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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검지애-309화 (309/472)

<천검지애 309화>

309화. 폭풍의 중심(2)

흑석영은 스스로가 변장에도 상당한 조예가 있었다.

“흑 호법, 얼굴을 보지 않는다면 정말 방주님인 줄 알겠어요. 어쩜 걷는 모습이나 서 있을 때의 자세를 그렇게 똑같이 할 수가 있어요?”

담수련의 칭찬에 흑석영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떠올랐다. 무표정하다 못해 얼음장처럼 냉막함까지 보이던 그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기 시작한 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악불군을 따라다니다 보니, 조금씩 그에게 감화되며 차가운 성정에도 변화가 생긴 것이다.

“남을 죽이는 일이 생각보다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별의별 잡술을 다 익혀야 하지요.”

그러자 흑석영의 얼굴에 역용약을 바르던 고철황도 한마디했다.

“사실 살수만큼은 아니지만 도둑질도 정말 배울 것이 많습니다.”

“호호호~ 두 분 말씀을 들으니까 세상에는 쉬운 일이 하나도 없는 것 같네요. 거기다 체력만이 아니라 머리도 좋아야 할 것 같아요.”

‘아가씨의 웃음소리만큼 듣기 좋은 소리는 없을 거야.’

옆에서 보고 있던 악불군은 담수련의 웃음소리를 듣자 그냥 기분이 좋았다.

그에게 지금 상황이 얼마나 엄중한지는 상관이 없었다.

* * *

“천호무적검이 총단을 나온 것을 확인했습니다.”

백의인은 흑의로 옷을 바꿔 있고 있었다.

“확실하냐?”

“저희 첩자들이 확인해 주었습니다. 분명 천호무적검이라고 했습니다. 왜소한 체격의 남자도 한 명 있다고 했습니다. 정보에 의하면 언제나 옆에 끼고 다닌다는 여인이 남장을 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확실한 것 같군. 모두 몇 명이 들어갈 예정이냐?”

“저를 포함 총 여섯 명이 들어갈 것입니다. 안쪽에선 이십 명이 저희가 침입하기 전에 호응을 해 주기로 했습니다.”

“적동마수는 어디에 있는지 알아냈느냐?”

“귀빈청에 모셔 두고 있다고 합니다. 주위에 경계가 상당하다고는 하지만 특별하게 이름 있는 놈들이 아니니, 돌파하는 데는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천호무적검의 무공으로 미루어 약속된 장소에서 총단으로 돌아가는 데는 삼각이면 충분할 것이다. 내가 최대한 시간을 끈다 해도 너희에게 있는 시간은 최소 반 시진에서 최대 한 시진에 불과하다. 빠르게 처리해야 할 것이다.”

“예, 그럼 저희는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천호무적검이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는 즉시 안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알았다. 가 봐라.”

* * *

“오늘 저를 죽이러 올 것 같다는 말입니까?”

악불군과 담수련이 늦은 시간에 갑자기 찾아오자 긴장했던 적동마수는, 자신을 죽이기 위해 적이 침입할 것 같다는 말에 눈이 동그래져서는 반문했다.

“저희 짐작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럼 은신처부터 옮겨야 하지 않습니까?”

“이곳은 그냥 빈청이 아니라 귀빈들만 모시는 곳입니다. 정말 그들이 여기까지 올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들의 능력을 몰라서 하시는 말입니다. 영주급만 되어도 제가 이십 초를 견디기 힘듭니다.”

담수련은 믿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위지 대협께서는 백대고수 중 중간에 위치한 초절정 고수예요. 그런데 겨우 영주급이 그렇게 강하다는 것입니까?”

“제가 만나 본 영주들은 그랬습니다.”

“위지 대협도 영주였다고 하지 않았나요?”

“제가 말하는 영주는 내부영주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위지 대협은 외부영주였다는 말이네요?”

“그렇습니다. 조직의 핵심에는 다가가지 못하는, 이름뿐인 영주가 외부영주입니다. 내부 영주들은 무공 수준 자체가 달랐습니다.”

“그들에게 그런 내부영주가 몇 명이나 있습니까?”

“제가 장원에 가서 대접을 받았다고 했던 것 기억하십니까?”

“불과 오 일 전에 들은 말인데, 기억을 못 한다면 말이 안 되지요.”

“그 장원에 모인 사람들이 제 구역에 있는 자들이었다는 것을 후에 알았습니다. 그때 내부 영주를 한 명 만났습니다. 제 생각에는 한 구역에 내부영주와 외부영주 한 명씩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위지 대협의 구역은 어디였지요?”

“호남의 중동부였습니다.”

“호남은 구역이 몇 개나 되는 지 아시나요?”

“모릅니다. 다만 제 구역에 대비해 추론한다면 대략 다섯 개 정도 될 것 같습니다.”

“한 성에 다섯이라면…… 대충 오십에서 육십 개 정도의 구역이 있겠군요.”

중원을 보통 북칠성 남육성으로 칭했다. 총 열한 개의 성이 있다는 의미였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위지 대협 정도의 고수가 오륙십 명에 더 강한 자가 오륙십 명이면 백대고수급의 초절정 고수를 백 명이 넘게 보유하고 있다는 건데, 정말 엄청난 전력이군요. 그런데 왜 그런 전력을 지니고 숨어서 음모만 꾸미는 걸까요?”

“제가 아는 범위 안에서 말씀드린다면, 본 조직에서 가장 꺼려하는 세력이 혈교입니다. 그들은 저희를 없애려고 눈에 불을 켜고 찾는 것으로 압니다.”

“혈교와 그렇게 사이가 나쁘다는 말은, 혈교에서 그 조직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말도 되겠군요?”

“거기까지는 저도 모릅니다. 하나 혈교의 전력은 본 조직과 비슷하거나 더 강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적동마수의 말에 담수련의 눈에 이채가 나타났다. 뜻하지 않게 혈교의 전력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입수하게 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암중에서 둘이 서로 견제해 왔다는 말이네? 둘 사이를 잘 이용하면 좀 더 쉬운 대처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순식간에 새로운 계획을 머리에 그린 담수련은 다시 물었다.

“그럼 태양천과는 어떤가요?”

“제가 하는 말은 주워들은 것입니다. 정보로 취급하지 마시고 첩보 정도로 이해해 주십시오.”

“그럴게요.”

“제가 어찰단의 간부를 죽이면서 그들의 추적을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조직의 도움으로 그들의 추적을 따돌릴 수 있었는데, 어찰단 안에서도 저를 돕는 자들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었습니다. 어찰단이 태양천의 하부 조직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태양천에도 저희 조직의 간세들이 상당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럼 오늘 침입하는 자들 중 한 명은 최소한 내부영주급은 되겠네요?”

“제거 명령에 따라 죽일 자들을 찾아가면 모두 제가 제거할 수 있을 정도의 무공을 지닌 자들이었습니다. 그만큼 정보가 정확하다는 의미겠지요. 저야 그들 조직에 있었으니, 더욱 정확하게 저를 제거할 수 있는 자를 침입시킬 것입니다.”

“두렵나요?”

이어진 담수련의 반문에 적동마수는 악불군을 슬쩍 보더니 답했다.

“방주님께서 제 옆에 계속 같이 있어 준다면 두렵지는 않을 것입니다.”

적동마수는 악불군과의 비무에서 최소한 무공에 대해서만은 완벽하게 승복한 것 같았다.

“그들을 사로잡는다면 조직에 대한 정보를 더 알 수 있을까요?”

“내부영주가 온다면 분명 저보다 핵심 정보를 더 알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에게서 정보를 얻는 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특히 사로잡히게 되면 입 안에 숨겨 놓은 독단을 물어 자결한다고 들었습니다.”

“위지 대협도 그런 독단을 입안에 숨기고 있나요?”

“전 없습니다. 솔직히 잡혀 봐야 아는 것이 거의 없었으니까요.”

“거의 없었다는 말은 지금은 있다는 의미겠군요?”

“그게…… 그렇습니다.”

적동마수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마지못한 듯 대답했다.

“저들을 잡아서 알아낼 수 있는 정보보다 더 중요한 정보라고 생각하시나요?”

“내부영주라도 절대 알 수 없는 최고급의 정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담수련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미소를 지며 말했다.

“위지 대협께서는 절대 안전할 것이니 아무 걱정 마시고 편히 쉬셔도 됩니다.”

말을 마친 담수련은 악불군을 슬쩍 쳐다보며 물었다.

“방주님께서는 궁금하신 점이 없으신가요?”

“군사님께서 필요한 질문만 적절하게 하셨는데 제가 더 물을 말이 뭐가 더 있겠습니까? 그런데 밖의 움직임이 좀 이상합니다.”

“어떤데요?”

“아직 침입한 자들은 없는데 이상한 움직임을 보이는 자들이 여럿 있습니다. 아무래도 저들이 심어 놓은 간세들이 돕기로 한 것 같습니다.”

놀랍게도 악불군은 둘이 대화를 하는 와중에 장원 전체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었던 것이었다.

“힘들게 심어 놓은 간세들의 정체가 드러나는 위험까지 감수한다는 것은 그만큼 위지 대협의 정보가 중요하다는 의미겠지요. 이미 그것까지 염두에 두고 명을 내렸으니 잘 처리할 거예요.”

신비 조직에서도 상당히 심혈을 기해 계획을 짰지만 담수련의 머리는 그들보다 몇 단계 위였다. 그녀는 적들이 적동마수를 제거하기 위해 펼칠 계획을 다각도로 연구해 모든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내당과 외당에 이미 지시를 한 터였다.

그리고 둘의 대화를 들으며 적동마수는 둘에 대한 믿음이 좀 더 강해지고 있었다.

* * *

“천호방 총단에서 수상한 움직임이 포착되었다는 거냐?”

“천호방에 잠입한 저희 간세들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어떤 상황인지 자세히 말해 봐라.”

혈교 절강분타주인 오익선은 학방과 함께 서점도 같이 운영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서점은 천호방 총단에서 오십 마장 밖에 떨어지지 않은 항주의 시장거리에 있었다.

이미 일 갑자 동안 운영한 서점으로, 지금은 천호방의 정보를 수집하지만 원래는 잠룡세가의 활동을 감시하는 것이 주임무였다.

“담 밖으로 다급히 던진 정보라서 무엇이 수상한지에 대해서는 적혀 있지 않았습니다. 후속 보고가 없는 것으로 미루어 총단 전체에 경계망이 확대된 것 같습니다.”

혈교의 간세들은 연락망이 신비 조직보다 훨씬 간편했다. 학방의 학도들과 서점의 점원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천호방 총단 주위의 길을 통행할 수 있기 때문에, 수시로 담 밖으로 비문이 적힌 종이를 던지면 되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이따금은 직접 서점에 찾아오기도 했다.

“지금 총단에서 천호방에 뭔가를 전하기 위해 높으신 분이 와 계시다. 일이 잘못되면 안 되니 천호방 근처에 밀착 감시를 붙여라.”

“알겠습니다.”

보고자가 나가자 오익선은 의아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천호방에서 수상한 움직임을 보인다는 보고를 한 적이 없는데……. 하필 왜 지금 일이 벌어지는 거지?’

총단에서 온 밀사가 어떤 임무를 띠고 왔는지는 그도 몰랐다. 하지만 일이 잘못되면 절강을 담당하는 그가 모든 책임을 져야 할 수도 있었다.

* * *

[방주님, 사효조입니다.]

[보고하세요.]

[다섯 놈이 전각에 불을 붙이려는 것을 제압했습니다.]

[전각 옆에다 불을 붙여서 전각에 불이 난 것처럼 꾸미라고 하십시오.]

[알겠습니다.]

사효조가 사라지고 일각도 안 되어 또 다른 전음이 들려왔다.

[대독관입니다.]

[보고하세요.]

[열 명 정도 되는 놈들이 경계를 서던 동료들을 공격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다행히 모두 제압하긴 했는데, 죽은 자도 한 명 나왔고 대여섯 명은 부상을 입었습니다.]

[제압한 자들을 모두 혈도를 찍어 뇌옥에 가두세요. 그리고 그들이 빠진 경계망은 인원을 충원하지 말고 천호특별단 단원들에게 매복하라고 하십시오.]

[그렇게 조처하겠습니다.]

대독관이 사라지자 담수련이 악불군을 보며 물었다.

“전음이 왔어?”

“예.”

악불군은 그동안 나눈 전음의 내용을 그녀에게 말했다.

“꽤 다급하게 일을 벌이네?”

“벌써 행동을 한 간세들이 열다섯 명에 달합니다. 본 방에 대한 감시를 포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니, 진짜 간세가 백 명은 될 거라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이미 방도가 이천 명에 달하는데 그 정도는 생각해야지 뭐. 하지만 모두가 그 신비 조직의 간세는 아닐 거야.”

“혈교나 구천마성 등도 간세를 집어넣었을 것입니다.”

“간세들은 모두 생포했지?”

“전부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상당수는 생포한 것 같습니다.”

“쉽게 제압을 당한 것으로 보아 그들이 아는 것이 많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뭔가 건지는 것은 있겠지.”

“그렇게 조심하라고 했는데 결국 희생자들이 나오니 마음은 안 좋습니다.”

“오늘이 아니더라도 그들과 혈교를 추적하다 보면 결국 희생자들은 점점 더 늘어날 거야. 그때마다 마음이 안 좋으면 무림인으로서의 생활을 불가능할 거야.”

“알겠습니다. 저도 마음가짐을 좀 더 단단히하겠습니다.”

그때 또다시 전음이 들려왔다.

[방주님! 최욱걸입니다. 드디어 외부에서 침입자가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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