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검지애-337화 (337/472)

<천검지애 337화>

337화. 남궁세가(1)

소걸아를 설득해 보타검각에 대한 감시를 개방과 무림맹 소속인 백룡신권에게 맡기는 계획은 담수련이 제안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처음 들은 악불군은 조금 난감해했다. 친구를 이용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무림의 안녕과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라는 점, 그리고 소걸아에게도 나쁠 것이 없다는 그녀의 설득에 결국 승낙한 것이었다.

“악 방주가 외유를 나가면 어차피 할 일도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보타검각은 주산군도에 위치하고 있는데, 우리가 어떻게 조사한단 말인가?”

“제가 다 생각해 놓은 것이 있습니다. 아니면 악 방주의 의심을 풀어 주는 것이니 악 방주에게 도움을 준 것이고, 만약 진짜 연관이 있다면 저흰 엄청난 공을 세우는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단, 지금 부리는 수하들에게도 무엇을 조사하는지는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그건 왜?”

“공표가 사실이라면 그들 중에도 간세가 있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소 소제는 악 방주의 말을 정말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모양이구먼?”

“그 젊은 나이에 그런 명성을 얻었다면 그만한 능력이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뭐, 그냥 알아보는 것 정도야 문제 있겠나? 자네 말대로 악 방주께서 돌아올 때까지는 일도 없으니 한번 해 보세.”

“하하하~ 역시 제가 믿을 분은 황보 대협밖에 없다니까요.”

평상시라면 백룡신권은 소걸아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 이유는 그동안 소걸아가 보인 행동이 진중한 면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 악불군과 친구라는 그 한 가지만으로도 소걸아의 위상은 달라져 있었다.

* * *

“언니, 방주님 정말 멋있으시죠?”

동방소령은 담수련의 배려로 마차에 같이 탔다. 악불군까지 허락했다는 것은 그만큼 그녀를 믿는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창문을 열고는 밖을 열심히 보던 그녀는 갑자기 담수련을 보며 물었다.

“령매는 방주님이 멋있어?”

“당연히 멋있지요! 방주님 같이 모든 면이 멋있는 남자는 본 적이 없어요.”

“령매가 방주님을 정말 좋아하나 보네?”

“너무 멋있잖아요?”

“그래, 멋있긴 하지.”

“제가 나이만 많았으면 잡아 볼 건데…… 늦게 태어난 게 너무 아쉬운 거 있지요.”

“호호호~ 령매와 대화하면 정말 재미있어.”

동방소령의 옆에 앉아 있던 추국도 인정한다는 듯 얼굴에 미소가 나타났다.

“그런데 아가씨, 악 방주님께서 말씀하신 그 신비 조직이란 거 진짜 있을까요?”

“추국 생각에는 없을 것 같아?”

“방주님께서 직접 공표하셨으니 있긴 할 것 같긴 한데, 너무 신기해서요.”

“그래, 어떤 조직이나 사람들도 하기 어려운 일이지. 종교에 가까운 집념이 없다면 있을 수 없는 조직이야.”

“멈춰라!”

그때 선두를 이끌던 천호사기단의 일대주인 오일웅이 손을 들어 행렬을 멈췄다.

앞에서 이십여 명의 무리들이 말을 타고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깃발을 보니 남궁세가인 것 같습니다.”

악불군이 옆으로 오자 오일웅은 그의 뒤로 서며 말했다.

“워어!”

악불군의 앞, 일 장 거리에서 멈춘 무리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섰다.

“저는 남궁세가의 장로인 남궁원익이라고 합니다. 가주님의 아우이기도 하지요. 천호방의 방주님이 누구십니까?”

악불군이 앞으로 나서며 포권을 했다.

“천호방 방주인 악불군입니다. 장로님께서 여기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남궁원인은 포권하는 악불군을 재빨리 훑어보더니 만면에 미소를 지며 말했다.

“방주님께서 본가로 오신다는 말을 들으신 가주님께서 제게 마중을 나가라고 명하셨습니다. 무림 십왕에 봉해지신 분이니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장로님께서 이렇게 멀리까지 마중을 나오시다니 정말 영광입니다.”

‘다행히 거만하지는 않구나.’

젊은 나이에 걸맞지 않은 명성을 얻게 된 무림인들은 대체적으로 거만해지기 일쑤였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악불군의 행동은 대협의 풍모를 보이기에 충분할 정도로 겸손했고, 진정성이 보였다.

“아닙니다. 이제부터 본 가에서 안내하겠습니다. 저희를 따라오십시오.”

남궁원익은 뒤에 있는 중년인에게 명했다.

“마차가 있으니 천천히 안내하도록 해라.”

“예!”

‘수십 년은 숨어 지냈음에도 저 정도로 절제된 기세의 제자들을 키웠다니, 남궁세가를 오대세가의 수좌로 일컫는 이유가 있었군.’

악불군은 이십여 명의 남궁세가의 제자들이 능숙하게 대열을 만들고는 앞장을 서는 것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방주님은 제가 직접 모시겠습니다.”

“장로님과 함께 이동한다면 정말 많은 것을 배울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남궁원익이 바로 옆으로 말을 몰며 말하자 악불군은 다시 포권을 하며 공손히 말했다.

나이 든 사람들에게 예의 있는 행동과 공손한 말투는 첫인상을 결정하는 데 가장 큰 요인이었다.

남궁원익은 기분이 좋은 듯 환하게 웃었다.

“출발한다!”

오일웅의 외침과 함께 다시 행렬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가씨, 남궁세가의 장로가 접경까지 마중을 나오다니, 정말 대단한 환대인데요?”

앞창을 열고 상황을 주시하던 추국은 마차가 움직이자 놀란 눈으로 감탄하듯 말했다.

“그만큼 악 방주님의 영향력이 커졌다는 방증이겠지. 하지만 조금이라도 자신들에게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되면 환대가 멸시로 변할 수도 있어.”

“남궁세가에서 어떤 도움을 바랄까요?”

“안휘에 아직도 사파와 마도 세력이 준동하고 있다고 들었어. 자신의 세력인 안휘를 손쉽게 다시 찾기는 했지만 조직의 정비는 아직 안 됐다는 의미지. 가장 가까운 정파 중 완벽하게 세력을 장악한 곳이 천호방이니 도움 될 거라는 생각은 당연히 하겠지.”

“아~ 듣고 보니 정말 그러네요.”

“하지만 정파들은 사파와 달라서 도움이 된다고 무조건 협력 세력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아. 신뢰를 줘야지.”

“방주님께서는 누구에게든 신뢰를 주는 분이니, 그럼 문제는 없을 거예요.”

“어쨌든 남궁세가에서 잘돼야 다음 목적지에서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야.”

“군사 언니.”

듣고 있던 동방소령이 감탄한 표정으로 불렀다.

“응?”

“언니는 뭐든 보거나 들으면 그냥 상황이 다 떠올라요?”

“그건 왜 물어?”

“언니랑 같이 있으면서 신기한 게, 언니는 뭐든 대안을 가지고 계신 것 같아서요.”

“모두는 아니야. 그래도 군사로서 해야 할 임무니까, 최대한 노력하는 거지. 령매도 동방 장로님의 명성에 누가 안 되도록, 언제나 협과 정의를 잊으면 안 돼.”

“예.”

동방소령에게 담수련은 이미 가장 닮고 싶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 * *

악불군과 같이 말을 몰던 남궁원익은 먼저 황산 얘기를 꺼냈다. 대화를 부드럽게 하기 위한 일종의 화술이었다.

그리고 안휘의 경관 좋은 지역으로 넘어갔던 대화는 차츰 무림에 관한 사안으로 옮겨졌다.

“아직 안휘 북부에 상당히 큰 마도 세력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흑선산장이란 곳인데 장주가 일성마황이라는 자입니다.”

“일성마황이면 백대고수에 속한 자가 아닙니까?”

“백대고수 중 상위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자지요. 구천마성과도 연계하고 있다는 사실까지는 본 세가에서도 파악하고 있습니다.”

“안휘는 누가 뭐래도 남궁세가의 세력권인데, 그런 자들이 남아 있다면 상당히 껄끄러울 것 같습니다.”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압박을 가하고는 있지만, 산장이 있는 지역이 강소와 아주 가까운 접경인지라 함부로 공격도 못 하고 일단은 대치하고 있습니다.”

강소에는 황궁이 있는 남경이 있었다. 흑선산장은 작은 문파가 아니었다. 남궁세가에서 그들을 제거하려면 최소한 이백 명은 끌고 가야 했다.

다만 문제는 그럴 경우 황상의 심기를 거스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아가씨의 예상이 이번에도 또 정확하게 맞았구나.’

악불군은 감탄한 듯 중얼거렸다.

담수련은 떠나기 전 남궁세가에 대해 많은 정보를 입수해 연구했다. 그리고 그녀는 흑선산장이 현재 남궁세가에서 가장 골치를 앓고 있는 문제일 것 같다고 예상했다.

“사실 안휘와 절강은 이웃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가깝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그래서 사실 제가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어떤 생각인지 제가 알 수 있겠습니까?”

남궁원익은 즉각적으로 남궁세가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직감하고는 슬쩍 물었다.

“남궁세가와 천호방 간에 혈맹지약을 맺는 것이지요.”

“혀, 혈맹지약이요?”

남궁원익은 놀란 듯 말을 잇지 못했다. 혈맹지약은 보통 연합을 맺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매우 강력한 조약이었다.

서로 위기가 닥치면 무조건 도와줘야 하는, 사실상 하나의 문파와 같이 운명을 공유하자는 의미이기 때문이었다.

남궁원익이 너무 놀라자 악불군이 다시 부언을 했다.

“물론 남궁세가와 같이 전통 있는 대문파와 천호방 같은 신생 문파 간에 혈맹지약을 맺자는 제 제안이 터무니없다는 것은 압니다. 그냥 가장 가까운 정파이니 서로 상부상조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해서 생각해 본 것뿐입니다.”

“그래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혈맹지약을 한다면 신뢰가 수반되어야 하는데, 천호방과 본 세가 간에 접점이 전혀 없지 않습니까?”

“만난 시간이 중요하겠습니까? 남궁세가는 신의를 가장 중요시한다고 들었습니다. 당연히 전 남궁세가를 신뢰합니다. 하지만 천호방은 아직 신뢰를 줄 만한 믿음을 주지 못했으니, 이번 기회에 흑선산장을 제가 제거해 드리겠습니다. 물론 그 정도로 신뢰가 구축된다고 믿지는 않지만, 약간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남궁세가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악불군은 흑선산장을 제거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양민들을 아주 가혹하게 수탈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그렇게 해 주시겠다는 겁니까?”

“장로님을 처음 만났는데 벌써 빈말을 하면 되겠습니까? 혈맹지약을 하시지 않는다고 하셔도 흑선상장은 제거할 터이니 부담을 가지실 필요는 없습니다.”

“하하하하! 방주님께서 정말 대단한 영웅이라는 말은 들었지만, 직접 이렇게 대화를 해 보니 영웅이라는 말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그려.”

남궁원익은 혈맹지약에 대한 즉답은 하지 않았지만 기분은 대단히 좋은 듯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 * *

[루주님, 문제가 좀 생겼습니다.]

악불군이 움직일 동선 중 담수련을 납치하기 가장 좋은 지역에 자리를 잡은 천미루주는 일호 영주의 전음에 아미를 찌푸렸다.

문제가 생겼다는 말에서 또 뭔가 잘못된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무슨 문제냐?]

[남궁세가에서 마중을 나간 모양입니다.]

[거리가 어딘데 벌써 마중을 나가?]

[저도 놀랐습니다. 거기다 그냥 마중을 나간 것이 아니라, 남궁원익이 남궁세가의 정예를 이십 명이나 끌고 나왔다고 합니다.]

[남궁세가에서 뭐 먹을 게 있다고 장로까지 보낸 거지?]

[어찌하지요?]

[정면 대결은 절대로 지양하라고 하셨다. 조금이라도 위험하다면 계획은 우선 보류하는 것이 맞다.]

[알겠습니다.]

[남궁세가에 천미각 소속의 간세들이 있지 않느냐?]

[있습니다. 하지만 남궁세가는 여인들에게 큰 힘을 주지 않기 때문에, 핵심 자리에는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상관없다. 담수련이 묵을 숙소가 어디이고 경계상황이 어떤지 자세히 알아내라.]

[곧 연락하겠습니다.]

[우선 모두 철수한다.]

[예!]

명령을 내린 천미루주의 표정은 착잡했다.

담수련을 납치하라는 명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녀는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수십 년을 충성을 바쳐 간신히 루주의 자리에 올랐는데 한 번 실수로 모든 것이 물거품될 수도 있었다.

‘그래, 만약 성공만 하면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어. 반드시 성공시켜야 해.’

그녀는 담수련을 납치하면서 악불군의 눈을 피할 수 있다는 생각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 아직 모르고 있었다.

* * *

“군사 언니! 합비의 풍광이 아주 특이해요.”

창밖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던 동방소령이 신기한 듯 말하자, 담수련은 살짝 고개를 돌려 밖을 쳐다보았다.

“확실히 항주하고는 많이 다르네?”

“언니, 저 장원이 남궁세가인가 봐요?”

다시 동방소령이 한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드디어 남궁세가에 도착했구나…….’

거대한 대문과 수십 명의 무인들이 줄지어 서 있는 거대한 장원을 발견한 담수련은 심호흡을 하며 중얼거렸다.

남궁세가는 오대세가의 수좌 소리를 듣던 거대 무림세가였다. 당문과는 좋은 관계를 가졌지만 너무 거리가 멀어 천호방에 영향은 적었다.

그러나 남궁세가를 친구로 받아들인다면 실로 천군만마를 얻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