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검지애-333화 (333/472)

<천검지애 333화>

333화. 풍운(1)

“천화궁의 정보망을 구축하는 데 이백 년이 걸렸다. 그 중요한 자산을 적이나 마찬가지인 악불군에게 알려 주는 것은 위험도가 너무 크다. 그걸 너도 알 텐데 굳이 나를 만나자고 해서 묻는 이유가 뭐냐?”

도화전주의 답은 부정적이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천호방은 정보망이 확보되어 있지 않습니다. 만약 저희 정보망을 이용한다만, 그만큼 저들이 무엇을 할지 우리가 모두 알 수 있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가 본 궁에 대해 알고 있다는 비밀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느낌이라…….”

도화전주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천화궁의 모든 것은 그녀의 책임하에 있었다. 천화궁이 조직된 것은 이백 년 전이지만, 전전대 도화전주는 천화궁으로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하지만 전대 전주는 천화궁이 잠룡세가와 연결되면서 매우 중요한 정보들을 얻었고, 그로 인해 지금 각주로 영전했다.

‘지금 천호무적검은 매우 중요한 인물로, 궁주님께서 직접 그에 대한 정보를 챙기시고 있다고 했어. 만약 천호방의 정보를 계속 얻을 수 있는 길이 만들어진다면…….’

도화전주로서는 더 높은 지위로 올라설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천화궁만 잃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그녀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안전하게 현재에서 만족하느냐, 아니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느냐는 그녀를 고민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한참 말이 없던 도화전주는 천화궁주와 만났던 가면인을 보며 물었다.

“도화루주, 네 생각은 어떠냐?”

순간, 천화궁주의 눈초리가 파르르 떨렸다. 그녀에게 묻는다면 반대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그녀는 반대 의견을 냈다.

“전 허락하면 안 된다고 봅니다.”

“이유는?”

“천화궁은 도화각 소속이긴 하지만, 궁에서 매우 중요시하는 정보망입니다. 만약 잘못되면 전주님은 물론 각주님까지도 책임을 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녀의 말에 도화전주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천화궁주를 보며 물었다.

“도화루주의 말에 대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저도 그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한번 시도는 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시도?”

“예.”

“왜 그런 위험을 알면서 시도해 볼 만하다고 생각한 거냐?”

“궁주님께서는 신상필벌이 대단히 엄정하신 분입니다. 이번에 죽은 운우루주와 천미단 역시 도화전 소속입니다. 분명 이 일은 각주님과 전주님께 큰 과(過)로 기록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 과를 상쇄할 공이 필요할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천화궁주의 말에 도화루주가 발끈한 표정으로 나서려고 했다.

분명 조금 전 운우루주가 죽은 일이나 천미단이 전멸한 일을 모른다고 했는데 그것을 핑계로 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도화전주가 말하지 말라는 듯 손을 들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각주님과 의논한 후 연락할 테니 돌아가 있거라.”

* * *

“악 방주, 사조님께서 서찰을 보내셨다. 그런데 혈교와 그 신비 조직이라는 것이 진짜 있는 거냐?”

악불군을 만난 소걸아는 굉장히 궁금했는지 서찰을 건네면서 입을 열었다.

“우선 어르신 서찰부터 읽어 본 후 대화하자.”

“그게 비문으로 적혀 있던데, 개방에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더라고.”

“탕마회에서 사용하는 비문이다.”

“탕마회? 그건 또 뭐냐?”

“읽고 나서 대화하자니까?”

간단히 소걸아의 입을 막은 악불군은 서찰을 읽기 시작했다.

‘뭔데 이 친구 표정이 굳어지지?’

소걸아는 악불군의 표정이 변하자 뭔가 중요한 내용이 들어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사조님께서 뭐라고 쓰셨는데 그래?”

악불군이 서찰을 접자 소걸아가 급히 물었다.

“내가 왜 그런 공표를 했는지 설명해 달라고 하시네.”

“그건 나보고 알아내라고 하셔도 될 텐데, 왜 굳이 이런 서찰까지 쓰셨지?”

“이유가 있으시겠지.”

“그러고 보니, 지금 악 방주의 공표 때문에 무림이 시끄러워진 거 알지?”

“시끄러워지라고 한 건데 안 시끄러워지면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니겠어?”

악불군의 말에 소걸아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일부러 그랬다는 거야?”

“소걸아.”

“응?”

“넌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귄 친구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인데?”

“그럼 나랑 약속을 하면 지킬 수 있겠냐?”

“내가 이래 봬도…… 꿀꺽!”

큰소리치던 소걸아는 나오던 말을 꿀떡 삼켜 버렸다. 뭔가 불안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왜 말하다 말아?”

“내가 악 방주 말이라면 뭐든 따를 용의는 있지만, 개방의 순찰천강대장으로서 함부로 약속하는 것은 좀 어렵…….”

“하긴, 네 처지도 있는데 내가 무리한 말을 한 것 같다. 그래, 이제부터는 그냥 사적인 대화만 하자. 괜히 무림 일에 대해 말해 봐야 서로 껄끄러워지겠다.”

‘잉? 그건 아닌데…….’

사해신개가 그에게 내린 명 중 가장 핵심이 바로 악불군의 다음 행동과 생각에 대해 알아내어 보고하는 것이었다.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야지! 어렵지만 악 방주 자네니까 하겠다는 말이야.”

“정말인가?”

“당연하지!”

“그럼 약속한 걸로 알고 말하겠네.”

“뭐든 말하라니까.”

“그럼 지금부터 하는 말은 개방에 보고하지 말아주게.”

‘우씨! 이럴 줄 알았어. 약속하는 게 아니었는데…….’

소걸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였기 때문이었다.

“…….”

“왜, 친구끼리 처음 하는 약속인데 벌써 깨려는가?”

소걸아가 답을 못하자 악불군은 짐짓 이해한다는 듯 물었다.

소걸아는 그것만은 어렵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친구끼리 처음 한 약속이라는 말에 결국 받아들이고 말았다.

“하하하! 이 소걸아가 못 받을 것이 뭐가 있겠어. 약속하지 보고하지 않겠네.”

소걸아의 말에 악불군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금부터 하는 말은 자네에게만 해 주는 것이니 잘 듣게.”

악불군은 혈교와 신비 조직은 물론 탕마회까지 자세히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소걸아의 표정이 굳어졌다.

소걸아는 모든 것을 거지의 관념에서 생각하기 때문에, 먹는 것이 연관되어 있지 않은 일에 심각한 표정을 지은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표정이 굳는다는 것은 문제가 그만큼 심각하단 방증이었다.

“그럼 악 방주가 공표한 것이 사실이라는 말인데, 왜 무림맹이나 정파인들이 그냥 두고 보고 있는 거지?”

소걸아는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가 아는 사해신개는 불의를 보면 절대 참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신비 조직을 조사하기 위해 정파의 어른들이 만든 탕마회조차 처음 들었다는 사실이 의아할 뿐이었다.

“그래서 내가 공표한 거다. 계속 소수만 알고 있으면서 공론화를 시키지 않는 것은 조심을 떠나 그들을 돕는 행위나 마찬가지라는 것이 내 판단이었다. 소걸아, 자네 생각은 어떤가?”

“이런 일은 당연히 모두가 알아서 대처해야지. 모르니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에게 기밀을 넘겨주고 분란에 빠지는 것 아니겠어?”

“역시! 내가 친구 하나는 잘 골랐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네. 이렇게 생각이 같으니 얼마나 좋아.”

악불군의 칭찬에 소걸아의 얼굴에 뭔가 흡족한 미소가 떠올랐다.

이미 무림인들 사이에서 골통이라고 소문이 난 그는, 어디를 가든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기피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과는 비교도 안 될 명성을 지닌 악불군이 친구가 된 것만도 감지덕지할 판에 칭찬까지 하니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이제 어떡할 생각이야?”

“지금 자네에게 두 가지의 도움이 필요하네.”

“내 도움이? 내가 도와줄 게 있긴 하나? 무공도 딸리고, 지위도 없고, 친구도 악 방주가 유일한데?”

“자네는 자네의 능력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 같구먼. 난 자네가, 내게 큰 도움이 될 친구라는 것을 아네.”

‘내가 그 정도로 능력이 있었나?’

소걸아는 악불군이 자신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빈말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그의 말은 상당히 의아하게 다가왔다.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하겠네.”

“그럼 우선 보타검각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 급선무인데, 그것을 자네가 맡아 주게.”

“보타검각? 거긴 그냥 의심뿐이라면서?”

“의심하니까 증거를 잡아야 하지 않겠나?”

“보타검각은 정파인들이 성지처럼 받드는 곳이야. 거기는 잘못 건드리면 큰일 나.”

“세상에 성지는 없다. 내가 만나 본 보타검각의 인물들은 보통 사람이었다. 정파인들이 보타검각을 그렇게 보호해 주니까 신비 조직을 찾아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증거를 잡지?”

“담 군사께서 지금 어떻게 하면 증거를 잡을 수 있을지 계획을 짜고 있으니, 가기 전에 내가 주마.”

“하아~”

소걸아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 쉬고 말았다.

“소걸아, 난 지금 믿을 만한 친구가 자네밖에 없어서 부탁하는 걸세. 하지만 그게 자네를 곤란하게 만든다면 안 된다고 말하게. 그런다 해서 우리의 관계가 달라지지는 않을 걸세.”

“내가 지금 한숨 쉰 것은 원래 내 버릇이야. 걱정 마. 해 줄 테니까. 그럼 또 하나는 뭔가?”

“정파 무림인들의 후기지수들을 규합해서 이들을 제거할 단체를 만들고 싶네.”

“뭐, 뭐? 악 방주, 그건 불가능해!”

첫 요구도 기함할 일인데, 두 번째 요구는 소걸아를 펄쩍 뛰게 만들었다.

“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나?”

“지금 정파는 무림맹에 대부분 소속되어 있어. 그런데 무림맹과 상관이 없는 조직을 어떻게 정파인으로 만들어?”

“자네 말은 마치 무림맹이 각 문파보다 더 위에 있다는 말로 들리네. 다른 정파인들도 그렇게 생각할 거라고 믿나?”

“그건 아니고…… 다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말이지.”

악불군의 말에 소걸아는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급히 말했다.

“무림맹은 모든 문파가 동등한 연맹체이네. 맹주님 역시 장문인이 아니고 장로회의 수장 같은 지위가 아니겠나?”

‘아~ 이 친구 왜 이래. 정말 답하기 어려운 말만 묻네…….’

소걸아가 그냥 보통 개방 제자라면 얼마든지 맞장구칠 수 있었다. 후에 자신의 발언으로 문제가 된다 해도 영향력 없는 제자가 실수했다고 하고 약간의 징벌만 주는 걸로 끝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나, 그는 태상호법의 사손이었다. 거기다 칠결제자로서, 하급 제자라고 치부하기에는 배분이 너무 높았다.

아마 다른 사람이 이런 질문을 했다면 상대가 대단히 높은 지위에 있다 해도 거리낌 없이 아니라고 반박을 했을 그였지만, 악불군에게만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악 방주 말에 대해 내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말을 내가 그렇다고 하면 그게 잘못하면 또 문제가 될 수도 있고…….”

악불군은 소걸아가 횡설수설하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네가 직접 나서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네. 자네가 보기에 믿을 만하다 싶은 후기지수들을 내게 소개만 해 주게. 설득은 내가 하겠네. 가능하겠나?”

“내가 친한 사람이 별로 없는데?”

“굳이 친할 필요 없다고 보네. 난 소걸아 자네의 눈을 믿네. 자네가 믿을 만하다면 진짜 믿을 만한 사람일 거네.”

순간 소걸아의 얼굴에 감동의 표정이 나타났다.

‘도대체 나 같이 성질 나쁜 거지한테 왜 이런 믿음을 주는 거야? 아~ 괴롭네.’

하지만 그의 눈에는 악불군의 뜻을 어떻게든 이루게 해 주고 싶다는 의지가 보였다.

* * *

“천호방을 이대로 둘 수는 없습니다. 성후께서 허락하신다면 제가 천호방을 싹 쓸어 버리겠습니다.”

무후 구양봉은 소금 대란이 하루 만에 실패하자 대로한 듯 말했다.

“네가 가면 천호무적검에게 죽는다.”

백리옥빙의 말에 구양봉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반박했다.

“천호무적검과 만났다고 하더니 겁을 먹은 모양인데, 난 너랑은 달라.”

“달라서 천호방에서 소금을 강탈하는 것을 짐작도 못한 거냐?”

“소금 강탈을 조사한 것은 너야!”

“소금에 대한 것은 네 소관으로 아는데? 난 네가 망친 일을 좀 도와주기 위해 나갔던 것뿐이다. 어찌나 허술하게 일을 처리했는지 확인하고 나니, 소금이 그렇게 쉽게 강탈당한 이유를 알겠더구나.”

“이이이…….”

“지금 너희들이 싸울 때냐!”

구양봉은 분노를 참지 못하겠는지 이를 악물었지만 성후의 일갈에 참고 말았다.

“검후.”

“예.”

“정말 천호무적검의 무공이 무후가 당할 수 없는 수준이더냐?”

그녀의 질문에 백리옥빙은 즉시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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