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검지애-304화 (304/472)

<천검지애 304화>

304화. 드러나는 진실들(1)

“방주님, 그럼 적동마수가 온 이유는 무엇입니까?”

다시 대화의 물꼬를 튼 것은 고철황이었다.

“적동마수는 자신이 소속된 조직이 무엇을 원하는지 저희에게 알려 주겠다고 하더군요.”

“그가 소속된 조직이 있었습니까? 소문으로는 독보강호하는 자라고 하던데요?”

“담 군사님과 전, 그 조직이 무상진인께서 말한 조직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적동마수가 진짜 그 조직에 소속된 자였다면, 드디어 그들의 정체를 알 수 있게 됐군요?”

아무리 강한 세력이라 해도 정체가 밝혀지고 그 전력이 공개된다면, 무림맹이나 태양천과 같이 두려운 존재는 되지만 대처는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악불군은 고개를 살짝 저었다.

“안타깝지만 그것은 좀 어려울 것 같더군요. 적동마수 역시 그들의 정체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방금 소속되어 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 세력에 소속돼 있던 것은 맞지만 말단에 불과한 지위라, 그에게 명을 내리는 자들이 누군지도 모르는 수준이었다고 했습니다.”

또다시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진짜 여러 차례 놀라는 간부들이었다.

“백대고수에 이름을 올린 그 적동마수가 말입니까?”

고철황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묻자 이번에는 담수련이 답했다.

“사실 백대고수에 오른 자가 말단 수하였다고 한다면 누구라도 진짜인가 의구심을 품게 될 거예요. 하지만 조금만 조사해 보면 당장 드러날 거짓말을, 그가 할 이유가 있을까요?”

그러자 악불군이 부언을 했다.

“제가 상대해 본 바, 적동마수 맞습니다. 그의 경지는 사망염귀와 맞먹는 수준이었습니다.”

사망염귀는 악불군에게 죽은 구천마성의 장로로서 역시 백대고수의 중간에 이름을 올린 자였다.

“그렇다면 지금 적동마수는 자신이 몸을 담고 있던 조직을 배신하고 본 방으로 온 것입니까?”

천수옹의 질문에 악불군은 태연하게 답했다.

“그런 셈이지요.”

“태상호법님의 얘기도 그렇고 적동마수가 말단 수하라는 것도 그렇고, 아무래도 그 조직의 전력은 구천마성이나 무림맹을 능가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 저희가 아는 정보는 제한적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말한 자들이 같은 조직이라면 대단한 전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확실할 것 같습니다.”

“그런 자들이라면 저희가 적동마수를 보호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 되지 않겠습니까?”

“제가 여러분들만 이곳에 모이게 한 이유를 아십니까?”

“…….”

모두는 짐작하는 바가 있었지만 누구도 입을 열지는 않았다.

“그럼 담 군사님께서 소집령에 비상 대책 회의라고 쓰신 이유는 아시겠습니까?”

그러자 고철황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그들과 정면으로 싸우실 생각은…… 아니시겠지요?”

“수석 장로께서는 왜 아니라고 생각하십니까?”

“본 방은 아직 기초가 부실합니다. 무력대를 네 개나 만들었지만 무림맹이나 구천마성의 무력 집단과는 여전히 큰 차이가 있고, 방도들을 받아들일 때 신원에 대해 조사하지 않고 모두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완전하게 충성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고 장로님 말씀은 천호방이 아직은 약하기 때문에 그들과 싸우면 안 된다는 생각이시군요?”

고철황의 말을 들은 담수련이 반문을 했다.

“천호방은 아직 신생 문파입니다. 벌써 거대 세력과 척을 지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입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적동마수는 그들 조직에서 명령을 내리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는 말단 수하입니다. 전 그들이 본 방까지 침입해서 적동마수를 죽이려는 시도는 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어요.”

“제가 담 군사님의 판단에 반박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하나 제 경험상 배신자가 다른 세력에게 몸을 의탁할 때는 뭔가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철황의 말에 담수련은 미소를 지며 말했다.

“고 장로님의 말씀대로 적동마수가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어 저들이 본 방까지 침입해 죽이려고 한다면, 더욱 그를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면 아래 숨어 그런 자들이 끊임없이 이간과 분열을 계속 획책한다면 천호방 역시 안전하다고 할 수 없으니까요.”

모두는 맞다는 듯 고개를 작게 끄덕였지만 표정은 여전히 굳어 있자, 담수련이 부언을 했다.

“그리고 그들 전체가 몰려온다면 본 방이 상대하는데 무리가 있다는 의견은 맞아요. 하지만 그들은 최소한 백 년 넘게 자신들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어요. 그건 분명 이유가 있을 겁니다. 즉, 공격은 있을지도 모르지만 소수가 암살하는 형태를 띨 거예요. 본 방에는 암살이라면 최고의 전문가들이 있습니다.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니 걱정 마세요.”

담수련은 잠시 숨을 돌리더니 말을 이었다.

“조금 전에 제가 왜 여러분들만 이곳에 불렀는지 물었지요? 그 답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무상진인의 말이 맞다면, 적들은 모든 문파에 간세를 심어 각 구성원을 이간시키고 분열을 조장합니다. 전 여기에 있는 분들은 절대 간세가 아니라고 믿기 때문에 여러분들을 불렀습니다.”

수하들에게 가장 좋은 칭찬은 내가 너를 믿는다는 말이었다. 모두의 얼굴에 살짝 자부심이 나타났다.

“저희는 방주님을 주군으로 모셨습니다. 어떤 위험이 따르더라도 방주님을 따를 것입니다.”

악불군의 말이 끝나자 모두는 약속이라도 한 듯 머리를 숙이며 커다랗게 소리쳤다.

적들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악불군이 싸우기로 결정한 이상 그들에게 다른 판단은 있을 수 없었다.

* * *

강서와 절강의 접경에 위치한 옥산(玉山)은 대단히 험준한 산이었다.

복면을 쓴 여러 흑의인이 사방을 뒤지고 있는 산속에 회색빛 옷을 입은 두 명의 복면인이 가마 하나를 메고는 날아왔다.

그러자 흑의인들을 지휘하던 백의인이 급히 가마 옆으로 달려가더니 무릎을 꿇었다. 백의인 역시 복면을 쓰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정체가 드러나는 것을 극도로 조심하는 자들 같았다.

“어찌 됐느냐?”

“지금 계속 흔적을 찾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동선을 미루어 절강 쪽으로 가는 것 같습니다.”

“절강? 그놈이 절강과 연관이 있었느냐?”

가마 안에 있는 인물은 의아한 듯 물었다.

“태어나기를 호남에서 태어났고, 대부분의 임무도 호남에서 행해졌습니다. 절강에는 아는 사람이나 세력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그런데 왜 절강으로 갔지?”

처음 적동마수가 강서로 넘어갔다는 보고에, 강서에 있는 모든 정보망을 동원해 그가 갈 만한 곳을 모두 뒤졌다. 그런데 절강이라니……

“아직 이유는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짐작건대 저희들의 이목을 숨기려고 한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모든 명을 호남에서 받았으니, 우리의 이목이 호남밖에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 말이냐?”

“그 이유 외에 다른 이유를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호북도 있고 강서도 숨을 데는 많은데, 굳이 강서를 지나쳐 절강까지 갈 이유가 있을까?”

“다른 곳과는 달리 절강은 천호방이 사파와 마도 세력들을 모두 제거하면서 완전 장악에 성공한 것으로 보고가 되어 있습니다. 아무래도 그곳에 가면 좀 안전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천호방에 심어 놓은 본 궁의 수하들이 몇 명이나 있느냐?”

“백 명 정도 됩니다. 하지만 지위가 낮아 중요 정보에는 아직 접근을 못 하고 있습니다.”

“천호방이 생긴 지 일 년이 채 안 되니 그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그런데 이상한 흐름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뭐냐?”

“천호방에 또 다른 세력이 간세를 심고 있었습니다.”

“어느 문파더냐?”

“아직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무림맹과 구천마성은 아니라고 합니다.”

“무림맹과 구천마성이 아니면 천호방에 간세를 심을 정도의 세력은 없지 않느냐? 혈해사계는 천호방에 간세를 심기에는 너무 멀어.”

“의심 가는 세력이 한 곳이 있긴 합니다.”

“어디냐?”

“혈교입니다.”

“하긴 혈교 놈들도 사방에 간세를 심어 놓긴 했지. 가만! 설마 적동마수 그놈이 혈교와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

“혈교와의 연관성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혈교 놈들은 지금 우리를 찾는 데 혈안이 되어 있으니, 밀지에 대해 안다면 불을 켜고 찾으려 들 게다. 절대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처리해야 할 것이다.”

“알고 있습니다.”

“천후께서 대노하셨다. 잘못하면 우리는 물론 전주님까지도 벌을 받을 수도 있다. 반드시 밀지를 찾아야 한다. 만약 회수가 어렵다면 없애라.”

“예!”

그때 사방을 뒤지던 흑의인 한 명이 달려오더니 납작 엎드렸다.

“찾은 것이 있느냐?”

“예,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저희는 이만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흑의인의 보고를 들은 백의인이 급히 말했다.

“알았다. 빨리 가라. 나도 곧 너희들 뒤를 따를 것이다.”

“예!”

모두가 몸을 날리자 가마 안에서 전서 한 마리가 하늘로 날아갔다. 중간보고를 한 것이다.

* * *

“방주님, 동방진입니다.”

방주 집무실에 있던 악불군은 동정어옹의 목소리가 들리자 손가락을 살짝 움직였다. 그러자 문이 스르르 열렸다.

[소군, 진짜 멋있다. 나도 그럴 수 있으면 정말 편할 것 같은데.]

담수련이 갈수록 강해지는 악불군이 너무 자랑스러운 듯 말하자, 악불군은 기분이 좋은 미소를 보이더니 들어오는 무림사기를 보자 자리를 권하며 말했다.

“앉으세요. 무슨 일인데 네 분이 같이 오셨습니까?”

회의한 지 두 시진도 안 지났는데 그들이 따로 찾아온 것은 다른 사람들 모르게 할 말이 있음이 분명했다.

“보고 없이 갑자기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중요하게 할 말이 있어서 오셨겠지요? 그런 예의는 제게 차릴 필요 없으니 말씀해 보십시오.”

“회의에서 말한 그 신비 조직이 천륭검가와도 연관이 있을지 모른다는 의심이 생겨서 찾아왔습니다.”

천륭검가라는 말에 악불군과 담수련의 눈에 이채가 나타났다.

‘그래, 이런 식으로 자꾸 정보가 쌓인다면 그들의 실체를 알아내기가 수월해질 거야.’

신비 조직이 철저하게 자신들을 숨겼지만 알게 모르게 곳곳에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는 것을 알자 담수련은 쾌재를 불렀다.

“어떤 연관인지 말씀해 보십시오.”

천륭검가라는 말을 듣자 그들이 회의에서 말하지 못한 이유를 알 것 같은 악불군은 궁금한 듯 물었다.

담수련은 그가 천륭검보를 익혔다는 사실은 절대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당부했었다.

천륭검가는 중경지방에서 이름난 무가였다. 어떤 세력도 중경에 발을 붙이지 못했다.

어떤 세력이나 이름난 무인이 중경에서 자리를 잡으려고 하면 천륭검가에서는 먼저 조용히 물러나라는 경고의 서찰을 보냈다.

만약 경고를 듣지 않을 경우 그 응징은 매우 강력했다. 하지만 천륭검가의 이름만 알려졌을 뿐, 누가 그들을 징치하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렇게 지방의 강력하지만 작은 무가로서 존재감만 보이던 천륭검가가 무림 최고의 명문가로 발돋움하게 된 것은, 구문황이 혈우대마종을 다른 무황들과 함께 제거하면서부터였다.

하지만 혈우대마종을 제거했음에도 구문황은 물론 천륭검가의 사람들은 무림에 나서지 않았다.

다시 잊히는 듯했던 천륭검가의 명성이 다시 천하를 울리기 시작한 것은, 태양천의 천주가 무황들을 다 꺾었지만 구문황에게만은 패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부터였다.

소문의 진위를 파악할 길은 없었다.

본 사람도 없었고, 당사자인 구문황이나 천륭검가의 사람들이 언제나처럼 문을 닫고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태양천이나 원나라의 군사들이 중경에는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소문은 사실로 그냥 굳어졌다.

더욱이 천륭검가에 부식(副食)을 대는 상인들이 검가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천인 같다고 떠벌리면서 모든 사람들의 존경까지 받았다.

악불군은 무림사기가 곧장 말하지 않고 머뭇거리자 강하게 다시 말했다.

“저를 주군으로 받들겠다고 하신 분들이 무엇을 꺼려하셔서 이리 조심을 하시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꺼리는 것이 아니라, 천륭검가로서는 치부이기도 해서 함부로 입에 담기가 어려운 것뿐입니다.”

“그래도 오셨을 때는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예, 그럼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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