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검지애-330화 (330/472)

<천검지애 330화>

330화. 백룡신권(2)

“종산은자 선배님을 아십니까?”

“안다고 하기는 그렇지만 뵌 적은 있습니다.”

“그런 제게 말한 분이 종산은자 선배님이시라는 사실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황보 대협께서는 천호방이 절강의 패자라는 사실을 아직 믿지 않으시나 봅니다.”

“그건 절대 아닙니다. 무림맹에서도 이미 천호방의 위상은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항주에서 일어나는 일을 천호방에서 알고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너만 우리를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역시 너를 감시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자신의 행적을 악불군이 다 알고 있음을 깨닫자, 백룡신권은 가슴이 서늘해 왔다.

“종산은자 선배님께서 왜 이러시는지는 모르지만, 영웅회에서 가장 힘들고 위험한 임무를 마다하지 않으셨을 정도로 정의감이나 책임감이 남다른 분이셨습니다.”

“정의감이 투철한 분이 합리성을 가지고 있지 못하면 자신도 모르게 잘못을 저지르곤 합니다. 잘못을 알려줘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이 더 큰 문제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자, 그럼 의문이 풀어지셨을 것으로 믿고 전 이마 가 봐야겠습니다. 본 방에 좀 일이 생겨서요.”

백룡신권도 수많은 방도들이 우르르 나가는 것을 본지라 더 잡지 못하고 일어섰다.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저도 이만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본 방과 무림맹 간에 원활한 소통은 현 무림 정세에서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황보 대협께서도 도움이 필요하거나 의문점이 생기시면 언제든지 들러 저희와 의논하십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난 가 보겠네. 온 김에 아침 식사는 하고 가게.”

소걸아는 식사를 하고 가라는 말에 입에 벌어졌다.

“악 방주, 온 김에 점심까지 먹고 가면 안 될까?”

“저녁까지 먹어도 뭐라 할 사람 없으니 마음대로 하게.”

악불군은 미소를 지으며 말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보십시오. 악 방주에게 직접 물으니 마음이 편해지지 않으십니까?”

악불군이 나가자 소걸아가 어깨에 힘을 주며 말했다.

“소 제.”

“예.”

“이제 무림맹에서 자네에게 거는 기대가 막중해질 것이네.”

“기대요? 전 기대를 받을 만한 일을 한 적이 없는데요?”

“정파와 천호방 간에 오해가 생기거나 의도치 않은 충돌이 생길 경우, 그것을 중재할 사람으로 자네밖에 적임자가 없지 않겠나?”

소걸아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악불군을 만나기 위해선, 누가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올 터였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부담을 주는 것은 그가 가장 질색하는 일이었다. 그의 행동을 구속하는 이유가 되기 때문이었다.

“저와 악 방주가 친구라는 사실은 비밀로 해 주셔야지요.”

“당연히 비밀로 할 거네.”

“그럼 저에 대해 기대할 일이 없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비밀로 한다 해도, 막상 문제가 생긴다면 정파인의 한 명으로서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나.”

‘우씨! 기대도 부담되는데 웬 책임까지…….’

방금까지 어깨에 힘을 주던 소걸아의 얼굴이 죽상으로 변했다. 뭔가 코를 꿴 것 같다는 느낌이 팍팍 들었기 때문이었다.

* * *

[검후님, 성후님께서 돌아오라는 명을 내리셨습니다.]

[아직 범인을 잡아내지 못했는데 왜?]

[내일 작전이 시작된다고 합니다. 이제 범인은 염상들이 잡도록 하신답니다. 작전이 시작된 후에 검후님께서 개입하면 본 각의 존재가 드러날 것을 염려하신 듯합니다.]

‘무후(巫后) 그 계집이 꽤나 시끄럽겠군.’

백리옥빙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오라면 가야지, 알았다.]

그때 창밖을 보던 그녀의 눈에 수십 명의 무인들이 말을 타고 달려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양 영주.]

[예, 검후님.]

[저거 천호방인 것 같은데, 이른 아침부터 저렇게 몰려 어디를 가는 거지?]

[저도 지금 봐서 절 모르겠습니다……. 알아볼까요?]

[됐다! 애들이 이미 오고 있다.]

그녀의 전음이 끝나기도 전에 양미려의 귀에 수하들의 전음이 연달아 들려왔다.

[검후님, 아이들 보고에 따르면 천호방에서 나온 무리들이 한둘이 아니라고 합니다.]

[흥! 드디어 칼을 뽑기로 한 모양이군.]

[예? 그게 무슨…….]

[애들한테 감시하라고 하고, 우린 이만 보타검각으로 돌아간다. 준비해라.]

[예! 곧 배를 준비해 놓겠습니다.]

양미려가 사라지자 검후는 냉소를 입에 흘리며 중얼거렸다.

‘악불군……. 이용해 먹는 것이 아니라 당장 제거해야 할 자인데, 궁에서 그에 대해 너무 쉽게 보고 있어.’

백리옥빙은 악불군이 그들의 대계에 큰 방해물이 될 매우 위험한 자라는 생각을 했으나, 이상하게 그를 죽이자고 말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 * *

천호방도들이 나서고 반 시진도 안 되어 항주는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시작은 시장통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혈교 절강분타를 책임지고 있던 오익선 학방과 서방을 동시에 공격한 천호방은 뜻밖의 강력한 저항을 받으며 싸움이 격렬해졌다.

시장은 순식간에 피바다로 변했고, 장사를 준비하던 양민들은 황급히 사방으로 도망쳤다.

한마디로 아비규환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었다.

항주에 거주하며 천호방을 감시하며 정보를 수집하던 여러 문파들의 첩자들은 무슨 상황이 벌어진 것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은밀하게 기습하라고 했는데 완전 난장판을 만들었다면서요?”

“죄송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들이 이미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여러 곳에서 문서를 태운 흔적이 발견되었고, 학방의 주인이라는 오익선은 이미 도망을 친 상황이었습니다.”

악불군의 질책에 한우철은 머리를 조아리며 보고를 했다.

“이미 준비하고 있었다면 누군가 연락을 주었다고 볼 수밖에 없겠네요?”

담수련의 질문에 한우철이 부언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다행인 것은, 도망을 가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는지 상당히 많은 서류를 수거할 수 있었습니다. 오익선이라는 자도 추적하고 있으니 얼마 못 가 잡힐 것입니다.”

“그런데 시장 거리는 여기서 말로 달리면 반 각 안에 도착할 수 있는 곳인데, 어떻게 그렇게 빨리 연락한 걸까요? 거기다 출동할 때 어디로 간다는 말도 하지 않았잖아요?”

“그건 저도……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군사로서 그 정도도 예상을 못 한 제 잘못이 크지요. 간세들이 연락할 길만 막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외부에도 꽤 많은 첩자가 돌아다니고 있는 것 같네요.”

“달려가는 동안 수상해 보인 자들은 모두 체포하라고 명을 내렸습니다.”

“죄 없는 양민들이 있을 수도 있으니, 너무 강제로 잡아 심문하지 마십시오.”

악불군의 당부에 한우철은 염려하지 말라는 듯 말했다.

“체포도 공손히 하라고 명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악불군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무림인들이 싸울 경우 양민들이 느끼는 공포는 실로 대단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 * *

천호방의 생각지 못한 무인들의 움직임으로 상당수의 사람이 죽거나 체포된 사건은 온 무림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보고받은 문파들은 천호방의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를 찾기 위해 분주했다.

무림과는 달리 천하는 다른 현상으로 발칵 뒤집혔다. 이미 품귀 현상을 보이며 가격이 오르던 소금이 무려 하루 만에 다섯 배 이상 폭등한 것이었다.

새로운 황조가 세워진 지 일 년이 채 안 된 상황에서 벌어진 소금 대란은 황궁의 안정까지 해칠 수 있는 매우 중한 사안이었다.

“제갈 군사님!”

우문상일이 뭔가에 놀란 듯 다급하게 뛰어들자 제갈우명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물었다.

“우문 총책, 좀 진중하라고 했거늘 그렇게 고치지를 못하는가?”

“지금 진중할 때가 아닙니다. 무림에 놀라운 소문이 퍼지면서 난리가 났습니다.”

“무슨 소문인데 그러나?”

“이틀 전에 천호방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을 공격하여 백 명 이상이 죽거나 다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미 보고하지 않았는가?”

사실 제갈우명은 지금 그 사건을 분석하고 있던 중이었다.

“천호방에서 공식적으로 그 일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정말이냐?”

“뭐라고 했더냐?”

“무림에 암약하며 무림 정복을 누리는 혈교라는 조직과 무림을 이간하고 분열시키는 신비 조직이 있다면서, 이번 사건은 절강에 자리 잡은 그 두 조직을 소탕하기 위해 벌인 일이라고 발표를 했습니다.”

순간 제갈우명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뿔싸! 천려일실이구나……. 어찌 그런 중요한 사안을 이렇듯 대책 없이 발표한단 말인가……’

제갈우명은 혈교와 신비 조직에 대해 아직 제대로 된 방비책도 없이 악불군이 터뜨린 것에 큰 낭패감을 느꼈다.

“그런데 더 엄청난 발표를 같이했습니다.”

“뭔 발표를 또 했다는 것이냐?”

“천호방에서 비축하고 있던 소금을 원가에 방출하겠다고 발표했는데 그 양이 엄청납니다. 만약 지금 가격으로 팔았다면 천하제일 거부가 될 수도 있는 양인데 그것을 원가로 푼다고 하니까 양민들이 악 방주를 완전히 신인 취급을 할 정도랍니다. 더욱이 얼마나 영악한지, 자신이 이렇게 소금을 비축할 수 있었던 것이 황상의 명 덕분이라고 했답니다.”

“영악한 것이 아니라 현명한 것이다. 아무리 양민들을 위한다 해도 이런 일을 자기가 한 것으로 생색을 낸다면 얼마 안 가 역모로 몰릴 것이야. 이제 황상에게 더 신임을 받게 생겼으니 더욱 건드리기가 힘들어지겠구나.”

“거의 맹주님에 버금가는 거물이 되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혈교나 그 신비 조직에 대해 많은 문파들이 물어 올 텐데 어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대비책이 없는데 무슨 대답을 한단 말이오. 총책께서는 무조건 모르는 일이라고 발뺌하십시오!”

그때 현기수사가 매우 화난 표정으로 안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우문상일은 그를 보자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급히 포권을 했다.

“언제 오셨습니까?”

“방금 돌아왔소이다.”

현기수사는 차갑게 말하고는 제갈우명을 보며 물었다.

“제갈 군사, 지금 세상이 천호방이라는 신생 문파에게 휘둘리고 있는데 언제까지 그냥 두고 보실 생각입니까?”

“세상이 휘둘린다니 무슨 뜻입니까?”

“보고를 듣고도 지금 상황을 모르시겠습니까? 천호방이 마치 무림맹이라도 된 듯이 천하를 향해 암약하는 자들이 있다고 발표하고, 소금 대란까지 해결한다고 나서지 않습니까?”

“부군사와 나는 생각이 다릅니다. 그들은 자신의 세력권에서 위험하다고 판단된 세력을 제거한 것이고, 소금은 무림 일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제갈우명은 현기수사의 말에 고개를 살래살래 저으며 답했다.

“그럼, 군사께서는 그 두 조직에 대해 알고 계셨습니까?”

“그럼 부군사는 모르고 있었다는 말이오?”

“저는 부군사입니다. 알고 있건 모르건 제게는 의미가 없지요. 하지만 군사께서 알고 있었느냐 모르고 있었느냐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무슨 문제가 된다는 말인지 이해가 안 가는구려.”

“몰랐다면 군사로서 무능한 것이고, 알았다면 당연히 맹주님과 장로회에 상정하여 의논했어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맹주님께서 아직 공론화하기에 증거가 부족하니 군사전에서만 알고 있으라고 명을 내리셨다면 어쩌시겠소?”

천제무황의 명이라는 말에 현기수사는 찔끔한 듯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그대로 꼬리 말기에는 창피한 듯 다시 반박하듯 말했다.

“그럼 그동안 그들의 정체는 알아냈습니까?”

“이미 운을 한 번 뗀 적은 있는데, 기억나지 않으시오?”

“무슨 운 말입니까?”

“천년마교의 잔당으로 보이는 세력이 있다고 말했었습니다.”

“그게 혈교를 말하는 것이었다는 겁니까?”

“누군가 그들에 대한 정보를 우리에게 보냈더군요. 지금 그 정보의 신빙성에 대해 조사 중입니다. 물론 맹주님께도 보고를 드렸습니다.”

“그럼 신비 조직은 뭡니까?”

“그건…… 좀 더 정리가 되면 맹주님께 보고드릴 생각입니다.”

“그럼 신비 조직이라는 것이 진짜로 있다는 것입니까?”

현기수사의 반문에 제갈우명은 갑자기 총명한 눈으로 자신을 주시하던 담수련이 생각났다.

‘그래, 경솔하게 저지른 짓이 아니야……. 이런 식으로 공표한 이유가 뭘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