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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검지애-313화 (313/472)

<천검지애 313화>

313화. 추궁(2)

피식-!

“저한테 화가 많이 나신 모양입니다.”

차성령의 기가 소용돌이치는 것을 느끼고는 악불군은 미소를 짓더니 아혈을 풀어 주었다.

“무림 십왕에까지 봉해진 자가 비겁하게 기습을 하다니, 부끄럽지도 않느냐?”

“글쎄요? 사람 목숨을 구하기 위해 한 일이라 그다지 부끄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군요.”

“목숨을 구하기 위한 일이라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네 명성에 금이 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을 게다!”

“제 명성까지 걱정해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다행히 제가 명성에는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 않으니, 그 걱정은 마음으로만 받아들이겠습니다.”

격장지계를 펼쳤으나, 전혀 상관없다는 악불군의 모습에 차성령이 더욱 화난 듯 소리쳤다.

“당장 혈도를 풀고 제대로 싸워 보자!”

“이미 제압했는데 제가 굳이 그런 수고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우선 화는 가라앉히시고, 담 군사님과 대화를 좀 나눠 보시지요. 대화가 화기애애하게 진행된다면 혈도는 언제라도 풀어드릴 수 있습니다.”

말을 마친 악불군은 혈도 하나를 더 풀어 주었다.

차성령이 목이 움직이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담수련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며 그녀를 보고 있었다.

담수련은 그녀를 최대한 편안하게 만들기 위해 미소를 보인 것이었지만, 제압을 당한 처지의 그녀로서는 더 화가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이 뭐냐? 분명 말해 주는데, 나를 통해 뭔가를 알 생각은 하지 마라.”

“많은 분들이, 여협께서 너무 강한 성정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입을 열게 하기 위해서는 고문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더군요. 하지만 전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흥! 고문 따위를 두려워할 내가 아니다.”

“당연히 그러시겠지요. 여차하면 자결까지 하기 위해 입속에 독단까지 물고 다니시는 분이 고문 따위를 두려워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지요. 하지만, 막상 생각지도 못한 고통을 겪는다면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뭐냐?”

“당신들의 목적이 뭔가요?”

“그런 질문은 듣고 싶지도 않다.”

담수련의 질문에 차성령은 단호하게 한마디 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제게 재미있는 것이 하나 있는데, 한번 보시겠어요?”

“어떤 수작을 부리려고 하는지는 모르지만, 내게는 통하지 않을 게다.”

끝까지 무례한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도 담수련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차성령의 눈앞에 펼친 것은 혈교에서 보내온 정보를 적은 종이 중 한 장이었다.

그녀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 지를 보기 위해 생각해서 고른 것이었다.

보지 않겠다고 고개를 돌리려던 그녀는 종이에 적힌 첫 줄을 보자 눈을 떼지 못했다. 그녀의 신분으로도 쉽게 접하기 힘든 고급 정보가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적동마수 그놈이 전해 준 것이냐?”

차성령의 반응을 본 담수련은 종이에 적힌 정보가 거짓은 아니라는 확신을 얻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사실 그녀는 그 정보들이 거짓이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그분은 외부영주에 불과한데 이런 정보를 어디서 얻겠어요?”

“…….”

담수련의 반문에 차성령도 동의하는지 반박은 없었다.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저희들에게는 꽤 괜찮은 정보망이 있어요. 이 정도를 알아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랍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본 궁의 행사는 나도 아는 것이 많지 않은데, 어떤 정보망이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이냐?”

“여협 같이 높은 무공에 내부영주라는 지위까지 가지고도 자신이 몸담은 문파에서 무엇을 하는지 모른다면 너무 홀대받는 것 같은데, 그런 것치고는 충성심이 대단하신 것 같네요?”

곤혹스런 표정으로 담수련을 주시하던 차성령은 자존심이 상한 듯 한마디 던졌다.

“담수련, 우리가 너희들에 대해 모르고 있는 줄 아느냐? 잠룡세가의 딸, 그리고 너를 호위하는 호위 무사 악불군. 세상을 다 속인다 해도 우린 다 알고 있다. 본 궁에서 악불군과 너를 매장시키는 일은 여반장이라는 사실만 알아 둬라.”

그녀의 말에 담수련은 계속 미소를 보일 수 없었다.

“우리에 대해서 이미 다 알고 계셨군요?”

“본 궁에서 아는 것은 너희들 짐작 이상으로 많다. 지금이라도 내 혈도를 풀고 나를 내보내라. 그러지 않으면 너희들의 정체는 곧 천하에 까발려질 것이다.”

“제 생각에는 지금 그 말 때문에 당신이 오히려 죽을 것 같은데요?”

“……그게 무슨 말이냐?”

“당신들 특기가 분열과 이간질이라고 알고 있어요. 그런데 아직까지 우리들 정체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걸 보면 아주 결정적일 때 터뜨릴 예정이었던 것 같은데, 당신이 이렇게 우리에게 알려 주었으니 대비책을 마련할 기회를 주게 된 것이 아닐까요? 영주라면 윗사람들이 꽤 있을 텐데, 어쩌나?”

담수련의 말에 차성령의 얼굴이 확 변했다.

담수련과 악불군의 정체에 대한 정보는, 다른 영주는 물론 그녀보다 두 단계나 지위가 높은 가마 안의 인물도 모르는 극비 중의 극비였다.

그녀가 그런 비밀을 알 수 있었던 이유는, 그저 호남으로 옮기기 전 절강을 담당했던 덕분이었다.

그런 비밀을 자신이 풀려나기 위해 당사자들에게 떠벌였으니, 담수련의 말대로 윗선에서 안다면 그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버티기로 했다.

“네 말대로 비밀이기는 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비밀을 알 만한 위치에 있었다.”

담수련은 품에서 또 다른 종이 하나를 꺼내 그녀의 눈에 갖다 댔다.

“그럼 이것도 한번 읽어 보시죠?”

처음 보여 준 정보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중요 정보였다.

내용을 다 읽은 차성령은 코웃음을 치며 반박하듯 말했다.

“흥! 어떤 놈들이 작성한 헛소리인줄은 모르겠지만, 여기에 적힌 내용은 다 거짓말이다!”

“소군 생각은 어때?”

“다 사실인 것 같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지금 내 말은 거기에 적힌 내용들이 모두 거짓으로 점철된 가짜 정보라는 거다!”

“그러니까요. 여협께서 사실이라고 했다면 의심을 했을 텐데, 이렇게까지 강력하게 부인하는 모습을 보니 오히려 사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겠다는 말입니다.”

차성령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리고 곧 입술을 굳게 닫으며 고개를 돌렸다.

담수련이 자신의 말을 통해 정보를 조합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것이었다.

그녀는 지금 자신이 보인 태도로 담수련의 예측이 모두 맞았다는 사실을 또 인정했다는 것을 눈치채지는 못했다.

‘이대로 나가면 풀려 나간다 해도 책임 추궁을 당할 거야…….’

고개를 돌린 채 눈까지 감고 있던 차성령의 머리가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비록 담수련에게 계속 당하고는 있지만 그녀 역시 비상한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잠시 생각하던 그녀는 갑자기 눈을 뜨고는 담수련을 보며 제안을 했다.

“그렇다면 나와 독대할 수 있겠느냐?”

“저와 단둘이 말입니까?”

“그렇다 천호무적검은 나가고 너와 나 둘만 대화를 하자는 것이다. 왜 겁나느냐?”

“글쎄요? 저보다는 여협께서 겁이 나야 하지 않나요?”

“할지 안 할지나 말해 봐라.”

“단둘이 대화를 하면 제게 좋은 것이 뭐가 있나요?”

“네가 알고 싶은 것을 말해 줄 수도 있다.”

“잠깐 나가 있어.”

담수련의 한마디에, 평소와 달리 악불군은 아무 말 없이 그대로 나가 버렸다. 그녀의 안전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혼자 둘 그가 아니었다.

“자, 그럼 이제 대화를 한번 나눠 볼까요?”

“담수련, 너는 지금 네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아느냐?”

“제가 어떤 처지에 처해 있는지 한번 들어 볼까요?”

“넌 악불군을 믿느냐?”

“어떤 의미로 묻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가장 믿는 사람이지요.”

“지금은 그럴지도 모르지. 어찌 됐건 너는 자타가 공인하던 천하제일미녀니까. 하지만 네가 못 생겼더라도 그가 그렇게 대해 줬을까? 아니 네가 나이가 들어 미모를 잃는다면 어떻게 변할까?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여협께서도 그리 나이가 많아 보이지는 않는데, 생각하는 것이 무척이나 비관적이시군요? 왜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나쁜 쪽으로 일어난다고 생각하시는지 모르겠네요?”

“그것은 역사가 증명해 주기 때문이다.”

“어떤 역사가 그것을 증명해 주는지 한번 들어 볼까요?”

담수련은 알고 싶은 정보는 따로 있었지만 우선은 그녀의 말부터 들어 보기로 결정했다. 말을 많이 하다보면 그 안에서 생각지도 않은 정보를 취득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내 말을 진정성 있게 들어 보면 이해할 거다.”

* * *

문 밖에 선 악불군의 귀는 안쪽을 향해 집중해 있었다.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은 있었지만, 세상일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덕에 안에서 둘이 나누는 대화를 모두 들을 수 있었다.

피식-

‘이간질을 참 재미나게 하는군.’

안에서의 대화를 들으며 악불군이 어이없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녀와 그 사이는 그런 이간질이 통할 사이가 아니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차성령의 말이 이어지면서 악불군의 표정도 심각하게 굳어졌다.

‘이거 이간질이 문제가 아니구나?’

차설령이 담수련에게 하고 있는 말들에는 정말 심각한 오류가 있었다. 하지만 상당히 일리가 있어 보이게 포장이 되어 있어서, 넘어가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으로 보였다.

둘의 대화는 무려 반 시진이 넘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악불군의 표정도 점점 불편하게 변하고 있었다.

“소군.”

드디어 대화가 끝난 듯 담수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악불군이 안으로 들어서자 담수련이 차성령을 복잡다단한 표정으로 보며 말했다.

“다시 혈도 점해.”

* * *

악불군의 집무실에 도착한 담수련은 자리에 앉자마자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소군, 우리 대화 들었지?”

“예, 들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했어?”

“우리가 받은 정보가 사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탕마회에 이 일을 알리면 큰 혼란이 올 거야.”

“아직 사실이라고 확정되지는 않았습니다.”

담수련은 이미 확신하고 있는 듯했지만 악불군은 아직 신중한 의견이었다.

“그래, 소군이 그렇게 말하니까, 우선은 확실하게 증명이 되기 전까지는 우리끼리만 아는 걸로 하자.”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미 우리에 대해 완벽하게 알고 있는 것 같으니, 아무래도 계획을 좀 더 빨리 시행해야겠어.”

“그들이 우리에 대해 알고 있을 거라는 점은 이미 예측하고 있었지 않습니까?”

천화궁주가 진짜 간세라면 담무룡이 중원에 구축한 준비에 대해 담수련보다도 더 잘 알고 있다고 봐야 했다.

“예측은 어느 정도 했지만 그래도 혹시나 했는데, 막상 들으니까 사실 좀 허탈하네.”

천화궁주는 잠룡세가 소속은 아니지만 자주 잠룡세가에 놀러 와 담수련과도 사이가 아주 좋았었다.

“그럼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혈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대충 알 것 같으니까 그 반대로 나가려고.”

“벌써, 계획을 수정하셨습니까?”

“상황이 달라졌으면 계획도 바뀌어야 하지 않겠어?”

“그럼 무엇부터 시작할까요?”

“각 문파를 순회해야겠어.”

“순회라면, 다시 강호행을 하자는 말씀입니까?

* * *

“뭐라고? 소걸아가 항주에 아직까지 도착하지 않았다고?”

신룡신개의 보고에 사해신개의 눈이 커졌다.

“항주에서 전서가 왔는데, 분명 절강성을 넘었다는 것은 확인이 됐는데 갑자기 행방이 묘연해졌다고 합니다.”

“그놈이 꼴통이기는 하지만 이런 식으로 딴짓을 하지는 않을 텐데?”

“그러니까 말입니다. 제 생각에 분명 무슨 일이 벌어진 것 같습니다.”

“그놈이 자신과 상관없는 일에 끼어들까?”

“제 제자지만 좀 심각하게 게을러서 자신과 연관이 없는 일에 끼어들 놈이 아닙니다.”

“그렇지? 그렇다면 끼어들어야 할 일이었다는 의미가 아니겠느냐?”

“절강에 아는 사람도 없는데 삼 일이라는 약속까지 어기면서 끼어들 일이 있을까요?”

“절강에 왜 아는 사람이 없어? 천호무적검과 친구 됐잖아.”

“그럼 천호무적검과 연관이 있는 일이 생겼다는 것입니까?”

“그럴 수도 있다는 거다. 너도 그랬잖아, 자신과 연관이 없는 일에는 끼어들지 않는다고!”

“위험하지는 않을까요?”

“그놈이 요절할 상은 아니니 걱정은 마라.”

“사부님, 나이가 드시더니 이젠 관상까지 보십니까?”

“이놈아! 관상이 아니라, 원래 꼴통들은 잘 안 죽어.”

하지만 사해신개의 표정에도 걱정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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