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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검지애-319화 (319/472)

<천검지애 319화>

319화. 격변(2)

반 시진쯤 지났을까…….

안을 수색하던 조성박이 나왔다.

“찾은 것이 있습니까?”

악불군의 질문에 조성박은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특별히 수상한 자들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대부분 기녀들이었고 손님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소걸아 소협 말대로 그들이 이 안으로 들어갔다면, 이미 빠져나간 것 같습니다.”

조성박의 말에 소걸아는 당황한 표정으로 매향을 한 번 보더니 급히 말을 받았다.

“제가 추격하던 자들은 분명 아직 안에 있습니다.”

기를 숨기고 아무리 은밀하게 몸을 감춘다 해도 몸에서 풍기는 냄새만큼은 절대 막을 수 없다는 것이 소걸아의 신념이었다.

“자네가 들어가면 찾을 수 있다는 말인가?”

악불군의 말에 소걸아는 단호하게 말했다.

“당장 들어가세. 내가 찾아주겠네.”

말을 한 소걸아는 다시 매향을 슬쩍 보더니 소화루를 향해 걸어갔다.

“방주님은 안 들어가세요?”

담수련은 악불군이 그대로 서 있자 의아한 듯 물었다.

“아까 잠깐 봤는데 여인들이 좀 민망한 옷차림을 하고 있더군요.”

“그래서 안 들어가시려고요?”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왜 그걸 물어봐?”

“전에 아가씨께서 기녀들은 쳐다보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땐 개인적인 일로 보지 말라고 한 거지……요. 지금은 공적인 일이잖아요. 안 그래요?”

담수련은 자신이 지나가듯 한 말까지 기억하고 진짜 안 들어가려고 했다는 것을 직감하고는 깜짝 놀라 말했다.

“그럼 아가씨 먼저 들어가십시오. 전 따라가겠습니다.”

담수련의 말이 끝나자 악불군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악 방주님, 너무 멋있지 않니? 난 여자 말 잘 들어 주는 남자들이 제일 멋있는 것 같아.”

둘이 소화루로 향하자 매향이 황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소걸아 소협이 아까부터 너 자꾸 보던데?”

연화가 뭔가 느낀 것이 있는 듯 말하자 매향이 펄쩍 뛰며 화난 듯 말했다.

“연화 너! 나한테 억하심정 있니?”

“난 본 대로 말한 것뿐인데? 추국아, 흑란아, 너희들도 봤지? 소걸아 소협이 계속 매향을 흘끔거리며 보는 거?”

“아가씨, 들어가신다. 빨리 가기나 하자.”

추국과 흑란은 연화의 질문에 서로를 한 번 보더니 소화루로 걸음을 옮겼다. 끼어들기 싫다는 의미였다.

“너 또 소걸아 소협과 나 엮으려고 하면 그땐 원수가 될 줄 알아!”

매향은 눈을 부릅뜨며 한마디하고는 뒤를 따랐다.

‘피! 내가 이런 거 눈치가 얼마나 빠른데, 매향이 너 코 꼈어. 내가 보기에 소걸아 소협은, 말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연화는 웃기지 말라는 듯 중얼거리고는 급히 몸을 날렸다.

* * *

소화루 안으로 들어선 소걸아는 고개를 들고 코를 몇 번 킁킁대더니 곧장 이 층으로 올라갔다.

이 층으로 올라간 그는 미로처럼 복잡한 통로들을 마치 와 본 듯 쏙쏙 빠져나가더니 한 방 앞에 섰다.

“여기예요?”

소걸아의 옆에 선 담수련은 의아한 듯 물었다. 분명 이곳에 온 적이 없다고 했는데 곧장 이곳으로 왔기 때문이었다.

“틀림없습니다.”

그러자 통로의 한쪽에 서 있던 방도 한 명이 조성박에 가더니 귀에 뭐라고 소곤거렸다.

“무슨 일이지요?”

담수련의 질문에 조성박은 약간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 방은 조사를 했는데 여인 둘이…….”

“왜 말을 멈추세요?”

“여인 둘이 옷을 벗고 침상에 같이 있어서 그냥 나왔다고 합니다.”

기녀들이니 옷차림이 유별난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둘 다 옷을 벗고 한 침상에 있다는 말을 담수련에게 하기는 좀 조심스러웠다.

그녀들이 그런 모습으로 있다는 사실에, 조사하던 이들 모두 당황하거나 그러려니 하고 의심을 하지 않았지만 담수련은 달랐다.

“이렇게 시끄러운데 그런 모습으로 계속 있었다면 오히려 그녀들이 소걸아 소협께서 추적하던 자들 같네요.”

“조 단주.”

“예, 방주님.”

“탈출을 시도할지도 모르니 모두에게 경각심을 가지라고 전하십시오.”

“알겠습니다!”

“추국.”

“네!”

“옷 입고 나오라고 네가 말해라.”

* * *

만통광심은 한혈흑의존이 가져온 서찰을 읽다가는 눈이 동그래졌다.

“이것을 어디서 가지고 왔느냐?”

“군사전 문 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뭐야? 그럼 누가 갖다 놨는지 모른다는 말이냐?”

“지금 조사에 들어갔습니다.”

“빨리 범인을 찾아내라. 궁주님께서 아신다면 군사전 전체를 도륙 내실 수도 있다.”

“지금 총동원해서 샅샅이 뒤지고 있으니 곧 단서가 나올 것입니다.”

구천마성에는 삼대 금지 구역이 있었다. 구천마황이 기거하는 성주전과 원로들이 있는 마원, 그리고 정보를 수집 분석하는 군사전이었다.

그 세 곳은 허락 없이 다가섰다가는 누구를 막론하고 공격을 받는 장소였다.

그런데 군사전 앞에 이런 서찰이 놓여 있었다니…….

거기다 서찰에 적힌 내용은 만통광심이 그동안 그토록 알고 싶어 하던 매우 중요한 정보들이었다.

“그런데 군사님, 서찰 내용이 사실일까요?”

“먼저 정밀 분석해 봐야 알겠지만, 상당히 신빙성이 있는 것 같다.”

“만약 사실이라면, 본 성에서도 알아내지 못한 정보를 누가 이렇게 자세히 알고 우리에게 보내기까지 했을까요?”

“그것도 알아봐야겠지. 하지만 보통 조직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우선 서찰을 군사전 앞에 갖다 놓은 놈을 찾아내라.”

“알겠습니다.”

한혈흑의존이 나가자 만통광심은 서찰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안에는 평범한 세력은 갖기 힘든, 남무림의 세세한 지도까지 들어 있었다.

“이 정보가 사실이라면 혈교의 전력은 무림맹을 능가한다는 말인데……. 이럴 때가 아니야. 성주님께 우선 보고한 후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

서찰은 놀랍게도 구천마성의 세력권 내에 있는 혈교의 여러 분타들과 전력에 대한 분석이 들어 있었다. 만약 사실이라면 혈교에게는 대단히 치명적인 정보였다.

그리고 서찰을 받은 곳은 구천마성만이 아니었다.

* * *

“군사님!”

갑작스런 우문상일의 목소리에 제갈우명은 의아한 표정으로 지었다.

“들어오게.”

얼굴이 파랗게 변해 들어온 우문상일은 두툼한 서찰을 제갈우명 앞에 놓으며 말했다.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아직 안 자고 있으니 상관있겠나? 그래, 이게 뭔가?”

“제가 집무실에서 일을 끝내고 나오는데 문 앞에 그것이 놓여 있었습니다.”

“자네 집무실 앞에 놓여 있었다고?”

“예.”

“그럼 누가 놓아 둔 건지도 모른다는 말인가?”

“예.”

“읽어는 봤나?”

“읽어 보았습니다. 군사님께서 직접 보셔야 한다는 생각에 그대로 달려왔습니다.”

고개를 갸웃하며 서찰을 펼친 제갈우명의 눈은 곧 휘둥그레졌다.

그렇게 잠시, 한 장 한 장 종이를 넘기는 사이 얼굴은 심각하게 굳어져 갔다.

다 읽은 듯 서찰을 내려놓은 제갈우명은 심각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이게 자네 집무실 앞에 놓여 있었다고?”

“예.”

“자네 집무실 앞이면 경계 무사들이 한두 명이 아니지 않는가?”

“이십 명이 넘습니다.”

“경계 무사들에게 누구를 봤는지 확인은 했나?”

“자신들이 계속 있었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입니다.”

“이자들이 우리를 조롱하는구나…….”

제갈우명은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군사님, 거기 적힌 정보가 사실이라면 혈교의 전력이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잠깐 생각을 좀 해 보세. 그렇게 철저하게 정체를 숨기고 있던 혈교에 대해 이렇게 자세히 알 수 있는 세력이 어디일 것 같은가?”

“혈교 안에 내분이 일어난 것은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렇다면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자네 집무실 앞에 이것을 놓아 둘 이유가 없지 않겠나?”

“그럼 어떤 세력일까요?”

“짐작이 가는 곳이 하나 있기는 한데…… 우문 총책.”

“예!”

“경비단주를 만나 맹 전체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게. 감히 군사총책의 집무실 앞에 이런 정보를 놓아 두었다는 것은 본 맹을 우습게 본 행동이네. 반드시 잡아야 할 것이야.”

“곧 명을 내리겠습니다.”

우문상일이 나가자 제갈우명은 다시 서찰을 자세히 읽기 시작했다.

혈교에 대한 정보가 전해진 곳은 무려 열 곳에 달했다. 그리고 그중의 한 곳이 천호방이었다.

* * *

“소군의 잘못이 아니니까 너무 자책하지 마.”

담수련은 악불군의 표정이 계속 무겁자 조심스럽게 달랬다.

“독단을 물고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너무 방심했습니다.”

소화루에서 잡아낸 두 기녀는 추국이 옷을 입고 나오라는 말을 듣자 그 자리에서 독단을 물고 자결하고 말았다.

“그렇게 말하면 나도 실수한 거야. 고위직이나 그럴 줄 알았지, 모든 수하들이 자신의 목숨을 그렇게 쉽게 버릴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으니까.”

“어쩌면 그들이 생각보다 고위직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고위직을 가진 자가 일반 기녀로 분해 있다는 것은 좀 맞지 않는 것 같아.”

“어쨌든 사람의 목숨을 이렇게 경시하도록 만든 자들은 절대 용서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소걸아 소협께서 발견했다는 그곳은 어쩔 거야? 이들이 자결했다는 소식은 곧 그들의 귀에 들어갈 텐데, 다른 곳으로 도망을 칠 수도 있지 않겠어?”

“고 장로님께서 소화루 주위를 백 장을 완전히 장악하고 누구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있으니 쉽게 연락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래도 그대로 둘 수는 없잖아?”

“제 짐작이 맞다면 그곳 역시 꼬리에 불과합니다. 공격해 봤자. 그냥 잘라 버릴 정도라는 것이지요.”

악불군이 자신의 생각을 여과 없이 개진하자 담수련은 살짝 놀란 얼굴로 그를 주시했다.

‘화가 나니까 좋은 생각이 막 나오네. 평소엔 나 때문에 오히려 깊게 생각 안 하려는 게 분명해.’

“물론 제 얕은 생각이니 아가씨 생각이 다르시다면 따르겠습니다.”

악불군은 그녀가 자신을 묘한 표정을 지으며 주시하자 급히 태세를 전환했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직감한 것이다.

“아니야. 소군 말이 맞아. 그래도 감시는 해야지?”

“소걸아 말이 그들의 조심성이 대단했다고 합니다. 천호특별단의 무사 중 미행과 감시에 특출한 자들을 뽑아 교육을 좀 시키도록 했습니다.”

‘이제 완벽한 수장의 자세가 나타나네…….’

문득 담수련은, 그가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 예전 담무룡을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가씨, 잠깐 위지 대협을 만나고 오겠습니다.”

“너무 늦지 않았을까?”

“더 이상 조건을 맞춰 주기에는 상황이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안으로 결단을 내려야겠습니다.”

“그럼 나는 내부영주란 여인을 만나 봐야겠다. 소군하고 나하고 누가 더 유용한 정보를 먼저 얻어 내나 내기하자.”

“내기요?”

“응, 내기.”

“저번 내기도 제가 진 걸로 결론이 난 것 같은데, 더 원하시는 것이 있으십니까?”

“난 소군에게 원하는 것이 너무 많아.”

“그럼 말씀해 보십시오.”

“아직은 생각해 보지 않았어. 우선 내기했다는 사실과 그 승패만 기억하고 있자고.”

“알겠습니다.”

* * *

적동마수는 편하게 지내고 있었지만 잠을 쉽게 들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가 조직을 배신한 것은 계획이 있었다기보다는 순간적인 충동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잘했다는 생각과 실수했다는 후회가 계속 교차하며 그를 괴롭혔다.

더욱이 천호방까지 침입하는 것을 보자 그들의 추적에서 벗어나기는 어렵겠다는 두려움까지 그를 힘들게 하고 있었다.

“위지 대협, 악불군입니다. 대화 좀 나눌 수 있겠습니까?”

적동마수는 악불군의 목소리를 듣자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초에 불을 붙인 그는 문을 열었다.

“들어오십시오.”

“주무신 것은 아니시지요?”

악불군은 그가 자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불렀지만, 불이 꺼져 있었으니 예의상 묻지 않을 수는 없었다.

“저번 침입 사건 후로 잠이 오지 않더군요.”

“죽음이 두려우십니까?”

뜻밖의 질문에 적동마수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천대받는 낭인 시절을 보내다가 백대고수라는 말까지 들었는데, 이제 죽는다 하여 아쉬울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죽음이 두렵지 않다면 불안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사실 죽는다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할 수 있었으니, 죽음이 두렵지 않다면 두려운 것이 없어야 했다.

“평생을 속아 가면서 살아왔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어려서는 거지로 커서는 낭인으로 간신히 목적을 가지고 살았는데, 그게 다 저를 이용하려는 거짓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 원통함이 얼마나 큰지 아십니까? 그래서 이대로 죽기에는 너무 억울합니다.”

“그럼 이제부터 위지 대협 뜻대로 사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방주님께서 이미 보셨겠지만, 그들의 손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입니다. 아마 이곳에서 나가는 순간 전 시체가 될 것입니다.”

“위지 대협의 무공은 초절정 고수급입니다. 그 누구라도 쉽게 대협을 죽이지는 못합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방주님께서 저를 찾아오신 이유가 있으신 것 같은데 말씀하시지요.”

“제게 위지 대협께서 가지고 계신 패를 주십시오.”

악불군의 단도직입적인 말에 적동마수의 표정이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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