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검지애 336화>
336화. 미끼(2)
“방금 들어온 정보가 하나 더 있습니다.”
천후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도화각주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뭐냐?”
“외유를 나선 악불군의 첫 목적지가 남궁세가라고 합니다.”
“남궁세가?”
“아무래도 절강 주위의 문파들을 다독이기 위한 포석 같습니다.”
“담수련도 같이 가겠지?”
“아마 그럴 것입니다.”
“지금 당장 악불군을 제거하는 것이 어렵다면, 그가 함부로 나대지 못하게 제어하는 것이 좋겠다. 담수련을 납치해라.”
“악불군이 언제나 밀착 경호를 하고 있어서, 그를 상대하지 않고 담수련만 납치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습니다.”
천후는 잠시 생각하더니 결정한 듯 말했다.
“은화(隱花)를 사용해라.”
천후의 말에 은우각주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은화는 가장 중요한 순간 사용해야 할 자원입니다.”
“지금 가장 많은 실패를 한 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구나.”
천후의 차가운 대응에 은우각주는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악불군을 조종하지 못한다면 대계에 큰 지장이 올 수도 있다. 지금이 가장 중요한 때가 아니라면 언제가 중요한 때란 말이냐! 우선 천미각에서 담수련의 납치를 시도해 봐라. 만약 실패한다면 은화를 나서게 할 수밖에 없다.”
“존명!”
* * *
“아가씨, 떠날 준비가 됐습니다.”
추국의 말에 얼굴을 만지던 담수련은 그녀를 보며 물었다.
“어때? 역용 잘된 것 같아?”
“진짜 완전 딴사람이 되셨어요. 역용술이 점점 발전하고 계신 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수석장로님 덕이지 뭐. 방주님은 어디 계셔?”
“지금 집무실에서 간부 회의를 하고 계십니다. 떠나기 전에 당부하실 말이 있으신 모양이에요. 마지막 점검도 필요할 것이고요.”
연화의 부언에 담수련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아가씨, 어제부터 안색이 계속 안 좋으시던데 무슨 일 있으세요? 혹시 몸이 편찮으시다면 출발을 며칠 늦추는 것이 좋지 않겠어요?”
추국의 걱정 어린 말에 담수련은 고개를 저었다.
“몸이 따로 안 좋은 데는 없어.”
하지만 그녀에게는 지금 큰 근심이 있었다.
천후가 태후에게 보낸 밀지의 해석을 다 끝낸 그녀는 경악할 정도로 놀라운 정보를 하나 발견했다.
그 밀지에는 뜻밖에도 담수련의 이름이 언급되어 있었다.
심지어 그들이 회유할 목표물 중 마황후와 더불어 일순위에 들어 있었다.
황후와 같은 일순위일 정도로 자신을 중요시한다니 기분이 나쁠 것은 없었다.
천화궁주가 간세라고 판명이 난 이상, 자신이 오음절맥에 걸렸다는 사실을 그들도 알고 있을 것은 분명했다. 무공도 약하고 오래 살기도 어렵다는 것을 알 텐데도 그녀가 회유 일순위라면, 이유는 악불군이라는 것은 쉽게 유추가 되었다.
그런데 그녀가 의아하게 생각한 것은, 회유가 안 될 경우 비장의 무기를 사용하겠다는 문구였다.
그녀는 자신을 회유할 수 있는 비장의 무기가 무엇이 있을까를 밤새 생각했었다.
돈, 명예, 목숨, 담수운, 종리화 그리고 악불군 등등…….
그녀를 회유할 가능성이 있는 것을 모두 검토했다.
그중 돈과 명예는 금방 탈락했고, 그녀의 목숨을 가지고 협박하는 것은 오래 살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들이 아는 이상 비장의 무기가 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그녀가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었다. 담수운과 종리화는 분명 그녀에게 대단히 중요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둘 때문에 그녀가 매우 갈등하고 고심할 수는 있지만, 그들의 생각대로 회유가 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럼 마지막으로 악불군인데, 그라면 분명 그녀를 움직이게 할 수 있는 비장의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들이 담수련을 회유하려는 이유가 악불군 때문이라고 가정한다면, 그를 그녀를 회유하는 데 이용할 필요 없이 그냥 자신들의 목적에 사용하면 될 일이었다.
그렇게 하나씩 제거해 나가던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정도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비장의 무기가 될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담무룡이었다.
* * *
“집법 장로님.”
“예.”
“지금 간세로 판명된 자들이 몇 명이나 됩니까?”
“백사십 명을 구금했는데, 그중 간세로 확인된 자는 일곱 명, 간세일 것으로 추정되는 자는 스물두 명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방에서 방출했습니다.”
“불만이 많았을 텐데요?”
“의심만으로 쫓아내는 것은 너무 부당하다고 항변하더군요. 하지만 극렬한 저항은 없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악불군은 추명혼을 보며 물었다.
“추 태상호법님. 제가 외유를 떠난 후 아무 일도 없으면 좋겠지만, 담 군사님은 분명 적들이 수작을 부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담 군사님께 대비책에 대해 들었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이번 기회에 아직 발견하지 못한 간세들과 외곽에서 암약하는 첩자들까지 모두 잡아내겠습니다.”
“동방 수석장로님.”
“예, 이번에 들어온 분들은 확실하게 믿을 만하겠지요?”
“방주님께서 주신 돈 덕에 그들이 편하게 합류할 수 있었습니다. 간세들이라면 가족들을 걱정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동정어옹이 천호방에서 가져간 금자 오천 냥은 아직 천호방에 합류하지 못한 천륭검가의 식솔들의 후손들을 데려오기 위한 자금이었다.
새로운 주군의 등장에 그들은 환호하기는 했지만 상황상 당장 합류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꽤 많았다.
숨어서 지내는 동안 가족을 형성한 자들이었다. 동정어옹은 그들이 떠나도 가족들이 문제없이 살 수 있도록 상당량의 돈을 나누어 준 것이었다.
“그럼 그분들을 천호방의 요소요소에 잘 배치해서, 언제라도 추 호법님을 도와줄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예!”
“그리고 동방 소저를 담 군사님께서 데리고 가기로 했는데, 허락은 하신 겁니까?”
동정어옹의 손녀인 동방소령은 겨우 열세 살의 어린 나이였지만 사화보다도 더욱 강한 무공을 소유하고 있었다.
붙임성이 좋은 그녀는 동정어옹이 바쁘자 수시로 담수련을 찾아가 말 상대를 하면서 지금은 언니 동생할 정도로 친해져 있었다.
“소령이 그 아이가 담 군사님을 무척 귀찮게 한다고 들었습니다. 이번에도 따라간다고 떼를 쓴 모양인데 죄송합니다.”
“동정호변을 제 집처럼 뛰어다닌 모양이던데, 총단에만 갇혀 있으니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그건 상관이 없는데, 이번 외유가 상당히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무림인의 여식으로 태어났습니다. 그 아이의 부모도 무림인으로 살다가 흉적에게 죽었지요. 제가 무림인과 양민 중 무엇이 되겠느냐고 물었을 때, 무림인을 선택한 것은 그 아이입니다. 위험하다는 것은 숙명이겠지요.”
약간은 비장함이 감도는 동정어옹의 말에 악불군은 더 이상 말하지 못했다.
그때 고철황이 입을 열었다.
“방주님, 만물상단이라고 아십니까?”
“무림 사대상단으로 불리는 거대 상단 아닙니까?”
“예, 맞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천호상단과 협업을 하자는 연락이 왔습니다.”
“만물상단에서 직접 제안을 했다는 겁니까?”
“예, 사대 상단은 다른 상단들은 거들떠도 안 볼 정도로 위세가 대단한 곳인데, 저희에게 협업하자고 해서 어찌해야 할지 판단을 못 하고 있습니다.”
악불군은 예전 혈교의 무리들에게서 획득한 전표들이 만물상단 소속의 만물전장에서 발행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만물상단은 담 군사께서 혈교와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하는 곳입니다. 어떤 협업을 원하는지 모르지만 불순한 의도가 있음을 배제하기는 어려울 것 같군요.”
고철황은 상단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물건을 훔치는 도둑이 합법적으로 장사를 하는 상단에 대해 잘 아는 것이 이상하지만, 실질적으로 도둑이 가장 선호하는 목표가 상단들이다 보니 그들에 대한 정보는 도문에게는 매우 중요했다.
“그럼 거절할까요?”
“아니요. 협업하십시오. 단, 어떤 일을 진행하든 군사님께 먼저 허락을 받은 후 하십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준비가 다 된 것 같으니 회의는 이것으로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악불군의 말이 끝나자 모두는 그 앞에 넙죽 엎드리며 말했다.
“목적하신 일을 모두 이루고 귀환하십시오.”
“건강에 유의하셔야 합니다!”
중구난방으로 각자의 생각을 말하는 진정 어린 그들의 모습에, 악불군은 감사하다는 듯 포권을 하고는 방을 나갔다.
* * *
악불군은 최대한 조용히 외유를 떠나고자 했으나, 그의 동선이 이미 소문이 난 이상 그것은 불가능했다.
그가 수하들과 천호방 총단을 나서자마자 모여든 항주의 양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기 때문이었다.
지역의 무림 패자가 움직일 경우 양민들이 스스로 모여드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우선 사파인들은 양민들의 목숨을 파리 목숨과 동일시할 정도로 우습게 생각했다.
물론 정파는 안 그런다고 하나, 무섭기는 매한가지였다.
주위에 있는 양민이 실수로 행한 표정이나 손짓 하나만으로도 잡혀 가거나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악불군의 행차에 몰려든 양민들은 진정으로 존경한다는 듯 모두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몇몇 처자들이 잘생겼다고 소문난 악불군의 얼굴을 한 번 보기 위해 고개를 들기도 했지만, 인파에 비해 거리는 매우 조용했다.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주루 이 층에 앉아 그 모습을 보던 소걸아는 자랑스러운 듯 물었다.
“이렇게 짧은 시기 안에 자신의 세력권에 있는 양민들에게 이만큼이나 환영받은 문파는 무림 역사상 거의 없었을 것이네.”
백룡신권 역시 감탄스러운 듯 답했다.
“황보 대협께서는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뭘 말인가?”
“무림맹에서 악 방주를 감시하라고 대협을 여기에 보내신 거 아닙니까? 그래서 따라가실 건지, 아니면 그냥 이곳에 계실 건지를 묻는 겁니다.”
“은밀하게 움직인다면 내가 따라가야 하겠지만, 이미 어디로 움직일 것이라고 다 알려졌는데 따라가서 뭐하겠나? 안휘로 넘어가시면 또 다른 무림맹 사람이 붙을 걸세.”
“그럼 황보 대협, 저를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뭐 말인가?”
“악 방주가 공표한 혈교와 신비 조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솔직히 나도 그 공표를 듣고 깜짝 놀랐다네. 소 소제는 정말 혈교와 신비 조직이 있다고 생각하나?”
“전 악 방주가 없는 일을 만들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흠……. 혈교야 무림 역사상으로 보면 천년마교의 침공도 있었고 배교의 발호도 있었으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치지만, 그 신비 조직에 대한 것은 너무 황당해서 믿지 않는 사람들도 많을걸?”
“아마 악 방주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면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고 벌써 난리가 났겠지요. 하지만 지금 어느 곳에서도 악 방주를 비난하는 소리가 없지 않습니까? 어쩌면 우리만 모르고 있었을 뿐, 그들에 대해 알고 있었던 사람들이 꽤 많을 수도 있다는 생각했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만, 악 방주님의 명성과 영향력이 너무 커져서 감히 비난을 못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 않겠나?”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저희가 한번 증거를 찾아볼까요?”
“우리가?”
“제가 순찰천강대장으로서 이백 명 가까운 천강개를 지휘합니다. 황보 대협께서도 그 정도의 수하는 움직이지 않습니까?”
“이백 명까지는 안 되고, 백 명 조금 넘을 정도는 내가 부릴 수 있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어떻게 하자는 말인가?”
“보타검각 말입니다.”
“보타검각? 거긴 왜?”
“이건 황보 대협만 알고 계셔야 합니다. 악 방주가 말하길, 보타검각이 매우 의심스럽다고 하더군요.”
“보타검각은 검의 성지로 무림인들의 존경을 받는 곳인데, 어찌 의심을 한단 말인가?”
“그러니까 악 방주도 의심만 한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보타검각은 의심하려면 어느 정도는 증거가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걸 저희가 알아 보자는 겁니다.”
“우리가?”
그가 백룡신권에게 이런 제안을 한 것은 악불군의 부탁 때문이었다.
담수련은 보타검각을 천호방이 직접 건드리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판단을 했다.
그렇다고 다른 곳에 요청하기엔 아직 무림맹에게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때 소걸아와 백룡신권이 총단을 방문한 것은 그녀에게는 뜻하지 않은 소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