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검지애-327화 (327/472)

<천검지애 327화>

327화. 운우루주(1)

“아가씨, 새로운 연합체를 만든다면 무림맹에서 당장 반발할 것입니다.”

“혹여 무림맹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빼앗긴다고 생각하면 단순한 반발이 아니라 우리를 공적으로 만들 수도 있어.”

“그것을 아시면서 그런 계획을 세우신 겁니까?”

“그러니까 설득해야지. 무림맹의 기득권을 침범하지 않고 오로지 신비 조직과 혈교만을 상대하기 위한 임시적인 조직이라는 것을 이해시키면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봐. 물론 탕마회의 도움이 있어야겠지.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그 밀서라는 것부터 해독(解讀)해야 해.”

[주군, 소걸아 소협이 말한 비밀 지역에서 가마가 하나 나왔다고 합니다.]

그때, 흑석영의 전음이 들려왔다.

소걸아가 운우루주가 탄 가마가 들어갔다는 바위산은 이미 천호특수단에서 밀착 감시를 하고 있었다.

[우선은 건드리지 말고 감시만 하라고 하세요.]

[예!]

“무슨 일이야?”

“소걸아가 말한 곳에서 드디어 누군가 나온 모양입니다.”

“내부영주를 보면 그들의 무공이 대단한 것 같은데 걸리지는 않겠지?”

“백인막에서 살행보다 더 자신 있어 하는 것이 미행이라고 했으니, 걸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다니다 보니까 소군의 행동에서 이상한 점이 보이던데, 무슨 일이야?”

그녀의 말에 악불군은 정말 감탄했다는 눈으로 반문했다.

“그것도 느끼셨습니까?”

“다른 사람은 하나도 못 느끼지만, 소군은 조금만 달라져도 난 다 알 수 있어.”

자부심을 보이는 담수련의 모습이 귀여운지 악불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호법들에게 저를 암살하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수시로 저를 공격하려고 하더군요. 그래서 경고를 했습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담수련은 말도 안 되는 소리에 놀라 물었다.

“사실은…….”

악불군은 어쩔 수 없이 흑석영과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아니 그런 일을 왜 나한테 말 안 했어?”

“우선 간부들의 의견을 물어본 후에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럼 그때 말했어야지, 왜 지금 얘기해?”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아서…….”

“내가 반대할까 봐 그런 거지?”

“…….”

악불군이 답이 없자 담수련은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소군, 솔직히 난 그 계획에 찬성하고 싶지 않아. 소군이 위험해지는 것은 정말 싫거든. 하지만 소군이 하겠다면 반대는 안 해. 그러니까 뭐든 하고자 하는 것이 있으면 내게 말해 줘. 최대한 도움이 되는 계획을 만들 기회는 줘야 하잖아.”

담수련의 말에 악불군은 미안한 듯 그녀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며 말했다.

“다음부터는 안 그럴 것이니 얼굴 푸세요.”

“나 아기 아니니까 그런 식으로 달래려고 하지 마.”

담수련의 입이 살짝 나오자 악불군은 다급한 표정으로 말했다.

“누가 아가씨를 아기로 봅니까? 말씀하세요. 제가 당장 잡아서 혼내 주겠습니다.”

“소군이 그러잖아!”

“그럼 저를 잡아서 혼내 줘야겠네요?”

악불군의 말에 담수련의 입가에 미소가 살짝 나타났다.

“나 자꾸 웃게 하려고 그러지 마.”

“다시는 안 그런다니까요.”

답하는 악불군의 얼굴에도 미소가 나타났다. 너무 귀여워 저절로 나오는 미소였다.

‘저 미소……. 아씨! 또 가슴이 뛰어…….’

분명 중요한 문제로 시작된 상황이었지만 이상하게 서로를 보며 수줍어하는 모습으로 변하고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순간에 또다시 방해꾼이 나타났다.

[주군, 가마가 항주 시내로 들어섰다고 합니다. 그런데 향하는 방향이 총단입니다. 아무래도 또 침입할 것 같다고 합니다.]

그때 흑석영의 전음이 다시 들려왔다.

[몇 명이나 된답니까?]

[가마꾼 둘하고 가마 안에 있는 자뿐이라고 합니다.]

[가마 안에 몇 명이나 타고 있는지는 알아냈습니까?]

[가마의 크기로 미루어 한 명 정도 타고 있을 것 같다고 합니다.]

[그럼 겨우 세 명이 침입하려고 한다는 말이군요. 흑 호법.]

[예!]

[외당에 일러 가마를 검문해 보라고 하세요. 만약 반항하면 제압하고, 순순히 따른다면 가마 안에 타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확실하게 알아내라고 하십시오. 대단한 고수인 것 같으니 조심하라고 전하고요.]

[알겠습니다.]

악불군이 전음을 나누는 것을 눈치챈 담수련은 살짝 고개를 숙여 두 볼을 손으로 감쌌다.

‘얼굴 뜨거운 거 봐. 왜 난 소군과 단둘이 있으면 이렇게 뜨거워지는지 모르겠…….’

중얼거리던 담수련의 눈에 의아함이 나타났다.

오음절맥인 그녀의 몸은 뜨거워질 수 없었다. 심지어 어릴 적 절강의 풍토병인 열병에 걸렸을 때도 그녀는 열이 나지 않아 쉽게 나을 정도였다.

그녀가 본 새편작의 책에 나온 효능을 보면 빙설초를 복용하기 때문이라고 하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그녀의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흑석영이 사라지자 악불군이 그녀에게 전음으로 오간 얘기를 전했기 때문이었다.

“첫 기습이 실패했는데 다시 항주로 들어온 것을 보면 밀지가 대단히 중요한 것이긴 한 모양이네?”

“저도 그렇게 생각됩니다.”

“그런데 좀 이상하네?”

“뭐가 말입니까?”

“소걸아가 말한 바위산의 비밀 통로 말이야. 난 거기에 그들의 세력이 있을 거라고 추측했는데, 아니었나?”

그곳이 분타였다면 분명 더 많은 인원이 나서야 맞았다.

“아직 그곳을 감시하고 있으니 다른 자들이 있다면 곧 알게 될 겁니다.”

“그래 우선 검문하라고 했으니 상황을 보자고. 괜히 아직 움직임도 없는데 타초경사(打草驚蛇)의 우를 범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래도 지금 그들의 단서가 계속 잡히고 있으니 고무적이지 않습니까?”

“그렇긴 한데, 탕마회 어르신들이 그렇게 잡으려 해도 안 잡히던 단서가 왜 천호방 근처에서 이렇게 연달아 잡히는지 모르겠어.”

* * *

“황궁에 이상이 생겼다고?”

“예! 금의위가 황궁 전체를 뒤집어 놓고 있다 합니다.”

군사 나채현의 보고에 천마종은 고개를 갸웃했다.

“황궁에서 특별한 일이 있었느냐?”

“보고받은 적은 없습니다.”

“주원장 성격에 한번 칼을 뽑은 이상 쉽게 거두지 않을 텐데?”

“특히 황후전의 궁녀들이 모조리 갇혔고 심한 고문을 받고 있다고 하는데, 이유가 무엇인지는 아직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우리 애들에게는 피해가 없겠느냐?”

“아직까지는 괜찮다고 합니다. 하지만 주원장 성격상 본 교의 교도들에게 피해가 오는 것은 피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분명 누군가 주원장에게 바람을 넣은 것이 분명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실히 알아내라.”

“알겠습니다. 그리고 만물상단에서 보고가 올라왔는데, 소금이 극심한 품귀 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소금? 또 염상 놈들이 장난질을 치는 것 아니냐?”

“만물상단 총수도 그렇게 추측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곧 소금 대란이 일어날 것 같다고 합니다.”

“예전 소금 대란 때 우리도 재미 좀 봤지?”

“예, 그래서 지금이라도 소금을 비축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얼마나 비축할 생각이냐?”

“총수 말로는 금자 오만 냥어치를 비축하고 싶다고 합니다.”

“오만 냥? 너무 많지 않느냐?”

“이미 소금 가격이 두 배는 줘야 살 수 있어서 어쩔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도 총수는 최소한 두 배의 이익은 볼 거라고 보고를 했더군요. 혈마전과 아수라마전에서도 이미 비축을 시작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지금 자금이 많이 필요한 상황이다. 실수하면 많이 곤란해질 수 있다.”

“아무래도 저도 그게 걱정이 되기는 합니다. 하지만 총수 말로는 큰 변수가 없다면 최소한 손해는 안 볼 거라 합니다.”

“변수라면 어떤 것이 있느냐?”

“누군가가 싼 가격에 소금을 대량으로 뿌린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미친놈이 아니라면 누가 있어 비싼데 싸게 팔겠습니까?”

“알았다. 허락한다.”

천마종의 군사를 할 정도로 비상한 머리를 가진 나채현이었지만, 세상에는 비싼 물건을 싸게 파는 미친 사람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 * *

[루주님, 앞에 천호방 놈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앞에서 가마를 메고 있던 보익경은 최소한 열 명은 되어 보이는 천호방도들이 그들을 향해 다가오자 급히 전음을 날렸다.

[지금 피하면 이상하게 보인다. 모른 척하고 가다가, 가까운 곳에 상점이 있으면 거기로 들어가라.]

[예.]

보익경은 양민이 무림인을 만났을 때처럼 고개를 숙이며 길 옆으로 붙어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천을 파는 상점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멈춰라!”

보익경은 급히 웃는 얼굴로 고개를 들며 물었다.

“나으리, 무슨 일이십니까?”

“난 천호방의 외당 영주인 서욱만이다. 못 보던 자들인데 어디서 온 것이냐?”

“저희 마님께서는 안휘 장현에서 오셨습니다.”

“왜 온 것이냐?”

“항주가 아름답다 하여 구경 삼아 놀러 오신 것입니다.”

“요즘같이 험악한 세상에, 고작 가마꾼 두 명만 데리고 구경을 나왔다는 말이냐? 가마를 열어 봐라.”

“천호방은 양민들에게 매우 친절하다고 들었는데, 너무 무례한 것 같군요!”

그때 가마 안에서 중년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양민들에게만 친절하다. 일개 가마꾼으로 보기에 무공이 너무 강하니 알아보려고 하는 것이다.”

그때 가마 주위로 또 다른 무인들이 떨어져 내렸다.

서욱만은 말을 한 중년인을 보자 급히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영주 서욱만, 부당주님을 뵙습니다.”

그는 외당의 부당주이자 백인막의 십팔 호였던 태진열이었다.

“말한 대로 험악한 세상이라 호위 무사 겸 가마꾼으로 쓰는 것뿐, 우린 무림인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아무리 호위 무사를 데리고 있다 해도, 이 늦은 시각에 돌아다닌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상점들이 아직 문을 열고 있는데 늦은 시각이라고 하기는 어렵지요.”

태진열은 말이 많다는 듯 버럭 소리 질렀다.

“그러니까 나와서 확인을 받으면 된다. 첩자들이 스스로 나 무림인이오 하는 경우가 있느냐!”

“항주가 아름답고 인정도 많다는 말을 듣고 놀러 왔거늘 이런 봉변을 당할 줄은 몰랐군요. 얘들아! 돌아가자.”

여인의 말에 가마꾼들은 가마를 돌렸다. 하지만 걸음을 이어갈 수 없었다. 천호방도들이 가마를 막았기 때문이었다.

“나와서 정체를 밝힌 후에 가라고 했거늘, 누구 마음대로 그냥 가겠다는 거냐?”

‘천미단주, 그 계집 때문에 내가 이런 치욕까지 당하다니!’

태진열의 외침에 운우루주의 얼굴이 곤혹스럽게 변했다. 그녀가 항주에 온 것은 천화방의 기녀들을 직접 만나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였다.

아무리 천화궁주의 명이 있다 해도 감히 자신의 면전에서 거절하지는 못할 거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막상 항주에 들어와 천화방의 비문을 찾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천화궁주가 이런 상황을 예측하고 그녀가 찾을 수 없도록 비문을 없애라고 명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결국 항주 곳곳을 돌 수밖에 없었고 의심을 받은 상황에 이른 것이다.

물론 천호방에서 이미 감시하고 있었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그녀로서는 끝까지 자신의 명을 따르지 않은 천미단주가 더 미울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밖의 상황을 살폈다.

가마를 포위하고 있는 천호방도의 수는 모두 이십 명이었다. 그녀가 특별하게 경계할 정도의 고수는 없는 것 같았다.

특급 살수인 태진열이었지만 무림인으로서는 초절정 고수라 하기 어려웠다.

문제는 이곳이 천호방의 본거지라는 점이었다. 그녀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최소한 삼백 명 이상이 항주 시내를 항시 순찰하고 있었다.

천한 놈들에게 얼굴을 보이고 변명을 하는 치욕을 당하느냐, 이들을 죽여 자신의 신변까지 위험에 처할 수도 있는 상황을 만드느냐. 그녀로서는 갈등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장 나오지 않는다면 가마를 아예 부숴 버릴 것이다!”

태진열의 외침이 다시 울리자 운우루주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이놈들이 조용히 떠나려고 했거늘 결국 죽음을 자초하는구나!”

그녀의 외침을 들은 태진열은 즉각 위험을 느끼고는 소리쳤다.

“모두 피해라!”

“으악!”

“악!”

하지만 그의 외침보다 가마에서 튀어나온 암기의 속도가 더 빨랐다.

순식간에 반 가까이가 비명을 지르며 고꾸라졌다.

삐익!

삐익!

서욱만이 급히 호각을 불자 사방에서 호응하는 호각 소리가 들려왔다.

타타탁!

또다시 날아오는 암기를 막아 낸 태진열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연이은 암기 공격에 또다시 네 명이 쓰러진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대단한 고수일지 모르니 조심하라고 했는데, 실수구나…….’

태진열은 자신이 너무 쉽게 본 것을 후회했지만 후회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두 번의 공격을 끝낸 가마는 공중으로 둥실 뜨더니 상점들의 지붕을 이용해 동쪽으로 달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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