년 가까이 더 충실하게 그들의 임무를 수행한 그에게 조직에서 호출하였다. 무공 수련을 끝내고 강호에 나온 이후 그를 부른 것은 처음 이었다.

그는 점혈당하고 눈과 귀까지 가린 채 마차에 실려 이틀을 움직여 한 장원에 도착했다.

주변으로 보이는 게 수풀과 나무밖에 없는 장원은 대단히 컸다. 그들은 자신의 목에 표찰을 걸도록 했는데 지위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자신과 같은 지위를 가진 자는 이십 명이 넘게 보았고, 더 높은 지위를 지닌 자도 열 명 가까이 보았다. 그가 백대고수 중 중 상위급으로 인정받는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그 세력의 전력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한마디로 백대고수로 불리는 그의 무공이 그곳에서는 중간치에 낄 정도밖에 안 된다는 의미기도 했으니까.

“그 사람들이 누구인지는 알 수 있었습니까?”

담수련의 질문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방 안에 들어갔을 때를 제외하고는 언제나 가면을 쓰고 있어서 정체는 알 수 없었습니다.”

“정말 끔찍할 정도로 비밀스러운 조직이네요?”

담수련이 소름이 끼친다는 표정으로 말하자 악불군이 물었다.

“방 안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저의 노고를 치하한다는 의미로 부른 것 같았습니다. 제게 정말 아름다운 시녀 세 명이 붙었고 정말 극진한 시중을 받았습니다. 매 끼니마다 산해진미와 좋은 술이 나오는 것은 당연했지요. 심지어 매일 그녀들이 목욕까지 시켜 주었습니다.”

“자신들에게 충성하면 목적을 달성한 후 그런 극락 같은 생활을 평생 보장한다고 했겠군요?”

담수련의 반문에 적동마수는 놀란 눈으로 말했다.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정말 딱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럼 그분이라는 사람은 만났습니까?”

“못 봤습니다. 아니, 봤을 수도 있지만, 얼굴을 모르니 알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곳을 찾아와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가 뭡니까?”

평생 한 번도 받아 보지 못한 화려한 대접을 한 달 가까이 받은 그는, 또 다른 임무를 위해 다시 나오게 되었다.

그때 밖으로 나가던 그는 여러 무사의 호위를 받으며 그의 앞을 지나간 한 가면인을 발견했다.

지위는 그보다 두 단계나 높았다.

살짝 고개를 숙이던 그의 눈에 팔목의 상처가 보였다. 그는 팔을 완전히 덮는 소매가 긴 옷을 입고 있었는데, 정말 우연히 그가 팔목에 손을 넣느라 옷이 살짝 올라가면서 그 상처가 눈에 띈 것이었다.

이십 년 전 산속에서 말도 안 되는 시비로 그를 다짜고짜 죽기 직전까지 때렸던 그자였다.

“이십 년 전에 맞으면서 우연히 본 상처만 보고 그인 줄 알았다는 겁니까?”

악불군이 의아한 듯 물었다. 기억력이 좋은 그도 언뜻 본 상처만으로 상대를 특정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냥 상처면 제가 알 수 없었지요. 하지만 그자의 상처는 아주 특이했습니다. 갈지(之) 모양의 상처였는데 상처를 따라 문신이라도 한 듯 파르스름한 선이 이어져 있었습니다. 절대 잊을 수 없는 상처였습니다.”

그가 기억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에 대한 원한이 사무쳤기 때문이었다.

맞은 것으로 끝낸 게 아니라 고문까지 당했기 때문이었다.

적동마수의 말을 듣던 담수련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다치고 은인을 만나는 과정이 우연으로 보기에는 너무 절묘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녀 역시 악불군이 아이들에게 맞는 것을 구해 주고 과일을 건네주면서 알게 되었으니, 상황상 비슷한 점은 있었다.

그럼에도 의심한 것은, 산속이라는 장소와 그렇게 때리고 고문한 자가 그의 목숨은 살려 주고 간다는 것이 상식적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화가 날 만했군요?”

“화도 났지만 제게 일어난 일들이 모두 계획적이었던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생겼습니다. 그때부터 그들이 내리는 명령과 전하는 자들에 대해 은밀하게 조사했습니다. 그런데 조사를 시작하면서 이게 도대체 무슨 조직이지 하는 궁금증이 커졌습니다.”

“어떤 점이 이상했습니까?”

담수련은 드디어 그녀가 알고 싶은 것이 나오기 시작한다고 생각하자 마음이 좀 바빠졌다.

“우선 그 방대함이었습니다. 제게 명령을 하달한 사람들은 천하 곳곳에 있었습니다. 정파는 물론 사파와 마도인 심지어 양민까지, 제가 어디를 가든 갑자기 나타나 명령을 하달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어찰단보다도 더 큰 것 같았습니다.”

“그건 이상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요?”

“물론 그것만이면 이상하다는 표현은 안 쓰지요. 문제는 조직의 실체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방대한데 실체는 없다? 참 모순적인 말이군요?”

“제게 그 조직에 대해 말해 보라고 한다면 말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이름도 모르고, 총단이나 분타도 모르고, 심지어 내게 명을 하달하러 온 자들 역시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를 몰랐습니다. 솔직히 악 방주님께서 제 말을 이렇게 믿어 주는 것조차 전 의외라고 생각될 정도입니다.”

악불군과 담수련은 그의 말이 이해가 되었다. 만약 무상진인에게 신비조직에 대해 듣지 못했다면 그들 역시 적동마수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지 않았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럼 저희에게 하겠다는 그 비밀은 무엇인가요?”

적동마수는 갑자기 주위를 한 번 둘러 보더니 목소리를 맞추며 물었다.

“이곳은 정말 안전합니까?”

“나한테 이목(耳目)을 숨기고 주위에 숨어 있을 수 있는 자는 천하에 몇 명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방주 호법들조차 여기서 하는 얘기는 들을 수 없습니다.”

“방주님은 그들의 눈과 귀가 어디에든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으시는 모양입니다.”

“어디에든 있다 해도 이곳에는 없습니다.”

너무 자신하는 악불군의 말에 적동마수는 안심이 되는 듯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들이 무슨 세상을 원하는지를 알아냈습니다.”

그의 말에 담수련의 눈에 반색이 나타났다.

그녀는 아직 움직임이 나타나지 않고 있는 혈교와 신비 조직 그리고 태양천이 악불군에게 가장 위협적이라는 가정하에 새로운 계획을 수립하고 있었다.

태양천은 그녀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조직인 터라, 세세한 움직임까지는 몰라도 어떤 짓을 벌일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했다.

혈교 또한 그들의 목적이 무엇일 거라는 가정이 가능하기에 그들에 대한 방비책도 강구할 수 있었다.

문제는 신비 조직이었다.

목적이 무엇인지를 모르니 예측이 불가능했다. 당연히 대비책을 강구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그들이 원하는 것을 아는 자가 나타났으니 그녀로서는 정말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적동마수의 말에는 대단히 의아한 구절이 있었다.

‘세상? 권력도 아니고 재물도 아니고 원하는 세상이라고……?’

“혹시 종교 집단이던가요?”

“아닙니다. 하지만 거의 종교 집단에 가깝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종교 집단은 아니지만 가까운 조직?

갈수록 의문만 커지고 있었다.

“그럼 그들이 원하는 세상이 무엇인가요?”

“지금쯤 그들은 제가 배신했다는 것을 눈치채고 저를 추적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 추적은 제가 막아 드리겠습니다. 위지 대협의 안전은 걱정 마시고 얘기해 보십시오.”

악불군은 그가 무엇을 걱정하는지를 짐작하고는 우선 안심시켰다.

“죄송합니다. 저로서는 목숨을 걸고 이곳에 온 것입니다. 저를 믿으신다면 한 달만 시간을 주십시오.”

“한 달이요?”

“그들은 한 달 안에 저를 찾아낼 것입니다. 만약 한 달 동안 저를 죽이려는 자들이 없다면 그때 말씀드리겠다는 것입니다.”

“굳이 그러시는 이유가 있나요?”

담수련이 의아한 듯 물었다.

“저를 보호할 능력이 안 된다면 모르는 편이 더 낫다고 봅니다.”

적동마수의 말에 담수련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비밀을 말한 후 악불군의 마음이 변할까 두려워하고 있다고 파악한 것이다.

“저희를 믿지 못하시는 모양이네요?”

“제가 천호방으로 온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사실 그것도 좀 의아했어요. 그렇게 무서운 자들이라면 천호방보다는 무림맹이나 구천마성 같은 곳으로 가는 것이 더 안전했을 텐데 말이에요.”

“천호방이 신생 문파이기 때문입니다. 아직 조직의 손길이 닿지 않았다고 판단해서지요. 오래된 문파들은 전부 그들의 간세들이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저 정도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백대고수에 드신 분이 너무 약한 말씀을 하시네요?”

“그들은 정말 무섭습니다. 방주님과 담 군사께서도 그들에 대해 자세히 안다면 제가 이러는 이유를 이해하실 것입니다.”

담수련은 잠시 생각하더니 악불군에게 전음을 날렸다.

[소군, 어떻게 생각해?]

[한 달 정도는 기다릴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악불군의 허락이 떨어지자 담수련은 흔쾌히 대답했다.

“좋아요. 그럼 한 달 동안 본 방의 손님으로 머무세요. 아마 본 방이 확실히 대협을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할 것입니다. 단, 한 달 후에는 자세한 내막을 저희에게 조금도 감추지 말고 모두 말해 주셔야 합니다.”

“약속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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