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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검지애-310화 (310/472)

<천검지애 310화>

310화. 드러나는 진실(1)

[아마 사방으로 퍼져 이목을 흐리는 자들이 있을 겁니다. 그들은 호법들과 장로들이 처리하세요. 그리고 귀빈청으로 곧장 달려가는 자들은 막지 말고 그냥 두십시오.]

[예!]

최욱걸이 대답과 함께 그대로 사라지자 악불군은 담수련을 보며 말했다.

[이제 제 차례인 것 같습니다.]

[위지 대협을 이십 초에 이길 수 있는 자라고 했어. 소군도 방심하지 말고 조심해.]

담수련은 염려가 섞인 표정으로 전음을 건넸다.

매번 담대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스렸지만, 악불군이 싸울 때마다 긴장하고 걱정이 되는 것은 어떻게 막을 수가 없었다.

[걱정 마십시오.]

악불군은 그녀의 불안을 줄이기 위해 태연하게 답했다. 그러나 그의 장담은 오직 그녀 때문만은 아니았다.

보타검각에 다녀오던 선상에서 얻은 깨달음을 계속되는 수련으로 확실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든 후, 스스로 생각해도 경지가 상당히 높아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 * *

백의인의 이름은 차성령이었다.

태어나자마자 조직에 선택되어 최고의 수련을 받으며 내부영주까지 누구보다 빨리 올라갔다.

이제 단주로 한 단계 더 올라간다면 그녀가 그렇게 바라던 조직의 중추에 입성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적동마수의 배신으로 그녀의 꿈은 물거품이 될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임무를 떠나 반드시 죽여야 할 원수가 되어 버린 것이었다.

‘천호방에 웬 살수 무공을 익힌 자들이 이렇게 많은거지?’

안에서 호응하기로 한 간세들이 붙인 불을 신호로 삼아 여섯 명의 수하와 총단을 넘은 차성령은 생각외로 거대한 장원의 규모에 살짝 놀라고 있었다.

수십 년간 오룡세가의 일원으로 천하를 호령하던 잠룡세가의 총가였으니 어쩌면 그건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정작 놀란 것은 그 커다란 장원의 곳곳에 숨어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살수들이었다.

처음 그녀는 자신들 말고 또 다른 세력들이 침입을 한 것은 아닌가 의심했다. 천호방에 살수들이 떼거리로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정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아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녀와 같이 들어온 수하들이 그들에게 집중적으로 공격을 받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불이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 들어왔는데 이상할 정도로 혼란이 없었다.

어떤 문파도 불이 나면 어느 정도의 혼란은 피할 수 없었다.

그런데 불기둥은 여러 곳에서 여전히 보이고 있음에도 허둥대는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심지어 당연히 들려야 할 ‘불이야!’라는 외침도 없었다.

차성령의 불기둥의 사이로 한 전각을 보더니 그쪽으로 빠르게 내달렸다. 어차피 목적은 적동마수에게 밀서를 회수하고 그를 죽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살수들은 그녀를 막을 정도의 실력은 아니었다.

아니, 막지를 않았다.

* * *

“어디쯤 왔어?”

“다 왔습니다. 곧 도착할 것 같습니다.”

“무공 수위는 어떤 것 같아?”

“그냥 그런 것 같습니다.”

“위지 대협보다는 강한 것 같아?”

“지금 경계를 뚫고 들어오는 것을 보면 확실히 위지 대협보다는 강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젊은 여인입니다.”

“여자라고?”

“예.”

담수련은 점점 결론이 한쪽으로 향하는 것을 느끼자 표정이 굳어졌다. 하지만 생각을 오래 할 수는 없었다.

그들의 앞에 복면을 쓴 한 인영이 떨어져 내렸기 때문이었다. 차성령이었다.

“나를 막은 것이 너냐?”

그녀는 상당히 놀란 듯 물었다. 그녀는 악불군과 담수련을 보자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그들의 위를 날아 전각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마치 공중에 벽이라도 있는 듯 강력한 반탄기에 부딪치며 땅으로 떨어진 것이었다.

“적동마수를 죽이러 온 모양인데, 천호방을 너무 우습게 본 것 같군요?”

차성령은 너무 태연한 모습의 악불군을 보자 그제야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악불군의 옆에 서 있는 한 여인, 그리고 그녀 뒤에 서 있는 네 명의 여성 호위무사들까지, 그동안 받았던 정보에서 악불군을 묘사할 때 나타나던 광경이었다.

“설마…… 네가 천호무적검이냐?”

“계획이 너무 허접해서 대화가 통할 수나 있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눈치는 좀 있군요.”

“허접? 감히 본 궁의 행사를 허접이라고 표현하다니, 정말 광오하구나!”

순간 담수련과 악불군의 눈에 동시에 이채가 나타났다. 그녀의 말 속에서 아주 중요한 정보 하나가 드러난 것이었다.

‘틀림없이 본 궁이라고 했어. 천하에 궁으로 불리는 세력이 뭐가 있지?’

담수련의 머리가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그녀가 아는 모든 견문을 다시 되뇌며 궁으로 불리는 세력을 찾기 시작한 것이었다.

“제가 비하할 의도는 없었지만 기분을 상하게 한 것 같으니 사과드리지요. 같이 들어오신 분들은 곧 모두 제압될 겁니다. 우리는 굳이 싸우지 말고 대화로 사안을 풀어 나가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악불군이 점잖게 물었지만 차성령의 기감은 전각 안에 더 꽂혀 있었다.

그녀의 임무가 적동마수의 제거였기 때문이었다.

‘적동마수를 숨기도 않았어. 자신 있다 이건가?’

차성령은 전각 안에 적동마수가 있다는 것을 느끼자 악불군을 보며 물었다.

“우리 사이에 풀어 나갈 사안이 있었더냐? 이건 대화할 사안이 아니라, 천호방에서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일 뿐이다!”

“본 방의 총단을 넘은 것은 그쪽인데 어찌 저희가 잘못이라고 하는 건지 모르겠군요?”

“저 안에 있는 적동마수는 본 궁의 배신자다. 사문의 배신자를 돕거나 감싸 주는 것은 무림 세력 간에도 가장 금하는 일이라는 것을 모른단 말이냐?”

“아까부터 본 궁이라고 하시는데, 어떤 궁인지를 알아야 저희가 잘못인지 그쪽이 잘못인지를 명백하게 밝힐 수 있지 않겠습니까?”

“넌 아직 본 궁의 이름을 알 만한 자격이 안 된다.”

“배신했다면서 누구를 어떻게 배신했다는 말인지 설명을 못한다면, 저로서는 지금 하신 말을 신빙하기가 어렸겠지요.”

차성령은 대화를 하는 와중에도 조금만 빈틈이 보이면 악불군을 뛰어넘어 전각 안으로 달려들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기회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녀가 뛰어넘을 생각만 해도 강력한 검기가 그녀를 향해 날아왔기 때문이었다.

‘저놈이 독심술을 펴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생각만 해도 방비하는 거지? 이렇게 대치만 하고 있을 시간이 없는데…….’

그녀는 악불군이 어떻게 자세가 아닌 생각만으로도 방비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차성령은 주위의 소란이 점점 잦아들자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그녀와 같이 넘어온 수하들이 제압을 당하고 있음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담수련은 그녀가 진퇴양난에 빠져 있다는 것을 느끼자 슬쩍 앞으로 나서며 한마디 했다.

“적동마수 위지 대협께서는 저희에게 엄청난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하시더군요.”

“그놈은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우리를 배신한 사악한 놈일 뿐이다. 그런 놈에게 대단한 정보가 있을 턱이 있겠느냐!”

“그런 정보가 없다면 본 방의 총단까지 침입해서 위지 대협을 제거하려고 하지는 않았겠지요. 제 판단이 맞다면 귀궁에게는 아주 중요한 정보일 겁니다.”

“하고 싶은 말이 뭐냐?”

“위지 대협께서 아직 저희에게 정보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저희도 굳이 강요하지 않았고요. 즉, 우리가 좋은 대화를 한다면 그 정보의 유출 없이 위지 대협을 데리고 가실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담수련의 말에 차성령의 기가 흔들렸다. 갈등을 느낀 증거였다. 그러나 그녀는 곧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난 너희와 나눌 얘기가 없다. 강호의 도리에 맞게 본 궁의 배신자를 당장 내놓고 이 일에서 손을 떼라.”

“쯧! 쯧! 좋은 관계를 만들 수도 있었는데 끝내 벌주를 원하시네요.”

말을 마친 담수련은 뒤로 살짝 물러서자 뒤에 서 있던 사화가 무기를 꺼내며 그녀의 주위에 둘러섰다.

사화가 담수련을 밀착 호위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악불군이 그녀의 곁을 잠시라도 떠날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예상대로 악불군이 차성령을 향해 몸을 날렸다. 이 사이에 독단을 물고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제압하기 위해 기습을 감행한 것이었다.

“이, 이런 비겁한!”

차성령은 조금도 상상하지 못했던 악불군의 기습에 급히 몸을 비틀며 소리쳤다. 배교비전의 무공을 익힌 후 악불군의 보법은 정말 신묘 그 자체였다.

그런 악불군의 기습에 소리라도 질렀으니, 차성령은 적동마수의 말대로 대단한 고수였다.

“이이…….”

차성령은 자신의 몸이 움직이지를 않자 소리를 질러 수하들에게 도움을 청하려 했으니, 입까지 움직이지 않자 놀란 눈으로 악불군을 쳐다보았다.

“원래 여인의 아혈은 제가 잘 안 짚는데, 위지 대협께서 이 사이에 독단이 끼워져 있을지도 모른다고 해서 부득이하게 실례를 했습니다.”

차성령의 얼굴은 절망으로 변해 버렸다. 생포가 된 이상, 정보를 캐기 위해 인간으로서는 견디기 어려운 고문이 자신에게 가해질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었다.

설사 자신이 탈출을 한다 해도 생포를 당했었다는 오점으로 인해 그녀가 그토록 바라던 내궁으로의 승진은 불가능해졌다. 아니 어쩌면 죽임을 당할 수도 있게 된 것이었다.

“방주님, 안에 들어온 자들을 모두 제압했습니다.”

그때 사효조가 나타나더니 보고를 했다.

“생포는 몇 명이나 했습니까?”

“죄송합니다. 생각 외로 무공이 강해 두 명밖에 생포를 못 했습니다. 그 둘도 상처가 심해 살아날 수 있을지 장담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의 피해는 어떻습니까?”

“여섯 명이 죽고 이십여 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죽은 분들에게 가족이 있다면 보상을 후하게 해 주시고, 부상당한 분들도 돈 아끼지 말고 좋은 약을 사용해 치료하라고 하십시오.”

“예!”

“그리고 생포한 두 명도 최대한 살릴 수 있으면 살리라고 하세요.”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사효조가 떠나는 것과 동시에, 차성령의 입안을 조사하던 흑란이 소리쳤다.

“아가씨! 독단을 찾았습니다.”

그녀의 손에는 좁쌀만 한 검은 알이 하나 들려 있었다.

* * *

“아이고 죽겠다!”

개봉에서 항주까지 삼 일 안에 도착하라는 것은 잠시도 딴 짓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사해신개의 고육지책이었다.

소걸아를 항주로 보내는 것은 커다란 계획을 성사시키기 위한 첫 포석인데, 시간을 주면 분명 딴짓을 해서 다른 문파의 이목을 끌 확률이 크기 때문이었다.

삼 일 안에 항주에 도착하지 않으면 즉시 개봉으로 다시 불러들여 아예 총단에서 나가지 못하게 하겠다는 사해신개의 엄포에, 소걸아는 죽을힘을 다해 이틀 만에 절강성을 넘는 데 성공했다.

이제 항주까지는 반나절만 달리면 된다 생각하자 갑자기 피곤이 확 밀려 온 그는 풀숲에 대자로 눕더니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보통 운기조식은 정좌로 해야 하지만 개방에는 누워서 하는 배와태걸공(背臥怠乞功)이라는 운기조식법이 있었다.

개방의 조사인 개신(丐神)이 게으른 거지들을 위해 만들었다는 운기조식법으로 오로지 개방에만 있는 절기(?)였다.

하지만 정좌로 하는 것에 비해 효과가 현저히 떨어지는 관계로 개방의 제자들도 거의 이용하지 않는 수법이었다.

개방의 무공 비급을 모아 둔 개방 무고에서 배와태걸공을 발견한 소걸아는 너무 기쁜 나머지 환호성까지 터뜨렸었다.

누워서 하는 운기조식법이라니! 그는 거지들에게 가장 적합한 수법이라고 판단했다.

사해신개가 배와태걸공을 사용할 때마다 ‘게으른 놈’이라며 그렇게 타박을 했지만 그는 굳건하게 그 수법으로 운기조식을 했다.

마치 죽은 듯 미동도 없이 누워 있던 소걸아가 눈을 뜬 것은 이각이 지나서였다.

‘아이 씨! 왜 난 운기조식만 끝나면 배가 고플까?’

사실 소걸아는 운기조식만 끝나면 배가 고픈 것이 아니라 언제나 배가 고팠다.

배가 고파서인지 일어나기도 귀찮다는 듯 고개를 돌리던 그의 눈에 무엇인가 띄었다.

‘저건 뭐지?’

대단히 특이한 모습에 풍기는 기까지 괴이한 괴인들이 멘 가마 하나가, 그의 눈이 닿는 곳에 내려선 것이었다.

다행히 아직 사방이 어두웠고 소걸아가 누워서 운기조식을 한 탓에 그를 발견하지 못한 듯했다.

‘가마까지 멨는데 이렇게까지 가까이 오도록 내가 몰랐단 말이지…….’

소걸아는 그들의 무공이 대단히 높다는 것을 직감했다.

흥미가 돋은 소걸아는 자신의 기를 최대한 죽이고는 고개만 살짝 돌려서 그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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