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검지애 311화>
311화. 드러나는 진실(2)
일각쯤 지났을까…….
가마의 주위에 두 명의 흑영이 나타나더니 무릎을 꿇었다.
“감히 나를 속이고 악불군으로 변장했던 놈은 죽였느냐?”
“실패한 것 같습니다. 그자를 죽이고 돌아오기로 한 제자들이 한 명도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제 짐작으로는 오히려 당한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천호방에 대한 정보에 뭔가 구멍이 있었어……. 도대체 그렇게 강한 수하들이 우리 정보망에 걸리지도 않고 어떻게 천호방에 입방한 거지?”
가만 안의 인물은 이를 바드득 갈며 중얼거렸다.
“루주님, 그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뭐냐?”
“천호방에 침입한 영주님께서 탈출을 못 하셨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차성령의 무공이라면 실패한다 해도 도망 정도는 넉넉히 할 수 있었을 텐데?”
“영주님만이 아니라 전부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저희가 함정에 걸린 것 같습니다.”
“가짜 천호무적검이 나타났을 때 함정이라는 것을 눈치챘어야 했는데…….”
“어차피 그땐 이미 침입한 후였습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가마가 흔들릴 정도였으니, 안의 인물이 얼마나 화가 났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럼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전혀 모르는 것이냐?”
“현재로써는 알 길이 없습니다. 내일 날이 밝은 후 저희 간세들이 연락을 줄 때까지는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모조리 다 죽었다면 다행이지만, 생포라도 당했다면 큰일이구나.”
가마 안의 인물은 계획이 실패한 것보다 수하들이 생포당하는 것을 더 걱정하는 듯했다.
“차 영주님의 충성심으로 미루어, 잡히게 된다면 스스로 자결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수하들은 생포된다 하더라도 아는 것이 거의 없으니 큰 문제는 안 될 것으로 사료됩니다.”
“차성령이라면 당연히 생포되는 치욕적인 상황까지는 안 가겠지. 하지만 자결할 새도 없이 생포됐다면…….”
“차 영주님은 내부영주님들 중에서도 발군의 무공 실력을 지니고 계셨습니다. 자결할 새도 없이 그분을 생포할 자가 무림에 몇 명이나 있겠습니까?”
가마 안의 인물이 끝말을 잇지 못하자 흑영이 급히 말을 받았다. 차성령을 자결할 새도 없이 제압하는 건 제후의 칭호를 받은 분들 정도의 무공은 되어야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천호무적검이 제법 이름을 날리기는 하지만 그녀가 섬기는 제후들과 맞먹는 무공을 지니고 있다고는 믿을 수 없었다.
“그래, 말도 안 되는 가정이겠지. 어쨌든 밀지를 회수하기는커녕 오히려 일만 더 키운 것이 됐으니, 이를 어찌 보고한단 말인가…….”
가마 안의 인물은 탄식하듯 중얼거리더니, 원독에 찬 음성으로 한 명의 이름을 불렀다.
“천호무적검이 이놈이 감히 나를 속이고 함정을 파! 내 반드시 이놈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야!”
‘천호무적검? 이것들이 감히 내 친구를 용서하니 마니 하고 있네?’
악불군의 명호가 들리자 소걸아의 귀가 쫑긋했다.
“루주님, 어찌해야 할지 지시를 해 주십시오.”
흑영의 말에 가만 안의 인물은 마지못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적동마수의 제거뿐 아니라 천호방에 들어간 제자들의 생사까지 확인해야 한다. 우선 분타로 돌아가 간세들의 연락을 기다린 후, 상황 파악이 되면 다시 계획을 짠다. 가자!”
그녀의 말이 끝나자 가마가 달리기 시작했다.
‘이거 고민되는데? 사조님은 사흘 안에 가지 않으면 다시 개봉으로 불러 아예 밖 구경을 못하게 할 거라고 하셨는데…….’
잠시 고심하던 소걸아는 흑영들까지 몸을 날리자 에라! 모르겠다는 듯 조용히 그들의 뒤를 밟기 시작했다.
* * *
“어떻게 됐어?”
“그 여자 진짜 지독해요. 입도 뻥긋 안 하는데요?”
담수련은 차성령의 심문을 사화에게 맡겼다. 우선 어떤 반응을 보일지 보기 위해서였다.
연화의 말에 담수련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독단까지 입 안에 넣고 다니는 여자가 쉽게 입을 열 리 만무였기 때문이었다.
“아가씨께서 심문만 하라고 했지만, 말로 해서는 절대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래서 고문이라도 해야겠다는 거야?”
“그래도 고문이 효과는 가장 좋을 것 같은데요?”
“너희는 연화가 고문으로 죽을 뻔한 것을 벌써 잊었어? 고문은 다른 모든 방법을 사용해 보고 안 될 때나 마지막으로 사용해야 하는 거야. 지금 심문한 지 하루도 안 지났어. 벌써 고문을 할 수는 없어.”
연화가 고문당했던 일을 들추자 모두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당시 연화의 몰골이 얼마나 처참했는지 그녀들도 보았기 때문이었다.
잠시 시간이 흐르자 추국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심문은 어려울 것 같고, 그럼 또 다른 방법은 뭐가 있을까요?”
“설득해서 회유시키는 방법을 해 보자.”
“심문도 안 되는 여자에게 설득이 먹힐까요?”
“똑바른 정신으로는 쉽게 넘어오지 않을 거야. 어젯밤처럼 너희들이 계속 번갈아 가며 잠을 재우지 마. 사람들은 잠을 못 자면 심지가 매우 약해지니까.”
“잠 못 자게 하는 것도 일종의 고문이긴 한데요?”
“그것도 고문의 일종이기는 하지. 하지만 정신적으로 좀 힘들겠지만 육체적인 고통은 없으니까, 직접적인 고문보다는 좀 낫지 않겠어?”
“그렇긴 하지만, 어젯밤에 저희가 번갈아 심문을 하면서 잠을 재우지 않았는데 아까 보니까 우리보다 더 쌩쌩하더라니까요!”
“가장 괴로운 때가 삼 일을 못 잤을 때라는 말을 들었어. 삼 일간 해 보고 그래도 안 되면 내가 직접 설득해 보지 뭐.”
“그 여자가 얼마나 위험한데요? 아가씨께서 직접 상대하는 것은 찬성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요. 이런 일에 아가씨께서 직접 나서시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예 집법당에 인계시켜서 거기서 정보를 알아내라고 하시는 것이 어떨까요?”
집법당주 진자추는 백인막 십 호 중 팔 호로, 누구든 그에게 걸리면 아는 것을 모조리 토설하게 만든다는 자였다.
“집법당으로 가면 무조건 고문부터 시작할 거야. 며칠만 더 해 보고 그때 다시 결정하자고.”
담수련 역시 그들의 정체에 대해 한시라도 빨리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고문만은 최대한 피하고 싶었다.
고문은 인간의 정신과 몸을 완전히 피폐하게 만드는 비열한 수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고심하던 담수련은 갑자기 생각이 난 듯 물었다.
“그런데 악 방주가 어디 있는지 알아?”
“손님이 왔다고 빈청에 나가 계십니다.”
“손님이 왔는데 왜 나한테는 말하지 않고 혼자 나간 거지?”
“상단 손님인데 방주님을 꼭 뵙고 싶다고 해서 나가셨습니다. 아가씨께서 부르시면 곧장 달려오신다고 하셨습니다.”
순간 담수련의 입가에 사랑의 미소가 살짝 걸렸다. 그 와중에도 자신이 부르면 곧장 달려온다고 했다는 말에 가슴이 두근거린 것이다.
* * *
고철황과 담소를 나누던 중년인이, 악불군이 빈청에 들어서자 급히 일어서며 포권을 했다.
“소인은 진해상단의 총수인 염주환이라고 합니다. 강호의 영웅이시자 무림 십왕이신 악 방주님을 이렇게 뵙다니 삼생의 영광입니다.”
너무 과분한 인사에 악불군은 머쓱한 표정으로 포권을 하며 말했다.
“진해상단은 절강의 유서 깊은 상단으로 본 방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들었습니다. 갑자기 제게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 하셨는데, 무슨 어려움이라도 있으십니까?”
진해상단은 생선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상단이었다. 생선은 그 수요는 엄청났지만 절강 같이 따뜻한 지역에서는 쉽게 상하기 때문에 판로가 가까운 지역으로 한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진해상단은 고려국에서 생선을 절이는 방법을 배워 와 생선을 비축할 뿐 아니라 먼 지역까지 운송을 하게 되면서 상단이 커질 수 있었다.
악불군이 자리에 앉자 염주환은 품에서 작은 상자 하나를 꺼내며 말했다.
“이틀 전, 제게 한 무인이 방문했습니다.”
“편하게 말씀하십시오.”
염주환이 잠시 말을 멈추자 악불군은 걱정 말라는 표정으로 부드럽게 말했다. 상인들은 무림인들과 대화를 나눌 때 대단히 조심스러워했다.
말 한마디 실수로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 무인은 아버님께서 살아 계실 때부터 저희 상단과는 인연이 있던 분이셨습니다.”
“그 무인이 그 상자를 가지고 온 것입니까?”
“예, 그분께서 이 상자를 정파인에게 전해 달라는 당부를 하시고는 떠나셨습니다.”
“다른 언질을 없었습니까?”
“예.”
“그 무인이 누구인지는 말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그게…… 믿으실지 모르지만, 저도 아버님 덕에 그분의 얼굴을 보았을 뿐 그분이 누구신지는 모릅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전해 준 물건을 함부로 다른 무림인에게 전하는 행동이 얼마나 위험한 행동인지는 아십니까?”
“제가 상인으로 잔뼈가 굵은 사람입니다. 어찌 그것을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그 무인의 말을 듣지 않으면 큰일이 난다는 아버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염 총수, 방주님 앞에서 거짓을 말하면 안 되네.”
듣고 있던 고철황 역시 말이 좀 안 된다고 생각한 듯 약간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습니다. 강호라는 곳이 별의별 일이 다 벌어지는 곳인데 말이 안 되는 것이 무에 있겠습니까? 그럼 그 상자를 정파에 전하시지 않고 본 방으로 가져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천호방이 정파가 아니었습니까?”
“정파 맞습니다.”
“절강에 정파다운 정파는 천호방밖에 없으니 여기로 가져온 것입니다.”
악불군은 그 대답을 듣기 위해 물은 것이었다.
‘절강에는 정파가 천호방밖에 없다……. 말은 정파에게 전하라고 했지만, 본 방에 전하는 것이 핵심인 모양이군.’
악불군은 또 어떤 세력이 자신을 흔들려고 하는지 궁금해졌다.
“제가 가져가도 되겠습니까?”
상자에는 봉인지가 둘려 있어 아무도 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방주님께 가져온 것이니 마음대로 하십시오. 방주님께서 받아주시니 이제야 마음이 좀 편해집니다. 그것을 받은 후 괜히 무림 일에 엮인 것은 아닌가 해서 잠까지 설칠 정도였습니다.”
“이제 이 문제는 제가 다 알아서 처리할 것이니, 총수님께서는 이 일은 잊어 버리시고 상단 일에만 전념하십시오.”
“그러겠습니다.”
악불군은 상자를 품에 넣고는 몸을 일으키며 고철황에게 말했다.
“고 장로님께서 저 대신 배웅해 드리십시오.”
“예!”
늠름한 모습으로 나가는 악불군을 보며 고철황은 미소를 지었다.
‘이젠 방주님의 권위가 팍팍 느껴지는군. 역시 대단하신 분이야.’
사실 방주가 되고 얼마 동안, 악불군의 그 위치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한 문파의 수장으로 전혀 모자라지 않은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 * *
밖으로 나온 악불군은 외부 정자에 앉더니 상자를 열었다. 담수련에게 보여 주기 전에 혹시나 있을지도 모를 위험 요인을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주위에 사람이 없는 이곳을 정한 것도, 상자를 여는 순간 벽력탄이라도 터질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진짜 벽력탄이 터진다면 자신은 어쩌려고 그럴까 싶지만, 악불군은 벽력탄도 자신을 어쩌지는 못할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음……. 서찰인가?’
상자를 연 악불군의 눈에 의외라는 표정이 나타났다. 상자 안에는 예상과는 달리 종이 뭉치가 수북하게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개를 갸웃한 악불군은 먼저 상자 안부터 살피기 시작했다. 상자는 여간한 충격에는 부서지지 않는 귀한 철나무로 만든 것으로 상당히 귀한 물건이었다.
상자 안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악불군은 종이를 살피기 시작했다.
모든 조사가 끝나자 악불군은 천천히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종이나 글자의 먹을 보면 근래에 적은 것인데…….’
중얼거리며 첫 장을 읽은 악불군의 표정이 굳어졌다. 대단히 중요한 정보가 담겨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한 장 한 장 종이를 넘겨 가던 악불군의 표정은 놀라움과 더불어 의구심이 생겼다.
‘이걸 누가 보낸 거지? 개인이 수집할 수 있는 정보가 아니야. 아무래도 아가씨께서 빨리 보셔야겠구나.’
몇 장 읽어 본 악불군은 종이를 다시 상자에 담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동안 담수련이 알고 싶어 하던 정보가 상당히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