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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검지애-340화 (340/472)

<천검지애 340화>

340화. 진실(2)

악불군과 담수련이 남궁세황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그 시각.

남궁세가에는 대단히 귀한 손님이 찾아왔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가주님.”

“태웅왕 선배님과 사마 대협이 같이 여기까지 오시다니, 정말 놀랐습니다.”

현기수사가 포권을 하자, 남궁원웅은 반갑다는 듯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답권을 했다.

“안휘를 지날 일이 좀 있었습니다. 여기까지 와서 가주님께 인사도 하지 않고 그냥 간다면 되겠습니까?”

“잘 오셨소. 남궁 총관.”

“예! 가주님.”

“빨리 가서 세준 숙부님과 원익이에게 들어오라 해라.”

남궁세준과 태웅왕 그리고 남궁원익과 현기수사는 상당히 친분이 두터웠다.

“이미 연락했습니다. 곧 들어오실 겁니다.”

“잘했다. 두 분, 이쪽으로 앉으시지요.”

여러 개의 의자가 놓인 원탁에 모두 앉자 시녀들이 즉시 차를 따랐다.

“맹주님께서는 잘 계시지요?”

“예, 건강하게 잘 계십니다.”

그때, 남궁세준과 남궁원익이 안으로 들어섰다.

“하하하! 황 대협께서 여기까지 오시다니, 무슨 일입니까?”

남궁세준은 태웅왕을 보자 진짜 반가운지 두 손을 잡으며 말했다. 무림인들이 서로의 손을 잡는 것은 진짜 친하지 않으면 거의 없는 일이었다.

둘은 영웅회 때 한 조가 되어 태양천과 싸운, 피로 이어진 전우였다. 천제무황이 그를 남궁세가에 보낸 이유였다.

남궁원익과 현기수사도 반갑게 포권을 했다.

모두 자리에 다시 앉은 후, 이각 가량 그동안의 안부를 묻는 덕담이 오갔다.

“그런데 천호방의 방주가 남궁세가에 왔다고 하던데, 사실입니까?”

기회를 엿보던 현기수사가 슬쩍 물었다. 악불군의 동선은 이미 소문이 나 있는 터라 물음은 자연스러웠다.

“지금 와 계십니다.”

당연히 물을 것을 짐작하고 있던 남궁원익이 답했다.

“가주님께서 만나 보셨습니까?”

현기수사의 질문에 남궁원웅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만나지 않았습니다. 이따 만찬에서 만날 생각입니다.”

“천호무적검의 명성이 하늘을 찌르고 있는데 저도 아직 만나 보지 못했습니다. 혹시 만찬에 저희도 낄 수 있겠습니까?”

‘천호무적검 때문에 왔군…….’

현기수사의 말에 남궁원웅은 그들이 그냥 지나는 길에 들른 것이 아님을 직감했다.

“저도 그러고 싶지만, 천호무적검과 이미 약속을 했으니 먼저 양해를 구해 보겠습니다.”

“당연하지요. 저도 천호무적검이 꺼려한다면 굳이 낄 생각은 없습니다.”

현기수사는 남궁원웅의 말이 약간 거슬렸지만 틀린 말은 아닌지라 흔쾌한 척 답했다.

“그런데 사마 대협.”

“예.”

“천호방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천호무적검은 무림 십왕에 봉해지기까지 했는데, 무림맹에서 그와 공식적인 만남을 아직까지 갖지 않은 이유가 뭡니까?”

남궁세준의 질문에 현기수사는 당연한 의문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상당히 많은 문파에서 그 문제에 대해 의아해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의아해하는 정도가 아니지요. 무림맹은 정파의 연맹이고 천호방이 정파를 표방한 이상, 벌써 만나도 만났어야 하지 않겠소?”

“저도 그 문제로 제갈 군사님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헌데 제갈 군사님께서는 천호무적검의 정체성에 대해서 아직 확신을 못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현기수사는 제갈우명을 슬쩍 방패로 사용했다.

많은 정파에게 신뢰를 받고 있는 제갈우명이 의심하고 있다면 다른 문파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의심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당장 효과가 났다.

“제갈 군사가 말이오?”

남궁세준은 뜻밖의 말을 들었다는 듯 반문했다.

“천호무적검의 신분이 모호하다는 것이지요. 아시겠지만 그는 태생도 어떤 문파의 출신인지 알려진 것이 전혀 없습니다. 비록 정파를 표방하고는 있지만 스스로의 주장일 뿐입니다.”

“정파가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오?”

“그런 말은 아닙니다. 다만 아직 확인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무림에 큰 환란이 일어난다면 정파를 표방하는 문파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 나지만, 후에 사파나 마도인으로 판명 나는 경우가 꽤 많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천호방의 정책은 그런 가짜 정파들과는 많이 다르지 않습니까?”

남궁원익도 좀 동의하기 어렵다는 듯 말하자 현기수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혈교는 천년마교의 잔당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그들에 대한 정보는 받아 보셨지요?”

혈교에 대한 정보가 전해진 문파들은 즉각 무림맹에 연락해 의견을 주고받은 상황이었다.

“받아봤습니다.”

“모두 은밀하게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있는데 천호방은 마치 사실인 양 공표를 했습니다. 더욱이 무림맹에서조차 아직 파악하지 못한 신비 조직이라는 세력까지 같이 언급했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어떤 면이 이상하다는 것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천호방은 창방한 지 아직 일 년도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런 민감하고 중요한 정보를 어디서 얻었을까요? 거기다 소금 대란까지 단숨에 막았습니다. 소금 대란이 일어날 것을 이미 알고 소금을 비축하고 있었다는 말인데, 소금 대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 일로 황상의 신임까지 더 받게 되었지요. 너무 계획적이라는 것이 군사전의 판단입니다.”

“사마 대협의 말을 듣고 보니 좀 의아하기는 하지만, 그래서 천호무적검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뭔지 모르겠습니다.”

“무림맹의 와해지요. 황상께서 젊디젊은 천호무적검에게 무황들과 맞먹는 대우를 해 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가주님께서도 아시겠지만, 지금 황상은 영웅회에게 받은 도움은 벌써 잊은 듯 홀대하고 있습니다. 대놓고 정파를 견제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럼 황상과 천호무적검이 짜기라도 했다는 말입니까?”

남궁원웅은 도가 좀 넘었다고 생각했는지 약간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짰다기보다는, 천호무적검이 황상의 신임을 얻기 위해 계획을 세웠다고 보는 것이지요. 그는 무림맹을 와해시킨 후 자신이 정파의 수장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닌가 의심됩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잠룡세가와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정황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잠룡세가와 가장 원한이 깊은 남궁세가에서 잠룡세가와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은 파장을 불러오기에 충분했다.

“증거는 있습니까?”

남궁원웅의 말이 딱딱해졌다. 만약 악불군이 잠룡세가와 연관이 있다면 그는 원수가 될 수도 있었다.

“증거가 있다면 이미 천호방을 무림 공적으로 지정했겠지요. 하지만 아직 증거는 찾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말을 함부로 하시는 것은 좀 그렇군요. 잘못하면 정파 간에 분란이 생길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직 말하지 못하지요. 제가 아직 증거가 없는 정황을 말씀드린 건, 불구대천의 원수인 잠룡세가와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는 천호무적검과 친해지셨다가 큰일을 당할 수도 있기에 조심하시라는 차원이었습니다.”

남궁세가를 위해 한 말이라는데, 자꾸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진짜 혈맹지약을 맺었는데 악불군이 잠룡세가와 연관이 있다고 증명되면 남궁세가는 아마 천하의 조롱거리가 될 것이 분명했다.

“원익아.”

“예, 가주님.”

“지금 악 방주가 어디에 있느냐?”

“아마 객청에 있을 겁니다.”

“악 방주께 만찬에 사마 대협과 태웅왕 선배님께서 참석해도 괜찮을지 물어보거라.”

“지금 말입니까?”

“시간이 별로 없지 않느냐? 되도록 같이 식사할 수 있도록 해 보거라.”

“알겠습니다.”

“천호무적검이 누구를 만났습니까?”

대화 속에서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현기수사가 슬쩍 물었다.

“아직 간부들과 인사도 안 했는데 누구를 만나겠습니까?”

남궁원웅은 악불군이 남궁세황과 만났다는 것은 말하고 싶지 않은 듯했다.

* * *

“소군 생각에 남궁세황 어르신께서 어떤 결정을 하실 것 같아?”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담수련은 약간은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걱정이 되십니까?”

“어떤 상황에 대한 분석은 대충 맞출 수 있지만, 사람의 생각만은 변수가 너무 많아서 나도 자신이 별로 없어. 거기다 남궁세가는 잠룡세가와 가까워서 가장 많은 피해를 입었잖아.”

“고 장로님 말씀이, 남궁세가는 그동안 문제가 생겼을 때 대부분 합리적인 판단을 했다고 하더군요. 문파 간의 원한과 저희를 적으로 돌렸을 때 생길 수 있는 피해에 대해 합리적인 판단을 하실 겁니다.”

“아무리 합리적인 판단한다 해도 본질적으로 명분과 체면을 중시하는 무림 세가야. 내가 잠룡세가의 천금인 것을 알고도 넘어갔을 경우 세간에서 떠돌 소문을 두려워할 수도 있어.”

무림 세가로서 원수를 갚지도 않고 화해했다는 소문이 퍼진다면, 대의를 위해 원한을 덮었다는 칭찬보다는 조롱이 쏟아질 확률이 더 높았다.

더구나 잠룡세가는 그냥 원수가 아니라, 무림맹이 완전 척결을 다짐한 부역 세력이었다.

“아가씨, 진인사대천명이라고 했습니다. 저희가 거짓을 말한 것은 없으니 마음 편히 기다려보지요.”

“소군은 진짜 아무 걱정도 없어?”

“전 아가씨께서 아프지만 않으면 됩니다.”

악불군의 말에 담수련은 감동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더니 슬쩍 그의 손을 잡았다.

“왜?”

“쉿! 그냥 잡고 있자.”

담수련은 자신이 말해 놓고도 조금은 부끄러운지 얼굴이 발개지며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녀의 따스한 체온을 느낀 악불군의 가슴도 뛰기 시작했다.

오음절맥인 그녀의 손이 왜 따뜻한지는 둘 다 생각을 하지 못했다.

[주군.]

[무슨 일입니까?]

[남궁원익 장로께서 오고 있다는 보고입니다.]

[막지 말고 제 방까지 오도록 그냥 두십시오.]

[예.]

“흑 호법?”

“예, 남궁 장로님께서 오고 계신 모양입니다. 제 방으로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참 이상하네?”

왜 악불군과 좀 달달한 시간을 보내려고 하면 꼭 방해물이 나타나는지 의아한 그녀였다.

“뭐가 말입니까?”

“아니야. 가 봐.”

담수련은 아쉬운 표정으로 손을 놓고 말았다.

* * *

“누가 왔다고요?”

자신의 방에서 남궁원익과 만난 악불군은 뜻밖의 인물에 대해 듣자 의아한 듯 반문했다.

“무림맹의 호법이신 태웅왕 선배님과 부군사인 사마진격 대협께서 오셨습니다. 무림에서는 현기수사로 불리는 분이지요.”

“두 분은 천무성궁 분들 아닙니까?”

“원 소속은 천무성궁이지만 지금은 무림맹 사람들입니다.”

“설마 그분들이 저를 보려고 온 것은 아니겠지요?”

“이곳을 지날 일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태웅왕 선배님이나 사마 대협 모두 무림맹에서 발언권이 아주 큰 분들입니다. 악 방주님께서도 이번 기회에 두 분과 친분을 쌓는다면 여러 가지로 도움이 많이 될 것입니다.”

“장로님 말씀을 들어보니 괜찮을 것 같군요. 그럼 같이 식사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하하하! 역시 악 방주님은 대협의 풍모가 풀풀 풍깁니다. 그럼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 남궁원익은, 악불군이 흔쾌히 승낙하자 기분 좋은 듯 엄지를 치켜들더니 밖으로 나갔다.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겼군. 그래! 한번 부딪쳐보지 뭐.’

지나가다 들렀다고 하지만 분명 자신을 보기 위해 온 것임을 직감한 악불군은 담수련에게 보고하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 * *

남궁세가의 대정청은 수많은 음식을 나르는 시녀들의 발걸음으로 분주했다. 태웅왕과 현기수사라는 뜻밖의 귀한 손님까지 합류하면서 만찬이 더 커진 것이다.

커다란 식탁의 끝, 중앙에 남궁원웅이 앉고 오른쪽에는 태웅왕과 현기수사 그리고 마주보는 왼쪽에는 악불군과 담수련이 앉도록 자리 배치를 했다.

남궁세가의 장로와 호법 등 간부들 이십여 명도 그들 양 옆으로 앉도록 했다.

“형님, 너무 정면으로 보고 앉게 한 것이 아닐까요? 거기다 형님의 바로 옆이라는 것도 좀 그렇습니다.”

왠지 모를 불안을 느낀 남궁원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원래 이런 자리는 가주의 바로 옆에는 호위를 위해 호법들이 앉고 그다음으로 손님을 앉히는 것이 보편적인 자리 배치였다.

“좀 이상하냐?”

“이상하다기보다는 좀 불안합니다.”

“세황 숙부님께서 직접 정해 주셨다.”

“숙부님께서요?”

“이런 일에 상관하지 않는 분인데, 태웅왕과 현기수사가 왔다는 말을 들으시더니 연락해 오시더구나.”

“그래도 왜 이런 배치를 하셨을까요?”

“아마 둘의 대화를 내가 집중해서 듣기를 원하신 것 같구나.”

“그렇다면 중요한 대화가 오갈 수도 있다는 말이군요?”

“숙부님께서는 그렇게 판단하신 것 같다.”

그때 남궁원익이 다가왔다.

“가주 형님, 악 방주님과 담 군사께서 오셨습니다.”

“이쪽으로 모시거라.”

“예!”

악불군과 담수련을 본 남궁원웅은 환한 미소를 보이며 반갑게 맞았다.

“어서 오시게.”

“이렇게 성대한 만찬을 베풀어 주시다니, 정말 영광입니다.”

포권을 한 악불군은 차려진 산해진미를 보며 매우 감사한 듯 말했다.

인사를 하는 악불군을 아래위로 훑어본 남궁원웅은 자신도 모르게 감탄과 함께 아쉬운 표정을 짓고 말았다.

‘천무성궁의 소궁주를 보고 놀랐는데, 이 청년도 정말 대단하구나. 남궁세가에 이런 청년이 있었다면 정말 걱정이 없었을 텐데……’

“내가 귀한 손님을 보고 딴생각을 했네. 우선 앉으시게.”

남궁원웅은 자신이 악불군을 세워 둔 것을 깨닫자 급히 자리를 권했다.

악불군과 담수련이 앉자 또 다시 남궁원익이 다가왔다.

“가주님, 태웅왕 호법님과 현기수사 부군사께서 오셨습니다.”

“모시고 오게.”

[소군, 분명 좋은 의도로 온 것은 아닐 거야.]

무림맹에서 악불군에게 공식적인 대화 신청이 없었으니, 담수련은 천무성궁에서 자신들을 좋게 보지 않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좋은 의도가 아니더라도 여기서 시비를 걸지는 않겠지요?]

[그거야 모르지. 분명한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소군은 의연해야 한다는 거야.]

[걱정 마십시오.]

전음으로 대화를 나누던 둘은, 남궁원익의 안내를 받으며 나타난 거대한 체구의 태웅왕과 날카로운 눈매의 현기수사가 나타나자 몸을 일으켰다.

남궁세가라는 거대 문파의 가주가 있는 자리에서 무림맹 사람과 만난 것은 제갈우명과 은밀하게 만난 것과는 그 의미가 완전 다른 것이었다.

그리고 현기수사와 담수련의 눈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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