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검지애-328화 (328/472)

<천검지애 328화>

328화. 운우루주(2)

태진열이 몸을 날리자 그 옆에 한 명의 중년인이 어느새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그는 천호이대의 대주인 윤규달이었다. 그는 백인막 십오 호로, 태진열과는 친한 사이였다.

“너 이제 큰일났다.”

윤규달의 말에 태진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렇지 않아도 후회막심인데 왜 그래?”

“마 당주가 우리가 다 도착할 때까지 먼저 나서지 말라고 했잖아. 그런데 왜 경솔하게 나서서 수하들을 죽이냐? 방주님께서 수하들 다치는 것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지? 그런데 죽이기까지 했으니, 간단하게 넘어가기 힘들 거다.”

윤규달의 말은 비아냥이 아니라 진심으로 걱정이 돼서 하는 말이었다.

“저 계집을 반드시 내 손으로 잡는다.”

그 말에 태진열은 전력을 다해 신법을 펼쳤다.

“급하긴 급하군. 저놈이 이렇게 빠르게 움직이는 건 또 처음이네.”

중얼거린 윤규달도 급히 뒤를 쫓기 시작했다.

* * *

“희생자가 많습니까?”

내당당주 상경호의 보고에 악불군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물었다.

“네 명이 죽었고 세 명은 중상, 한 명은 경상을 입었습니다.”

“제가 조심해서 접근하라고 주의를 주었는데 어떻게 그런 피해가 생긴 겁니까?”

“태 부당주가 좀 방심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지금 그자는 어떻게 됐습니까?”

“양민들 피해를 우려해 항주 외곽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곧 제압할 수 있을 것입니다.”

“누가 지휘하고 있습니까?”

“마 당주와 월화옹 장로님께서 외당과 천호사기단을 지휘하고 계십니다.”

천호사기단은 무림사기를 따라 입방한 천륭검가의 식솔들 중에서 선별하여 만든 무력대였다.

“계속 예의 주시하다가, 필요하다 싶으면 즉시 원군을 보내 주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상경호가 사라지자 악불군은 담수련이 있는 방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지금 담수련은 밀지의 비문을 해독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이 늦은 시간에 쉬시지도 못하고……. 저러다 건강이라도 해치게 되면 어쩌지…….’

악불군은 마음이 착잡했다.

처음 잠룡세가를 나올 때, 그는 담수련을 보호해야한다는 마음으로 가득했기에 다른 것은 생각할 처지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상황이 변하며 생각지도 못한 무림 십왕이 되고, 이천 명에 육박하는 방도를 지닌 방의 방주가 되어 버렸다.

처음에는 담수련을 보호하는 데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자신을 합리화했지만, 이번에도 주변 상황은 그의 생각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그를 노리는 적은 더 많아졌고, 보호해야 할 사람 역시 수십 배로 늘었다.

편하게 해 주어야 할 담수련은 쉬지도 못할 정도로 일이 많아졌고, 자신을 방주로 택한 방도들의 죽음 역시 그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있었다.

‘이제 내가 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개밖에 없어.’

악불군은 입술을 질근 씹으며 중얼거렸다.

그가 택할 수 있는 길.

하나는 담수련을 데리고 아무도 찾지 못할 심산유곡으로 숨는 것이었다.

가장 편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자신을 믿고 따르는 모든 사람들을 배신하는 행위이기도 했다. 그는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그럼 남은 한 가지는…….

그를 위협하는 모든 세력들을 없애는 것이었다.

* * *

[저게 어떻게 된 겁니까?]

항주성 외곽의 자그마한 평야.

가마를 포위한 수십 명의 무인들이 보이는 높은 나무 위, 두 명의 인영 중 한 명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들은 종산은자와 현기수사의 심복인 인표규였다. 종산은자를 돕기 위해 며칠 전 항주에 도착한 인표규는 종산은자와 향후 계획을 의논하던 중, 지붕을 날아가는 가마와 그 뒤를 쫓는 천호방도들을 발견하고는 즉시 미행에 들어갔다.

인표규가 놀란 것은 천호방도들의 무공 때문이었다.

종산은자는 원래부터 신법으로 유명했고, 은신술과 미행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말을 듣고 있었다.

그리고 인표규는 무림에서 명성은 아직 없었지만 천무성궁의 최고 수련관인 천무관을 통과한 초절정고수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수십 명의 천호방도들의 움직임이 그들의 예상을 넘어 매우 빨랐고, 가마를 포위하는 방법도 엄청난 수련을 거친 듯 일사불란했다. 그 모습은 낭인들로 이루어져 숫자만 많은 오합지졸일 것으로 추측했던 천호방이 아니었다.

[나도 모르겠네…….]

종산은자의 대답에 인표규는 어이없다는 목소리로 반문했다.

[선배님께서 계속 감시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저도 보고서를 보았지만, 분명 낭인들로 이루어져 전력은 형편없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인표규의 윽박에 가까운 말에 종산은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지금 자네가 나의 상관이라도 되나? 안에 침입하지 말고 감시만 하라고 한 것은 현기수사시네. 실지로 낭인들 위주로 방도를 뽑는 것을 내 눈으로 봤고, 항주를 순찰하는 자들도 낭인들 정도의 무공밖에 없었네. 저들이 꽁꽁 숨기고 있었다면 난들 어찌 알 수 있겠나?]

[병법에서 말하길 적의 전력을 잘못 판단하는 것은 필패의 조건이라고 했습니다. 밀정으로는 최고라는 말을 듣던 선배님께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하다니,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밀정? 내가 죽음을 무릅쓰고 적진에서 정보를 캐고 있을 때 태어나지도 않았을 어린놈이, 감히 내게 밀정이라니!’

종산은자는 인표규의 말에 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간신히 참아냈다.

거기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말은 조금만 곡해한다면 자신을 의심하는 것으로 들릴 수도 있었다.

펑!

갑작스런 폭음에 둘의 눈이 커졌다.

가마가 폭발하듯 사방으로 비산하며 십여 명의 천호방도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것이 보였다.

[선배님, 저 여인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가마가 터지고 그 안에서 튀어나온 자는 뜻밖에도 여인이었다.

[나도 처음 보는 여자네, 거기다 무공도…… 처음 보는 무공인데?]

종산은자는 여인의 무공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펼치지는 못해도 그의 무공에 대한 지식은 대단히 해박했다. 어떤 때는 기수식만 보고도 어느 문파의 무공인지 알 정도였다. 그런데 여인의 무공은 듣도 보도 못한 것이었다.

여인을 돕던 두 명의 가마꾼은 죽은 것인지 제압을 당한 것인지 이미 쓰러져 움직이지 않았다.

홀로 남은 여인은 포위망을 뚫기 위해 동분서주하다시피 몸을 날리며 공격했지만, 포위하고 있는 천호방도들은 이런 싸움에 대비한 훈련이 아주 잘되어 있었다.

그녀의 공격을 받는 쪽은 피하거나 방어를 했다. 그리고 그 순간 다른 쪽에 있는 방도들이 공격을 함으로써 그녀가 피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와중에도 포위망이 한결같이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무래도 궁에 빨리 연락을 해야겠습니다. 천호방은 절대 쉽게 볼 전력이 아닙니다. 천호무적검이 천하를 속이고 있었어요.]

인표규는 여인의 놀라운 무공도 무공이지만 천호방도들의 대처가 그들에게 더 위험하다고 판단하는 듯 했다.

그때였다.

‘저분이 어떻게 여기 있지?’

보고 있던 종산은자의 표정이 굳어졌다. 여인을 막아선 한 노인. 그는 종산은자가 절대 잊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무림사기인 월화옹이었다.

[저자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인표규도 월화옹이 자신의 무공을 능가할 것 같은 여인을 막아서더니 조금도 밀리지 않는 무공을 보이자 놀란 듯 물었다.

[나도 잘 모르겠네……. 천호방에 왜 이렇게 모르는 사람이 많지?]

종산은자는 노인이 누구인지 분명 알면서도, 이상하게 모른다고 하고 있었다.

‘뭐야? 천하제일의 첩자라고 하더니, 뭐가 모르는 게 이렇게 많아?’

인표규는 직접적으로 입 밖에 내지는 못했지만 종산은자에 대한 신뢰가 급격하게 떨어짐을 느꼈다.

드디어 운우루주가 쓰러지자 인표규의 눈에 이채가 나타났다. 분명 대등한 싸움을 벌이고 있던 여인이 갑자기 쓰러졌기 때문이었다.

[뭔가 이상하지 않았습니까?]

[뭐가 말인가?]

[저 여인 말입니다. 너무 뜬금없이 쓰러졌습니다. 제 느낌에 누군가 암습한 것 같은데, 제 눈에도 보이지 않았어요.]

초절정고수답게 그는 정확하게 보았다. 하지만 그 거리에서 초특급 살수인이 마진우의 공격까지 볼 수는 없었다.

[생각은 이따 하고, 이만 가세. 저들의 무공으로 보아 계속 있다가는 우리도 걸릴 것이네.]

종산은자가 급히 말했다.

[저들이 우리를 어떻게 발견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그 많은 위험 속에서도 아직까지 살아 있는 이유가 뭔지 아나? 내 말대로 가세.]

그가 지금까지 살아 있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런 조심성 때문이었다.

인표규도 의미를 알았는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그를 따라 그곳을 떠났다.

그때 거기서 멀지 않은 나무에서 누군가의 모습이 나타났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주위에 숨어 대기하고 있던 천호일대주 조성박이었다.

[임오충.]

[예!]

[저자들은 누구인지 감시해라.]

[예.]

천호일대 부대주인 임오충은 수하 십여 명을 이끌고 종산은자와 인표규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 * *

이른 새벽.

대부분 밤을 새운 천호방의 간부들이 정청에 모였다.

“사로잡는 데 실패했다고요?”

“예, 그들이 자결할 것을 예상하고 최대한 눈치 못 채게 암습했지만 끝내 실패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마진우는 당주가 된 이후 처음 맡은 큰 사건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것에 면목이 없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당주님 잘못이 아니라 제 불찰이 더 큽니다. 방규로 벌을 내려주십시오.”

그때 태진열이 부복을 하며 커다랗게 외쳤다.

“태 부당주는 무슨 실수를 한 겁니까?”

“완벽하게 준비를 끝낸 상태에서 추포를 실행했어야 했는데, 제가 경솔하게 빨리 나서서 수하들이 일곱 명이나 희생을 당했습니다.”

“그런 잘못으로 벌을 받는다면 천호방에 방도가 하나라도 남아나겠습니까? 이번 일을 반면교사 삼아 다음부터는 좀 더 신중하게 대처하세요.”

악불군의 말에 태진열은 감동한 듯 머리를 바닥에 대었다. 실수는 바로 죽음으로 직결될 수도 있는 삶을 살아온 그에게, 악불군의 말은 저절로 존경하게 만들고 있었다.

“월하옹 장로님.”

“예, 방주님.”

“그녀의 무공에 대해서 알 수 있었습니까?”

“저도 처음 겪은 무공이었습니다.”

“마 당주는 어땠습니까?”

“저도 처음 보는 무공이었습니다.”

그러자 월화옹이 조심스럽게 나섰다.

“방주님, 한 가지 특이한 것은, 매우 날카롭고 살상 위주의 무공임에도 사기나 마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잠시 생각하던 악불군은 결정한 듯 말했다.

“계속 이들을 근처에 두고 감시만 하는 것은 쓸데없는 인력 낭비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천수옹 장로님께서는 천호특수단 일대와 천호사기단 일대를 이끌고 막간산으로 달려가, 바위산에 숨어 있는 자들을 제거하고 그 안에 있는 것을 모두 가지고 오십시오.”

“존명!”

“신 대주는 천호사대를 이끌고 천수옹 장로님의 뒤를 받춰 주십시오.”

“존명!”

“나 당주.”

“예!”

“그 학방에 대해서는 조사가 다 끝났습니까?”

“그곳을 드나드는 자들까지 모두 파악했습니다.”

“한 단주.”

“예!”

“천호특수단과 천호이대, 천호삼대를 이끌고 가서 학방은 물론 그곳과 연관된 자들을 모두 추포해 오십시오. 반항하면 죽여도 됩니다.”

“존명!”

“고 장로님.”

“예!”

“태상호법님.”

“예!”

“두 분은 오늘부터 집법당과 함께 본 방에서 암약하는 간세 및 첩자들을 모조리 색출하십시오. 어느 세력에서 심어 놓은 것인지까지 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존명!”

“존명!”

고철황과 추명혼은 머리를 조아리며 크게 외쳤다.

“임 부대주.”

“예!”

“어제 발견했다는 수상한 자에 대해서는 알아봤습니까?”

“아직 정체는 알아내지 못했지만 느낌으로는 정파로 보였습니다. 그들이 어디서 기거하는지는 알아냈습니다.”

“정파 같다구요?”

“예.”

“그럼 그들은 그냥 두세요. 우선 무슨 짓을 벌이는지 지켜보도록 하지요.”

“알겠습니다!”

너무 간결하고 정확한 명령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 한 명 없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조용히 보고 있던 담수련은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꼈다.

악불군의 모습에서 언제나 좌중을 압도하던 담무룡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니, 담무룡보다 더 강대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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