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검지애-332화 (332/472)

<천검지애 332화>

332화. 소금 대란(2)

“밀지에 적힌 내용 중 가장 놀란 사실은 진짜 마 황후를 제거할 생각을 했다는 거야.”

“정말입니까?”

“소군이 황상께 만약을 위해 주의를 준 것이 정확했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

주원장에게 황후 주위를 한 번 살펴보라는 서찰을 보낸 것은 뜻밖에도 담수련이 아니라 악불군의 생각이었다.

처음 악불군이 주원장에게 주의하라는 서찰을 보내자고 했을 때 담수련은 조금 신중하자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악불군은 무상 진인이 말한 ‘황실에도 그들이 이간질했다는 심증이 있다’는 의견에, 새로운 황조에 그런 작전을 펼친다면 누가 목표가 될까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긴가민가한 상태에서 주원장에게 주의를 주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판단에 우선 덮어 두고 있었는데, 천화궁주가 신비 조직의 일원이라는 증거가 나오면서 다시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신비 조직이 여인들의 집단일 수도 있다는 정황이 나오자, 그들이 노릴 사람이 마 황후라고 확신한 것이다.

“아가씨께서 제게 먼저 단서를 주셨습니다.”

“무슨 단서?”

“신비 조직이 이간질하는 방법이 여인들을 통해서라고 말씀하셨잖습니까? 그렇다면 황궁에서 이들이 목표로 삼을 사람은 마 황후가 가장 유력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악불군의 말에 담수련은 역시 하는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그래도 나도 예측하지 못한 것을 먼저 예측하고 황상께 서찰을 보내자고 한 것은 정말 대단했어.”

“그리고 또 무슨 얘기가 적혀 있었습니까?”

“밀지는 천후란 자가 태후란 자에게 보낸 거야. 글의 맥락으로 추측컨대 천후는 무림을 책임지고 있고 태후는 황궁을 책임지고 있는 것 같아.”

“천후와 태후요?”

“응, 뭔가 이상하지?”

“보타검각의 검후나 성후라는 칭호와 매우 유사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맞아, 단순히 우연으로 치기에는 정황이 매우 의심스러워.”

“혈교에서 보내 온 정보보다 세력이 더 큰 것 같습니다.”

“혈교에서도 이들의 진정한 전력을 모르고 있다는 방증이야. 이제 이들을 수면 밖으로 끌어낼 수 있는 사람은 소군밖에 없어.”

담수련의 말에 악불군은 갈등하는 표정을 보였다.

사실 악불군에게 지금 일어난 모든 상황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들이었다.

천호방의 창방도 담수련이 원해서였고, 그것이 그녀의 보호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그의 생각과는 달리 급변하고 거대해지고 있었다.

더욱이 지금 담수련의 말은 그녀의 보호를 넘어 무림의 보호를 위한 대비책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제가 먼저 주도적으로 나서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당연히 있지! 소군은 천하의 영웅이니까.”

“아가씨, 솔직히 전 영웅이 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내가 원해.”

“굳이 영웅이 되지 않아도 지금 이대로 천호방의 내실을 다져 간다면 아가씨와 가까운 사람들을 보호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소군.”

“예.”

“……”

악불군은 담수련이 자신을 불러 놓고 말을 하지 않자 다시 말했다.

“말씀하십시오.”

“그게……”

머뭇거리는 담수련의 얼굴이 발개졌다.

“말씀하시기 어려우시면 안 하셔도 됩니다.”

“아니야, 할게. 아버지께서 소군에게 나에 대해 당부한 거 생각나?”

“당연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뭐라고 했는데?”

“가주님께서는 아가씨를 완벽하게 보호한 후, 무림 최고의 영웅과 혼인……”

말하던 악불군의 말이 멈췄다. 그의 얼굴에는 당황함이 역력했다.

“더 말하지 않아도 돼. 난 소군이 무조건 천하제일의 영웅이 되기를 바라. 그리고 혈교와 그 신비 조직은 나쁜 자들이야. 난 그들이 싫어.”

“알겠습니다. 제가 천하제일 영웅이 되는 것은 자신하지 못하겠지만, 혈교와 신비 조직만은 반드시 없애겠습니다.”

‘바보!’

담수련은 악불군이 천하제일 영웅이 되는 것은 자신하지 못한다는 말에 입술이 삐죽 나왔다.

무엇보다 더 말하기는 너무 부끄러웠다.

하나, 지금 당황하고 있는 것은 악불군이 더 컸다.

자신이 천하제일 영웅이 된다면 담무룡의 당부대로 담수련의 혼인 상대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큰 충격을 받은 것이다.

그때, 밖에서 고철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주님, 고 장로입니다.”

악불군은 어색함을 벗어날 기회가 생기자 반색을 하며 말했다.

“들어오십시오.”

‘이크! 이거 내가 또 안 좋은 시간에 들어온 거 아니야?’

눈치 빠른 고철황은 방 안의 공기가 후끈하고 담수련과 악불군의 표정에 당황함이 있는 것을 감지하고는 급히 고개를 숙였다.

“자리에 앉으십시오.”

“예.”

고철황이 앉자 악불군은 다시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염상들이 총단에 몰려와 항의를 하고 있습니다.”

“무슨 항의를 한다는 겁니까?”

“천호방에서 소금을 싸게 팔면서 염상들이 다 망하게 생겼다는 것이지요. 더욱이 몇 명은 소금을 강탈한 것이 천호방이 아니냐며 선동까지 하고 있습니다.”

“이미 예상하고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습니까?”

염상들의 이렇게 나올 것을 예상한 악불군은, 그들에게 가진 소금을 사 주겠다는 유화책을 마련해 놓았었다.

“그렇게 제안했지만 가격이 너무 싸다고 극렬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악불군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와 담수련은 염상들이 그들의 제안을 받지 않을 경우의 대책까지 생각해 놓긴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 가고 싶지는 않았다.

고철황은 악불군이 원치 않은 결정을 하려는 것을 직감하고는 조심스럽게 부언했다.

“방주님께서 주창하신 양민들을 위한 방이 되기 위해서는 결단이 필요할 때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철황의 말에 악불군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결정한 듯 말했다.

“가지요. 제가 직접 설득해 보겠습니다.”

* * *

흑염회의 염일군인 지석열은 손에 든 도를 하늘로 높게 쳐들며 소리쳤다.

“천호방이 우리 염상들을 다 죽이려고 한다. 우리가 정상적으로 비축하고 있던 소금까지 관을 통해 다 뺏었다. 천호방은 양민들을 위한다고 하면서 양민들을 모두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단결하여 천호방 때문에 생긴 손해를 보존받지 못한다면 절강은 지옥으로 변할 것입니다!”

“옳소!”

“맞다! 천호무적검에게 직접 항의해야 합니다!”

그러자 사방에서 호응하는 외침이 터져 나왔다.

천호방의 정문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생각 외로 상당히 많았다. 천호방에서 파악하고 있는 염상들의 숫자와 비교한다면 군중을 모집해 온 것이 분명했다.

더욱이 칼과 낫 그리고 몽둥이 등 무기까지 들고 있는 자들도 상당수가 군중들 틈에 끼어 있었다. 여차하면 폭동이라도 벌이겠다는 시위였다.

이들이 이럴 수 있는 배경에는, 천호방이 다른 무림 세력들과는 달리 강압적으로 양민을 대하지 않는 것도 한몫을 하고 있었다.

“방주님 나오십니다!”

커다란 외침과 함께 정문을 막고 있던 무인들이 양옆으로 물러서자, 그 사이로 고철황과 내당 당주인 상경호의 호위를 받으며 잘생긴 청년이 걸어오고 있었다.

악불군을 본 군중들은 조용해졌다.

“전 천호방의 방주인 악불군입니다. 이곳에 모인 분들이 염상들 맞습니까?”

악불군은 조용히 입을 열었지만 모두는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악불군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그들의 귀를 파고들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지석열이 긴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방주님께서는 방훈까지 양민을 위한 방으로 정하셨습니다!”

“그랬지요.”

“그런데 양민인 저희들의 소금을 강탈하고 사유 재산인 소금들을 관을 통해 압수해 가셨습니다. 지금 저희들이 망하게 생겼습니다. 어떻게 책임지실 겁니까?”

“그래서 총관께서 비축하고 있는 소금을 가지고 온다면 상식적인 가격에 구입하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저희들이 구매한 가격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상식적인 가격이라는 것이 터무니없이 적습니다.”

“그래서 협잡해서 소금 대란을 일으켜 힘든 양민들의 등골을 빼려고 하셨습니까? 소금이 오르면 피해는 가난한 사람들만 입는다는 것을 몰랐습니까?”

“가격은 저희가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격이 오를 때도 있고 내릴 때도 있습니다. 가격이 내리면 저희는 손해 봅니다. 왜 그것은 생각 안 하십니까?”

지석열의 항변에 악불군은 피식 웃었다.

“당신들은 정상적으로 소금을 구입하지도 않으면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좀 어폐가 있군요? 우선 손에 무기를 든 자들은 모두 무기를 내려놓으십시오.”

무기를 든 자들은 움찔한 표정을 지었지만 서로의 눈치를 보며 무기를 내려놓지 않았다.

“전 제 앞에서 무기를 들고 있는 자들을 보면 그냥 놔두지 않습니다. 다섯을 셀 때까지 무기를 내려놓지 않으면 본 방을 공격하러 온 적으로 간주되어 죽습니다. 하나! 둘……”

반박할 여지도 주지 않고 수를 세기 시작하자 모두는 불안한 표정으로 누군가를 쳐다보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악불군은 그들이 쳐다보는 자들이 누구인지 파악하고 있었다.

“다섯!”

쉬이이익!

순간 악불군의 검이 검집에서 튀어나오더니 공포감을 주는 파공음을 내며 한 곳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크억!”

악불군의 검에 심장이 관통된 지석열은 제대로 된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앞으로 엎어졌다.

휘이이잉!

지석열을 단번에 죽인 천륭검은 공중으로 날아오르더니 검 끝을 군중들에게 향했다. 그러자 무기를 들었던 자들은 다급하게 무기를 땅에 떨어뜨렸다.

그들로서는 말로만 듣던 이기어검을 직접 보았으니 그 공포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모두가 무기를 떨어뜨리자 악불군은 검집을 살짝 들었다. 그러자 마치 검이 살아있는 듯 떨어져 내리더니 검집에 꽂혔다.

“전 양민들의 삶을 위협하는 자들은 누구도 용서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또다시 소금을 가지고 장난을 친다면 또다시 이런 일이 생길 것이고 또 큰 손해를 보게 될 것입니다. 소금을 우리에게 판다면 오늘까지는 사 주겠습니다. 하지만 내일부터는 그것도 사지 않습니다.”

“……”

이미 악불군의 위세에 주눅이 들 대로 든 모두는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그동안 염상들의 행태에 대해서는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그런 행동이 통하지 않습니다. 상 당주!”

“예! 방주님.”

“또다시 이런 일이 벌어지면, 모인 자들은 물론 이들의 행동을 뒤에서 사주한 염상들의 조직까지 모두 찾아내 멸하십시오.”

“존명!”

“오늘 여기 모인 사람들은 모르고 한 실수이니 이번은 그냥 넘어갑니다. 지금 당장 해산하십시오.”

악불군의 말이 떨어지자 모두는 걸음아 나 살려라 하며 사방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악질적이고 깡만은 무림인들을 능가한다던 염상 조직원들을 이렇게 공포에 떨게 만든 것은 지석열을 죽인 이기어검의 위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초절정 고수들까지 겁을 먹게 만든 악불군의 몸에서 저절로 뿜어지는 절대자의 강력한 기세를, 그들로서는 받아낼 수 없었던 것이다.

모두가 사라지자 악불군은 상경호를 보며 말했다.

“저들이 소금을 가지고 오면 전부 사 주도록 하십시오.”

“예!”

상경호가 허리를 숙이자 주위에 있던 모든 수하들 역시 허리를 숙였다.

그것은 윗사람인 방주에 대한 공경이라기보다는악불군이라는 인간에 대한 존경의 의미였다.

* * *

“운우루주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았느냐?”

가면을 쓴 여인 앞에 넙죽 엎드린 천화궁주는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 못 받았습니다. 운우루주가 죽었습니까?”

“운우루주만이 아니라 항주를 감시하던 천미단까지 전멸했다고 하더구나. 천호방이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 기습을 했다. 천화궁에서 아직까지 아무 연락이 없었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느냐?”

“제, 제가 이곳으로 오는 동안 연락을 했다면 못 받을 수도 있습니다.”

천화궁주는 도화전주가 자신을 의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들자 급히 부언했다.

“악불군이 제게 천화궁의 정보를 이용하고 싶다는 제안을 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나를 보겠다고 한 것이냐?”

“본 궁의 비밀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정말이냐?”

도화전주는 의아한 듯 반문했다.

“저도 의아했지만 거짓은 분명 아니었습니다.”

도화전주는 잠시 생각하더니 물었다.

“내게 허락을 받고 싶은 일이 뭐냐?”

“악불군은 본 궁을 찾는 연락망으로 사용하고 싶다며, 천화궁의 분타를 알려 달라고 했습니다. 천화궁의 분타를 알려주는 일은 제 권한을 벗어나는 일인지라 전주님께 어찌해야 할지를 묻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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