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검지애 316화>
316화. 염상(1)
어두운 밤, 항주에서 서쪽으로 반나절 거리에 있는 동려포구에 여러 척의 배가 정박한 채 물건들을 계속 내리고 있었다.
밤에 물건을 내리는 경우는 수군이 보급품을 옮기는 경우가 아니라면 밀수꾼들뿐이었다.
짐을 내리는 일군들 주위로 대감도를 든 이십여 명의 장정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육겸아! 다 실었냐?”
“예! 대형, 거의 끝나 갑니다. 이번에 생각보다 양이 좀 많은 것 같습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 정도 물건이라면, 또 작전이 시작된 것 같지 않냐?”
“명나라가 세워진 지 일 년도 안 됐는데 벌써 작전을 시작하면 관에서 가만있을까요?”
“그런 복잡한 속까지는 우리가 알 바가 아니지. 우린 그냥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
대화를 나누는 둘은 염일군이라 불리는 소금을 운반하는 염상 조직의 중간 간부들이었다.
그들의 앞에는 소금이 가득 실린, 삼십 대가 넘는 우마차가 늘어져 있었다.
“누구냐! 이놈들 우리가 누군지 아느냐!?”
주위를 살피던 대형이란 자는 갑자기 주위에 나타난 십여 명의 흑의인들을 보자 무기를 빼며 소리쳤다.
“대형, 웬 놈들일까요?”
“오늘 일은 극비로 추진하고 있는 일인데? 우선 막아라.”
“예!”
육겸은 경계를 서고 있는 수하들에게 소리쳤다.
“저놈들을 막아라.”
육겸의 명에 수하들이 급히 흑의인들을 막아 보려 했지만, 지금 나타난 흑의인들은 이, 삼류급의 그들이 막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아니, 싸움 자체가 되지 않았다.
“너희들, 지금 실수하고 있는 거다.”
잠깐 사이 피가 흐르는 가슴을 부여잡은 대형이라 불린 자는, 쓰러진 수하들을 뒤로한 채 분노에 찬 눈으로 흑의인들을 보며 소리쳤다.
하지만 흑의인은 그의 말을 아예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그의 다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아악!”
인대가 잘리고 허벅지에 검을 찔린 그는 커다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염상의 무인들은 한 명도 죽지는 않았지만 추격을 할 수 없을 정도의 상처를 입고 끙끙대고 있었다.
‘이놈들 감히 우리 염상의 소금을 훔쳐 가? 우리를 건드린 이상, 너희들은 이미 죽은 목숨이다.’
대형이라 불린 자는 우마차들을 끌고 사라지는 흑의인들을 보며 원독 어린 저주의 말을 토해 내고는 급히 육겸의 곁으로 기어갔다.
절강 최대의 염상 조직인 흑염회의 회주 간특상은 사방에서 날아오는 보고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몇 달에 걸쳐 준비한 소금들이 오늘 일곱 개의 포구를 통해 반입될 예정이었다. 한데 한두 곳도 아닌 일곱 곳 모두에서 들어오던 소금 전부를, 정체를 알 수 없는 흑의인들에게 강탈당했다는 것이 아닌가……
“그놈들 정체를 빨리 알아내라!”
“추격을 시작은 했는데,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뭐를 이해 못 해!”
“그놈들의 흔적이 모두 사라졌다고 합니다.”
“삼십 대가 넘는 우마차를 끌고 갔다. 그런데 흔적이 사라진다는 것이 말이 된다고 보느냐?”
“저희들도 그게 말이 안 돼서, 사방 십 리를 모두 샅샅이 뒤졌습니다. 거기다 포구 주위인지라 어부들과 선원들이 꽤 많이 돌아다니고 있었는데도, 우마차를 본 자가 한 놈도 없었습니다.”
“그런 무슨 말도 안 되는!”
간특상의 얼굴이 대로한 표정으로 변했다.
그가 잃은 소금은 거의 금자 만 냥에 달하는 양이었다. 그것도 그가 구입한 액수일 뿐, 시중에 팔 경우 금액은 두 배로 뛸 것이었다. 거기다 염상 간에 가격을 올리는 작전에 돌입했으니 그 이익은 더욱 커질 것이었다.
“흑염회의 모든 염상들에게 연락해서 그놈들을 반드시 찾으라고 해라.”
“알겠습니다.”
수하가 뛰어나가자 화났던 간특상의 얼굴은 사색으로 바뀌었다. 일주일 안에 소금을 찾지 못한다면 그는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 * *
“염전이 습격을 받아, 비축하고 있던 소금을 모두 빼앗겼다고?”
청운루의 루주 유인화의 보고에 성후는 의아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예, 그뿐 아니라 흑염회와 서염회가 운반하던 소금들도 거의 같은 시각에 강탈을 당했다고 합니다.”
성후는 말없이 있는 무후와 검후를 보며 물었다.
“운반하던 소금과 염전이 동시에 공격받아 소금만 강탈당했다면 한두 명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고, 너희들 생각은 어떠냐?”
“소금 운반은 극비 중의 극비였습니다. 거기다 만 개가 넘는 섬 중에서 정확하게 염전이 있는 섬을 같은 시각에 공격했다고 하니, 오래전부터 저희를 감시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무후 구양봉의 답에 성후는 성에 차지 않는 듯 다시 물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벌어질 수는 없겠지. 당연한 말 말고, 어떤 놈들의 짓이라고 생각하는지를 말해 보거라.”
“그들이 당한 장소는 모두 절강성 안입니다. 당연히 천호방이 가장 의심스럽습니다.”
검후 백리옥빙의 말에 성후는 이번에는 유인화를 보며 물었다.
“네 의견은 어떠냐?”
“성후님의 말씀대로 이렇게 동시다발적으로 공격당한 이상, 그들이 염상들의 움직임을 계속 감시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천호방의 움직임은 저희는 물론 천후의 수하들도 계속 감시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짓이라면 저희 청운루에 이미 보고가 들어왔을 것입니다.”
“너는 절강성에서 천호방 말고 우리를 감시할 수 있는 세력이 또 있다고 보는 거냐?”
검후는 그녀가 자신과 다른 의견을 내자 기분이 좀 상한 듯 약간 높은 목소리로 반문했다.
“본 각을 감시하는 자들이 있다는 보고를 이미 성후께 드린 바 있습니다. 그들은 천호방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를 감시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 왜 내게는 보고를 하지 않은 것이냐?”
“내가 하지 말라고 했다.”
성후가 끼어들자 검후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따지듯 물었다.
“검각의 경계는 제 소관입니다. 감히 저희를 감시하는 자들이 있다면 당장 잡아 와 목적을 알아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네가 그럴 것 같아서 말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너는 그자들이 우리를 감시하는 것을 우리가 눈치채지 못할 거라고 놈들이 생각할 것 같으냐? 그놈들은 지금 감시하는 놈들이 죽을 것을 감안하고 그런 짓을 벌이는 거다.”
성후의 말에 검후는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고 입을 닫았다. 만약 감시하는 자들이 미끼라면 그들을 제거하거나 잡아 오는 자체로 오히려 정체를 알려 주는 상황이 될 수도 있음을 본능적으로 알았기 때문이었다.
“루주.”
“예! 성후님.”
“계속 말해 보거라.”
“저희를 감시하는 자들이 혈교의 천마전 놈들이라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네 말은 이번 강탈 사건이 혈교의 천마전에서 벌인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냐?”
“천호방도 용의선상에서 빼놓을 수는 없다고 봅니다. 하지만 저는 혈교의 짓일 확률이 더 높다고 생각합니다.”
“검후!”
“예!”
“네가 직접 나가야겠다. 반드시 소금을 강탈한 놈들을 찾아내라.”
“알겠습니다.”
무후가 아닌 자신에게 일을 맡기자 검후는 기분이 좋은 듯 벌떡 일어났다.
“애들을 열 명 데리고 가거라.”
“전 혼자서도 충분합니다.”
“도와줄 아이들이 필요하다. 데리고 가.”
검후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목례를 하더니 나가 버렸다.
“검후가 나가면 또 일을 벌일 수도 있는데, 왜 검후를 보내십니까?”
무후 구양봉이 불평하듯 말하자 성후는 흘깃 보더니 조용히 말했다.
“너희는 어렸을 때는 그렇게 친하더니, 왜 갈수록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거냐? 궁주님께서 너희들의 이런 모습을 보면 얼마나 실망하실지 생각도 안 하느냐?”
궁주란 말이 나오자 무후는 더 이상 반박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 * *
“절강성의 모든 백성들이 일 년은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양이군요?”
백인막 십삼 호 출신이자 천호특별단의 단주직을 맡고 있는 한호철의 보고에 담수련은 놀랍다는 듯이 말했다.
“저희도 생각 외로 양이 너무 많아 당황했습니다. 아마, 군사님께서 알려 주신 진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면 그들의 추적을 피하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고 장로님, 염상들이 우리를 감시할 거예요.”
모든 강탈이 절강 안에서 벌어진 이상, 현 패자인 천호방이 가장 먼저 의심을 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군사님 명대로 준비했으니, 알아낼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가 생각지도 못한 것까지 세심하게 파악해서 준비한 담수련을 고철황은 존경스럽다는 듯이 답했다.
그녀는 염상을 한 번은 손을 봐줄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면한 일들이 너무 많아 우선은 감시만 시키고 있었다.
그런데 고철황이 그들이 소금으로 장난을 치려는 것 같다는 정보를 가지고 오면서 계획을 바꾼 것이다.
“염상들이 비축해 놓은 소금들은 어떻게 되고 있지요?”
“불법적으로 생산한 소금들이 있다고 관에 연락해서 압수하도록 했습니다.”
“쉽게 말을 듣던가요?”
“염상들에게 뇌물을 먹었는데 쉽게 움직이려고 하겠습니까? 고변을 듣고는 출동은 하지 않고 포두 한 명이 급히 어디론가 달려가더군요. 염상들에게 소금창고로 가니 빨리 치우라고 알리는 전령이었습니다. 그자를 잡아 놓고, 황궁에 직접 고변하겠다고 하니까 그제야 부랴부랴 관병이 출동했습니다.”
“압수하는 것까지 다 확인했겠지요?”
“예, 다 확인했고 그 소금들은 천호상단과 대룡상단에서 처분하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동정어옹이 의아한 듯 끼어들었다.
“이미 염상들이 우리를 의심하고 있을 텐데, 관이 압수한 소금까지 본 방이 운영하는 천호상단과 협력 세력인 대룡상단에서 처분한다면 우리 짓이 틀림없다고 확신하지 않을까요?”
“그럴지도 모르지만 잠깐 항의하는 정도일 거예요. 증거 없이 언제나 하던 버릇대로 본 방에게 했다가는 큰 후회를 하게 될 테니까요.”
담수련의 말에 동정어옹은 매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무림 세력들조차 꺼려하는 염상 조직과 정면으로 충돌할 것까지 감안하고 일을 시작했음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미 계획이 다 짜여 있는 모양이군요?”
“이제 곧 방주님의 거대한 발자국이 시작될 겁니다. 염상 조직 따위는 그 발걸음에 우연히 걸려 밟히는 잡초에 불과할 뿐이지요.”
담수련의 말에 모두는 그들이 아직 모르는 큰일이 시작될 것이라고 직감했다.
* * *
“언니, 아가씨께서 제게 항주로 와 줬으면 좋겠다고 연락을 했네요.”
천화궁주는 담수련의 연락을 받자마자 종리화에게 달려왔다.
“무슨 일로?”
“그것을 말하지 않으셨어요. 그냥 아주 중요한 일이 있어서 의논하고 싶다고 하네요.”
종리화는 잠시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곧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다녀와야지.”
“그러긴 해야 하는데, 언니는 오지 말라고 명시를 해 놓았더라고요. 이상하지 않아요?”
“원래 아가씨께서 서찰을 보내고 할 때 좀 서운하다 싶을 정도로 간결하게 할 말만 적어서 보내신다. 아무 일 없을 테니 걱정 마라. 음모를 꾸미고 그러는 분은 아니니까.”
“제가 걱정할 일이 뭐가 있겠어요? 아가씨께서 제게 음모를 꾸미실 이유도 없고요. 다만 언니는 오지 말라고 하니까 그게 좀 이상하다고 생각한 것뿐이에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내가 같이 갈 것이라 생각하시고 쓰신 듯해. 솔직히 지금 나와 네가 같이 움직이는 것은 좀 위험하지 않겠니? 그래, 언제까지 오라고 했니?”
“오 일 안에는 도착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네요.”
“오 일? 항주에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니니?”
천화궁주는 항주에 새로운 정보망을 구축해 놓은 터였다.
“일이 있긴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무슨 일?”
“우리 아이들도 정확한 내용은 모른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총단 내에서 불길이 오르고 싸우는 듯한 소리도 꽤 오랫동안 들렸다고 하니까, 누군가 침입을 한 것은 아닌가 싶어요.”
“아무래도 그 일 때문인 것 같구나. 오 일까지 기다리지 말고 당장 출발하거라.”
천화궁주는 계속 마음 한편에 찝찝한 생각이 가시지 않았지만 안 갈 수는 없었다. 천호방에 대한 정보망을 잃는다면 그녀 역시 지위를 보존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알았어요. 며칠은 언니와 헤어져 있어야겠네요.”
천화궁주가 외유 준비를 하기 위해 나가자 편안한 미소를 짓고 있던 종리화의 얼굴이 급격하게 굳어졌다.
평소와 전혀 다른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