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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검지애-305화 (305/472)

<천검지애 305화>

305화. 드러나는 진실들(2)

천하는 천륭검가의 사람들이 밖과 전혀 소통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었지만, 사실 천륭검가의 꽤 많은 사람들이 무림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다만 천륭검가라는 이름을 내세우지 않고 개인적으로 활동했을 뿐이었다.

동정어옹을 비롯한 무림 사기와 그들과 함께 천호방에 입방한 사십여 명의 무림인들은 천륭검가가 멸문할 때 밖에서 활동하던 수하들이거나 그 제자들이었다.

천륭검가의 또 하나의 특징은, 다른 무림세가들과는 달리 적장자가 아닌 가주의 자식 중 가장 강한 자식이 가주위를 잇는 계승 전통이었다.

전대 천륭검가의 가주에게는 자식이 둘이 있었다. 둘 다 대단한 무재를 지니고 있었고 실력 역시 막상막하여서 우열을 가리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가주의 자리는 아무런 잡음 없이 구문황에게 돌아갔다. 그땐 이미 구문황이 혈우대마종의 가슴에 검을 박으면서 그의 명성이 하늘을 찌를 때였기 때문이다.

“검황 어르신의 동생분이 그냥 있지 않았군요?”

“예, 전대 가주님과 장로들을 찾아다니며 부당하다고 주장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분의 주장은 받아들여지기 어려웠습니다. 그러자 동생분께서는 가주님께 비무를 원하셨습니다.”

“검황 어르신께서 받아들이셨나요?”

“가주님께서는 받아들이셨습니다. 하지만 어른들은 일언지하에 불가라고 못을 박아 버리셨습니다.”

“강한 자식에게 가주를 물려주는 것이 전통이라면 비무라도 한번 하게 해 주어 불협화음이 일어날 상황을 없애는 것이 더 좋았을 것 같은데, 아쉽군요.”

“그러신 이유가 있습니다. 가주님의 동생분이 아가씨였습니다.”

“여인이셨다는 겁니까?”

“예, 아무리 전통이 그렇다 해도 천륭검가의 가주가 여인인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또한 가주님께서 손위이기도 했고요.”

“그런데도 그런 주장을 과감히 하시다니, 대단하신 분이네요?”

담수련이 감탄한 듯 말했다. 물론 그녀는 몸이 약해 잠룡세가의 가주 자리를 탐해 본 적이 없었다. 그냥 당연히 담수운이 가주가 될 것이라고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담수운보다 무공이 강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그래도 그녀는, 다음 가주는 당연히 담수운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었다.

그것은 그냥 불문율이었고 전통이었다.

담수운은 남자이고 그녀는 여자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구문황의 여동생은 과감히 그 전통에 반기를 든 것이었다.

“대단하신 분이었지요. 하지만 전대 가주님이나 장로님들, 심지어 당시 후기지수에 속하던 저희들조차 아가씨가 그러시는 이유를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아가씨께서는 자신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어느 날 검가를 떠나셨습니다. 그 바람에 세가가 발칵 뒤집혔었습니다.”

“그분의 이름이 무엇이었나요?”

“구문정이라고 하셨습니다.”

“검황 어르신과 맞먹을 정도의 무공을 지녔다면 무림에 이름이 났어야 할 텐데, 전 들어본 적이 없네요?”

“저희도 그게 의아했습니다. 아가씨의 성정상 검가를 떠나실 때 가주님보다 더 높은 명성을 가지고 돌아올 결심이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가씨는 정말 감쪽같이 사라지셨습니다. 결국 전대 가주님께서 돌아가시는 날까지 돌아오지 않으셨지요.”

“천륭검가에서 찾아는 보셨나요?”

“가주님의 명성이 하늘을 찌를 때였습니다. 당연히 개방을 비롯해서 무림에 눈이 많은 문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그럼 그 신비 조직과 그 이야기가 무슨 연관이 있다는 거지요?”

“태상호법께서 묘사한 그 청부인의 모습이 아가씨와 많이 비슷했습니다.”

담수련이 놀란 듯 반문했다.

“정말이에요?”

“비슷하다는 것이지, 확실하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그런데 시기가 묘하게 일치합니다.”

“무슨 시기지요?”

“대공이 그 여인을 찾았다는 시기와, 아가씨께서 천륭검가를 찾아온 시기가 비슷합니다.”

“그분이 스스로 천륭검가로 돌아왔다는 말인가요?”

“예, 당시 저희는 외유를 나가려던 중이었습니다. 아가씨의 모습을 그때 보았지요.”

“왜 돌아오신 것인지는 아시나요?”

“모릅니다. 저희는 오시는 것만을 보고 외유를 나왔고 반년도 지나지 않아 가주님께서 주화입마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질문하던 담수련이 악불군을 슬쩍 보았다. 어찌 됐건 악불군의 무공의 근간은 천륭검보였으니 천륭검가와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장로님들은 검황 어르신의 죽음과 그녀 간에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사실 천륭검가가 멸문한 뒤 저희들 나름대로 조사를 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공교롭다는 생각은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담 군사님은 그렇지 않으십니까?”

“저 같으면 공교롭다는 생각이 아니라 그녀가 범인이라고 확신했을 거예요.”

“하지만 가주님은 아가씨의 친오라버니셨습니다. 솔직히 그렇게까지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비영살신께 청부를 한 여인이 그녀라면 능히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담수련은 단호하게 말하자 악불군이 다음 질문을 받았다.

“그 구문정이라는 분이 검가를 떠날 때 검황 어르신과 맞먹을 정도의 무공을 지니고 있었다고 하셨지요?”

“예.”

“당시 검황 어르신의 무공과 지금 제 무공과 어느 정도 차이가 나는 것 같습니까?”

“서실 저희들도 가주님께서 무공을 쓰는 것을 본 적이 없어서 정확하게 말씀드리기는 힘듭니다. 하나, 주군께서 좀 더 강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후 오십 년 가까이 지났으니 더 강해졌겠군요?”

“아마 그럴 겁니다.”

담수련의 관심사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 어떤 일이 벌어났고 그 결과가 어떻게 됐는지였지만, 악불군에게는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의 무공이 어땠는지가 더 관심사였다.

“방주님은 그분이 비밀 세력의 손발에 불과할까 봐 걱정이 되는 거지요?”

담수련이 악불군이 그런 질문을 던진 이유를 감지한 듯 물었다.

“그분이 진짜 신비조직에 몸을 담고 있다면 최소한 수장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수장이 직접 청부를 하고 다니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구문정이 수하라면 무황급의 고수조차 수하로 부리는 조직이 있다는 뜻이었다.

그것은 실로 악불군조차 긴장하게 만들 수 있는 엄청난 의미였다.

* * *

“군사님, 큰일 났습니다.”

제갈우명은 다급히 뛰어 들어오는 우문상일을 보자 짐짓 화난 듯 물었다.

“지금 내가 얼마나 바쁜지 모르나? 어찌 이리 호들갑인가?”

“군사님, 큰일이 벌어졌습니다.”

제갈우명은 그의 표정과 말투에서 호들갑이 아니라 진짜 큰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느끼자 고개 갸웃했다.

그도 모든 정보를 실시간으로 받아보고 있었지만 요 며칠간 무림은 오히려 평소와 달리 조용했기 때문이었다.

“말해 보시게.”

“영웅용단의 이대주인 길복현과 사대주 한진술이 싸움이 나서 둘 다 심한 부상을 입었습니다. 그 바람에 이대 대원들과 사대 대원들 간에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간 것을 간신히 말렸다고 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길 대주와 한 대주는 친형제처럼 사이가 좋았지 않느냐?”

무력 집단의 대주 간의 싸움은 적과 전투가 벌어졌을 때 큰 전력의 감소가 되는 법이었다. 그래서 무력 집단의 지휘부는 최대한 사이가 좋은 사람들로 구성했다.

“진짜 사이가 좋았지요.”

“싸운 이유가 뭐냐?”

“이게 말하기도 참 어려운데…….”

“빨리 말하게!”

“길 대주의 부인과 한 대주가 정분(情分)이 났다고 합니다.”

“정분? 바람이 났다는 말인가?”

제갈우명의 얼굴이 확 굳어졌다.

“그랬다고 합니다.”

“그걸 길 대주가 어떻게 알았나? 증거라도 있다던가?”

“길 대주가 직접 봤다고 합니다.”

“어떻게 직접 봤다는 말인가?”

우문상일은 질문이 좀 이상하자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군사님,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라…….”

“당장 나가서 길 대주가 어떻게 해서 그 사실을 알아냈는지 알아오게. 그리고 한 대주 역시 어떤 상황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도 알아보고.”

“그건 사적인 일인데요?”

“둘 사이에는 사적이지만 그들은 무력 집단의 간부들이야. 지금 그들이 한 행동으로 인하여 모든 대원들 간에 반목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모르나?”

“알겠습니다. 곧 알아오겠습니다.”

“그리고 두 대주는 형당에 일러 둘 다 뇌옥에 가두고, 오늘 일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함구시키게.”

“예!”

톡톡-

우문상일이 나가자 제갈우명은 불안한 표정으로 탁자를 손가락으로 치기 시작했다.

‘그때도 시작은 여자 문제였다고 했어……. 불안해…….’

무림인, 특히 정파들이 가장 치욕으로 생각하는 광란의 시대. 무림이 무림인들로 인해 스스로 자멸해 나가던 그 시기를 막아 준 것은 모순적이게도 혈우대마종의 등장이었다.

공통의 적이 나타남으로써 무림인들은 자해적인 내분을 멈추고 힘을 합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무림은 너무 많은 피해를 입은 상태였다.

혈우대마종이 사라진 후 제갈세가의 한 제자가, 무림인들이 왜 그렇게 미쳤었는지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지자의 가문이라는 제갈세가도 광란의 혈풍을 비껴가지 못하고 반 이상의 제자들이 죽은 후였다.

그는 또다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다각도로 조사를 진행했고, 모두 기록으로 남겼다.

하지만 무공 비록도 아니고 특별한 비사도 아닌, 오히려 치욕적인 상황을 적은 그 기록은 제갈세가에서도 읽는 사람이 없었다.

원나라가 침공하고 제갈세가 역시 멸문의 화를 피해 지하로 숨던 그 순간, 제갈세가에서는 모든 서책을 은밀한 곳에 숨겼다.

그들이 비고로 칭한 그 서고는 제갈세가에 기재가 태어날 때만 개방이 되었다.

하지만 그 기록은 여전히 구석에 박혀 있었다. 비고에 들어간 제자들은 진법이나 병법 같은 당장 필요한 책만을 읽기에도 벅찼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이십 년의 세월이 흐르고 드디어 그 기록을 펼친 제자가 나타났다. 바로 제갈우명이었다.

천재였던 그는 나갈 날이 반도 지나기 전에 필요한 책을 다 터득하고는, 별 필요 없는 책들까지 모두 읽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기록을 발견한 그는 큰 흥미를 느꼈다. 누구에게도 광란의 시대에 대해 듣지를 못했기 때문이었다.

기록물에는 무림인들이 반목하게 된 원인으로 수많은 상황을 기록해 놓았는데, 그중 가장 많은 이유가 바로 여인이었다.

사랑했던, 또는 사랑하는 여인이 자신이 믿었던 친우나 친척에 의해 죽임을 당하면서 원한을 품게 되는 경우가 가장 많았고, 두 번째는 방금 일어난 것 같은 치정이었다.

세상사에서는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추문으로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제갈우명은 달랐다.

이미 여러 곳에서 광란의 시대에 일어났던 일들이 또다시 재연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안 되겠어. 그분들께 연락해서 의논을 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구나.’

제갈우명은 아무래도 간단히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고 생각한 듯 중얼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 * *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십니까?”

무림사기와의 대화가 끝난 후 담수련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아무래도 이 조직은 너무 이상해.”

“이상한 걸로 따지면 한두 가지가 아니지요.”

“그래서 말인데, 그들의 힘이 내 예상보다 훨씬 강한 것 같거든.”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럼 왜 직접 나서지 않고 이간과 분열만 시키는 것일까?”

“동방 장로님의 말이 맞다면, 중요한 시기에는 직접 손을 쓰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이간질이 통하지 않으면 직접 죽이는 것 같아. 그런데 그게 더 이상하지 않아? 검황 같은 분을 죽일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면 직접 나서서 행동하는 것이 더 쉬울 것 같은데.”

“우리가 모르는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 이유가 있어. 그래서 그 이유를 생각해 봤어.”

“짐작 가시는 거라도 있으십니까?”

“특별한 것은 아니고 그냥 상식적으로 생각했어, 그랬더니 한 가지 이유가 생각이 나더라고. 물론 맞는지 틀리는지는 나도 몰라.”

“어떤 이유라고 생각하셨습니까?”

담수련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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