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검지애 308화>
308화. 폭풍의 중심(1)
“사조님!”
소걸아가 따지듯 말하자 사해신개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왜?”
“제가 정말 열심히 방의 일을 하고 있는 거 아시지 않습니까.”
“네가 열심히 했다고? 설마 그걸 나 보고 믿으라는 것은 아니지?”
“믿으십시오.”
“뭐 그렇다 치자, 그래서?”
“열심히 일하는 저를 계속 불러서 귀찮게 하는 분이 있더라고요.”
“나 말하는 거냐?”
“꼭 사조님을 지칭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일이 바쁜데 부르면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그래서 안 갔지요. 그랬더니 갑자기 집법 천강개들이 저를 잡으러 다니더라고요.”
“안 그래도 어찌나 쥐새끼처럼 살살 잘 도망가는지 도저히 못 잡겠다고 연락이 왔더라.”
“결국 사부님께서 찾아오시는 바람에 제가 그 많은 일을 놔두고 여기로 온 겁니다. 그런데 그냥 나가라고 하시면 저 보고 어쩌라는 겁니까?”
소걸아의 항변에 신룡신개는 뭐가 그렇게 대견한지 흐뭇한 미소를 지며 보고 있었다.
“신룡아.”
“예, 사부님.”
“지금 사손이란 놈이 감히 사조에게 따지고 있는데, 그래도 예쁘냐?”
“제가 말을 잘 못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소걸아는 이렇게 말을 잘하니 제자 하나는 잘 뒀다 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에구~ 내가 말을 말아야지.”
“사조님! 말씀해 주셔야지요. 이대로 나간 후에 또 잡으러 다니면 저 피곤해집니다.”
“말해 주려고 했다! 이제부터 입 딱 다물고 내 말을 듣기만 해라.”
“그래도 질문은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한 대 맞고 싶냐?”
“아닙니다. 말씀하십시오.”
“방주와 의논해서 네게 특별 순찰 천강대장 자리를 주기로 했다.”
“정말입니까?”
소걸아는 눈이 커지며 흥분한 듯 소리쳤다.
“순찰 천강대장이면 분타주 정도는 목을 자를 수 있는 엄청난 힘을 가진 지위다.”
“헤헤~ 알고 있습니다.”
또 어떤 잔소리를 들을까 걱정했던 소걸아는 뜻밖의 감투에 희희낙락하며 대답했다. 더욱이 순찰 천강대장이면 천하를 마음대로 외유할 수 있었다.
사해신개 말대로 쏘다니기 좋아하는 그에게는 최고의 보직이 아닐 수 없었다.
“너 좋아하는 거 보니까 좀 불안하긴 한데, 내 말은 진짜 자르라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높은 지위이니 행동거지를 잘하라는 말이야. 괜히 촐싹거려서 네 사부나 나까지 욕먹게 하지 마라. 그리고 천강대원 백 명이 너를 보좌할 것이니 위엄도 잃지 말고.”
“예!”
크게 대답한 소걸아는 급히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어딜 가?”
“순찰 천강대장이니까 밖으로 나가야지요.”
“밖에 나가서 너 좋아하는 데 돌아다니라고 그 지위 준 게 아니야. 삼 일 안에 절강 항주로 가거라.”
“항주까지 어떻게 삼 일 안에 갑니까!”
“명령이니까 무조건 가!”
“순찰 천강대장이면 강호를 암행하면서 비위(非違)를 저지르는 제자들을 단속하고 징치하는 자리 아닙니까?”
“알긴 아는구나.”
“그럼 나가서 암행을 하며 분타를 감찰해야지, 왜 항주로 곧장 달려갑니까?”
“그러니까 그냥 순찰 천강대장이 아니라 특별 순찰 천강대장이라고 한 거야.”
“특별이 들어갔으니까 다른 순찰 천강대장보다 더 높다는 의미잖아요?”
“그게 아니라 특별한 임무만을 맡아 하는 자리라는 거다.”
“어떤 특별한 임무요?”
볼멘소리로 묻는 소걸아를 보고 사해신개는 고개를 살래살래 저으며 신룡신개에게 말했다.
“네가 임무에 대해 자세히 알려 주고, 무림의 안정을 위한 중차대한 일이니 절대 소홀히 하면 안 된다고 확실하게 주지시켜라.”
“사부님께서 주지 안 시켜도 지금 다 들리거든요!”
“네 사부에게 또 들어! 이제 나가 봐라.”
임무라는 말에 뭔가 찝찝한 표정을 짓던 소걸아는, 어쨌든 답답한 총단을 그것도 대장이 되어 사부나 사조 없이 나갈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한 듯 더 이상 불평 없이 신룡신개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진중한 면이 없어서 좀 불안하기는 한데, 저놈 말고는 믿고 맡길 수 있는 아이들이 거의 없으니…… 쩝!’
불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비밀 전서를 펼친 사해신개의 검미가 극도로 좁혀졌다.
비밀 전서는 제갈우명에게서 온 것이었다.
‘드디어 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나 보군.’
전서에는 무림맹의 맹도 간에 뜻하지 않은 불협화음이 계속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 적혀 있었다. 심지어 대주 간의 싸움 말고도 의심스러운 정황이 여럿 더 있었던 것이다.
사해신개는 심각한 표정으로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궁가방을 내쫓고 개방을 통일한 후, 개방 총단에서도 제갈우명이 걱정하는 일과 비슷한 사례가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전쟁에서 이긴 것이니 논공행상에 따른 불만이 튀어나오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사해신개가 보기에는 매우 수상한 조짐이었다.
“영웅대회가 문제가 아니야. 각 파의 최고 후기지수들로 구성된 추적단이 필요해. 탕마회의 구성원들이 죽기 전에 반드시 그들의 정체를 밝혀내야 해.”
지금 탕마회의 구성원들은 각 문파의 결정을 움직일 수 있는 최고 어른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놈들을 없애지 못한다면 더 이상의 기회는 없을 가능성이 높았다.
사해신개가 구상하는 추적단은 악불군을 선두에 세우는 것이었다. 무림 십왕으로 봉해진 그가 이끈다고 한다면 다른 문파들을 설득하는 데 매우 유리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천무성궁인데…….’
악불군을 내세우는 것을 가장 반대할 곳이 현 무림의 최고 실세인 천무성궁임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에 대한 고심이 사해신개는 절로 깊어 가고 있었다.
제갈우명은 천무성궁에서 무림맹의 제어를 받지 않는 무림 조직이 정파를 주축으로 만들어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 주장의 근거는 무림맹에도 무력 집단이 있기 때문이었다.
설령 허락한다 해도 분명 추적단은 천무성궁이 주도적으로 이끌려고 할 것이 분명했다.
천무성궁은 분명 영웅회의 지도자였고 현 정파의 구심점이었다.
실질적인 무력도 정파에서 가장 강했다. 그러나 문제는 탕마회에서 천무성궁에도 신비 조직의 간세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추적단은 극비로 움직여야 하는데 천무성궁에 그 움직임이 알려진다면 적에게 들어가는 불문가지였다.
‘그 많은 정파인들 중에서 믿고 맡길 만한 아이가 악불군 그 아이뿐이라니…….’
사해신개는 담수련을 보호하기 위해 선실밖에 서서 자던 그의 모습과 대화에서 보이는 충직함으로, 그만은 확실하게 믿을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탕마회에 알렸다.
그리고 그것을 무상진인이 또 한 번 확인해 준 것이다.
* * *
“교주님, 곧 천호무적검에게 정보를 전할 예정이라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최학의의 보고에 혈우대마종은 의아한 듯 물었다.
“전했으면 전했지, 전할 예정인 것을 왜 보고해?”
“원체 중차대한 정보인지라 교주님의 재가를 다시 한번 확인하려는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신비 조직에 대해 악불군에게 정보를 주라는 혈우대마종의 명을 받은 혈뇌원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왔었다.
절대신으로 추앙받는 혈우대마종에게 반대 의견을 제시한 이유는, 그 정보를 전하는 것이 향후 무림의 정세에 큰 변화를 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래서 혈뇌가 아까부터 들어오지도 않고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거냐?”
“이유까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교주님께 하실 말이 있긴 한 것 같습니다.”
“들어오라고 해라.”
“예!”
최학의가 나가고 곧 혈뇌가 허리를 깊숙이 숙인 채 들어오더니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갑자기 왜 안 하던 짓을 하는 거냐?”
혈뇌원의 원주인 혈뇌는 혈우대마종 앞에서 부복을 하지 않아도 되는 지위였다.
“감히 교주님의 명에 이견을 제시했으니 그 죄가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보를 넘기는 것에 반대하는 이유를 정확하게 말해 봐라. 저번 같이 두루뭉술하게 본 교에 이득이 되니 마니 하는 말은 하지 마라.”
“중원 무림인들은 그들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냥 두고 본다면 중원 무림은 또다시 예전 같은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본 교가 중원을 장악하는 데 매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단지 그게 이유냐?”
“교주님께서는 그 정보를 중원 무림에 넘기면 그들과 중원 무림 간에 혈투가 벌어질 것이고 양패구상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양패구상보다는 경각심을 가지게 하여 더욱 뭉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혈뇌원의 학사 놈들이야 탁상공론이 우선이고 실질적인 상황을 몰라서 그런다 치지만, 혈뇌 너는 그래도 믿었는데 어찌 내 생각을 그렇게 모르냐?”
“용서하십시오. 제 능력이 어찌 교주님을 따르겠습니까? 설명해 주신다면 제가 혈뇌원을 설득하겠습니다.”
혈교의 모든 일을 자신의 명령 한마디로 다 처리하는 혈우대마종이었지만, 단 한 곳만은 그의 의견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었고 심지어 설명까지 요구할 수 있었다.
바로 혈뇌원이었다. 심지어 그런 규율을 정한 사람이 혈우대마종 본인이었다.
예전 자신의 무공에 너무 자신을 가지고 독단적으로 행동하다가 당한 경험이 있는 그는, 만약을 위해 자신의 행동을 제어할 수 있는 장치를 스스로 만든 것이다.
“중원 무림과 그 계집들 간에 양패구상을 시키는 것이 주목적이라면, 그 정보는 무림맹에 전하지 천호무적검에게 전하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것은 천호무적검을 탕마회에서 신뢰하게 만드는 것이다.”
놀랍게도 혈우대마종은 신비 조직을 상대하기 위해 결성된 탕마회까지도 알고 있었다.
혈뇌가 뭔가 떠오른 듯 눈이 커지자 혈우대마종은 말을 이어 나갔다.
“현 무림은 백 년 전과는 다르다. 마도는 구천마황이 완벽하게 휘어잡았고, 사파 역시 혈해사계를 중심으로 뭉쳐 있다. 거기다 천무성궁은 전 정파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무림맹을 장악하고 있어. 그 계집들이 아무리 이간과 분열을 획책한다 해도 여러 문제는 발생할지언정 예전 같은 폭풍이 되어 전 무림을 휘몰아치는 상황은 오지 않는다.”
“교주님, 그럼 드디어 정면 돌파하실 계획이십니까?”
혈우대마종은 그동안 대단히 신중하게 대계를 설계해 왔다. 혈뇌원 역시 거기에 맞춰 신중한 계획을 세워 보고했다.
“더 이상 기다릴 수는 없다. 천호무적검이라면 그 계집들을 누구보다도 확실하게 추적할 게다. 이미 탕마회 놈들과도 만났다고 하니 연계가 잘되겠지. 탕마회와 천호무적검이 연계해서 추적을 시작한다면 무림맹과의 알력은 피하기 힘들다.”
혈우대마종은 신비의 조직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혈교 또한 다른 문파들과 똑같은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들의 침투방법이 도저히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뻔히 알면서도 당한다고 하는 것이 맞았다.
혈우대마종은 자신이 무황들의 합공에 의해 회생불능의 상처를 입었던 것도 그들의 함정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원나라 시절 대공을 부추겨 혈교가 밝은 곳으로 나서는 것을 막아온 것도 그들의 짓이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들을 제거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급선무라고 생각하고 있음에도 혈교 역시 지하 조직이라는 한계를 벗어나기는 힘들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의 정체에 대해 상당히 가깝게 다가가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들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내는 것은 만만치 않았다.
그러던 중 그의 눈에 띈 것이 바로 악불군이었다.
그는 무림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게 빠른 속도로 명성을 얻었다. 더욱이 그의 실행력과 활동력은 실로 대단해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한다는 말이 그를 지칭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현 무림에서 어떤 세력에게 그 정보를 준다 해도 추적을 시작하려면 우선 사실 여부를 파악한다며 시일을 끌 것이었고, 파악한 연후에는 이익과 손해를 저울질하며 또 세월을 보낼 것이 분명했다.
더욱이 영웅대회까지 코앞이니 아예 신경을 안 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악불군은 그 조직의 정보를 듣는다면 누구보다도 빠르게 그들을 추적할 것이 분명했다.
너무 빠른 성취에 제거까지 결심했던 그가 마음을 바꾼 이유였다.
물론 그 선택이 올바른 것이었느냐는 후일 무림 역사서가 판단해 줄 것이었다.
“무슨 의중이신지 알았습니다. 저희 혈뇌원에서 판단을 잘못한 것 같습니다. 제가 교주님의 뜻을 잘 설명하고 향후 대책에 대해 분석하도록 하겠습니다.”
“당장 천호무적검에게 정보를 전하라 일러라.”
“존명!”
그들이 수집해 놓은 정보가 악불군의 손에 들어가는 순간 어떤 돌풍이 불지는 아직 누구도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