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검지애-323화 (323/472)

<천검지애 323화>

323화. 검후(1)

찰나 백리옥빙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그녀는 태어나면서부터 특별한 존재였다. 보타검각에서도 성후의 지휘를 받기는 하지만 수하는 아니었다.

당연히 누군가에게 이런 경고를 들은 적이 있을 리 없었다.

“지금 하신 말에 대해 책임을 지실 수 있나요?”

“전, 제가 한 말에 대해 언제나 책임을 집니다.”

“기대하지요.”

“자 그럼, 가 보실까요?”

담수련은 부드럽지만 굉장한 긴장이 번지자 급히 끼어들었다.

[영주님, 어떡하지요?]

백리옥빙이 담수련과 악불군을 따라 주루를 내려가자, 수하 중 한 명이 불안한 목소리로 양미려에게 물었다.

[검후 님을 이길 자는 천하에 많지 않다. 우선 상단을 포위하고 언제든지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어라.]

[알겠습니다.]

‘성후 님께서 절대 천호무적검은 건드리지 말라고 하셨는데 어쩌시려고…….’

천호상단의 정문으로 들어가는 백리옥빙을 보며 양미려는 불안한 듯 중얼거렸다.

* * *

‘저 여인은 누구지?’

백룡신권 황보준백은 의아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천호방에서 일어난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무림맹으로 보고하고 있는 그는, 근래 천호방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천호방 내에 있는 그의 정보통도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심지어 차성령의 침입 사건마저 그는 제대로 아는 것이 없었다.

“저 여인이 누구인지 궁금하시오?”

백룡신권은 한 달이 넘게 모습을 보이지 않던 종산은자가 나타나자 검미를 찌푸렸다.

“근거 없는 소문을 가지고 내게 오는 일은 삼가 달라고 말씀드린 것 같은데요?”

“황보 대협, 원래 정보란 것이 근거 없는 소문을 통해 수집하게 되는 경우가 반을 넘소이다.”

“근래 보이시지 않아 총단으로 들어가셨나 했는데, 여긴 또 어쩐 일이십니까?”

“방금 악 방주와 같이 들어간 여인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어디에 속해 있는지는 노부가 알고 있소이다.”

“그게 중요한 것입니까?”

“중요할지 안 할지는 황보 대협께서 판단하셔서 보고하실 일이지요.”

“저 여인이 어느 문파 사람인데 이렇게 뜸을 들이십니까?”

“보타검각에서 나온 여인이 분명하외다.”

백룡신권의 눈이 살짝 커졌다. 무림인들에게는 신비함 그 자체로 알려진 보타검각의 여인이 왜 천호무적검을 만난다는 말인가……?

“선배님께서는 그것을 어찌 아십니까?”

“보타검각의 여인은 그들만의 표식을 몸에 부착하고 다니지요. 저 여인에게 그 표식이 있으니 맞을 거요.”

“그 표식이 뭡니까?”

“노부의 밑천까지 달라고 하시려면 그에 상응하는 뭔가를 주시는 것이 오고가는 정이 아니겠소?”

“전 드릴 것이 없으니 알려고 하면 안 되겠군요?”

“하지만 이거 하나는 알려 줄 수 있소이다.”

“뭡니까?”

“며칠 전 일어난 소금 강탈 사건 아시지요?”

“염상들이 비상이 걸려 사방을 뒤지고 다녔는데 어찌 모르겠습니까?”

“그 사건 때문에 보타검각에서 나온 것 같더이다.”

“그것을 선배님께서 어떻게 아십니까?”

“소금을 강탈당했다는 장소에서 저 여인이 뭔가를 찾는 것을 보았기에 그냥 짐작한 것뿐이오.”

“그 얘기를 왜 제게 하는 겁니까?”

“염상들이 소금을 강탈당했는데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는 보타검각에서 나오고, 그리고 그 여인과 천호무적검이 같이 천호상단으로 들어가고 있소이다. 뭔가 냄새가 난다는 생각이 안 드시오.”

“아이고! 죄송합니다. 제가 좀 냄새가 많이 나긴 하지요?”

대화를 나누던 백룡신권과 종산은자는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언제 왔는지 거지 한 명이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탁자 옆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종산은자는 화들짝 놀라 옆에 있는 젓가락으로 거지의 머리를 찔러 갔다.

하지만 거지는 교묘하게 젓가락을 피하며 몸을 일으켰다.

“소 제?”

백룡신권은 그 거지를 아는지 얼굴을 보자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잘 지내셨습니까?”

“자네가 여긴 어쩐 일인가?”

백룡신권과 소걸아는 나이 차이가 꽤 났지만, 영웅회 시절 같은 무력 집단에 있으면서 상당히 친하게 지냈다.

“난 그냥 구걸이나 하면서 떠돌아다니려고 했는데, 총단에서 나 같은 인재를 그렇게 썩힐 수는 없다고 임무를 맡기지 뭡니까.”

“황보 대협이 아는 분이시오?”

자신의 공격을 소걸아가 너무 쉽게 피하자 당황한 표정으로 서 있던 종산은자는, 둘의 대화를 듣자 소걸아의 정체가 궁금한 듯 물었다.

비록 식탁에 가려져 있었다고 하지만 바로 옆에 앉아 있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은 소걸아의 무공이 자신들을 능가한다는 방증이었다.

“소 제, 인사드리게. 이분은 종산은자 선배님이네.”

“개방의 소걸아라고 합니다. 선배님께서 영웅회를 위해 큰 공을 세우셨다는 말을 사부님께 여러 차례 들었습니다.”

“소 소협이시구려? 그래, 사부님이 누구시오?”

종산은자에 대해 아는 사람은 영웅회에서도 많지 않았다.

“사부님께선 무림에서 신룡신개로 불리고 계십니다.”

“소협의 사부가 신룡신개란 말이요?”

“예.”

“그럼 사해신개 노선배께서 사조겠구려.”

종산은자의 말에 소걸아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반문했다.

“사조님을 알고 계셨습니까?”

“몇 번 뵌 적이 있었소.”

“편하게 말씀하십시오. 사조님까지 아시는 선배님께서 말을 높이시니 제가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소걸아의 말에 백룡신권의 눈에 의아함이 스쳤다. 그가 아는 소걸아는 이렇게 예의를 차리는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몇 년 못 본 사이에 많이 달라졌군.’

백룡신권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런데 언제 여기에 온 건가?”

“방금 왔습니다.”

“그렇게 사람을 놀라게 하면 되는가?”

“황보 대협을 보고 너무 반가워서 장난을 좀 친 것인데, 놀라셨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우리 대화는 어디까지 들었나?”

종산은자는 그게 불안했던 듯 지나가는 척 슬쩍 물었다.

“대화하시는 것은 제대로 못 들었고, 냄새난다는 말에 제 몸에서 나는 냄새를 말씀하시는 줄 알고 죄송해서 일어난 것입니다.”

종산은자는 안심한 듯 미소를 지며 말했다.

“그랬구먼. 황보 대협, 노부는 그럼 가 보겠소. 소 소협과는 이제 얼굴을 텄으니 다시 만나면 같이 식사라도 하세.”

“하하하! 거지에게 가장 반가운 소리가 식사하자는 것이지요. 그 약속 잊으시면 안 됩니다.”

“알겠네.”

미소를 지며 몸을 돌린 종산은자의 표정은 곧 곤혹스럽게 변했다. 소걸아의 등장으로 중요한 일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신룡신개의 제자라면 자신과 비슷한 배분의 그에게 가라고 할 수는 없었다.

‘종산은자라면…… 영웅회에서 소문난 정보 수집자인데, 왜 악불군에게 악의를 가지고 있는 거지? 아무래도 조사를 좀 해 봐야겠군.’

종산은자가 사라지자 약간은 헤퍼 보이는 웃음을 띠고 있던 소걸아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는 둘의 대화를 모두 들었던 것이다.

“소 제, 앉게나. 오랜만에 만났는데 내가 한턱 쏘겠네.”

한턱 쏜다는 말에 소걸아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말 중 하나가 그것이기 때문이었다.

* * *

창고에 도착한 백리옥빙은 가득 쌓여 있는 소금을 보자 아미를 찌푸렸다.

천호상단의 이곳저곳을 보여 주던 악불군이 드디어 창고로 안내하자, 그녀는 소금은 이미 어딘가로 숨겼다고 생각했었다.

‘이게 무슨 의도지?’

백리옥빙은 담수련이 창고 얘기를 꺼냈을 때부터 의아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진짜 소금이 가득한 창고를 보여 주자 헷갈리지 않을 수 없었다.

“소금을 많이 비축해 놓으신 이유가 있나요?”

그녀는 짐짓 궁금한 척 물었다.

“양민들에게 소금은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지요. 천호방은 최소한 세력권에 있는 사람들만은 의식주로 고통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해 줄 생각입니다.”

“그게 소금과 무슨 상관이지요?”

“소금은 필수품이기도 하지만 돈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돈 대용이 되기도 합니다.”

“그 말은 양민들이 어려워지면 소금을 무료로 뿌리기라도 하겠다는 말인가요?”

“공짜로 뿌리는 것은 황실에서도 하지 못합니다. 한계가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최대한 합리적인 가격에 풀 생각입니다.”

“소금은 여기에 있는 것이 전부인가요?”

“아닙니다. 확보한 소금이 원체 많아, 여러 창고에 나누어서 보관하고 있습니다.”

“염상들이 불법적으로 보관했다는 소금을 압수한 양치고는 너무 많군요?”

“저는 염상들이 얼마나 많은 소금을 보관하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검후께서는 염상들에 대해 잘 아시는 모양입니다.”

백리옥빙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네가 어떻게 염상들이 불법으로 보관하고 있는 소금의 양을 알고 있느냐’는 의미였기 때문이었다.

“천호방은 절강에 자리 잡은 지 일 년이 채 안 됐지만, 보타검각은 칠백 년 전부터 존재했어요. 절강에서 벌어지는 일을 당연히 천호방보다는 더 잘 알겠지요.”

‘칠백 년? 의미가 있나?’

대화 속에서 단서를 찾아내는 데 특출한 능력을 가진 담수련의 귀에 새로운 것이 포착됐다.

사실 보타검각은 명성에 비해 알려진 것이 거의 없었다. 당연히 시작이 언제인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데 백리옥빙의 말에서 시작의 시점을 알아낸 것이다.

“보타검각은 천외천의 신비함으로 유명한데, 양민들에게 가장 악질이라고 소문난 염상들까지 챙기는지는 몰랐습니다.”

“보타검각 가까운 곳에서 사건이 발생했으니 관심을 둔 것뿐이에요.”

“사건이요?”

“절강 여러 곳에서 소금 강탈 사건이 있었어요.”

“보고는 받았습니다.”

“천호방 짓이 아니라는 말인가요?”

“본 방이 그런 의심을 받을 줄은 몰랐군요.”

악불군은 의외라는 표정으로 반문하자 기다렸다는 듯 담수련이 끼어들었다.

“백리 소저께서 방금 그 발언이 천호방에 대해 매우 모욕적인 발언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신 모양입니다.”

“소저라는 칭호는 하지 말라고 했어요.”

“아차! 제가 실수를 했네요. 제가 그 호칭이 입에 붙어서요. 다시 말씀드릴게요. 검후께서는 합당한 이유를 가지고 그 말을 하신 건지 묻고 싶네요.”

“증거를 대라, 이 말인가요?”

“증거야 당연히 없을 것이니 증거까지 바라지는 않아요. 그렇게 생각하신 이유만 말해 주셔도 됩니다.”

백리옥빙의 눈가가 꿈틀했다. 악불군의 말과 담수련의 말의 수위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담수련이 말하면 분노가 올라오고 있었다.

그것은 담수련의 말투나 그녀에 대한 태도 때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이유를 몰랐다

그것이 질투임을, 태어나서 질투라는 것을 해 본 적이 없는 그녀는 알 수 없었다.

“절강의 패자가 지금 천호방이 아니던가요? 담 군사의 말대로 그 많은 소금이 사라졌는데 증거조차 발견이 되지 않으니, 천호방에게 의심의 눈초리가 향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따진다면 보타검각 역시 수많은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백리옥빙은 ‘수많은’이란 단어가 매우 거슬렸다. 소금 얘기를 하는데 은근슬쩍 다른 문제까지 핵심을 넓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수많은 의심이란 것이 무엇인지 한번 말해 보시지요.”

“보타검각에서 소금을 강탈한 범인을 조사하는 이유가 뭘까요? 혹시 염상들을 조종해 큰돈을 버는 배후는 아니신가요?”

“보타검각을 염상 따위와 연결시키다니, 상상력이 많이 부족하시네요?”

“상상력이 아니라 의심이지요. 그럼 하나 더 말씀드릴게요. 보타검각의 배후에는 또 누가 있을까요?”

“입이 있다고 함부로 놀리면 혀가 잘릴 수도 있어요. 감히 보타검각의 배후를 논하다니. 천호방이 담 군사를 완벽하게 보호해 줄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인데, 세상에는 천호방보다 강한 곳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명심하세요.”

백리옥빙은 자신이 얼마나 큰 실수를 하고 있는지 몰랐다. 악불군은 다른 것은 다 그냥 넘어가도, 담수련에게 협박이나 모욕적인 언사를 하는 것은 참지 않았다.

“더 이상 아가씨께 무례한 언사를 계속 남발하시면, 보타검각 역시 가장 강한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오.”

악불군이 담수련의 앞으로 나서며 딱딱한 표정으로 말하자 백리옥빙의 얼굴도 확 변했다.

역시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

왜 악불군이 담수련을 비호하는 것에 이렇게 분노가 올라오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백리옥빙의 주위에 강력한 검기가 퍼져 나왔다. 실로 놀라운 현상이었다. 검을 빼든 것도 아닌데 어떻게 사람 몸에서 검기가 이렇게 퍼져 나온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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