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검지애 325화>
325화. 재회(1)
“계획대로 될까요?”
“누가 천호방에 대해 알고 있다고 하면 소군은 어떻게 할 것 같아?”
“어떻게 알았는지 알아보겠지요?”
“천화궁주도 알아보려고 할 거야. 누구한테 알아보는지 그것만 적설이 알아내면 되지 않겠어? 문제는 직접 가지 않고 전서를 보낸다거나 수하를 시키는 경우인데, 우리가 신비 조직에 대해 상당히 많이 안다는 것을 넌지시 밝혔으니까 아마 직접 갈 거야.”
“아가씨의 예측이 틀린 경우는 거의 없으니, 또 다른 단서가 이번에는 잡힐 것입니다.”
“그건 그쯤하고. 소군, 이왕 나온 김에 우리 소호 구경 갈까?”
항주에 접해 있는 소호는 아름다운 풍광과 주위에 널린 많은 주루로 밤에도 불야성을 이루며 수많은 선남선녀들이 모이는 곳으로 유명했다.
악불군은 미소를 지며 말했다.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악불군과 담수련이 소호 쪽으로 말을 몰아 사라지자 두 명의 장한이 나타났다.
“천호무적검 맞지?”
“분명해. 내가 항주 포구에서 봤어.”
“이 밤에 왜 나온 거지? 어디를 갔다 오는 걸까?”
혈교의 절강분타주 소속인 왕흑과 전기수는 취한처럼 비틀거리며 항주 곳곳을 돌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왕흑은 악불군과 담수련이 온 방향을 살폈다.
“저긴 기루가 몰려 있는 곳인데?”
“천호무적검도 남자이니 기루야 갈 수 있지 않겠어?”
“옆에 여자 있는 거 못 봤냐? 누가 여자랑 같이 기루에 가냐?”
“그렇긴 한데…… 그런데 어떡하지?”
“뭘 어떡해? 쫓아가야지.”
“우리 실력으로 천호무적검을 쫓아가는 것이 괜찮겠냐?”
“아직 거리에 사람들이 많잖아. 멀리서 따라가면 아무리 천호무적검이라도 우리를 잡아내지 못할 거다.”
둘은 급히 악불군이 사라진 방향으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 겁대가리 없는 놈들을 어떻게 하지?]
왕흑과 전기수가 사라지자 지붕 위에 숨어 있던 사효조가 최욱걸에게 전음을 보냈다.
[그것도 그렇지만, 담 군사님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냐?]
청월루에서 나온 담수련과 악불군은 얼마든지 은밀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그런 그들이 굳이 말을 타고 모습이 보이게 움직인 것은 분명 뒤를 쫓는 자들이 있을 거라는 담수련의 예측 때문이었다.
[최욱걸, 네가 저놈들을 감시해라. 풍기는 기로 봐서 혈교 놈들 같긴 하지만 다른 세력일 수도 있으니, 어디로 가는지 확실하게 잡아내라.]
[알았다.]
* * *
[검후님, 단서를 찾는 일은 더 이상 어려울 것 같습니다.]
소호가 보이는 주루에 앉아 홀로 술잔을 비우던 백리옥빙은 양미려의 전음에 심드렁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모레 작전이 시작된다고 합니다.]
이번 소금 대란을 만들기 위한 계획은 무려 열 개 성에서 동시에 일으키기로 되어 있었다. 겨우 절강성의 강탈 사건으로 멈추기에는 이미 늦은 것이었다.
[성후(聖后)께서 체면을 완전히 구기게 생겼군.]
[검후님, 아무런 소득이 없이 돌아간다면 무후(巫后)님께서 분명 공격하실 겁니다. 뭔가 대책을 마련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단서를 찾는 것은 더 이상 어렵다고 네가 방금 말하지 않았느냐?]
[그렇긴 합니다만…….]
[걱정 마라, 작전이 시작되면서 염상이 아닌 자들이 소금을 판매할 게다. 그들이 소금을 어떻게 구했는지 조사하면 범인을 잡아낼 수 있을 게야.]
[절강의 모든 염상들이 지금 눈에 불을 켜고 범인을 찾고 있는데 뻔히 걸릴 것을 알면서 지금 소금을 팔까요?]
[그 많은 소금을 계속 보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거기다 곧 우기야.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소금의 반은 못 쓰게 된다. 그들은 분명 이번에 판매한다.]
[그럼 그자들이 염상들이 소금대란을 일으킬 거라는 사실을 알고 이번 일을 벌였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염상 놈들이 얼마나 입이 가벼운지는 너도 알지 않느냐? 아마 소금 대란이 벌어진다는 사실을 아는 자들이 생각보다 많을 게다. 소금을 파는 자들은 봇짐장수들까지 모두 조사하라고 염상들에게 일러라.]
[알겠습니다.]
양미려가 사라지자 백리옥빙은 다시 소호로 눈길을 돌렸다.
소호에는 수많은 놀이배들이 불을 환히 밝히고 떠 있었다.
‘미친 것들! 대계만 성공하면 저런 것들은 모조리 죽여야 해.’
백리옥빙은 배에서 술판을 벌이고 있는 청년들과 기녀들을 보며 짜증 난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때 그녀의 눈이 살짝 커졌다.
소호의 수많은 장사꾼들이 한쪽을 보며 허리를 숙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것들이 나를 쫓아다니는 거야, 뭐야? 만약 쫓아온 것이 맞다면 내 오늘 확실하게 본때를 보여 줄 것이야……’
새하얀 말을 탄 담수련과 검정색 말을 탄 악불군의 모습이 그녀의 눈에도 매우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자, 그렇지 않아도 안 좋던 기분이 더욱 망치고 있었다.
“자! 저는 오늘 잠시 놀러 나왔습니다. 그러니 저에 대해서는 그냥 모른 척하시고, 하시던 일을 계속하시기 바랍니다!”
인사하는 상인과 행인들에게 포권으로 답하던 악불군은, 안 되겠다고 판단한 듯 커다랗게 소리쳤다.
“방주님 천세! 편하게 놀다 가십시오!”
“예! 저희는 모른 척하겠습니다. 대신 모든 음식은 저희들이 무료로 대접할 것이니 마음껏 드시다 가십시오.”
모두는 악불군의 말에 답례하듯 두 팔을 들어 올리며 크게 환호성을 터뜨리고는 모두 원래 하던 일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그들에게는 신인이자 영웅인 악불군을 모른 척하라고 한다 해서 모른 척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그들은 곁눈질을 하며 악불군과 담수련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왜 저자에게 저렇게 환호하는 거지?’
그녀가 아는 남자는 잔인하고 무도했다. 그런데 그런 남자가 지금 수많은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환영을 받고 있는 모습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악불군과 담수련이 그녀가 있는 주루가 아니라 소호 쪽으로 향하자 표정이 구겨졌다.
쫓아왔다고 본때를 보여 줄 생각까지 하던 그녀는, 그들이 쫓아온 것이 아님을 깨닫자 더 화가 났다.
벌떡 몸을 일으킨 그녀는 악불군이 사라진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어? 돈 내셔야 하는데!”
그녀가 사라진 주루에서는 점소이의 외침만이 아련히 울리고 있었다.
* * *
“군주님, 태양천에서 태양전사들을 오십 명이나 보냈다는 보고입니다.”
비스듬히 누운 채 시녀들의 안마를 받고 있던 금잔화는 금령사자의 보고를 듣자 몸을 일으켜 앉았다.
“태양전사라고 했느냐?”
“예!”
“대공 전하께서 나를 의심하는 모양이군.”
태양천에는 여러 전사단들이 있었다. 그중 가장 강한 전사단이 태양전사단이었다. 더욱이 태양전사를 이끄는 태양사자들은, 다섯이 합공한다면 금잔화조차 벅찰 정도로 강한 무공의 소유자들이었다.
“군주님을 얼마나 아끼시는데 의심까지야 하겠습니까?”
“내가 보고를 안 하니 당연히 의심할 수밖에 없지. 대공 전하는 원래 그런 분이다.”
“지금이라도 이곳 상황을 보고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금잔화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가시적인 성과 없이 연락해 봐야 오히려 더 의심할 뿐이다.”
“태양전사들이 오면 소천주께서 가만히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군주님께서 자신을 무시한다고 화가 많이 나 계십니다.”
“그는 자신이 대단한 전사의 기질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내가 보기에 너무 약해.”
말하는 금잔화는 자신과 상대도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담수련의 앞을 당당하게 막아서던 악불군의 얼굴이 떠올랐다.
철무정 역시 상당히 강단을 가지고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가 진정한 전사라면 그녀에게 밀린다 해도 소천주로서 당당하게 그녀와 맞섰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불만을 지니고도 막상 강력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자신의 목숨을 귀하게 여긴다는 증거였다.
“소천주님은 원한이 있으면 반드시 갚는다는 철룡세가의 피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군주님께 분명 복수하려고 하실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알아서 할 것이니 너는 태양전사들을 맞이할 준비나 해라.”
“알겠습니다.”
금령사자가 나가자 금잔화는 다시 몸을 눕히며 말했다.
“다시 안마 시작하거라.”
그녀는 지금 철무정을 보필하기 위해 태양전사들이 오고 있다는 것에 조금도 걱정이 되지 않는 듯했다.
* * *
“신 유백온 황상 폐하께 인사드립니다.”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던 주원장은 유백온의 방문에 의아한 듯 물었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독대 신청을 했다면 매우 중요한 일이 있다는 말인데, 말해 보거라.”
유백온이 서찰 하나를 두 손으로 올리자 환관이 다가가 받아 주원장에게 전했다.
“이게 무엇이냐?”
“무림 십왕 악불군 전하의 서찰입니다.”
무림인들에게는 그냥 명예직에 불과하지만, 황궁의 신하들은 그에게 전하라는 칭호를 붙여야 했다. 비록 봉토는 없지만 황제가 직접 임명한 왕야이기 때문이었다.
악불군의 서찰이라는 말에 주원장은 의아한 듯 서찰을 펼쳤다. 그가 자신에게 먼저 연락을 한 것은 처음이었다.
서찰을 읽어 가던 주원장의 얼굴에 노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유 태사령.”
“예!”
“너는 이 서찰의 진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아직 정확하게 진위 여부를 파악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악불군 전하께서 확실하지 않은 일을 황상께 전할 분이 아니라고 봅니다. 더욱이 그것을 알려 생기는 이득도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 나도 네 생각이 맞다고 생각한다. 유 태사령은 금의위를 동원해 당장 황궁을 이 잡듯이 뒤져 역적 놈들을 모조리 추포해라. 특히 황후의 주변에 있는 것들은 우선 모두 잡아들인 후, 새로운 궁녀로 대체하고 황후의 신변 보호를 강화하도록 해라.”
“당장 황명을 시행하겠습니다.”
악불군이 보낸 서찰에는 신비 조직에 대한 정보와 함께, 그들이 마 황후를 노릴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적혀있었다.
마 황후에 대한 정이 남다른 주원장에게, 황후를 노린다는 말은 절대 참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패황인 그의 역린을 건드린 이 일은 악불군의 의도와는 조금 다르게, 혈사로 변하고 있었다.
* * *
악불군과 담수련은, 백설과 다른 말이 숲속으로 사라지자 호변을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악양루에서 보던 동정호도 정말 멋있었는데, 이렇게 호변을 걷는 것도 색다른 운치가 있는 것 같네.”
“그러게 말입니다. 특히 호변 주위가 온통 불야성이니, 동정호와 같은 웅대함은 없어도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을 주는 것 같습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는 별이 쏟아지는 듯했고, 커다란 달은 진짜 항아선녀가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듯 밝았다.
“소군.”
“예.”
“우리도 배 타 볼까?”
“타 보고 싶으십니까?”
“큰 배는 타 봤지만 저런 놀잇배는 아직 한 번도 못 타 봤잖아?”
“아가씨께서 타시고 싶다면 타야지요.”
당연하다는 듯 미소를 지며 대답하던 악불군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엄청난 고수가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이 굳은 것은 고수가 다가오기 때문이 아니라, 담수련이 한창 행복해하는데 방해꾼이 나타난 것이 기분이 안 좋아서였다.
[주군, 검후라는 여인입니다. 어찌할까요?]
멀찌감치에서 악불군의 주위를 호위하던 흑석영은 백리옥빙이 다가오자 급히 전음을 날렸다.
[막지 말고 그냥 두세요. 호법들이 상대할 여인이 아닙니다.]
“또 무슨 일 생겼지?”
담수련은 뭔가 일이 생겼다는 것을 직감하고는 물었다.
“검후란 여인이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왜? 설마 소군과 싸우려고 오는 것은 아니겠지?”
담수련은 악불군이 승패를 장담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이 여전히 걱정되는 듯 물었다.
“싸울 일이 있겠습니까?”
달래듯 말한 악불군은 담수련의 팔을 잡아 자신의 등 뒤로 자리를 옮기며 한쪽을 쳐다보았다.
자신을 감추지도 않고 악불군을 향해 똑바로 걸어오는 백리옥빙을 본 악불군의 표정은 무표정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는 온몸으로 진기를 퍼뜨리고 있었다. 분명 사람이 걸어오고 있음에도 거대한 검기가 다가오고 있는 듯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