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검지애 314화>
314화. 암약(1)
‘뭐야? 밤새도록 산속만 뱅뱅 돌더니 결국 온 곳이 항주야?’
가마를 은밀히 따르던 소걸아는 멀리 항주성의 성곽이 보이자 짜증 난다는 듯 중얼거렸다.
밤새 달리던 가마가 항주가 보이는 산 중턱에 도착하더니 갑자기 움직임을 멈춘 것이다.
‘왜 가지 않고 저렇게 버티고 있지?’
이미 약속된 시간을 넘겼으니 총단에는 자기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보고가 들어갔을 터였다. 뭔가 이유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정말 총단으로 잡혀 가 평생 나오지 못하고 어른들 수발이나 들 수도 있는 것이었다.
‘나온다. 진짜 여기가 목적지였나……. 이상하네?’
가마꾼들이 가마를 내려놓고 곧 그 안에서 가면을 쓴 사람이 밖으로 나오자, 소걸아는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나무가 우거진 숲속을 빠져나와 그들이 멈춘 곳은 정면은 낭떠러지였고 한쪽은 커다란 바위들로 이루어진 바위산이었다. 그들의 목적지로 보기는 여러 가지로 맞지 않는 곳이었다.
가마에서 내린 가면인이 따라온 흑영에게 손가락으로 뭔가를 지시하자 둘은 무기를 뽑아 들더니 자신들이 지나온 숲 쪽을 보며 섰다. 그러자 가면인이 소리쳤다.
“쥐새끼치고는 상당히 끈기가 있구나.”
소걸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들켰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어떻게 알았지? 모르겠다. 좀 더 버텨 보자.’
소걸아는 숨을 죽이고 기를 최대한 죽였다.
“끝까지 버텨 보겠다는 심산인 모양인데, 셋을 셀 때까지 나오지 않는다면 오늘 너는 죽는다.”
말을 마친 가면인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수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셋을 외치자 기다렸다는 듯이 두 흑영이 숲속으로 무기를 휘두르며 몸을 날렸다.
도망칠지 말지를 갈등하던 소걸아는 둘이 흑영들이 그가 숨어 있는 숲 쪽으로 달려오는 모습에, 몸을 몸을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됐다. 쫓아오는 놈들은 없는 것 같다.”
가면인의 말에 숲 쪽으로 달려가던 흑영들이 몸을 멈추고는 다시 돌아갔다.
‘뭐야? 괜히 겁 준 거였어? 도망쳤으면 큰일 날 뻔했네.’
가면인은 혹시 자신들이 눈치채지 못한 추적자가 있을 것을 염려해 일부러 연극을 한 번 한 것이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그 정도의 엄포와 시간이라면 도망을 치든지 덤비든지 모습을 나타내기 때문이었다.
이 위급한 와중에도 게으름을 피우는 거지가 있을 것이라고는 그들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살았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던 소걸아의 눈이 커졌다.
가마꾼 둘이 커다란 바위로 가더니 무엇인가를 조작하자 바위 사이로 틈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이것 봐라? 보통 놈들이 아닌데…….’
소걸아는 사해신개에게 큰소리칠 수 있는 발견을 했다는 것을 직감하고는 쾌재를 불렀다.
가면인을 다시 태운 가마가 바위 틈 사이로 사라지자 어느새 틈은 보이지 않았다.
가마가 사라질 때까지 허리를 숙이고 있던 두 흑영은 갑자기 낭떠러지로 몸을 날렸다.
‘에이 씨! 저렇게 갑자기 뛰어내리면 어떡해!’
하지만 소걸아는 즉시 그 뒤를 따라갈 수 없었다. 또 어떤 속임수가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반각가량 주위를 살피던 소걸아는 됐다고 판단하고는 급히 낭떠러지 쪽으로 다가갔다.
낭떠러지는 보통 사람들이라면 떨어지는 즉시 죽을 정도로 높았지만, 무림 고수들은 충분히 뛰어내릴 수 있는 높이였다.
흑영들이 뛰어내린 방향으로 뛰어내린 소걸아는 코를 킁킁대며 주위를 살폈다. 그러고는 드디어 잡았다는 듯한 방향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가 자랑할 만한 코임은 분명했다.
달려간 방향이 맛있는 것이 많은 항주 쪽이란 사실도 그에게는 기분 좋은 일이었다.
* * *
잠룡세가에서 가장 높은 나무 위로 올라간 악불군은 하늘을 향해 천리전성을 보냈다. 적설과 대화를 하기 위해서였다.
무려 반 시진 가까이 나무 꼭대기에서 머물던 악불군이 내려오자 담수련이 기다렸다는 듯 달려왔다.
“시간이 좀 걸리니까 안에서 기다리시라고 했는데, 왜 지금까지 여기 계십니까?”
“소군이 고생하는데 어떻게 나만 편하게 쉬어? 적설이 뭐래?”
담수련의 질문에 악불군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적설과는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느낌만 나누는 것입니다. 교감을 하는 것이지요.”
“그래도 웬만한 건 알 수 있잖아?”
“예, 완벽하지는 않지만 어떤 말을 하려는지는 눈치로 때려잡을 수 있습니다.”
“그래, 때려잡은 것이 뭐가 있어?”
“그들이 도착한 곳이 이곳에서 하루 정도의 거리에 있는 모양입니다.”
“하루거리면 적설에게는 한 시진 거리도 안 될 텐데 왜 이렇게 늦게 온 거지?”
“그자들을 따르느라 그런 것이지요. 거기다 그자들이 곧장 가지 않고 상당히 돌았던 모양입니다.”
“남들이 추적할까 봐 조심하는 자들이 하는 행동이지. 어쨌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찾아갈 수는 있다는 거네?”
“그들이 옮기지만 않는다면 찾아갈 수 있습니다.”
“됐어. 자극하지 않으면 옮길 일은 없을 거니까 우선 모른 척하자고. 그럼 이제 천화궁주를 이쪽으로 불러야겠네. 내가 편지를 써 줄 테니까 천화궁주에게 연락해 줘.”
“알겠습니다.”
“그리고 한 달을 마냥 기다릴 수는 없으니까 소군이 위지 대협을 좀 설득해 봐.”
담수련은 상당히 조급함을 보이고 있었다.
신비 조직이 자신들에 대해 훤히 알고 있는 이상, 악불군의 위상을 높이는 계획을 최대한 빨리 진행시켜야 했기 때문이었다.
“알겠습니다.”
[주군, 손님이 찾아온 모양입니다.]
그때 악불군의 귀에 흑석영의 전음이 들려왔다.
[손님?]
[예.]
[누군지는 아시오?]
[마 당주 말이, 개방에서 왔다고 합니다.]
[알았소. 빈청에서 기다려 달라고 하시오.]
[예.]
“무슨 전음이야?”
“개방에서 사람이 왔다고 합니다.”
“사해신개 어르신을 뵌 지 얼마 안 됐는데 무슨 일이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잠깐 만나고 오겠습니다.”
“알았어. 난 내 방에 가 있을게.”
“예.”
대답한 악불군은 사화를 불렀다.
“사화.”
“예!”
“내가 빈청에 갔다 올 것이니 아가씨를 밀착 경호하고 있거라.”
말을 마친 악불군이 사라지자 연화가 담수련을 보며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악 방주님께서는 어떻게 매번 어디 가실 때마다 저희에게 밀착 경호하라고 말씀하시는지 모르겠어요.”
“그러게요. 당연히 저희가 할 건데, 그래도 걱정이 되시나 봐요?”
흑란까지 맞장구를 치자 담수련은 기분 좋은 듯 살짝 미소를 그러고는 자신의 방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기다리고 있던 혼원개는 악불군이 들어오자 공손히 포권을 했다.
“개방의 절강 분타주인 혼원개입니다.”
그는 배분만 높았다면 이미 신개 소리를 들었을 정도로 상당한 명성을 지닌 개방의 중간 간부였다.
“이렇게 갑자기 오신 것을 보면 급한 일이 생긴 것 같은데, 무슨 일이 있습니까?”
“총단에서 순찰 천강대장님을 항주로 보내셨습니다.”
“순찰 천강대장이요?”
“순찰 천강대장은 개방의 분타를 감찰하는 조직의 장을 말합니다. 개방의 정예인 천강개들을 이끌고 있기 때문에 무력 집단의 수장이기도 합니다.”
“그런 분이 항주에 오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그것은 저도 모릅니다. 방주님과 태상호법님의 특별명령을 수행하시는 것으로 압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제게 오신 이유는 무엇인지요?”
“순찰 천강대장으로 임명된 소걸아 사숙께서 절강성을 이틀 전 넘었다는 보고를 받았는데 아직까지 항주에 도착하지 않으셨습니다.”
소걸아는 혼원개보다 나이가 상당히 어렸지만 사숙으로 불릴 정도로 배분이 높았다.
악불군은 순찰 천강대장이 소걸아라는 말에 놀란 듯 물었다.
“개봉에서 왔다면 절강 북부로 들어왔겠군요?”
“예.”
“거기라면 항주까지 반나절이면 도착할 텐데요?”
“개방에서도 지금 수색을 시작했는데, 사람이 좀 부족해서 보고를 드렸더니 태상호법님께서 천호방에 도움을 청하라고 하셨습니다.”
“당연히 도움을 드려야지요. 절강성 어디로 넘어왔는지는 아십니까?”
“막간산을 타고 넘어오신 것으로 압니다.”
“제가 당장 방도들을 보내 수색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천호방에서 본 방에 도움을 청하신다면 저도 발 벗고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같은 정파끼리 서로 돕는 것은 당연한 겁니다.”
악불군은 의연하고 흔쾌한 답은 혼원개에게 아주 좋은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 * *
무려 이백 명이 넘는 천호방도들이 외당당주인 마진우의 인솔하에 혼원개를 따라나섰다. 특히 추적에 일가견이 있는 백인막 출신의 살수들이 이십 명이나 포함이 되어 있었다.
“소걸아 소협의 무공이 어느 정도였어?”
혼원개가 온 이유에 대해 들은 담수련은 걱정되는지 물었다.
“제가 직접 비무를 하지 않아서 확실하게 어느 정도다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하나 누구에게 쉽게 당할 친구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럼 큰 변은 없겠다.”
“그렇긴 한데 사해신개 어르신께 특별 임무를 부여받았음에도 중간에 사라졌다는 걸 보면, 뭔가 중요한 상황과 맞닥뜨렸을 확률이 클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해신개 어르신과 대화를 나눈 것이 한 달이 채 안 됐는데 왜 갑자기 소걸아 소협을 보내셨을까?”
“그런 예측은 저보다는 아가씨께서 더 정확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예측은 혼자보다 여러 명의 의견을 듣는 것이 더 정확해. 그래서 소군의 생각을 묻는 거야.”
“저희와 대화를 나누고 가실 때에는 이렇게 빨리 움직이실 거라는 느낌은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뭔가 정세에 변화가 생긴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역시! 소군이 정확하게 보네. 그럼 어떤 변화가 있었을 것 같아?”
“거기까지는 제 머리가 따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담수련은 의심쩍은 눈으로 한 번 보더니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신비 조직에서 드디어 이간질을 시작한 것은 아닐까 싶어.”
“벌써요?”
“그들에게 벌써란 없어. 그 내부영주란 여자 말 들었잖아? 그들은 언제든지 기회만 생기면 시기는 상관이 없는 것 같아.”
“그럼 소걸아는 어디로 갔을까요?”
“소걸아 소협이 절강성을 넘은 시간이 저들이 총단을 공격한 시기와 딱 맞아. 그게 우연일까?”
“그럼 밖에 있던 그들과 소걸아가 맞닥뜨렸을 수도 있겠군요?”
“소걸아 소협이 이유 없이 나타나지 않을 분은 아니잖아? 내 생각에는 그들과 마주치는 바람에 싸움이 일어났거나 그들의 뒤를 따라갔을 것 같아.”
도대체 그녀의 뇌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소름이 돋을 정도로 정확한 예측이었지만, 아직까지는 가정일 뿐이었다.
* * *
“뭐라고? 천호방 총단에서 큰 싸움이 있었다고?”
오익선은 놀란 목소리로 반문했다.
“저희 간세의 말에 따르면 상당한 고수들이 침입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천호방에서 이미 침입이 있을 것을 알고 준비된 상태였단 사실입니다.”
“침입자들이 누구인지는 알아냈느냐?”
“그들이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염주환이 정보를 건넸는데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군.”
오익선은 안심한 듯 중얼거렸다.
정보를 건네기 위해 총단에서 온 밀사에게 정보를 염주환을 통해 보내자고 제안한 사람은 오익선이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깔끔하게 악불군에게 직접 전해진 것도 확인을 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런 중요한 정보를 얻고도 천호방에서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자 오익선은 무척 당황했다.
밀사는 떠나면서 천호방의 움직임에 대해 사소한 것까지 모두 보고를 하라고 명했다. 그런데 아무런 움직임이 없자, 그는 악불군이 정보를 그대로 폐기했을 수도 있다는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염주환을 소개한 그에게 책임 추궁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방금 들어온 정보인데, 천호방에서 백 명이 넘는 인원이 갑자기 밖으로 나갔다고 합니다.”
안심하던 오익선의 표정이 다시 굳어졌다.
“왜?”
“역시 모른다고 합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계획에 없던 출동이라고 합니다.”
“천호방에서 그렇게 많은 수가 한꺼번에 나선 적이 없었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오익선의 얼굴에 다시 긴장의 빛이 돌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